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때로 끔찍한 애물단지 같지만
적어도 폭포의 시작점에 있는 부모가 행복하고 건강하다면
거기서부터 흐르는 물줄기의 단계적 낙하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달 전 학부 학생들과 함께 학과 비교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영화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개봉했는데,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는 조니 뎁이 그레이프 가문의 차남 길버트로, 타이타닉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전의 미소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길버트의 지적장애 동생 어니로 출연한다.
조니 뎁과 디카프리오가 형제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이들이 뿜어내는 빛나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한숨을 내쉬게 한다. 길버트의 아버지는 오래전 자택의 지하실에서 자살했고, 남편의 자살로 심한 충격을 입은 어머니는 칩거 생활을 하며 거실 소파에서 수년째 꼼짝을 하지 않아 현재는 초고도 비만이다.(엄마가 집 안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서 가족들은 비틀거리는 엄마보다 금방이라도 빠지직 부서질 것 같은 계단을 더 걱정한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1994) 포스터다. “때론 부끄럽고, 힘들지만 우리는 가족입니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박힌다.
가족이 뭐길래… 끔찍한 가족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피곤이 몰려오는데 길버트에게는 10살까지밖에 살지 못할 거라던 지적장애 남동생 어니가 있다. 어니는 틈만 나면 마을의 가스 탱크에 기어 올라가 경찰이 출동하기 일쑤이고 17살이 될 때까지도 형이 없이는 혼자 목욕조차 하지 못한다.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백수 누나와 철부지 막내 여동생까지 이 집에는 5명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지만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건 길버트뿐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학생들을 둘러보니 한 학생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한 학생은 마시던 바나나 우유를 손에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영혼이 가출한 것 마냥 멍한 모습이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끔찍하다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직 20대 초반인 학생들은 길버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결국 사랑하는 가족이 길버트에게 힘이 될 거라는 착한 소감을 전했다.
발달적 폭포와 가족
나도 어릴 때는 학생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때로부터 어언 30년이 지난 지금은 자살한 길버트의 아버지와 어니의 18번째 생일날 생을 마감한 길버트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이 부모들은 무엇이 문제였길래 길버트와 남매들을 이토록 잔인한 사지로 몰아넣게 되었을까? 이런 부모 밑에서 길버트는 어떻게 이다지도 멀쩡하게 잘 자랄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비교적 멀쩡한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간혹 다양한 종류의 이상(異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몇 가지 합의된 기준으로 이상을 정의하곤 한다. 특히, 발달정신병리학에서는 개인의 이상행동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발달하는 과정 중에 다양한 위험 요인들과 보호 요인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간주하며 이를 발달적 흐름(developmental cascade)이라고 지칭한다.
행복한 햇빛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듯,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 이중섭, 「해와 아이들」, 1952~1953, 종이에 연필과 유채.
Cascade를 흐름이라고 번역하긴 했지만 이를 직역하면 폭포가 된다. 폭포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쏟아지지만 쏟아지는 모양새는 지형의 굴곡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변화무쌍한 날씨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의 폭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지만 맑고 화창한 날의 폭포는 때로 무지개까지 동반하며 정말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다시 길버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길버트는 극심한 정신병리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었지만(위험 요인), 그에게는 오랜 단짝 친구들과 길버트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누나와 동생들(보호 요인)이 있다.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는 부모라는 위험 요인이 길버트의 발목을 잡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친구들과 형제들이 길버트의 정신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길버트의 책임감과 성실함을 한 눈에 알아본 연인의 등장은 길버트에게 또 다른 보호 요인이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 길버트가 정상발달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멋있는 성인으로 성장한 데에는 부모라는 위험 요인의 영향력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여러 보호 요인이 적극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물론 자녀가 부모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부모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다음 세대의 자녀들이 건강한 물줄기를 이어받을 수 있다. 부모인 내가 썩고 고인 물을 쏟아내는 중인데 그 물을 받아 마시는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너무 염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부모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내가 지금 얼마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인지를 먼저 살펴보자. 언제 어느 학원을 보낼지, 선행은 얼마나 시킬지, 옆집 아이들보다 내 아이가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며 안절부절하기 전에 부모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기쁘고 행복한지 먼저 생각해보고 나를 돌보는데 기꺼이 시간을 투자했으면 좋겠다.
가족은 때로 끔찍한 애물단지 같지만 적어도 폭포의 시작점에 있는 부모가 행복하고 건강하다면 거기서부터 흐르는 물줄기의 단계적 낙하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