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책
송종규
빵에 마요네즈를 바르며 생각 한다
도대체 우리는 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포근하고 뜨거운 생애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이스트가 밀가루를 부풀어 올릴 때까지 고요히 기다려준 형광 불
빛, 제비꽃
창밖의 구름, 그리고 오븐과 정오와 커다란 접시 모두
상관관계에 놓이지 않은 것이 없다
굳이 빵에 대해서 고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당신은 반문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물러날 곳이 없는 지점에서 빵은 완성 된다는 것이
다
팽창과 추락과 불과 시간의 궁극에 가서야 이윽고 그는 초탈에
이른다
많은 것들이 이미 당신의 책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인데
당신이 간과한 것은 불빛과 소녀와 두근거리는 기다림, 그리고
창가의 히아신스이다
꿈속으로 느닷없이 당신이 걸어 들어오는 것과
호젓한 교외에서 잠시 노랑 꽃다지와 내 통하는 것 모두 기적이
라 말할 수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라면, 기적적으로
빵은 지금 식탁 위에 놓여있다
의심과 마요네즈와 소녀는 구름과자처럼 곧 지워지겠지만
당신의 책은 더 두껍게 부풀어 오른다
첫댓글 송종규 시인
경북 안동에서 출생. 효성여대 약학과 졸업.
1989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둥지, 1990),
『고요한 입술』(민음사, 1997),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시와반시사, 2003),
『녹슨 방』(민음사, 2006),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사, 2015)
2005년 대구문학상, 2011년 제31회 대구시 문화상(문학부문)
2021년 제14회 이상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