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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생이
현 덕
호두형으로 조그만 항구 한쪽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 언덕, 그 서남면 일대는 ’물매*가 밋밋한 비탈을 감아 내리며, 거적문 토담집이 악착스럽게 닥지닥지 붙었다. 거의 방 하나에 부엌이 한 칸, 마당이랄 것이 곧 길이 되고 대문이자 방문이다. 개미집 같은 길이 이리 굽고 저리 굽은 군데군데 꺼먼 잿더미가 쌓이고, 무시로 매캐한 가루를 날린다. 깨어진 사기요강이 굴러 있는 토담 양지쪽에 누더기가 널려 한종일 퍼덕인다.
냄비 하나 사기그릇 몇 개를 엎어논 가난한 부뚜막에 볕이 들고, 아무도 없는가 하면 쿨룩쿨룩 늙은 기침소리가 난다. 거푸 기침소리는 자지러지고 가늘게 졸아들더니 방문이 탕 하고 열린다. 햇볕을 가슴 아래로 받으며 가죽만 남은 다리를 문지방에 걸친다. 가느다란 목, 까칠한 귀밑, 방 안 어둠을 뒤로 두고 얼굴은 무섭게 차다.
“노마야.”
힘없는 소리다. 대답은 없다. 좀더 소리를 높여 부른다. 세 번째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악성을 친다. 역시 대답은 없다. 다시금 터져 나오는 기침에 두 손으로 입을 싼다.
길 하나 건너 영이 집 토담 밑에서 노마는 그 소리를 곰보 아버지가 곰보를 부르는 소리로쯤 들어 넘기고 만다. 마침 영이가 부엌문 옆에 붙어 서서 손을 뒤로 돌려 숨기고,
“이거 뭔데.”
조금 전 영이 할머니가 신문지에 떡을 사들고 들어가던 것과 영이가 투정을 하던 것까지 아는 일이니까, 노마는 그 손에 감춘 것이 무언지 의심날 게 없는 터다. 그러나,
“구슬이지 뭐야.”
“아닌데 뭐.”
“물부리지 뭐야.”
“아닌데 뭐.”
“석필이지 뭐야.”
“이거라누.”
마침내 영이는 자신이 먼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하고 턱밑에 인절미 한쪽을 내민다. 금세 노마는 어색해진다. 두어 번 어깨를 젓더니 슬며시 뒷짐 진 손이 풀려 받는다.
영이보다 먼저 먹어버리지 않을 양으로 적은 분량을 잘게 씹어 천천히 넘기며 차츰 노마는 곰보를 부르던 소리는 기실 아버지가 저를 부르던 음성이던 것을 깨달아간다. 그러나 일부러 대답치 않은 그 일이 목을 넘어가는 떡맛보다 더 고소하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하는 반항이다. 날마다 아침에 집을 나갈 때 어머니는 노마에게 이르는 말이 있다.
“아버지 곁에서 떠나지 말고 시중 잘 들어라. 아버지 마음 상하게하지 말고.”
그러나 이것은 어머니 자신이 할 일이지, 노마가 할 일은 아니다. 자기가 할 일은 노마에게 맡기고 어머니는 한종일 좋은 데 나가 멋대로 지내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돌아온다. 그동안 아버지나 노마가 얼마나 자기를 기다렸던 거나 그 하루가 얼마큼 고초스러웠던가는 조금도 아랑곳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봉지에 저녁쌀을 가지고 온 것이 큰 호기다. 그리고 바람에 문풍지가 떨어진 것까지 노마의 잘못으로 눈을 흘긴다. 실로 야속하다. 이런 어머니가 이르는 말쯤 어기었기로 그리 겁날 것이 없다.
그러나 노마 저는 모르지만 여기엔 자기네답지 않게 어머니만이 인조견이나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며 선창에 나가 많은 사람에게 귀염을 받는 여기 대한 반감과 샘이 크다. 어머니는 이른바 ‘항구의 들병장수’ 다.
