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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9일 화요일 [(녹)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오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복음).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나 몰라라 하시는 것처럼 비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외면하십니다. 이는 당신 스스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기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접하지 않으실 수 있으실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진정한 가족이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시듯, 하느님의 가족이 되게 만드는 것은 핏줄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그 가족 안에 흐르는 ‘뜻’에 있지, 피만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닙니다. 만약 자녀라 하면서 옆집 부모의 뜻을 따른다면, 또는 부모라 하면서 옆집 자녀의 뜻만 따른다면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요? 가족은 자기 가족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모님만큼 하느님의 뜻에 “아멘.” 하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모님만큼 주님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 그분의 가족으로 인정받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요한 13,34; 15,12 참조).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은 그 관계를 꿰뚫는 ‘뜻’에 있습니다.(전삼용 요셉 신부) |
육적인 가족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가족도 중요합니다! 한 특별한 신자들의 소모임을 목격했습니다. 연 4~5회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습니다. 교회 인가를 받은 공식적인 모임도 아니었습니다. 현재 소속 본당도 다들 달랐습니다. 나이도 서로 제각각이었습니다. 모여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따뜻한 식사 한끼 나누며,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는 그런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이기만 하면 다들 정말이지 행복해합니다. 가족친지들과의 관계보다 더 친밀한 분위기였는데, 그 이유는 주님 안에, 신앙 안에 한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대부, 대모라는 인연 하나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토록 아름다운 만남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새삼 신앙의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저희 수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20세부터 90세까지 다양합니다. 출신 지역은 전국 방방곡곡 다 다릅니다. 성장 환경은 물론이고, 성격, 취향, 취미, 특기...모든 것이 철저하게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친형제, 친부모보다도 더 가깝게 지냅니다. 한 형제의 부모가 돌아가시면, 내 부모 돌아가신 것으로 여기고 사흘 밤낮 영안실을 지킵니다. 형제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 친형제 아픈 것 이상으로 세심하게 챙기고, 병실을 굳게 지킵니다. 그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요, 그의 상처가 곧 내 상처입니다. 그야말로 혈육 이상입니다. 주님 안에 새로운 가족, 신앙 안에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조금은 특별한 광경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곧 성모님과 친척들이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을 찾아왔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치유며 구마 활동으로 정신없이 바쁘셨겠지요. 할수 없이 사도중 한 사람을 만나 면회를 신청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니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마르코 복음 3장 32절) 그 순간 보이신 예수님의 반응이 참으로 뜻밖입니다. 저같았으면, 활짝 웃으면서 밖으로 달려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겠지요.‘어머님, 걱정 되서 이렇게 먼길 오셨군요. 저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들어가셔서 식사라도 좀 하고 가실래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코 복음 3장 33~35절)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가족’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농경이나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들에게 있어 가족은 똘똘 뭉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던지신 말씀은 그런 분위기에 살짝 반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던지신 말씀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족의 유대를 무시하거나 경멸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던 종래의 개념을 대폭 확장시키십니다. 세상의 가족도 가족이지만, 주님 안에, 신앙 안의 가족도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가족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가족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친척들을 부끄럽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낳으신 어머니를 부정하신 것도 결코 아닙니다. 부끄럽게 여기셨다면 그 태를 거쳐 탄생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태중에 예수님을 잉태하심으로 복되기도 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였다는 점에 있어서 더욱 복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말씀을 낳으셔서 복되기도 하시지만,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셨기에 더욱 복되십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자신이 믿는 본성이 자신이 따르는 법이다>
아프리카에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숲속에서 표범 새끼를 잡아왔습니다. 새끼지만 ‘표범’을 아이들이 데리고 노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여서 다들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밖이 소란스러운가하고 마을의 추장이 나왔다가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그거 어디서 잡았니?”
“숲속에서 혼자 울고 있어서 데려왔어요.”
“어미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어미는 없는 것 같던데요?”
“얘들아, 그래도 표범은 사람을 잡아먹으니까 빨리 내다 버려라.”
“괜찮아요, 여태까지 계속 풀만 주는데도 잘 먹어요!”
“지금은 새끼니까 그렇지! 나중에 크면 너희들을 모두 잡아먹고 말거다!”
어른들이 아무리 겁을 주고, 버리라고 해도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새끼 표범은 자라면서 풀만 먹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표범은 금세 큰 표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순했습니다. 아이들과 뛰기도 하고 같이 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먹을 때도 같이 먹고, 잘 때도 같이 잤습니다. 덩치만 컸지 고양이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전과 같이 표범과 함께 정글로 놀러갔습니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다가 한 남자아이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빠르게 달리다가 넘어진 터라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픈 나머지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표범이 제일 먼저 달려왔습니다. 앞서 가던 아이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표범은 안쓰럽다는 듯이 아이의 무릎에 있는 상처를 혀로 핥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표범의 눈빛이 이상해졌습니다. 원래, 고기를 먹는 동물인 표범이 드디어 피 맛(?)을 본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레미야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색을, 표범이 자기 얼룩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럴 수만 있다면 악에 익숙해진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예레 13,23)
이 말씀은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절대 행동이 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행위를 변화시키는 종교가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부모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고 그렇게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탄 배가 해적선이면 아무리 착한 사람도 해적질을 하는 것이고, 그 배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오는 전함이라면 모두가 전쟁 영웅으로 환영받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어느 배에 타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 배의 이름이 ‘본성’입니다.
