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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
+ 본 문 : 빌립보서 4장 10절 - 20절 (신약 322쪽)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미국의 존이라는 한 가난한 농부가 엄청난 액수의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복권회사는 가난했던 농부가 어마어마한 액수의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마비를 일으킬 염려가 있겠다 싶어서, 존이 다니는 천주교회 신부님을 만나서,
신부님께서 그가 놀라지 않도록 잘 설명하고 상금을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신부님이 기도하고 존을 만나러 갔습니다. “존 만약에 한 2억불 정도 돈이 생긴다면,
존은 그 돈을 어떻게 할 것 같애?“ 하고 물었더니, 존이 빙그레 웃으면서 "1억불 정도는,
신부님 드리구요." 했더니, 꽈당 소리가 났는데, 신부님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탐욕으로부터, 물질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아마 저라도 1억불, 우리나라 돈으로 약 1400억 원은 고사하고,
아니 1억 원만 누가 그냥 준다 해도, 심장마비로 꽈당 쓰러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이나 욕심은 구멍 뚫린 항아리와도 같습니다.
끝도 없고, 한도 없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욕망이요. 욕심과 욕망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서 ‘라면 한 봉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는,
소박한 소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라면 한 봉지가 생기면, 이젠 쌀밥 한 그릇,
그러다가 방 한 칸, 아주 좋은 집, 아주 좋은 차, 그렇게 욕심은 점점 더 커집니다.
재벌이 되면 욕심이 끝납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더 많이 늘리려는,
더 큰 욕망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 권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명예를 누리는 자 명예로 만족하지 못하며, 돈을 얻은 자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더’ 더 많고, 더 큰 것을 원합니다. 이게 우리 인간의 욕심 부리는 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시험이 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많이 가졌고, 많이 알기 때문에 당하는 시험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말 같지만 ‘풍요도 시험’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 인간은 가지지 못해서 환경이 어려울 때,
불평과 원망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 태어난 것,
가난한 것, 실패, 병든 것,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을 불행한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자학하며, 더 나아가 이런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부모나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고, 자기 멋대로 불평하고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환경이 좋고 풍부하면 자유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욕망과 욕심만 더 커집니다. 그 좋은 증거가 감옥에서 자살하는 사람들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호화로운 별장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가난에 대처하는 지혜보다,
한층 더 어려운 것이, 우리가 풍부에 대처하는 지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 가난할 때는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냈습니다.
그것은 가난에 대처하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밥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돈줄이나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허랑방탕하기 시작했고,
사치와 타락을 일삼았습니다. 결국 국가경제와 함께 국민의 경제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난에 대처하는 지혜는 많이 있었지만,
갑자기 잘 사는 풍부에 대처하는 지혜를 미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헨리 벤 다이크의 소설 중에 ‘Mantion - 맨션’ 이란 책에 보면,
한 부자가 죽어 천국에서 구경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소설의 결론은,
‘이 땅에서의 부자와 천국에서의 부자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이 땅에서의,
부자 중에 오히려 천국의 거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더라.‘ 는 것입니다.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풍부에 대처하는 지혜입니다. 궁핍이나 비천에 대처하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성공이나 풍부에 대처하는 지혜가 더 필요함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당신의 자녀가 된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우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가장 귀하게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세계에서 번성하고,
다스리고, 충만한 삶을 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풍성한 삶,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풍부한 삶과 능력 있는 삶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처럼 성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행에 울며 탄식하며 괴로워하며 저주스럽게 사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풍성한 삶, 부요한 삶의 지혜를 깨달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분은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의 수많은 복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가난할 때,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셨지만, 특별히 풍성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비결을 더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가장 핵심 포인트가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1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엄청 좋아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이란 말 대신에,
자신의 소원과 자신의 꿈을 넣어서 기도하며, 확신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좋은 목사가,
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자녀들이 성공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좋은 ...”
그 다음은 자신의 꿈을 선포해 보십시오. 좋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알면, 이 선포는 어린 신자의 선포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어느 별장에서 쓴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토록 가기 원했던 로마에 가긴 갔으나,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배고프고 매 맞아 터지고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로마의 감옥 속에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인들이 산 넘고 물을 건너 멀고 먼 로마까지 위문품을 싸들고 면회를 왔습니다.
감옥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더니, 사도 바울이,
그 위문품을 받아들고, 답사를 하는 내용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바울 목사님이 고생한다고 찾아갔더니,
엉뚱하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가져온 위문품은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나 이 위문품이,
주는 기쁨보다 너희들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나의 기쁨은 환경 여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기,
때문에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와 궁핍에도 그것을 감당할 일체의 비결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말씀은,
무슨 소원이든지 이룬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예수님 안에서,
나는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의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가 살아가는 이유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 때문에 행복했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시련의 계곡을 건너야 합니다. 이 골짜기를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만사형통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 속담에 “시합 중에는,
점수를 말하지 말라.“ 는 말이 있습니다. ‘중간에 판단하지 말라.’ 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직면하는 상황들을 너무 조급하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순간적인,
전투에서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궁극적인 전쟁에서는 승리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풍부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의 생애는 그렇게 행복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매 맞고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풍성한 삶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분들은 환경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신앙생활이 오르락내리락,
기쁨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성도들의 삶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신앙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식 때문에 기분이, 신앙이, 기쁨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 때문에 기분이, 신앙이, 기쁨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환경 때문에 울고 웃는 감정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수님 안에 풍성한 삶의 비결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경이 어렵지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은 삶이지만, 믿음의 눈을 열고 보면,
풍성한 삶의 비결이 보입니다. 사람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축복하며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멋진 삶의 비결,
풍성한 삶의 비결, 성숙한 삶의 비결, 건강한 삶의 비결, 행복한 삶의 비결이 보입니다.
