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손택수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그의 집엔 주름 문이 있었고
아코디언처럼 문을 접었다 펴면
타향살이 적막한 노래가 가끔씩 흘러나왔다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굴참나무 술병
와인을 처음 마실 때 코르크 마개를 딸줄 몰라 애를 먹은 일이 있다
촌놈 주제에 아내 앞에서 분위기 좀 잡으려다 식은땀을 흘린,
그때 뽑다 만 코르크 마개가 저 굴참나무다
얼마나 단단히 박아놓았는지 지난밤 태풍도 끙끙 힘만 쓰다 지나갔다
뽑혀나가지 않으려 땅을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버틴 나무들
살짝 들려 있는 뿌리를 따라 땅거죽도 얼마쯤 불쑥 잡아당겨져 있다
펑 따면 꽉 틀어막은 구멍 너머로 몇 백년 묵은 술 향기 같은 것이 올라올 것 같은데
우르릉 쾅쾅 천둥 번개 치는 시간을 대지는 향그러운 알코올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
온 들판이 버티는 나무뿌리의 술병이 되게 했던 것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나도 한 방울의 술이 되어 녹는 날이 올 테니
그때는 굴참나무 쪼록쪼록 술 익는 소리에 취해 천년을 더 기다려도 좋을 터
뿌리에 매달려 떠오를 듯 들썩이던 길과 잡아당기다 만 저 산봉우리와
엉덩이를 들었다 놓은 바위들이 이제 나의 벗이다
꽃단추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나무의 수사학
공원 화장실 옆에 신갈나무가 있다
누구에게 머리채를 쥐어뜯기기라도 한 듯
이파리 듬성듬성한,
화장실 청소도구함 속에서 아낙이 밀걸레를 빤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하늘을 쓸고 왔나
싸구려 파마기에 빠져나간 올올
청소가 끝나길 입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쩌다 아낙의 발뒤꿈치를 바라보는데
해진 양말 밖으로 삐져나온 뒤꿈치가
갈라 터졌다 속살이 다 보일 듯 불가뭄이 들었다
저 마른 살에 바셀린 로션이라도 발라줘야 하는데
아직도 세상 어딘가엔 양말 속에 축 나간 알전구를 받쳐 넣고
수명이 다한 전구빛 살려내듯 실을 풀어내는 여자가 있지
기운 양말을 신고 구석구석 방 소제를 하시는 어머니가 있지
갈라진 발뒤꿈치에 찰칵, 들어온 불이 꺼질 줄을 모르는 화장실
살갗 터진 나무도 꽃등을 켜들고 서선
올 나간 머리카락 흐린 하늘을 민다
빛의 감옥
가로등 어디에 틈이 있어
날벌레들이 그 속을 파고드는 모양이다
입구를 잃어버린 날벌레 한 마리가
램프를 감싼 유리등을 두드리고 있다
유리벽에 머리를 짓찧고 있다
저 환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얼마나 파닥거리며 왔던가
무덤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을 쳤던가
비명으로 꽉 찬 유리 속에 간신히
둥지를 튼다
쿵, 이삿짐을 풀고 내다보는 거리
가로등이 거리를 밝히는 대신 감추고 있는,
유리알 속에 아침마다 눈곱이 낀다.