노마는 이런 어머니를 보았다. 몰래 어머니의 뒤를 밟아 선창엘 갔었다. 그러다 선창 마당 가운데서 어머니를 잃었다. 다시 찾았을 때 노마는 좀더 놀랐다. 목선 쌓아 올린 볏섬 위에 올라앉아서 어머니는 사오 인 사나이들과 섞여 희롱을 하고 있다. 어깨에 팔을 걸고 몸을 실은 조선 바지에 양복저고리를 입은 자에게 어머니는 술잔을 입에다 태주려 하고 그자는 손바닥으로 막으며 고개를 젓고 그리고 술을 받아 마시고 나서 또 빈 잔에다 술병 아가리를 기울이는 어머니를 제 무릎 위에 앉히려 하고 아니 앉으려 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를 충심으로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노마는 그런 어머니를 전혀 꿈에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그곳에 와서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떨고 일찍이 노마 자신도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귀염을 뭇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닌가. 자기 어머니가 그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몰랐다. 노마는 저도 갑자기 흥이 오르는 듯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저와 어머니의 관계를 크게 알려주고도 싶었다. 노마는 어머니를 불렀다. 두 번 세 번. 그러나 햇볕을 손으로 가리고 찌긋이 노마를 보던 어머니는 점점 자기 집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그러진 얼굴로 변했다. 같은 얼굴로 어머니는 노마를 창고 뒤로 끌고 가 말없이 머리를 쥐어 박는다. 이런 때 등 뒤로 배에 있던 양복저고리가 나타나서 좋았다. 그는 어머니를 안아 뒤로 밀고, 양복저구리에서 밤을 꺼내 노마 머리 위에 흘려 떨어뜨리며 웃었다. 붉은 얼굴에 밤송이 같은 털보였다.
집에 있을 때 어머니는 담벼락같이 말이 없고 간나위*가 없다. 노마를 나무라도 말보다 손이 앞서 소리 없이 꼬집거나 쥐어박거나 할 뿐, 언제든 성이 안 풀려 몽총히* 입을 오므린다. 남편이 부르면 대답은 없이 얼굴만 내놓는다. 그를 대하고는 아버지도 멍추가 된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내가 보는 데서는 일부러 더 앓는 시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 벽을 향하고 눕거나 이불을 들쓰고 될 수 있는 대로 아내에게서 눈을 감으려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가고 없으면 일어나 앉아 이불도 개 올리고 노마를 상대로 이야기도 한다.
“노마야 누마야.”
가랑잎이 다그르 굴러 내리며 지붕 너머로 아버지의 가느다란 음성이 넘어온다. 방 안에서 들창을 향해 부르는 소리리라. 노마는 살금살금 앞으로 돌아간다. 필시 요강을 가시어 오라고 창문 밖에 내놓았을 것이니 살며시 부시어다 들고 갈 작정. 왜냐하면 노마는 요강을 가시누라고 지금까지 거레*를 한 것이지, 결코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모른척한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삼으련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는 요즈음으로 노마를 곁에서 잠시라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오줌이 마려워 일어서도 벌써 ‘어디 가니’ 그리고 영이하고도 놀지 말고 아무하고도 놀지 마라, 만날 아버지와 같이 방 안에만 있어달라는 거다. 그러니까 노마는 아버지가 잠드는 틈을 엿보지 않을 수 없고, 그러나 잠이 깨기 전에 돌아와 앉기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흔히 날벼락을 맞는다.
노마는 앙가슴을 헤치고 볕을 쪼이고 앉았는 아버지와 마주친다. 갈가리 뼈가 드러난 가슴이다. 그 가슴을 남에게 보이는 때면 공연히 화를 내는 아버지니까 노마는 또 한 가지 죄를 번 셈이다. 지레 울상을 하고 손가락을 입에 문다.
“노마야, 이리온.”
그러나 고개를 쳐들게 하고 코밑을 씻기더니,
“저리 가, 앉어봐라.”
비탈을 찍어 편 손바닥만한 붉은 마당에 오지항아리 몇 개가 섰고, 구기자나무 그림자가 짙은 한편은 볕이 당양하다.* 아들을 땅바닥에 주저앉히고 아버지는 묵묵히 바라다보기만 한다. 장독 뒤로 한 포기 억새가 작은 바람에 쏴쏴 하고 어디서 귀뚜라미도 운다. 몰랐더니 여기는 흡사 고향집 울안 같은 생각이 났다.
