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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9개국 탐방
날짜:2011년 9월 7일 수요일~18일 일요일 11박 12일
여행국:루마니아,불가리아,세르비아,마케도니아,알바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 가는 국경선
휴게소를 출발하여 잠시 후 국경선에 도착했다. 뒤편은 크로아티아, 앞편은 슬로베니아다. 국기가 초록 지붕 위에 걸려 있다. 크로아티아의 사무국 직원이 올라와서 그냥 여권 검사만 하고 간다. 슬로베니아로 진입하는 국경선에서는 내려서 여권을 가지고 사무국에서 수속을 밟았다. 수없이 넘어온 국경선인데 넘을 때마다 긴장을 하게 된다. 항상 어느 나라에서든 국경을 통과 한다는 것은 삼엄한 경계로 엄숙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통과에 제약을 받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포근한 유럽의 국경선이다.
*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가는 길
여기는 슬로베니아 땅이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알프스, 발칸 반도의 고요한 전원국가다. 나는 두 번째로 왔다. 고운 땅이다. 초지와 예쁜 집이 목가적이다. 한국과 시차는 -8시간이다. 포스토이나POSTOJNA까지는 50분 소요된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포스토이나 인구는 약 1만 5천명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카르스트 동굴 포스토이나 동굴을 보기 위해서 포스토이나에 가는 것이다.
유럽 중앙에 위치한 슬로베니아는 작은 유럽의 신생국가다. 19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구유고 연방은 불법으로 간주하고 연방군의 첫 공격지를 슬로베니아로 정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의 저항에 공화국의 분리 독립의지를 꺾지 못하고 오히려 국제여론을 악화시켰다. 1991년 8월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크로아티아 내전을 거치면서, 1992년 1월 유럽의 만장일치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독립을 승인 받았다. 슬로베니아는 2004년 EU에 가입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개방되고 있는 나라다. 아드리아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형으로 녹지가 많고 전체 면적의 절반 정도가 숲으로 덮여 있는 나라다. 창밖의 산과 숲이 울창하다. 가정 집 창가에 기르는 꽃 화분도 예쁜 나라를 예찬하고 있다.
*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동굴
포스토이나 동굴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동굴이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이다. 오전 11시경 포스토이나 동굴에 입장했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20km의 석회동굴인데 그 중에서 일반에게 공개된 구간은 5.2㎞로 일반인의 관람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또한 꼬마기차를 탑승하여 입장하는 세계에서 2번째로 긴 종류 동굴이다. 2Km는 기차로, 1Km는 도보로, 2Km는 다시 기차로 본다. 1시간 30분 정도 본다. 동굴 속 온도는 8~10도다. 방수 잠바를 입었다. 두 사람이 앉는 전동기차 꼬마기차를 타고 15분간 들어간다. 1872년부터 기차 운행이 시작되었다. 가스 기관차에서 1945년 이후에는 전기기관차로 되었다. 오스트리아에는 40Km 석회동굴이 있고, 우크라이나에는 200Km 석회동굴, 켄터키에는 320Km의 석회동굴이 있다.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동굴은 1213년 처음 오픈했다. 1818년 통로를 만들고 불을 설치하면서 동굴의 새로운 부분을 발굴하였고 1819년부터 일반인 관람이 시작되었다. 1824년에 댄스 이벤트 홀도 만들었다. 동굴 입구 처음 부분이 검은 것은 오픈 당시 전기가 없어서 불을 켤 때 그을린 흔적이다. 1884년엔 세계최초로 동굴 속에 전기를 가설하였다. 19세기 합스부르크가에서 세계에 알렸다. 현재까지 3천만 명 관광객이 찾아온 관광지다.
동굴 안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1시간 걸으며 굴속을 여행한다. 영어, 독어, 등으로 해설하는 가이드가 있는데 우리는 영어로 해설하는 남자 가이드와 함께 다녔다. 동굴 안에는 치킨, 로미오와 줄리엣, 원숭이, 소크라테스, 생각하는 사람상 등의 이름을 가진 종유석 많다. 희귀한 모양의 종유석이 장관을 이루는 ‘대동혈’, ‘ 1만명 수용 콘서트 홀’, ‘무도장’ 등이 있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수백만 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석회암의 용식으로 생겨난 희귀한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이 장관을 이루는 신비의 동굴이다. 석순은 10년에 0.1mm씩 자라나는데, 10cm가 되기 위해선 1000년의 세월이 지나야 된다. 석회석이 많아 지하가 함몰되는 지형카르스트 지형이 잘 발달된 슬로베니아는 약 5,000개의 지하 석회동굴이 있다. 영국의 대문호인 헨리 무어는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동굴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경이적인 자연미술관이라고 했다.
