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막새*의 미소
조수일
지구 밖 어디쯤을 기웃거린다는 당신이
수소문해 보내준 미소를 오늘 받았습니다
들풀처럼 손끝이 떨렸습니다
마저 시들기 전 한 번은 보고 살자던 밀약이 떠오릅니다
수천 년이 지난 후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미소라 했습니다
망연하게 떠도느라 턱선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아낙의 나와
흙 주무르는 일밖에 몰랐던 당신의 토속 시절
천년 고도 어느 비탈진 땅에서
머리를 맞대고 누워 듣던 여름비가 생각나는지요
거스르는 바람 소리에도 꾹꾹 웃음이 나던
뭉개진 혀로 흙만 찍어 먹어도 헤실거려지던
신라의 달밤이었던 우리는
서로를 앓는 환청이었을까요
낯선 외지에서 보낸 시간의 변방은 징용이었습니다
한철의 순간이 추문으로 돌기 전
찾아든 미소가 어쩌면
내 생의 가장 빛나는 귀환이었습니다
귀퉁이를 잃고서야 비로소 완성에 드는 꿈
손을 뻗으면 시야가 사라지는 허공의 외전 外傳을 읽습니다
잃어버린 수막새 반쪽을 맞으러 갈 채비를 합니다
깜깜히 놓친 시간은 얼마나 두근거리는 처연함일까요
부유하던 미소가 피어날 시간입니다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 1934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돌아온
환수문화재로 2018년 보물로 지정됨
조수일
2002년 한국기독공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