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 국회 운영위원 첫 업무보고가 있었던 지난 27일 야당이 밀정, 뉴라이트, 계엄설 등 다양한 용어를 동원, 정부를 향해 친일 공세를 펼쳤다고 합니다.
10년 만에 대통령실로 돌아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타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중일마)이라고 발언한 그가 뉴라이트 계열 인사 논란 등 윤석열정부의 대일 인식과 정책 추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봐서였다고 합니다.
과거사 문제가 국민감정과 직결된 만큼 정부 인사들에게 정제된 단어 구사가 요구되기는 하지만 작금의 친일몰이와 선동은 도가 지나치고 있습니다. 좌우가 갈려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은 해방정국을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자극적인 말로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그게 자기들에게 득이 된다는 생각이면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말을 만들고 그 말로 재미를 보고 시간이 좀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생각에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2016년 정부가 경북 성주에 북한 미사일 요격용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반대세력은 “사드 전자파가 성주 참외를 오염시킨다”고 대대적인 선전전을 벌였다. 일부 주민은 참외밭을 갈아엎었고,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드 반대 집회에서 “내 몸이 전자파에 튀겨질 것 같다”고 노래를 불렀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를 수십 차례 확인했지만 중국과 북한 눈치 때문인지 이를 숨겼고, 기지 내 한미 장병들은 화장실 없는 컨테이너에서 열악한 생활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해 6월에서야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론이 났다.
최근에는 한국전력이 동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망의 종점 격인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추진해 왔으나, 인허가권을 쥔 하남시가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도 전자파와 주민 반대가 이유였다.
전력연구원 측정 결과 변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서도 전자파는 0.02마이크로테슬라(μT)로 편의점 냉장고에서 나오는 전자파(0.12μT)보다 미미했다. 변전소 증설 지연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수도권의 안정적 전력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은 연간 3000억 원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전자파 괴담으로 불안감을 조장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며 반발했지만,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은 반대투쟁에 가세했다.
2008년엔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송송 구멍탁’을 주문처럼 퍼뜨리는 광우병 괴담으로 이명박 정부가 휘청거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광우병 시위로 발생한 피해 규모가 최대 3조 700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8월 시작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1년 동안 4만 9000여건 실시한 방사능 검사 결과 세슘이나 삼중수소가 기준치를 초과한 것은 1건도 없었다. 피해를 입은 수산물 소비 촉진과 어업인 경영안전자금에 국민의 혈세 1조 6000억원이 들어갔다. “X을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 먹을 수 없다”는 등 목청을 높였던 정치인 중 누구 한 사람 사과한 이는 없다.
미국산 소고기가 아니라 호주산이었어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아니라 중국발(發) 오염수였어도 이런 괴담의 광장화·정치화가 이뤄졌을까. 국민 건강을 내세웠지만 반미, 반일 장사로 이득을 보려는 계산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육군 대장 출신의 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 때 ‘계엄령 준비설’을 꺼냈다.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장관에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을 발탁하고, 방첩사령관에도 충암고 출신을 기용한 것을 거론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작성된 ‘기무사 계엄 문건’을 놓고 ‘쿠데타 모의’라며 검사 37명을 투입해 200여명을 조사하고 90여곳을 압수수색했지만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다. 설사 계엄이 선포된다 해도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의결로 즉각 해제시킬 수 있으므로 170석의 민주당이 계엄을 걱정할 일은 없다. 김 최고위원의 ‘계엄 경계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괴담 유발 행위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 지하철 역사와 전쟁기념관에서 독도 조형물이 철거된 것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독도지우기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 구성을 당에 지시했다. 하지만 지하철역 조형물은 15년이 지난 것으로 독도 영상 송출 모니터로 대체할 계획이라는 점과 전쟁기념관 조형물은 노후화돼 개관 30주년을 맞아 보수 작업을 마친 뒤 다시 설치할 것이라는 점을 해당 기관들이 이미 설명했다.
새삼 무슨 지우기 음모라도 진행되는 것처럼 법석을 떨고 괴담을 확산시킨다면 좋아할 사람은 누구일까. 실효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우리 영토인 독도를 어떡해서든 국제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보려는 일본 아닐까. 미국 심리학자 니컬러스 디폰조는 저서 ‘루머사회’에서 “소문은 진실의 탈을 쓰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든다”고 했다.
구체적·과학적 근거 없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공포 마케팅으로 외교·안보까지 흔들리게 되면 그 피해는 특정 정파, 계층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미칠 수 있을 것이다.>세계일보. 박성원 논설위원
출처 : 서울신문. 오피니언 [서울광장] 괴담 공화국의 피해자들
과거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친북‧친중 논란이,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친일‧친미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억지와 왜곡은 수많은 소모적 논쟁을 낳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고 할 정도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그 사이 민초들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야권에서 제기한 독도 지우기 의혹 진상조사단 추진이나 독도영유권 부정 땐 내란죄로 처벌하는 법안도 그럴 개연성이 큽니다.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정치권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과 가치를 구별해야 할 것인데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