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망 주께 있네"
[출애굽기 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 한 선교사님의 집에서 살림을 돕던 가사 도우미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끝마다 ‘죽겠네’를 연발하고 다녔습니다.
‘더워 죽겠네’ ‘추워 죽겠네’ ‘힘들어 죽겠네’ ‘짜증나 죽겠네’ ‘하기 싫어 죽겠네’ ‘귀찮아 죽겠네’ ‘바빠 죽겠네’ ‘할일이 너무 많아 죽겠네’ ‘졸려 죽겠네’ ‘심심해 죽겠네’….
그 말을 새겨들은 선교사는 선교 본부에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신앙은 보통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놓칠 새라 ‘주께 있네’를 고백하며 삽니다.
‘죽겠네’를 ‘주께 있네’로 잘못 알아 들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죽겠네’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란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죽는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말끝마다 좋아 죽겠다고 하고, 슬퍼 죽겠다고 하고, 우스워 죽겠다고 합니다.
배고 고프면 배고파 죽겠다고 하고, 배가 부르면 이번에는 배불러 죽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이 싫었고 부끄러웠지요.
하지만 죽음은 삶의 극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것을 알았지요.”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고 이별과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 저편에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 바로 우리의 본향인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흙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은 우리의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변하지 않는 진리는 바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고
“죽으면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맞서 싸워야 할 적도 아니요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요 준비해야 할 삶의 한 부분입니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죽음을 두려워했던 프랑스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는 자신 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그는 밤에 죽음의 천사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침실 창에 두터운 커튼을 쳐놓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의 유명한 화가 피카소는 죽음 공포증에 걸려, 죽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사는 인생은 이처럼 불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애동안 열심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 곁으로 가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살기에 언제든지 부르시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를 쓴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의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중세 사회를 떠받쳤던 두 개의 기둥이 있다면 그것은 ‘카르페 디엠’(라틴어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과 ‘메멘토 모리’(라틴어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입니다.
이 두 말은 서로 상반되는 역설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중세 시절 파리와 로마의 공동묘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터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도 교회 납골당에서 사람 뼈를 장난감 삼아 놀았을 정도로 옛사람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불가항력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큰소리로 외치게 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고,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으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란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입니다.
그 결과 중세인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당장이라도 자기 목숨을 낚아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삶이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삶을 가장 사랑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삶을 더욱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고 기쁘게 즐기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요즘 젊은 세대를 ‘욜로족’이라고 부릅니다.
YOLO..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이니 하고 싶은 데로 즐기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 보다는 과감하게 카드를 긁고, 비싼 클럽에 가서 하루 밤 신나게 놀며 스트레스를 풀고, 해외 여행을 가서 삶을 즐기다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열심히 일을 합니다.
[베드로전서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최초의 욜로족이었던 성경 인물이 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인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여 육신의 쾌락을 위하여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다 가져보고 다 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들도 수없이 많이 거느려 보았습니다.
그가 눈으로 보아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했던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로 전도서를 시작합니다.
[전도서 1:1~2]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는 허무주의자처럼 말하다가 전도서 맨 끝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까지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날이 올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며 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생을 즐기는 것을 시샘하는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베푸신 것을 누리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을 육신의 정욕대로 아무렇게 살지 말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재능과 은사와 능력으로 다른 사람과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 나의 시간과 자원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영혼구원의 목적을 위해서만이 인생을 살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힘들어 ‘죽겠네’라는 부정적 언어가 아니라, 내 생명 주께 있네, 내 능력 주께 있네, 내 소망 주께 있네, 주 안에 모든 것이 있네를 찬양하며 살길..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고 선악 간에 심판 받을 날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매일 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ᆢ 아름다운 인생으로 만들며 살길 기도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노래하며, 생명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고 힘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아무리 힘들어도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주님 때문에 살겠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내게 능력 주시니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며 주님이 허락하신 인생을 아름답고
멋지게 살게 하소서.
믿는 자의 인생 길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의지함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물러가고
제 삶에 평강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을 일시적인 쾌락과 육신의 정욕대로 아무렇게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경외하며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살게 하소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디엠을 기억하며 삶을 더욱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게 하소서.
선물로 주신 재능과 은사와 능력을 주님 나라를 위해 쓰게 하시고 다른 사람과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소서.
한치 앞도 알 수 없고 죽음의 문제를 피해갈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생명의 주인이시고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