추석 가까운 날 맑은 어느 날 어린 노마가 양지쪽에 터벌거리고 앉아 흙장난을 하는 그런 장면인 성싶은 구수한 땅내까지 끼친다. 지금 아내는 종태기*에 점심을 담아 뒤로 돌려 차고 뒷산으로 칡넝쿨을 걷으러 갔거니.
“노마야, 너 절골집 생각나니?”
“응.”
“너두 가보구 싶을 때 있니?”
“응.”
밭가에 주춧돌만 남은 절터가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 멧갓에는 나무가 흔하고 산답이나마 땅이 기름지고, 살림이 가난하다 하여도 생이 욕되지는 않았고, 대추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밤참으로 배불리었다. 다 고만두고라도 거기는 너 나 사정이 통하고 낯이 익은 이웃이 있고 길가의 돌 하나 밭둑길, 실개천 하나에도 어린 때 발자국을 볼 수 있는 땅이다.
그러나 몇 해 전은 지금 여기서처럼 진절머리를 내던 그 땅이었고 그때는 지금처럼 이 잘난 곳을 못 잊어하지 않았던가.
사실은 그때 영이 할머니의 편지를 믿는 구석이 없었다면 그처럼 단판 씨름으로 지주가 보는 앞에서 마름 김오장의 멱살을 잡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 덕에 나머지 작인들은 지주에게서 나오는 비료대도 제대로 찾아먹을 수도 있었고, 예외 없이 마름집 농사에 품을 바치는 폐단도 면하였지만, 자기는 그 동티*로 이내 땅을 뜯기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편지 사연대로 쉽게 쫓기 위하여 일부러 자기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으려고 한 짓 같기도 하였다.
“선창 벌이가 좋아, 하루 이삼 원 ˙벌이는 예사고 저만 부지런하면 아이들 학교 공부시키고 땅섬지기 장만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 말을 다 곧이들은 것은 아니지만 땅 없이는 살 수 없는 살림이요, 그 꼴을 김오장에게 보이기가 무엇보다 싫었다. 하기는 처음 떠나온 얼마 동안은 그 말이 사실인 성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선창에 나가 소금을 져 나를 때도 그렇다. 이백 근들이 바수거리*를 짊어지고 도급으로 맡은 제 시간 안에 대느라고 좁다란 발판 위를 홑몸처럼 달음질치는 일을 닷새 이상을 붙박이로 계속하면 장사 소리를 듣는다는 그 고역을 노마 아버지는 남우세* 없이 꿋꿋이 배겨냈다. 본시 부지런한 것이 한 가지 능으로 감독의 눈에 든 바 되어 매일 일을 얻을 수 있던 노마 아버지라, 자기 말고도 얼마든지 곬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배고픈 얼굴들에 위협이 되어서뿐만이 아니다. 영이 할머니의 편지에 말한바 아들자식 학교 공부시키고 땅섬지기 장만하려는 애초에 고향을 떠날 때 먹은 결심이 광고판처럼 눈앞에 가로걸려 악지를 썼다.
그러나 그 아들놈에게 학생모자 하나를 사주겠다고 벼르기만 하면서 노마 아버지는 먼저 몸이 굴했다.
점점 배에서 뭍 위로 건너가는 발판이 제게 한해서만 흔들리는 것 같고, 그 아래 시퍼런 물이 무서워졌다. 아래서 쳐다보이는 허연 산소금더미가 올라가기 전에 어마어마해 기가 질렸다. 무릎에 손을 짚어야 하게쯤, 허리는 오그라들고 걸음은 뒷사람의 길을 막고 핀잔을 맞는다. 밤에는 식은땀에 이불이 젖고 밭은기침이 났다.
마지막 되던 날 그는 전일 하던 대로 소금더미 위로 올라서서 부삽으로 가리키는 장소에 기우뚱하고 한편으로 몸을 꺾어 소금을 쏟는 동작에서 그는 몸을 뒤치지 못하고 그냥 엎으러져 두어 칸통 씨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몸에 조그만 상처도 없으면서 그는 전신의 맥이 탁 풀려 몸을 가둥거리지 못했다. 한 자가 장난처럼 팔을 잡아채는 대로 허청으로 몸을 실리었다. 그리고 노마 아버지는 이내 선창과 연을 끊었다. 몸살이거니 하고 며칠만 쉬면 하던 병은 점점 골수로 깊어갔다.