이 동굴에는 휴먼피쉬Human Fish라고 불리는 생명체가 산다. 도롱뇽의 일종으로 동굴의 어둠에 적응해 눈이 퇴화되었다. 수명은 약 80∼100년, 크기는 약 25∼30cm의 척추동물이다. 단어 그대로 ‘인어’ 또는 ‘인면어’라고도 한다. 사람의 얼굴을 닮았고, 피부색이 백인과 같고, 수명도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하얀색 생명체가 가두어 놓은 물속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유리관으로 된 물통 속에 몇 마리 들어 있다. 독특한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휴먼피쉬를 보고 콘서트홀 옆의 정거장에서 다시 꼬마기차를 타고 출구로 나왔다. 끝없이 전개되는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들 앞에서 우주의 장엄한 신비를 체험하는 여정이다. 동굴 앞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거리의 기념품 가게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스토이나 동굴에 사는 휴먼피쉬의 큰 사진을 걸어둔 가게도 있다. 주차장에서 동굴로 이어지는 길의 바닥에도 휴먼피쉬를 그려놓고 따라오라는 영어글씨를 써놓았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 포스토이나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슬로베니아 블레드 가는 길
오후에 포스토이나를 떠나 블레드로 향했다. 슬로베니아는 2004년 EU에 가입한 나라다. 2007년부터 유로화를 통용한다. 1991년 독립했고 GNP 2만 5천불이다. 전체는 인구는 200만 명이다. 수도 루불라냐 인구는 35만 명~40만 명 유동 인구까지는 50만 명이다. 남한의 1/5, 한반도의 1/11 크기의 작은 국가다. 유고 연방시 다른 나라 왕들이 자주 오던 나라다. 자연경관이 좋아서 휴양지로 관광업이 발달했다. 항구가 있어서 무역운송업도 발달했다. 인쇄업도 발달했다. 주산업은 목재업이다. 슬로베니아인이 85%, 나머지는 여러 민족이다. 슬로베니아어를 사용한다. 한국과 수교국이다. 그러나 대사관이 없다. 그래서 여권을 분실하면 오스트리아에 가서 여권을 재발급 받아야 된다. 주재원 상사 가족 몇 명만 거주한다. 국기에는 2800m 정도의 트리블라요산과 그 아래 두 개의 강과 바다 물줄기가 그려져 있다. 블레드는 살기 좋은 도시에 해마다 선정되어 삶의 질을 우선하는 도시로 해마다 10대 도시 안에 들어간다. 유럽에서 녹지 상태가 가장 좋은 나라다. 들녘 풍경이 전원적이고 목가적이다. 지나는 곳마다 산과 나무, 초지를 배경으로 수려하게 그려내는 한폭의 수채화다. 블레드에 진입하자 알프스 높은 설산이 오롯하다.
* 슬로베니아 블레드성
블레드는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다. 알프스 설봉 고산줄기가 장엄하고 코발트빛 블레드 호수가 영혼을 흡입한다. 슬로베니아에 오는 것은 포스토이나 동굴과 블레드성과 호수를 보기 위해서다. 나는 두 번째로 여행 온 곳인데도 처음처럼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알프스 산맥은 1200Km로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독일, 슬로베니아 이렇게 7나라에 걸쳐 있다. 슬로베니아는 알프스 끝자락이다. 가장 넓은 공원으로 트리블라브 국립공원이 있다. 2864Km의 최고봉이 3개 있다. 신선 머리 3개이며 하늘, 땅, 지하를 상징한다. 이탈리아에 알프스가 가장 많다. 항상 만년설로 눈이 있다. 지난 7월에도 눈이 내렸다. 원래는 10월 초에 첫눈이 오는데 금년에는 기상 이변으로 그렇다. 블레드성은 604m다. 블레드 마을은 해발 500m로 7천명이 거주한다. 절벽은 130m다. 1011년부터 성을 축성했다. 계속 보강하여 현재의 성이 되었다. 수도 루불라냐에서 55Km 떨어진 곳이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가까이 있다. 각 나라 사람들의 별장지대다. 빙하 호수가 비경이다. 19세기 초에는 오스트리아 소유였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나폴레옹 소유였다. 다시 오스트리아 소유였다가 1차대전 후 유고연방 소유가 되었다.
