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생전에도 그러했지만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선생님이 나를 특별히
좋아하셨다고 믿는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박애보다는 편애를 좋아하는데 아마
선생님도 그러실걸. 내 멋대로 생각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글을 통해 아는 것 말고, 선생님을 알고
지낸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모임 같은 데서 아는 체해 주시면
고맙고 눈도장도 찍지 못하였다고 해도
서운할 것도 없는 어려운 분이셨다.
그러다 뜻밖에 선생님의 초대를 받게
되었는데 밖에서도 아니고 선생님 댁에서
저녁인지 점심인지 먹자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때가 내가 아들을 잃고 두문불출
대인기피증을 극복 못할 때였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누가 불러내는 건
질색이었는데 선상님의 초데엔 기꺼이
응했다.
상투적인 위로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연로하신 사모님이 손님 대접에
신경 쓰실 생각을 하면 사양해야 옳지
않을까 싶었지만 안 그랬다.
음식을 많이 차려 손님을 불편하게 할 분이
아니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김치히고 물만두가 전부였는데 댁에서 빚은
만두가 아니라 시장에서 파는, 도투락이던가
하는 냉동 만두를 삶은 거였다.
젊었을 때는 빼어난 미인이었을 것 같은
곱고 품격 있는 부인에게 최소한의 폐만
끼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이고 앉은 자리가
편안해졌다.
내가 술을 좀 한다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최고급 양주를 내 오셨다.
당신은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할 뿐
한 방울도 못 한다고 하셨다.
밖도 아니고 댁인데 조금 취하신들
상관있으랴 싶어 권해 봤더니 젊었을 적에
강권에 못 이겨 입에 대기만 했는데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더는 권하지 않았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난 여자와
알코올 분해 능력이 제로인 선생님과의
기묘한 술자리는 의외로 편안해서 나는
홀짝홀짝 마냥 마셨나 보다.
그동안에 선생님은 위로의 말씀 같은 건
한 마디도 안 하셨지만 거나한 취기에
잘 동조해 주셨다.
양주를 혼자서 반병쯤 비웠을 때 양주병을
뺏고 상을 내 가시더니 집 구경을 시켜
주셨다.
불필요한 겉치레가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집이었다.
서재만 아기자기했지만 서재라 부르기엔
책이 너무 없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 따님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서양 인형, 오디오 기기 등 그런
것들과 책장이 차지한 공간은 넓지 않은
방의 벽면 반쯤밖에 안 됐던 것 같았다.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지금도 가끔 꺼내보고
싶은 최소한의 책만 소장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현명한 용기에 부러웠다.
선생님은 나더러 당신의 책 중 아무거나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읽어 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술도 안 취했는데 아기처럼
구셨다.
나는 선생님의 수필집 <산호와 진주>의
서문을 읽어 드렸다.
그 후부터 선생님과 나는 한층 가까워진
것처럼 느꼈지만 순전히 내 느낌일 뿐
선생님은 한결같으셨다.
너무 소원하거나 너무 무람하지 않을 정도의
친분을 유지해 왔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선생님 추모 방송을 만들면서
나한테까지 인터뷰하러 왔다.
이런저런 선생님 문학에 대한 생각,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 등, 내가 말해야
할 것들을 미리 일러 주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수필 중 평소에 촣아하던
게 있으면 그걸 읽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나는 쾌히 승낙했다.
<산호와 진주>를 읽고 싶어서였다.
그걸 읽겠노라고 미리 통고까지
해 놓았는데 그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꼭 필요한 한 권의 책을 찾을 수 없는데
이 많은 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내 수천 권의 책이 천박한 노욕만
같아서 혐오스러웠고, 선생님의 간결한
서가가 그립고 부러웠다.
결국 방송국에서 그 책을 마련해 와서
읽을 수가 있었다.
읽다가 좀 더듬었던가?
방송이 나갈 때 보니 첫 두어 줄만
내 목소리이고 나머지는 유명 성우의
목소리로 바꿔치기가 되어 있었다.
성우처럼 매끄럽지는 못해도 선생님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다작은 아니었고 말년에는
거의 쓰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현역 수필가였다고
기억한다.
선생님의 생활이 수필처럼 담백하고
무욕하고 깨끗하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사셨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의 천국 또한 그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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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생활이 곧 수필 같았던 선생님/ 박완서
시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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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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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와 진주/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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