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로 본 전도 (창 38:6-11)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이 시간에 “다말로 본 전도”라는 제목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를 봅니다.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이라는 여자가 등장하는데 다말은 시아버지를 속여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식을 낳은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메시야의 계대가 끊어지는 상황에서 그 계대를 이어야겠다는 열망으로 아무리 돌아보아도 이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생명 걸고 계대를 이어간 그런 면에서 보면 신앙의 영웅이기도 합니다. 이 생명 줄기가 신약에는 무얼까요? 전도입니다. 고전1:21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했습니다.
다말을 통해서 보여주는 진리는 전도의 진리입니다.
1. 하나님은 전도의 열매를 원하십니다.
창38:13에 “다말”(13절)의 이름이 나오는데 ‘타마르’는 “종려나무”라는 뜻입니다. 시92:12-15에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했듯이,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의 상징입니다. 종려나무는 대추야자라고 척박한 사막에서도 뿌리를 내려 가뭄을 모르고 나무가 늙어도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그 열매는 꿀보다 더 답니다. 한 나무에서 몇 말씩 꿀이 생산되는 신비한 나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참믿음 가져야 합니다. 다음은 전도의 열매입니다.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종려나무와 같습니다. 종려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림과 같이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골2:7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그랬습니다.
농사의 비법도 뿌리입니다. 이삭이 농사하여 100배로 얻었듯 옥토만 만들 수 있다면 30배 60배 100배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초대교회와 같이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옥토 중의 옥토가 됩니다.
2.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유다의 가정에 이런 일이 생깁니다. 창38:6-11에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고 했는데 전후문맥으로 보아 자식 갖기를 원치 않았나 봅니다. 그 일이 악했던 것은 야곱의 축복에 의해 메시야의 계대가 유다를 통해서 흘러가는데 큰아들이 그걸 기뻐하지 않았다면 인류 구원사를 이루는데 중대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오난이 형수에게 장가를 들게 됩니다. 당시 풍습에는 계대결혼이라 하여 큰아들이 자손이 없이 죽으면 둘째가 형수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형의 계대를 이어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난이 형수를 통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합니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습니다.
셋째 아들 셀라가 있었지만 말로는 그가 자라기까지 다말에게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사실은 셀라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에게 들어가는 자식마다 죽으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줄기에서 메시야가 난다는 예언이 바로 직계에서부터 난항을 겪는 상황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다도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씨를 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말씀의 씨, 복음의 씨를 말합니다. 고전9:16에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한 것처럼 복음의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장 악한 일입니다. 정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멸망할 인생을 방치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이 죽었던 것처럼 전도하지 않으면 내 심령까지도 죽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전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창38:24-25에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세월이 흘러 유다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홀아비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유다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갔다가 창녀에게 가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런데 그 창녀는 창녀가 아니라 창녀로 가장한 다말이었습니다. 다말은 유다 지파의 줄기를 이어가기 위해 목숨을 건 것입니다. 유다에게 셀라라는 아들이 있지만 장성했어도 주지 않지, 임신할 나이는 많아져 가지 그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석 달 후 유다는 다말이 임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노하여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했습니다. 다말이 끌려가면서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임신했다고 그 세 가지 약조물을 시아버지에게 갖다 주게 했더니 그 물건이 자기 물건인 줄 알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하면서 살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베레스와 셀라, 쌍둥이였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잘못된 이야기지만 한 편으로는 메시야의 줄기를 이어가려는 다말의 결심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목숨 걸고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목숨 걸어야 할 일이 있다면 믿음 지키는 것과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가장 큰 명령 지상명령입니다. 우리가 있어도 없어도 살아도 죽어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와 선교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메시야의 영생의 줄기는 예수의 복음전도를 통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풍성한 열매를 위해서입니다. 전도하면 함께 살고 전도하지 않으면 함께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전도함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고 나도 복 받고 남도 복 받고 모두 천국 길을 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