버스를 산중에 주차하고 블레드성에 입장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요새와 같은 성이다. 성벽은 경사진 언덕에 있어 방어하기에 최적이다. 800여년 동안 유고슬라브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블레드성은 블레드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저 아래로 심원의 블레드 호수 한 가운데 블레드 섬에는 바로크 양식의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성당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성안은 두개의 마당이 있다. 아래쪽에 있는 마당은 바깥쪽 건물을 포함하고 있고, 안쪽 마당은 거주할 수 있는 건물을 포함하고 있다. 두개의 마당은 계단을 이용해서 연결된다. 상부 마당에 예배당이 있다. 곁에는 박물관이 있는데 돌로 된 조각들과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전시하고 있다. 마당 끝에는 주변경관을 관찰하기 좋은 움막이 하나 있다. 그 곳에 앉아 쉬면서 발밑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한다. 1947년 화재로 성 지붕이 허물어졌으나 복원되었다. 아래의 마당에 오래된 중세풍의 우물이 그대로 있다. 돌바닥이 아주 고풍스럽다. 산길을 따라 블레드성을 내려왔다.
* 슬로베니아 블레드 시가지
슬로베니아 블레드는 호반의 휴양지다. 줄리앙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도시다. 알프스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블레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적인 자취를 볼 수 있는 도시다. 푸른 잔디 정원과 고운 색상의 예쁜 꽃들이 드리운 집들은 요정이 사는 동화 속 마을이다. 나무 창문과 중세풍의 지붕이 시공을 넘어 고전의 향수에 젖게 한다. 블레드는 성, 거대한 호수, 호수 가운데의 작은 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빼어난 관광지임에도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다른 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도시다. 블레드BLED 인구는 약 1만 명이다. 관광지라서 카지노, 호텔, 백화점, 카페 등 온갖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틸라 브레이드 별장 쪽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하고 자유로이 호수를 보다가 오후 5시 40분까지 버스로 가면 된다. 아름다운 호수 마을 블레드 시가지를 걸어서 블레드 호수변으로 갔다.
* 슬로베니아 블레드 들녘
오늘 유숙할 블레드 호텔로 이동하며 본 슬로베니아 블레드 들녘은 온통 초지다. 줄리앙 알프스 산지에 있는 호반의 도시로 아주 목가적이다. 목장과 가축 사료로 재배하는 풀과 옥수수가 들녘을 채우고 있다. 주택은 그림처럼 곱다. 붉은 기와지붕이 푸른 초지에서 큰 낭만을 선사한다.
*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텔 투숙
푸른 초장에 자리한 아름다운 호텔이다. 사방이 푸른 들녘이고 알프스 산자락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호텔은 신식 건물로 둥근 목조 베란다 구조가 독특한 모양이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슬로베니아의 멋진 풍경 한자락은 천진한 전원의 향기다. 내일은 6시 기상, 6시 50분 조식, 7시 30분 출발이다. 뮌헨공항에 1시 도착해서 4시 30분 비행기 탑승한다. 오늘 짐을 모두 싸야 한다. 유럽공항은 까다로워서 짐을 잘 구분하여 싸야 한다. 넓은 룸이 편안한 안식을 준다. 꿀잠으로 지친 여독을 사르는 밤이었다.