죽은 양귀비를 곡함
양귀비를 키워보았음 했는데 마침 씨를 구했습니다 누구는 배앓이할 때 쌈을 싸 먹으면 좋다 하고, 열매즙을 짜서 담배에 묻혀 말린 뒤 피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합니다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꽃이나 좀 보고 싶어서 주말농장 텃밭에 겁 없이 씨를 뿌리기로 하였답니다 새로 꺼낸 솜이불이 살결에 와 닿는 감촉으로, 씨앗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너무 답답하지 않게, 흙을 덮을 때는 어린것들 다치지 마라 바람에 날려가지 마라 흙덩이를 일일이 손으로 비벼 뿌려주고 다독거려주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을까요 알뜰하게 살피던 땅에 누가 때 아닌 쥐불을 놓은 게 아니었겠습니까 한눈에 멀리서도 활활거리는 불길에 아이쿠나 내 양귀비 모두 타 죽고 말겠구나 물통을 들고 달음박질친 곳에서 만난 불은 다름 아닌 양귀비였습니다 처음 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들이 있는데 양귀비가 딱 그렇지요 넋을 잃은 저는 양귀비와 함께 밭 한 구석을 활활거렸습니다 삼겹살에 양귀비 쌈을 싸먹고 된장에 무쳐 먹으며 다디단 술잠을 불러보기도 하였습니다 양귀비를 애첩 삼아 끼고 사는 동안 사람들은 제 얼굴이 몰라보게 평안해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평화가 게으름과 통한다는 걸 깨달았지요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게을러지니 성실을 으뜸으로 삼는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또 어느 날이었을까요 농장 쥔 양반이라는 분이 어째 불안해하는 것 같아서(꽃빛에 아주 질려버린 그는 꽃 하나 때문에 감옥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저를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하릴없이 뿌리들을 모두 화분에 옮겨 담아 오고 말았는데 그날 이후로 시난고난 앓던 양귀비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한 뿌리도 남김없이 혀를 깨물고 말았습니다 온갖 거름과 영양제를 주었지만 이미 소용없는 노릇이었지요 양귀비는 옮기면 죽는 꽃, 제가 뿌리 내린 땅과 한몸이 되어서 땅덩이째 옮기지 않으면 목숨을 끊고 마는 독한 꽃 저는 그제야 양귀비를 보러 가던 내 발 소리와 일을 잃고 양귀비 옆에서 한숨을 짓던 날들과 밭 너머로 지는 노을에 둘 데 없는 눈을 맡기고 있던 어느 저물녘과 금기를 어기던 즐거움과 내 불안까지가 모두 양귀비라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수채
어딘가로 번지기 위해선 색을 흐릴 줄 알아야 한다 색을 흐린다는 것은 나를 지울 줄 안다는 것이다 뭉쳐진 색을 풀어 얼마쯤 흐리멍텅, 해질 줄 안다는 것이다
퇴근 무렵 망원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건물 벽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어간다 어디선가 해가 지고 있는 모양이다 바깥으로 뿜어대던 열기를 삼키며 제 색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모양이다 삘딩으로 뒤덮인 거리, 둘러봐도 해는 보이지 않는데 지는 해가 분단장을 하듯 붕어빵집 아주머니의 볼과 생선비늘 묻은 전대를 차고 끄떡끄떡 졸고 있는 아낙의 이마에 머물렀다 간다 남루하디남루한 시장 한 귀퉁이에 지상에 없는 빛깔이 잠시 깔리는 시간
바람이 구름을 몰고 성미산 너머 북한산 쪽으로 간다 한강에서 날아오른 물새 두엇이 물풀 냄새를 끼치며 선교사 묘지 위로 날아간다
버스가 오기 전 둘 데 없는 눈으로 나는 바닥에 구르는 모래알을 보고, 모래와 모래가 등을 부비는 사이의 반짝임, 흩어지면 사라지는 틈을 보고, 여위면서 바래가는 가로수빛을 우두커니 바라보는데
깨어진 구두코에 내린 어둠을 구두약처럼 슬슬 문질러대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리라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는 아내와 시래기 마르는 처마 아래서 나물을 다듬는 어머니의 집 간난도 설움도 불빛 하나로 단촐해진 지붕을 찾아가리라
저를 얼마쯤은 놓칠 줄 안다는 것 묽디묽은 풍경 속에서 멈칫, 흐릿해질 줄 안다는 것 색을 흐린다는 것은 그러니 나를 아주 지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를 아주 지우지는 못하고 물끄러미, 다만 물끄러미 놓쳐본다는 것이다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생.
*경남대학 국문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언덕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창비, 2003)과 『목련전차』(창비, 2006)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 이 있음.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제22회 신동엽창작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