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에 시작한다는 것을 7.30에 갔다.
당연히 제시간에 시작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청첩장에 나온 그 시간 믿고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고 예전에 그 시간 믿고 갔다가 몇 번이나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있기 때문이다.
장소는 동네 안에 있는 평범한 결혼식장, 한동네에 사는 아는 사람의 아들, 잘 모르는 이의 결혼식인데 정확히는 결혼식 리셉션이다.
인도의 힌두들은 보통 새벽에 결혼식을 하고 리셉션은 저녁이나 그다음 날 저녁에 하는데 그 집은 결혼식 전날에 리셉션부터 먼저 한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결혼식과 리셉션 날짜가 바꿔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청첩장은 결혼식 그 시간에 오라는 소리는 아니고 리셉션에 오라는 소리다.
힌두들의 결혼예식은 아침 일찍(6시 정도) 가족들만 힌두 템플에 가서 승려가 주관하는 예식이라 부르지도 않고 갈 필요가 없다.
청첩장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또 전통과 관례에 따라 결혼식을 하는 것을 인지시켜 주는 것 뿐이다.
인도에서 결혼식에 가봤다고, 신기하다고, 이색적이라고... Youtube에 올리거나 인도 결혼식을 이야기 하는 대부분이 사실은 리셉션에 참석한 건데 잘못 알고 있다.
30분 늦게 갔는데도 몇 사람만 와 있는데 보니 그 사람들은 모두 친척들인 것 같고 무대 위에는 사진 기자가 신랑 신부를 세워놓고 조명 각도를 조절하고 준비를 하고 있고 그 사이 가족, 친척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준비는 다 마친 것 같고 식장에 손님이 절반이나 찼는데도 시작도 안 하고 음악만 크게 틀어놓고 딴 일을 하고 있다.
아마 손님들이 아직 덜 와서 그런 모양이다.
주최 쪽은 손님이 덜 와서 시작을 안 하고, 손님들은 주최 쪽이 제시간에 시작을 안 하는 것을 알고 늦게 오고...
문화이고 풍습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8시가 넘었는데도 시작할 조짐도 없고 8시 반쯤 되니 아예 아래층 식당에 가서 식사부터 하라고 한다.
식사는 한 줄로 옆으로 길게 앉도록 배치되어 있다.
직원들이 식사를 배분하러 다니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의 식탁 줄에 사람들과 마주 보고 먹어야 하고 매 두 줄 단위로 마주 보며 앉아서 먹는 구조다.
기다란 종이를 깔고 그 위에 각자 앞으로 바나나 잎을 올렸는데 그것이 접시 대용이다.
대여섯 가지 음식이 나오고 후식으로 단 음식도 두 가지가 더 나오고 또 각자 300ml 물병과 조그마한 아이스크림도 나온다.
물론 모두 맨손으로 식사를 하는데 식전이나 식후에 손 씻을 시설도 잘되어 있다.
긴 식탁 한 줄의 식사가 마치면 그 기다란 종이를 말아버린다, 바나나 잎도, 남은 음식도 같이...
깔끔한 처리이고 또 비닐 종류가 없으니 자연 처리도 가능한 방법이다.
식사 중에 각자에게 바깥 껍질을 깐 단단한 코코넛 하나씩을 선물로 준다.
힌두 행사에서 코코넛을 깨는 그 물이 가진 순수에 빗대어 자신과 마음, 영혼의 정화를 의미하고 결혼식에서의 코코넛은 그 물이 가진 순결의 상징, 또 다산, 번영, 행운을 상징하는데 결혼식에 코코넛을 포함시키면 그 부부가 행복하고 번영하는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직원들에게 음식이 맛있다고 한 마디 해주니 모두 얼굴이 밝게 펴지며 아주 좋아한다.
천성이 착한 사람들인데 외국인까지 자기네 솜씨를 알아봐 준다는 자부심일까...
리셉션은 9시가 되어서 시작한다.
신랑 신부 동시 입장인데 뒤에서 입장하기 전에 신부 친구들이 음악에 맞춰 2-3분간 신나는 춤을 춘다.
또 실내에서 드론을 날리며 사진인지 영상을 찍는다.
신랑은 26세, 신부는 25세, 여기서는 신부가 늦은 결혼인데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결혼식 날 수줍음도 없고 자신있고 당당하다.
신랑의 엄마는 새벽 5시부터 이집 저집을 돌면서 가정부 일을 하며 평생 살아왔는데 그래서 알뜰히 모은 돈으로 오래전에 한 20평 되는 땅을 조금 마련했다가 한 10년 전에 작은 2층집을 짓고 세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그래도 팍팍한 살림인지 지금도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한국의 70대 후반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겨우 60이라는 신랑의 아빠는 술꾼이 되어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부인 덕에 살아간다고 하는데 지난달에는 병원에 입원해서는 살아날 소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데도 용케 살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 결혼식인데도 긴팔 단색 셔츠를 입고 있다.
발전기 차량도 안 보이고 혹시 도중에 전기가 나가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다행히 그날 정전은 없었고 전기는 펑펑 쓰고 있다.
결혼식 사흘 전에 신랑과 그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
둘 다 예쁜 옷을 입고는 청첩장과 바나나 한 송이를 작은 그릇에 넣어서...
마침 나가는 길이라 집 안에 들이지 못하고 문 입구에서 이들을 맞았는데 힌두들은 그런 일로 찾아온 사람을 꼭 집안으로 들인다.
신랑은 잘 모르지만 직접 찾아온 그 엄마 체면 때문에 결혼식 날 간다는 약속은 했는데 그 엄마는 전통 때문인지 그 아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도 모르게 집 안에 들어와서 바나나 송이를 두고 나온다.
힌두들은 결혼식이 정해지면 한 달 전부터 육식을 끊는다.
온 가족이 한 달간 일체 고기 종류를 금하고 베지테리안으로 살아가는데 결혼의 기쁨만 아니라 힘들고 불편함까지 동참한다.
육식을 멀리하는 것은 여기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고 전통인데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에 임하라는 뜻이다.
결혼식 날 나오는 음식에 고기 한 점이 없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데 청첩장 디자인이 참 예쁘다.
거꾸로 된 봉투형인데 앞면에는 신랑 신부의 이름과 날짜, 뒷면에는 결혼식과 리렙션의 장소, 날짜, 시간이 있는데 속지도 있다.
속지를 아래로 당겨 속지와 연결되어 겉표지 윗부분에 돌출되어 있던 신부의 그림을 겉면 아래 부분에 있는 신랑 그림까지 내리면 속지에 쓰인 인사말이 나온다.
..................... 라고,
또 당신과 가족까지 다 초대한다고...
식사 장면 사진은 우리 실로암 신부 결혼식 날 다른 식장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