2011년 9월 17일 토요일 슬로베니아 출발
*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텔 출발
어제 보았던 호텔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이 새벽잠을 깨웠다. 밝아오는 호텔의 아침 산책은 온몸을 전율케 한다. 초지의 길을 따라 슬로베니아 블레드의 아름다운 땅을 걸었다. 마을의 아침은 고요하다. 해바라기가 고개를 들고 활짝 웃는다. 이방인에게 기쁨을 드러내는 발칸의 호흡이다. 나도 함께 그 곁에서 활짝 웃었다. 목재 더미가 있다. 나무가 많은 나라이니 이곳 사람들에겐 일상적으로 보는 장면이겠지만 상큼한 산의 향수다. 아직도 어둠은 가시지 않고 민가의 불빛이 푸른 목장 가운데 반짝인다. 마을 입구에는 작은 교회가 있다. 성화와 문 장식이 아름답다. 동트는 슬로베니아 블레드, 알프스 산줄기 푸르름 짙은 산자락 아래 자리한 호텔이 드러난다. 목장도 광활하게 열린다. 온통 푸른 지대의 목축 낙농가 마을, 초지 사이로 난 뽀얀 길, 이제 고운 아침의 추억을 담고 호텔을 출발한다. 오랜 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을 수채화 한 폭이다.
*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 가는 길
호텔을 떠나자 해는 떠오르고 아름다운 햇살이 초원에 내려앉는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공으로 선사하고 있다. 요정이 살 것 같은 고운 집과 들녘을 채우는 키 작은 풀들, 그리고 큰 키로 일어선 나무들, 아득하게 먼 곳까지 둘러쳐 있는 병풍 같은 산자락, 이것이 정녕 동유럽 발칸의 아주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 블레드의 전신이라고 외치듯 사롯이 전개된다.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로 가고 있다. 오늘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는데 여기서 30분 소요된다. 독일 뮌헨공항까지는 총 5시간 소요된다. 오스트리아 휴게소에서 휴식할 예정이다. 뮌헨에서 16시 35분 비행기를 탑승한다. 오후 1시경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내일은 카타르 도하에서 새벽 1시 35분 비행기를 환승하여 인천공항에 오후 4시 35분 도착한다. 알프스 고산 줄기를 따라 힘차게 달리고 있다.
* 오스트리아 가는 국경선
톨게이트 지나듯 살짝 지났다. 검색 절차는 전혀 없었다. 국경다리 하나 통과하면 오스트리아다. 같은 EU국이어서 쉽게 넘는다. 기막힌 국경이다. 이제 여기는 오스트리아 땅이다. 우람한 알프스 산줄기가 계속 이어진다. 잠시 오스트리아를 통과하여 독일 뮌헨으로 간다.
*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 알프스 풍경
오스트리아는 왔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 또 새로운 추억 쌓는다. 슬로베니아도 왔던 곳이다. 알프스를 통과하는 7.8Km터널을 지난다. 이 터널을 지나면 바로 오스트리아다. 터널 내 공사로 교통이 지체된다. 이런 터널이 많다. 알프스가 60% 이상 차지해서 그렇다. 오스트리아는 한반도 크기의 나라로 인구는 880만 명이다. 가장 긴 터널은 34Km, 두 번째 긴 터널은 24Km, 세 번째 긴 터널은 7.8Km다. 지금 7.8Km의 세 번째 큰 터널을 지나고 있다. 터널 위에 1991-2011이라는 공사기간을 새겨 두었다. 불빛 찬란한 긴 터널을 달린다.
터널을 나와 줄기차게 산중 도로를 달린다. 멀리 알프스 설산 고봉이 오롯한 비경이다. 가까이에는 알프스의 운무 서린 풍경이 촉촉한 아름다움이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 마을이 곱다. 짤스부르크Salzburg라는 교통팻말이 보인다. 오스트리아 남서부 알프스 산맥이 걸쳐 있는 아름다운 지역 짤스부르크를 지나고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산세가 대단히 우람하고 산등성이 고운 주택들이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다. 산자락 목장에는 가축들도 많이 보인다. 실제 여행 코스는 슬로베니아까지인데 공으로 오스트리아의 비경을 보고 있다. 독일 뮌헨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하는 일정으로 이런 여정을 자연스럽게 얻은 것이다. 창밖의 알프스 비경에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 짤스부르크 휴게소
알프스 마을의 휴게소다. 짤스부르크Salzburg라는 휴게소의 안내판이 길손을 맞이한다. 온통 산과 나무들로 둘러 싸여 있는 아름다운 산중 휴게소다. 산에 가득 들어찬 짙푸른 나무들이 올곧게 서 있고, 산자락 아래 곳곳에는 민가와 목장과 초지가 그림처럼 전개된다.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의 풍경을 가슴 속에 담아 간다. 두려울 만큼 고요한 숲의 저 몸짓을 어찌 잊을까. 아름다운 가게도 둘러보았다. 여기서 뮌헨까지 2시간 반, 뮌헨 공항까지는 3시간 반 소요된다. 다시 또 알프스 산중 고속도로를 달린다.