이 비결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진 바울이 외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옛말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 말 같지만 이것은 조폭적인 격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는 말이 더러워도 가는 말은 곱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경이 좋아야,
행복하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경이 더러워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환경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이 남긴 멋진 말이 있습니다. “네가 태어나던 날,
세상은 웃고 너는 울었다. 이제 네가 세상을 떠나는 날 너는 웃고 세상을 울려라.“
영향력 있는 삶, 창조적인 삶, 환경을 바꾸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향력 있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먼저 주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아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 곧 은혜 그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지친 몸에 빈 배를 끌고 나올 때,
언제나 인생의 빈 배를 찾아오시는,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빈 배에 고기를 채워 주시기 전에, 시몬 베드로의 빈 영혼에 은혜의,
말씀을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은혜의 말씀을 채워주시는 것이 물고기를 채워주시는,
것보다 우선되는 일이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3서 2절에 “사랑하는 자는,
범사가 잘 되기 이전에,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함“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물질로는 가난하지만 믿음에 부요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분들은 물질로는 부족함이 없으나, 은혜 생활은 궁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욕심은 끝없이 차 올랐는데, 은혜는 가난뱅이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의 장막은 으리으리한데, 심령의 집은 헐고 무너진 빈집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편 106편 15절에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은혜의 삶을 상실한 저주스런 한 인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세상적인 것을 다 가지고서도 그 영혼은 주려서 파리해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가 아니고 미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고.
영적 가난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것이 아무리 풍성하고 부유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풍성하지 못하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참으로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그리고 목사님들 가운데도 참으로 아름답게 목회하시는 분들을 만나봅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성공한 삶과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까?”
그분들의 대답은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심어린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나는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이런 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저는 부럽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풍성한,
삶이 가능해 집니다. 멋진 성공이 가능해 집니다. 아름다운 삶이 가능해 집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영향력 있는 풍성한 삶을 살려면, 이 풍성한 은혜를,
주신 분이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은혜를 주신 주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풍성한 삶의 능력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 라는 말과 “감사” 라는,
말은 원어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된답니다. 즉 은혜가 풍성하다는 말은,
감사가 풍성하단 말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말은 감사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평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적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는 고백은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묻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삶은 감사로 충만해 있습니까?
아니면 불평과 불만으로 충만해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행복의,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속상해 하고 부러워하고 불행해 하는 것,
그런 것 좀 하지 마십시오. 신앙인은 부러워하는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썩고 없어질,
것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영원히 남을 가치를 부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따라 행불행이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다. 비신앙적 세상적이란
말이 다른 뜻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비천할 때에는 좋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부요해진 다음 교만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것이 바로 비신앙이로.
미련한 짓입니다. 풍부에 처할 줄 아는 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혹 어떤 이는 풍부할 때는 잘 믿다가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낙심하고,
비굴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비신앙적이오. 미련한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가난에 처하든,
풍부에 처하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1808년 비엔나에서 대작 「천지창조」 가 연주되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작곡자,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다음 감격한 청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하이든에게 갈채를 보내고 환호하였습니다. 당시 하이든은 몹시 늙고 병약하여,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도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그 우렁찬,
갈채를 감당할 수 없어 두 다리를 떨면서 일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No! No!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지 내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박수를 보냅시다.“
그리고 의자에 앉다가 실수하여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말이 하이든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원히 우리가 외쳐야 할 말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를 외치며 살아야 합시다.
* 우리가 영향력 있는 풍성한 삶을 살려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우리 주님의 것을 우리 주님에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넉넉하고 정성스런,
헌금 생활을 맘껏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 우리가 늘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풍성한 예물은 축복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풍부 속에서도 넘치는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종자를 까먹는 농부와도 같고,
펌프의 부어 다시 솟게 하는 바가지 물을 마시는 어리석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수도가 발달하기 전에는 펌프를 사용하여 물을 끌어올렸는데, 사용하지 않은,
펌프는 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땅 속에 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펌프에 물이 말랐기 때문에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안 올라오는 것입니다.
땅 속의 물을 펌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가 펑펑 올라옵니다. 지금 우리는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신령의 펌프가 메말랐기에 은혜의 생수가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어야 할,
감사의 생수까지 마시고 살려 하니, 샘물이 날마다 새롭게 솟아 오를 수 없는 거지요.
카네기는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헌금 드릴 때마다,
내 형편에 조금 부담이 될 만큼 풍성하게 드렸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관리에 부담이 될 만큼 나에게 풍성하게,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록펠러도 말했습니다. “내가 힘껏 드릴 때, 나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사역자가 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일체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승리하는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풍요로운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인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 영원한 삶, 영생의 비밀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동화집에 “거기 누가 있는가?”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그 환경에 누가 거기 있느냐 여하에,
따라서 환경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 집에 사느냐에 따라서,
지저분한 집이 될 수도 있고, 깨끗한 집이 될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누가 모이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초라한 교회가 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능력으로 건강한 삶, 행복한 삶, 승리하는 삶, 만사형통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