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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내가 침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사도 8:36. 에티오피아의 궁정 관리는 실제로 침례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8:27) 따라서 그는 틀림없이 유대교 개종자였을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어 성경을 통해 여호와에 관해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점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길에서 빌립을 만났을 때 그는 두루마리에 적힌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도 8:28) 그는 계속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먼 거리를 여행했습니다. 그 에티오피아 관리는 빌립을 통해 예수가 메시아라는 점을 비롯해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8:34, 35) 그는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으며 마음이 감동되어 삶을 바꾸어 놓을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빌립은 그가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을 보고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파23.03」 8-9면 3-6항 |
| 내가 침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See, here is water; what doth hinder me to be baptized? —사도 8:36. Barnes' Notes on the Bible As they went on their way - In their journey. A certain water - The expression used here does not determine whether this was a river, a brook, or a standing pool. And there are no circumstances to determine that. It is well known, however, that there is no large river or very considerable stream in this vicinity. All that is intimated is that there was water enough to perform the rite of baptism. Grotius says they came "to a fountain which was in the neighborhood of Bethsora, in the tribe of Juda, at the twentieth milestone from Aelia (Jerusalem) to Hebron." This is, however, a tradition taken from Eusebius. The place is still shown (Pococke). What doth hinder me ... - This shows that he had been instructed by Philip on the nature and design of baptism. It evinces also a purpose at once to give himself to Christ, to profess his name, and to be dedicated to his service. To be baptized - On the meaning of the word "baptize" βαπτίζω baptizō, see all the notes on Matthew 3:6, Matthew 3:16. 반스의 성경 노트 그들이 길을 가면서 - 그들의 여정에서. 여기에 물 - 여기에 사용된 표현으로는 이것이 강인지, 시냇물인지, 고인 웅덩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할 만한 상황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근처에 큰 강이나 큰 개울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세례 의식을 치를 수 있을 만큼 물이 있었다는 것만 암시할 뿐입니다. 그로티우스는 그들이 “아엘리아(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가는 20번째 이정표에 있는 유다 지파 벳소라 부근에 있는 샘에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세비우스에게서 가져온 전통입니다. 그 장소는 여전히 표시되어 있습니다(포콕). 무엇이 나를 방해하느냐 ... - 이것은 그가 빌립으로부터 침례의 본질과 의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고, 그분의 봉사에 헌신하려는 목적을 한꺼번에 드러냅니다. 세례를 받다 - “세례를 받다” βαπτίζω 밥티조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3:6, 마태복음 3:16의 모든 주석을 참조하세요. |
| 중대한 결심을 할 때 그 결심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의식이 따른다. 유대인으로 개종하는 의식, 일정 기간 나실인으로서의 서약, 결혼 서약, 과거의 오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 등의 중요한 인생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서 의식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은 결심의 표현이지 내용물은 아니다. 신약 성서는 이후 이디오피아 내시의 행적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그가 침례를 받기 전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다짐을 빌립이 주지 않았다. 그(내시)는 다만 예수가 이사야서에 예언된 유형(類形)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내용은 누구든지 진실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베풀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빌립이 우연히 그를 만나 침례를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가 촉매가 되어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믿음은 추측의 일종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이 강한 확신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는 믿음이 인간이 지켜나가야 할 도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혀 그 길을 따라야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생길 때, 비로소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윤리관에 대해 재고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주더라도 그 길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그는 그 종교에서 가르치는 미래관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기존하는 신자들의 태도이다. 그들이 그 믿음을 진심으로 고수할 때 새로운 신자는 자기가 믿음에 들어온 동기에 더 큰 신뢰를 부여하게 된다. 반대로 기존하는 신자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 경향에서 진실성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 역시 하나의 관념적 종교일 뿐이라는 잠재의식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종교적 믿음을 전달하는 최 상층부의 사고와 행동은 신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만일 최상층부에 있는 종교지도자의 일원이 교리대로 행동하다가 박해를 받고 심지어 죽음에 이른다면, 신자들은 자기의 종교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닥친 박해 자체가 아니라, 그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저항하며 끝까지 교리를 지켜내는 그의 행동에서 그 믿음이 참되다는 확신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다. 그 종교가 박해에 직면했을 때 기존 신자들이 특히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 종교의 진실성에 희의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교리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자기의 믿음이 옳다는 확신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친 박해는 그들이 옳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들이 죽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떠들고 다닌다 하더라도, 그것을 진실로 믿는 믿음은 발생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이야기하다가 투옥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예수 부활에 신빙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고발을 당하여 카이사 앞에 서기까지 모든 어려움을 무릎쓰고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록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예를 보지 못했고 또 그런 소리를 허무맹랑한 것으로 취급하더라도, 정신이 멀쩡하고 지적인 사람이 강한 확신으로 자기의 불이익을 무릎쓰고 예수 부활을 강조하는 데에는 무언가 진실성과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바로 그 사실을 인지했던 것이다. 죽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떠드는 잔존하는 나사렛파의 인간들이 어떻게 참일수 있을까 하고 그는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빌립에게서 예수에 관해 사실을 전달받은 그는 예수가 그런 모진 박해를 견디며 끝까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그는 예수가 참된 메시아가 맞다는 확신에 이른 것이다. 그는 드디어 예수의 정신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
질문:
1. 종교가 성장하기 위해 박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이디오피아 내시는 왜 이사야서의 예언이 예수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했을까?

첫댓글 베트남에 다녀오겠습니다. 대략 5-6일 소모될 것으로 예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