*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알프스 풍경
짤스부르크 휴게소를 출발하자 인스부르크 알프스가 이어진다. 발칸 여정에서 오스트리아를 지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뮌헨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도 큰 행운이다. 그래서 지금 슬로베니아에서 뮌헨으로 가는 동안 오스트리아를 거치며 짤스부르크와 인스부르크의 알프스를 보는 것이다. 짤스부르크의 알프스도 대단한 비경이었는데, 인스부르크의 알프스도 대단한 비경이다. 알프스 설산 고봉이 장엄하다. 겹겹이 크고 작은 알프스의 산봉우리가 또한 장엄한 비경이다. 알프스 터널을 지난다. 산녘에 고풍스런 건물이 있다. 낮은 지대에는 목장으로 초지 위에서 동물들이 풀을 뜯는다. 산과 초지 그리고 도로가 조화로운 맞물림으로 줄기차게 이어진다. 오늘 참으로 뜨겁게 만나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다.
* 독일 진입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진입하는 국경선을 고요히 통과했다. 눈으로 확인도 제대로 못한 채 벌써 넘어온 것이다. 유럽 여행 중 가장 부러운 것이 국경선인데 발칸 여행에서도 수없이 부러운 국경선을 오늘 또 체험하고 있다. 20분 전에 파란 바탕에 별 모양의 깃발을 세워 두었던 곳이 국경선이었단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진입한 것이다. 국경선 표식이 따로 없다. EU국들은 그렇다. 독일이 철기가 발달해서 무기도 발달했다. 전쟁으로 의술도 발달했다. 삼림자원도 풍부하다.
뮌헨에서 오늘은 맥주 파티가 있는 날이다. 옥토버 오브 페스티발October of festival로 맥주 500만 리터, 닭 70만 마리, 돼지 40만 마리 소모하는 날이다. 전 세계에서 온다. 우리도 오늘 공항 가는 길에 뮌헨 시내에 잠깐 들리려 했는데 축제로 인한 교통문제로 뮌헨 시내 못 들어간다. 3000m 알프스 고봉 설산이 장엄하게 보인다. 식물 성장 한계선은 2000m다. 10월에 왕자가 맥주를 대접했는데 그때부터 유래한 축제다. 세계3대 축제다. 광란의 맥주 축제다. 물이 석회수로 구하기 어려워서 맥주를 많이 마신다. 독일은 동독 인구 1600만, 서독 인구 6600만 모두 8200만 명 인구다. 1인당 1일에 맥주를 430ml 마신다. 상당한 량이다. 여기서 뮌헨까지 176Km 남았다. 독일 남부의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아우토반 고속도로는 1932년 히틀러에 의해 조성되었다. 2차 세계대전 군수 물자 수송을 위해서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형제처럼 지내지만 히틀러를 놓고는 아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모차르트도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히틀러는 화가가 꿈이었는데 비엔나 미대 시험에 2회 낙방했다. 그림을 그려서 생활했다. 엽서를 그려서 빈에서 판매했다. 아버지는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는 유방암이라는 질병을 앓았다. 히틀러는 뮌헨에 가서 나치당을 조성하여 2차 세계대전 일으켰다. 반인륜적 행위를 했고 결국 히틀러는 자살했다. 아우슈비치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집단으로 사형 시켰다. 히틀러는 정신 이상자였다는 기록도 있다.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려서 집으로 유대인 의사가 와서 치료하는데 어머니와 의사가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히틀러가 목격했다. 비엔나 미대 심사위원이 7명 중 4명이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히틀러는 유대인을 증오했다. 마리아 테레사도 비엔나에서 유대인을 다 내쫓았다. 유대인이 잘 살아서 미움을 받았다. 유대인 마을은 페스트도 피해 갔다. 아우토반 고속도로 40% 구간은 속도제한이다. 1990년 독일이 통합되고1998년 장벽이 무너졌다. 서독에서 동독을 게으른 돼지, 동독에서 서독을 수전노라고 부른다.