인간이라는 공동체도 하나의 배입니다. 그 배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배의 뜻을 따라야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뜻이 있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기를 향한 부모의 뜻은 무엇일까요?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여 자신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잘 살아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기는 먼저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 부모와 같은 사람임을 믿고 그 다음은 부모가 어떻게 사는 지를 살펴야하고 부모처럼 살려고 노력해야합니다. 부모는 계속 “너는 인간이다!”라고 하는데, 개와 놀기를 좋아해서, “아뇨, 저는 개에요. 개 할래요.”라고 한다면 결국 진정한 가족이 되지 못합니다. 본성은 그 사람이 믿는 부모에 의해 결정됩니다. 나의 부모가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때 그의 본성은 인간에서 하느님이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먼저 “저는 하느님입니다!”를 고백하고 매사에 하느님으로서 살아가기를 결심하면 나는 그분의 가족 안에 든 것이고 그분이 선장인 배에 탑승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곧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사랑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하느님처럼 되기 위해 나의 뜻을 하느님처럼 살려고 하는 데 둘 때 우리는 하느님과 한 가족이 됩니다. 이를 위해 하나만 알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신 것처럼 나도 사랑임을 알면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본성이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사랑입니다. 우리 각자가 사랑이라고 믿고 고백할 때 하느님의 가족이 됩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고백합시다.
“저는 사랑입니다. 저는 사랑입니다. 저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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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질다 (Gildas)
신분 : 수도원장 역사가
활동지역 : 뤼(Rhuys)
활동연도 : 500?-570년경
같은이름 : 질다스 길다스
현자로 불리며 8세기 초반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은 성 길다(또는 질다)는 “브리튼의 전복과 정복”(De excidio et conquest Brittaniae)이란 저서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그는 500년경 스트래스클라이드(Strathclyde) 왕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성직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성 길다에 관한 여러 전기와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는 스코틀랜드 서부에 있던 덤바턴(Dumbarton)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클라이드(Clyde) 강 연안 지역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일투드(Illtud, 11월 6일) 성인의 지도로 웨일스
(Wales)에서 공부하였다.
이때 돌(Dol)의 주교가 된 성 삼손(Samson, 7월 28일)과 레온의 성 베드로(Petrus)와 같이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자로 생활한 후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사제가 될 준비를 하였고, 북아일랜드의 아마(Armagh)에서 잠시 생활하였다.
이때 그는 많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수도원과 교회 건립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로마(Roma)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독한 삶을 위해 브르타뉴(Bretagne) 외곽 지역에 있는 오트(Houat) 섬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 후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본토의 뤼에 수도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성 길다는 아일랜드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고, 브르타뉴와 그외 여러 지역의 성당과 수도원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바도니쿠스(Badonicus) 로도 불린다.
성 아퀼리노 (Aquilinu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 +650/1015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Bayern)에서 태어나 쾰른(Koln) 교회의 고위직에 임명되는 것을 피하고자 애썼던 성 아퀼리누스(또는 아퀼리노)는 아리우스주의
(Arianism)에 대항하는 방랑 설교가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파리(Paris)로 갔고, 이어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갔는데 그곳에서 아리우스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의 유해는 밀라노에서 공경을 받고 있으며, 교회미술에서 그는 목에 칼이 관통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 술피치오 세베로 (Sulpicius Severus)
신분 : 주교 교회사가
활동지역 : 부르주(Bourges)
활동연도 : +420/425년경
같은이름 : 술피치우스 술피키오 술피키우스
갈리아(Gallia) 지방의 교회사가이자 성인전기 작가인 성 술피키우스 세베루스(또는 술피치오 세베로)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대부분의 이야기는 겐나디우스(Gennadius, +5세기경)의 “명인록”(De viris illustribus)과 그의 친구였던 놀라(Nola)의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의 “서한”을 통해서이다.
그는 360년경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보르도(Bordeaux)에서 고전과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성 바울리누스를 만난 것 같다. 공부를 마친 뒤 변호사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부유한 집정관 가문의 여인과 결혼하였으나 부인이 일찍 사망하자 곧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389년경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394년경에는 모든 재산을 다 청산하고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요인은 부인이 일찍 사망한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성 술피키우스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의 권고와 성 바울리누스의 모범에 의한 것이었다.
그 후 성 술피키우스는 엘루소(Eluso)에 머무르다가 자신을 위해 일부 재산을 남겨 두었던 프레물리아쿰(Premuliacum)이라는 마을에 은둔하며 영성생활과 저술활동에 열중하였다.
이 마을은 툴루즈(Toulouse)와 카르카손(Carcassonne)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는 이곳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었다.
또 그는 이 은둔 장소에 성 마르티누스가 세운 수도원과 유사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장모인 바술라(Bassula)와 함께 생활하였다.
바술라는 성 술피키우스에게 물질적인 도움은 물론 영성생활로 나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성 술피키우스가 순교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었다.
406년 12월 갈리아 지방이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았을 때 프레물리아쿰도 황폐화되었는데, 성 술피키우스는 이때 무사히 피신하여 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또 420-425년 사이에 프리밀락(Primillac)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겐나디우스는 성 술피키우스가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의 오류에 빠져 생애 말기에 보속행위로 죽을 때까지 저술을 중단하고 절대 침묵의 삶을 살았고, 그 당시의 저자들이 성 술피키우스가 평신도라고 전하는 것과는 달리 사제직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또한 전통적으로 부르주의 주교였다고 전해지나 그 또한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