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波瀾)과 이변(異變)
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시키는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축구 역사상 최초로 겨울 월드컵으로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축구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익숙하게 듣는 표현 중에 “공은 둥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운동 경기, 특별히 구기 종목의 특성상 경기 흐름에 따라 예상과
다른 경기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말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축구 중계 방송시 해설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
“강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다.”라 합니다.
국제축구연맹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축구 순위를 정하는 것을 보면
전통적으로 상위 10위안에 드는 팀들을 강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가 시작되면 언제나 약체로 분류되던
팀들이 전통적 강호를 무너뜨리는 이변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사실 개막전으로 시작된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에서 개최국 카타르와
아시아의 전통적 강호인 이란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에
아시아 축구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2일(화)밤과 23일(수)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제압하는 파란과 이변을 일으키는 장면은 축구의 묘미와
더불어 공은 둥글다는 속설이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의외의 결과라고 여겨지는 경기는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르헨티나의 경우 메시라는
걸출한 축구스타의 마지막 월드컵이기에 쉽게 사우디를
제압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비디오판독 결과 3골이나 취소된 후유증이었는지
후반에 사우디에게 두골을 내주면서 역전패를 하는 모습은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함에 있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여준 비신사적인 지연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사우디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축구 감독의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경기를 해설하는 해설자는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상대하는
전략을 측면은 내어주지만 가운데는 철저하게 봉쇄한다는 전술이라 평가를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사우디 입장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잘 하는 플레이, 곧 골문을
중심으로 가운데에 수비수들을 밀집시킴으로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
경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가진 장점으로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자분의 설명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하나는, 단순한 축구 경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거친 광야같은 세상살이를 해 나가는 현대인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지적이라는 생각입니다.
크든 작든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판단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강점을 파악하는 일일 것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경쟁이라면, 경쟁사회에서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가진 강점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고령화 되어가는 농촌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던지는 물음 중에 하나는
미래 사회에서 농촌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를 늘 질문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교회가 가진 강점은 무엇이고 가진 장점을 어떻게 해야
극대화 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판단 기준이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 주인이시기에
주인되신 그분의 마음과 시선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헤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그리고 내일의 농촌과 농촌교회를 생각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흔들리는 세상이지만,
그 한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은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시편46:1-3)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