독일은 소로도 발달이 잘 되어 있다. 로만틱 가도도 많다. 로마군 진군해서 형성된 도로들이다.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길은 낭만의 길은 아니다. 고성 가는 고성가도다. 한국의 고속도로가 탄생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아우토반 고속도로 지나다가 멈추라고 하고는 한국에도 이런 고속도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독일 전문가 불러 건설해 달라하니 이태리 전문가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한국 지형이 이태리와 비슷해서다. 이태리 A1 고속도로와 닮은 도로 탄생이 경부 고속도로다. 스위스에서 이태리 진입하면 이태리 롬바르디 평원을 가르는 A1 고속도로를 만나다. 나는 서유럽 여행 중 이곳 고속도로도 달려 보았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아주 유사했다. 인스부르크 가는 안내 표지판 보인다.
여기는 독일 영토다. 울창한 숲과 목장의 푸른 초지가 비경이다. 여전히 알프스 산맥은 우람하게 겹겹으로 맥을 잇는다. 옥수수밭도 있다. 아우토반 고속도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 고성에 갈 때도 달렸던 도로다. 지금 달리는 아우토반은 중앙 분리대가 넓게 있고 편도3차선 도로다. 도로 주변의 짙푸른 독일 풍경을 보며 뮌헨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
* 독일 침지Chiemsee 호수
독일에 진입하여 조금 달려온 곳에서 비경의 호수를 만났다. 뮌헨에서 동쪽90Km거리 바이에른주에서 가장 큰 호수다. 바이에른의 바다란 별명이 붙을 만큼 넓은 호수다. 독일 로젠하임과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 사이에 위치해서 우리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진입하여 곧바로 만나게 된 것이다. 알프스 산맥이 가까이 있어서 깨끗한 공기와 더불어 리조트단지로 조성된 곳이다. 뮌gps에서 기차로 1시간, 짤스부르크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호수다. 버스를 잠시 주차하고 침지 호수 조망 포인트에서 호수를 감상했다. 바다 같이 드넓은 호수다. 청명한 하늘과 호수변의 숲이 코발트빛 호수를 더욱 비경으로 이끈다. 백조와 오리가 많이 떠 있어 수려한 수채화를 그려낸다.
* 독일 휴게소
독일은 비행기를 타고 이착륙할 때 상공에서 보아도 울창한 나무 군락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 육로로 지나는 이곳 독일도 온통 울창한 나무 군락이다. 초지 위에 민들레 노란 꽃이 우리나라 들녘의 민들레꽃과 똑 같다. 휴게소 옆에 옥수수 밭이 있다. 개를 끌고 다니는 여인도 있다. 이곳 휴게소 화장실은 코인을 넣고 들어가야 한다. 1유로를 넣으면 거스름 돈 대신 70센트 쿠폰이 나온다. 본 휴게소에서만 사용 가능 쿠폰이다. 유럽의 화장실은 대개가 유료여서 낯설지는 않다. 잘 가꾸어 놓은 정원 같은 휴게소에서 상큼한 휴식을 갖는 시간이었다.
* 독일 뮌헨 가는 길
여기서 뮌헨공항까지 1시간 20분 소요된다. 1시 40분 경 도착한다. 뮌헨에서 도하까지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다. 독일과 카타르 시차는 1시간이다. 도하에 오후 11시 30분 도착해서 새벽 1시 50분 인천행 비행기로 환승한다. 독일 공항은 승객에게 질문할 때가 있다. 가이드는 그 질문 순서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답변을 사전에 알려줬다. 가방 당신이 쌌느냐에 yes, 폭발물 있느냐에 No, 부탁 받은 짐 있는가에 No 대답하면 된다. 대답을 잘못하면 재질문 한다. 뮌헨은 120만 명 인구로 독일에서 3번째 도시다. 뮌셴으로 읽기도 한다. 뮌셴이란 수도원 이름이다. 독일의 남부와 동서 연결 도시다. 도로와 철도망이 발달된 도시다. 뮌헨 지역을 거쳐 공항으로 가고 있다.
