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뒷간 매화나무
이구락
밤똥 누는 어린 아들 지키는 어머니 같은
하얗게 꽃핀 매화나무 한 그루
병산서원 달팽이뒷간 옆에 환하게 서 있다
아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가끔 나지막하게 말 걸 때마다
달빛 받아 아이 뺨처럼 하얗게 질린 낙화 몇 닢도
모자 옆에 와 나란히 눕는다
남은 달빛 쓸어 담아 만대루 누마루도 함께 하얘진다
초저녁 병산 그리매 아직도 강 다 건너지 못하고
꽃내*에 잠겨 밤새도록 바장이고,
서원 지붕들 위 수많은 기왓골 타고 철철 흘러내린 달빛도
모두 담장 밖 달팽이뒷간으로 모여든다
매향 대신 어머니 젖내 풍기며
병산서원 달팽이뒷간 지키는 저 백매를 위하여
밤마다 보름달이 떴으면 참 좋겠다
달 없는 그믐에는, 가까이 다가온 강물 소리
점점 또렷해질 때마다
정신을 벼리는 묵향으로 번졌으면 더욱 좋겠다
* 낙동강이 병산으로 흘러들어, 동류서출(東流西出)하며 하회(河回) 마을 앞 부용대를 돌아나갈 때까지를
‘화천(花川)’ 또는 ‘꽃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4년 7월호
이구락
1979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서쪽 마을의 불빛』 『그해 가을』 『꽃댕강나무』 『이구락의 오행시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