“노마, 너 소금 선창에 나가봤니?”
“응.”
“중국 호염(胡鹽)* 배 들어찼디?”
“응―.”
“소금 져 날르는 사람 들끓구?”
“응―.”
잠시 노마를 내려다보던 추연한 얼굴이 흐려지더니,
“보기 싫다. 보기 싫여, 저리 가거라.”
자기가 먼저 발을 들어 구중중한 방 안으로 움츠러들이자, 방문을 닫는다. 그러나 조금 후 노마를 불러들인다. 아버지는 잔말이 많다.
“영이 할머니 집에 있디?”
“응―.”
“영이두?”
“있어.”
“뭘해?”
“놀아.”
“너두 놀았지?”
“……”
“바가지 목소리 숭내 내는 놈 누구냐?”
“수돗집 곰보라니까.”
“그놈 어디 사는 놈인데?”
“수돗집 살어.”
“수돗집이 어디지?”
“……“
어제도 그제도 묻던 소리를 또 묻는다.
바가지는 성이 박가래서 부르는 별명만이 아니었다. 주걱턱인데 밤볼이 지고* 코까지 납작하고 빤빤한 상이 바가지 같다. 그는 홀아비다. 노마 집에서 지붕 둘 높이로 올라앉은 움집, 쪽 일그러진 문엔 언제나 자물쇠가 채워 있다. 그는 두루마기 속에 이발기계를 감추어 차고 선창으로 나갔다. 커다란 구두를 신고 그것이 무거워 그러는 듯이 뻗정다리로 질질 끈다. 그러나 선창에 나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머리 깎을 자를 골라내는 수는 용하다. 그럴듯한 사람이면 꾹 찍어 창고 뒤, 잔교 밑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채를 벌인다. 그는 막깎는 머리 이상의 기술은 없다. 그러나 오 전 십 전 주는 대로 받는 이것으로 객을 끈다. 그는 남에게 반말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대신 저도 남에게 허우 이상의 말을 쓰지 않는다.
팔짱을 찌르고 직수굿이* 머리를 맡기고 앉았는 검정 조끼 입은 자는 이발기계를 놀리는 바가지에게 말을 건다. 노마 어머니 얘기다.
“털보는 뭐여! 그게 번서방인가?”
“번서방이 뭐유, 생때같은 서방은 눈을 뜨고 앉었는데, 뭐 하나뿐인 줄 아슈. 선창 바닥에 잡놈이란 잡놈은 모두지.”
“자넨 그 여자하구 장가든다면서 정말여?”
“흐흐흐흐.”
그러나 바가지와 노마 어머니는 사이가 옹추*다.
배방장 밖에 남자고무신에 하얀 여자고무신만이 놓여 있을 바엔 묻지 않아도 알 일이로되, 바가지는 체면을 모른다. 하늘로 난 문을 구둣발로 찬다.
“어물리 김서방 예 있수.”
저도 사나이에게 볼일이 있다는 것이지만, 머리 깎을 사람을 인도해가는 곳이 가마 곳간 구석, 떡집 뒤 의지간* 같은 노마 어머니가 자리를 잡았을 듯한 장소를 골라 다니며 헤살*을 놓는 데는 좀 심하다. 또 짓궂은 자는 일부러 바가지를 그런 곳으로 들여보내기도 한다.
“저리 야깡집 뒤로 돌아가보슈. 누가 머리 깎으러 오랍디다.”
남들이 킥킥킥 웃음을 죽이는 장면에 바가지는 침통한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나온다. 그러나 어색한 것은 사나이다.
“없네 없어. 누가 좋아서 먹은 술인가베, 억지로 떠너서 먹은 술값 거 너무 조르는데.”
여자를 으슥한 곳으로 이끌던 같은 방법으로 사나이는 조끼 주머니를 움켜쥐고 겅정겅정 놀리듯 떨어져간다.
“날 좀 보슈, 날 좀 보슈.”