* 독일 뮌헨공항
독일 뮌헨공항에 도착했다. 상당히 크다. QR 004항공이다. 16:45분 카타르 도하행 비행기다. 티케팅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줄이 길어 1시간이 넘어서야 표를 받았다. 뮌헨에서 도하행, 도하에서 인천행 이렇게 탑승권을 2장 받았다. 도하행 탑승 보딩이 15:35분이다. H18 Gate다. 부지런히 검색대를 거치고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왔다. 뮌헨 공항은 사람들이 많다. 도하 공항에서 입국서를 쓸 것이다. 인천 짐 벨트 옆에서 함께 해산하기로 했다. 유럽 여행 중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여러번 거쳤지만 뮌헨 공항은 처음이다. 뮌헨공항을 거치는 이것도 보람된 여정의 한 단면이다.
* 독일 뮌헨공항 이륙
뮌헨공항의 활주로 곁에 울창한 숲이 있다. 이륙 후에도 독일 지상은 나무 숲 물결이다. 산도 없는데 평원에 짙푸른 나무 군락이 많다. 나는 35G 남편은 40K 좌석이다. 2,4,2 좌석제로 40K는 창가석이다. 남편이 35G 통로석에 앉고 나는 창가석에 앉았다. 내 곁에는 카타르 여자 어린이가 앉았다. 옆으로는 어린 사내아기를 안은 엄마와 자매가 나란히 앉았다. 아이들이 아주 귀엽다. 어린 아기가 운다. 정숙한 카타르 여인이 침착하게 아기를 달래는 모습이 아주 지혜롭게 보인다. 지상에 도나우강의 큰 물줄기가 보인다. 흑해Blak Sea의 일몰이 비경이다. 기내 석식으로 치킨, 빵, 샐러드, 초콜릿이 나왔다. 의자 등받이에 설치된 기내 모니터 항로를 보며 지루하기 않게 카타르 도하공항으로 가고 있다.
* 카타르 도하공항에서 인천행 환승
독일 뮌헨에서 출발하여 오후 4시 45분에 출발하여 밤 11시 10분에 카타르 도하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2시간 기다렸다가 01:50분 인천행 QR 882항공으로 환승한다. 도하공항 대기실은 2층이다. 넓고 쾌적하다. 1층은 검색대 및 면세점이다. 지난번 발칸에 갈 때도 이곳 도하 공항에서 루마니아행 비행기를 환승했다. 그래서 낯익은 공항이다. 면세점과 곳곳을 둘러보고 잠시 쉬었다가 탑승했다. 우리 부부 좌석은 20G, 22K인데 자리를 교환하여 22J, 22K로 창측에 앉았다. 좌석은 2,4,2제다. 이제 나의 조국으로 간다.
* 인천 공항 도착
도하를 출발한 비행기가 상공을 가르며 내 조국으로 힘차게 날아간다. 금새 밝아오는 동녘 하늘이다. 창공의 일출이 비경이다. 눈부신 햇살로 창문을 내리고 잤다. 기내식이 2회 제공 된다. 시차 관계로 먹기 힘들었다. 현지의 새벽 시간에 조식으로 치킨 죽,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경 중식으로 생선 요리가 나왔다. 화창한 하늘이다. 내 조국의 영토에 진입한 비행기는 창공에서 영종도의 비경을 선사하고 16:35분에 지상에 착륙했다. 9시간 30분 소요되었다. 12일간의 발칸여행은 뜻 깊고, 보람되고, 때론 역사적 순례의 여정으로 그 어느 세계여행보다 값진 탐방이었다. 미지의 땅 발칸은 순수하고, 천진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땅이었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이 오감을 흔들기도 하는 영토였다. 내 생애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기록할 수 있는 찬란한 여정이다. 종교의 힘이 역사를 뒤집는 현장을 목격했고, 부족해도 세상모르고 정지된 시간의 현을 타며 사는 천진한 삶을 보았고, 아울러 눈부신 발전으로 세계에 횃불을 높이 든 내 조국이 가슴 뜨겁게 감사했다. 나는 시인이다. 시로, 글로 내가 본 발칸 여정을 그려내는 문인의 사명에 충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