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성냥 한 갑
문성해
나의 낡은 서랍 속에서 무심코 발견한 성냥 한 갑,
대구역의 어디쯤, 술집의 로고가 희미해져 가는 그것으로
그 골목이 얼마나 추웠는지
나는 그때 얼마나 외로웠는지
눅눅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는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환해진 눈썹 위로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얼마나 힘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는지
으슥한 골목 끝에서
뛰쳐나온 소변 냄새마저 와락 반가웠던
나의 쓸쓸함을 위하여
그날 한 개비의 성냥은 유황을 찍어 바른 나무쪼가리가 아니라
망명국의 하늘을 밝히는 번개 같은 것이었다고
극지를 홀로 떠도는 수사슴의 뿔 같은 것이었다고
불에서 떼어낸 꽃 같은 것이었음을
심장 속을 긁고 가는 시 같은 것이었음을
내가 고백하는 시간
어느새 나는 뗏목처럼 멀리 흘러와
이곳은 담배도 모닥불도 피우지 않는 땅
그것은 단지 미끈둥한 케이크를 밝히는 연료일 뿐,
누구도 한숨의 울타리를 불사르지 않고
어떤 여자도 불붙은 치마로 달려 나오지 않고
그 옛날
돌아가신 고모가 성냥불로 집 한 칸을 태워 먹었다는 이야기와
나의 어린 고모가 불붙은 치마로 길길이 뛰쳐나왔다는 그 밤으로부터
나는 심심한 가족사를 드라마로 읽게 되었단 고백을 안 할 수가 없고
다시는 그런 불을 담을 일 없는 나의 치마를 위하여
다만 선인장이 자라나는 가슴을 위하여
그래도 아직 나의 손바닥 안에는
단 한 번 타오르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아름다운 성냥 한 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속 서랍들이 다 환해진다
문성해
경북 문경 출생.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자라』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내가 모르는 한 사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