노마 어머니는 후장걸음으로 따라가다는 남자가 마당 군중 가운데 섞이자 멈춘다. 볏섬을 진 자, 떡목판을 벌이고 선 자, 지게를 벗어놓고 걸터앉움 자, 노마 어머니를 둘레로 적은 범위의 사람이 음하게* 웃을 따름 그리 대수롭지 않다.
현장에서 좀 떨어져 누마 어머니는 바가지의 앙가슴을 움켜잡는다.
“넌 나허구 무슨 대천지 원수루 남의 뒤만 졸졸 따러다니면서 장사허는 데 헤살이냐. 이 요 반병신아.”
“헤살은 누가 헤살여, 임자가 헤살이지. 임자만 장사구, 난 장사 아닌 줄 알어.”
옳거니 그르거니 옥신각신하다가 종말은,
“난 허가 없이 머리를 깎어주구 임자는 허가 없이 술을 팔구. 힐 말이 있거던 저리 가 헙시다, 저기 가 해.”
우마차가 연달아 먼지를 풍기며 가는 큰길 저편 끝 수상경찰서 지붕을 머리로 가리킨다. 하기야 피차가 크게 떠들지 못할 처지다.
때로는 털보가 사이를 뻐기고 들어서 남자의 멱살을 잡고 민다. 마찻길을 피해 담배가게 옆으로 밀고 가 넉장거리*로 땅에 눕힌다. 허리에 손을 걸고 내려다보고 섰다가 허우적거리고 상체를 일으키면 발로 툭 차 눕히고 눕히고 한다. 둘레에 아이들이 모이고 제 행동이 남의 눈에 표가 나게쯤 되면, 좌우를 돌라보며 털보는 변명이다.
“대로상에서 젊은 여자의 멱살을 잡고, 이눔 병신이 지랄한다구, 쌍스러 그 꼴은 보구 있을 수가 없거던.”
그곳 마당지기 앞잡이 노릇으로 그렇지 않아도 세도와 주먹이 센털보다. 그와는 애초에 적수가 안된다.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 그대로 바가지는 그만 맥을 놓는다.
그러나 바가지는 노마 어머니에게 앙가슴을 잡힐 때처럼 복장이 두근거리는 때는 없고 그가 자기 아닌 딴 사나이와 가까이하는 것을 보는 때처럼 쓸쓸한 때는 없다. 그럼 노마 어머니에게 바가지는 정을 두는 거라 할 터이나 번히 저도 남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상대고 보니 한번 얼러라도 볼 것이로되 그렇지 않다. 다만 이런 날이면 술을 마시는 거고 술이 취하면 으레 노마 아버지를 찾아가 앞에 앉는다. 끄물끄물 침침한 등잔불 아래다. 앉은키는 선키보다 음전하고 그래도 노마 아버지에게 비하면 바깥바람에 닦여난 생기가 있다. 무릎 사이에 턱을 괴고 우그리고 앉았는 그 앞에서만은 새꽤기* 같은 팔목도 홍두깨만큼 실해지는 모양. 바가지는 연해 가냘픈 팔뚝을 걷어 올린다.
“내 얼굴이 어떠우. 눈이 없수 코가 없수. 남 있는 거 못 가진 거 없지. 노마 아버지 보기두 나 병신으로 보이우.”
하고 바가지 같은 상판을 더 그렇게 보이게 다그쳐 든다. 한편으로 불빛을 받고 검붉은 얼굴은 그럴듯이 험하다.
“헐 수 없어 머리는 깎어줘두, 그눔 뱃놈들보담야 뭘루두 기울 것 없는 나유.”
그렇잖소, 하고 방바닥을 탁 붙이었던 손바닥으로 다시 제 가슴을 때린다. 같은 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그래도 부족해서,
“뭐, 돈벌이를 남만 못하우. 외양이 병신유.”
“그렇지, 그래.”
노마 아버지의 건성으로 하던 대답이 나중에는,
“아, 그렇다니 깐두루.”
하고 퉁명스러진다. 그래도 바가지는 만족지 못한다. 보다 확적한 대답이 듣고 싶어서 또 그렇찮소. 급기야는 뒤를 보러 가는 척 노마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서성거린다. 그러나 바가지는 얼마고 직수굿이 머리를 숙이고 기다리고 앉았다가는 또 가슴을 때리었다.
