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 바오로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테오 16,13-19
오늘은 교회의 두 기둥이라고 불리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같은 날 기념하는 두 성인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이 다름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양면이며 교회의 풍요로움입니다.
단순하고 우직한 베드로는 반석과 같이 안정되고 굳건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석은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안정감을 줍니다. 교회의 어떤 결정이 시대의 흐름이나
세상의 요구에 따라 쉽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자칫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주님의 가르침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깊이 숙고하고
논의를 한 다음에 결정하여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견주어 교회는 너무나 느리게 움직여서 마치 변화하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진리를 향하여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나아갑니다.
그 반면 바오로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 전파되는 시기에 바오로는 급진적 개혁을
이루어 냅니다.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유다인의 오랜 전통인 율법과 할례의 짐을 지우지 않으면서,
그들이 자유롭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들어오는 길을 열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에 더 집중하면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유연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에서 벗어나 보편 종교가 됩니다.
이 두 성인의 모습은 우리 교회가 복음에 중심을 두면서도 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일으켜야 함을 알려 줍니다. 교회가 복음을 그 중심에 두면서도 세상일에 유연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더하여 주시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 서울대교구 최정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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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철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테오 16,13-19
교회를 풍요롭게 하는 다름의 다양성
오늘은 교회의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오늘 대축일의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설명은 미사 고유 감사송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는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되고, 바오로는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었으며,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고, 바오로는 이민족들의 스승이 되었나이다.
두 사도는 이렇듯 서로 다른 방법으로, 모든 민족들을 그리스도의 한 가족으로 모아,
함께 그리스도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같은 승리의 월계관으로 결합되었나이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여
사도들의 으뜸으로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민족들에게 신앙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전도여행을 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온 세상에 전파했으며
신앙인들에게 편지로 영적 양식을 알렸습니다. 두 사도 모두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로 복음을 전하다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서로 다른 성향을 보여줍니다. 출신부터 베드로 사도는 배움이 적은 어부였고,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지닌 바리사이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로마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더 고통스럽게 처형되었고,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이었기에 칼로 참수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배반하였다가 뉘우쳤지만, 바오로 사도는 회심 후에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감성적이었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성적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을 전교하였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민족들을 선교하였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사도를 통해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의 큰 교회를 이룹니다.
두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았고 신앙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만이 아닌 바오로 사도만이 아닌, 두 사도를 통해 모든 인류를 위한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 안에서 서로의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야 합니다. ‘다름’은 풍요롭고 완전하게 해주지만,
‘틀림’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다른 형제자매들이 신앙 안에 함께 모여
조화를 이루며 교회가 발전하도록 섭리하십니다. 따라서 주위 사람의 모습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나와 다르더라도 교회를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니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틀린 것이 있다면 공동체를 위해 바로잡아주어야 합니다. 이는 애덕의 실천이 됩니다.
오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같은 날 축일을 지냅니다. 그들이 작은 성인이어서가 아니라,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어 교회의 기초를 닦아 풍요롭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틀린 것들을
서로 바로잡아주면서 일치를 이루며 성장해 갑니다.
혹시 주위 교우 중에 그들이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틀린 일을 하는데도
남의 일인 양 눈감아버린 적은 없는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지만
이들이 모인 교회를 한없이 사랑하고 신뢰하시며 다양한 모습들로 풍요롭게 완성하신다는 사실입니다.
/ 서울대교구 이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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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태 요셉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테오 16,13-19
하느님은 나에게 어떠한 분이신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보편교회는 신앙고백의 모범이 되시는 베드로 사도와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신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며 신앙의 여정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사도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물으신 다음, 제자들에게도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던지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일반 예비 신학생으로 교구 성소자 모임에 나가던 시기에 받은 과제 중에 ‘하느님은 나에게 어떠한 분이신가?’
라는 주제로 자기 생각을 적어 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28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저의 글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존재하게 하셨고 생명을 주셨다. 그 누구와도 다른 모습으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나의 삶 안에서 당신을 갈망하게 하셨고 겸손되이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시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나를 불러주신다. 몸소 보여주신 사랑을 나 또한 살게 하신다.
그로 인해 당신은 사랑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제2독서인 티모테오 2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증언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4,17)
교황 주일이기도 한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제267대 교황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레오 14세 교황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In Illo Uno Unum)라는 사목 표어를 통해 교황님께서는
인류가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어 평화를 이루어 나가기를 지향하시며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목자로서 사명을 수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갖 분열과 대립, 전쟁과 증오가 난무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같은 병폐를 극복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일치와 친교를 위해 기도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몸소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 안에 머무르며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화답송의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온 인류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 34,6)
/ 서울대교구 안승태 요셉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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