이 동네 아이들은 제법 눈치가 빠르다. 골목으로 꼽쳐 돌아서는 노마 어머니 등 뒤를 향해 바가지의 음성 그대로를 흉내 낸다.
“내 얼굴이 어때여. 눈이 없나 코가 없나. 털보 그놈보다 못생긴 게 뭐여.”
수돗집, 곰보가 선봉이다. 노마 어머니 모양이 멀찍이 사라지자, 다른 아이들도 여기 합한다.
“다리는 뻗정다리라두 머리 기계만 잘 놀리구, 돈 잘 벌구, 술 잘 먹구.”
털보는 때로 노마 집으로도 왔다. 검정 모자를 눈을 덮어 늘러쓰고 턱을 쳐들어 밖에 서서 방 안을 둘러보며 서슴는다. 모양으로 주름살이 억척인 다듬은 두루마기를 입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양복저고리. 방 안에 들어와서도 그는 모자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아랫목에 도사리고 앉았는 노마 아버지에게 하는 조심이리라. 곧 돌아갈 사람처럼 엉거주춤 발을 괴고 앉았다. 슬며시 노마 아버지는 몸을 일으킨다. 침을 뱉으려는 것처럼 허리를 굽혀 방문 밖에 머리를 내놓더니, 발 하나가 나가 신발을 더듬자 객은 주인을 붙든다.
“쥔, 어딜 가슈. 같이 앉어서 노시지 않구.”
“요기 좀 갈 데가 있어서 편히 앉어서 노슈.”
그러나 털보는 아버지가 누웠던 자리에 요를 엎어 깔고 다리를 뻗고 앉는다. 그는 두루마기를 벗고 노마 어머니는 소반 귀에 촛불을 붙인다. 방 안은 갑자기 환해진다. 아버지가 털보로 바뀐 변화보다 노마는 이것이 더 크다. 윗목 구석으로 보꾹으로, 난데처럼 스스러워진다. 도리어 제집에 앉은 듯이 털보는 스스럽지 않다. 촛불 붙인 소반에 김치보시기 새우젓 접시의 술상을 차린다. 어머니는 말없이 술을 따르고 말없이 털보는 받아 마실 따름, 전일 선창에서처럼 희롱치 않는다. 그러나 털보는 맥쩍게* 노마를 보더니, 이끌어 가까이 앉힌다.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노마 머리 위에 무엇을 얹는다. 남북이 나온 장구머리다. 눈을 희번덕이며 머리를 젓는다. 값싼 과자 한 쪽이 떨어진다. 노마는 짐짓* 놀란다. 털보는 흐흐흐 울상으로 웃는다. 문어발이 나온다. 밤이 나온다. 담배딱지가 나온다. 나중에는 딱 손바닥이 머리를 때리고,
“손대지 말고 떨어뜨려봐라. 떨어뜨려봐.”
머리를 젓는다. 앞뒤로 끄덕인다. 떨어지는 것이 없다. 빈탕이다. 동떨어진 웃음소리가 잠시 왁자하였다가 꺼진다. 더 심심해진다. 멀뚱멀뚱 얼굴만 서로 보다가, 털보는 문득,
“요새 군밤 좋드라. 너 좀 사오겠니.”
“어디 국숫집 앞 말이지.”
“싸리전 거리 구둣방 앞 말야. 거기 밤이 크고 많드라.”
하고 어머니가 가로챈다. 거기는 길도 서투르고 또 밤이 무섭다. 그리고 노마는 거기 말고도 근처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을 먼 데를 가야 하는 불평도 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구원을 청한다. 어머니는 눈을 흘기고 털보는 외면을 한다.’
꿈에 가위를 눌리는 때처럼 밤길은 뒤에서 무어가 쫓아오는 것만 같다. 걸음을 빨리 노면 놀수록 오금이 붙고, 개천에 허방을 빠질까 꺼먼 데면 모두 건너뛰는 우물 앞 골목길이 더욱 그렇다. 골목을 빠지면 큰길, 거기서부터는 가리킨 대로 오른편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급기야 구둣방 앞에서 굽는 밤은 도리어 잘다. 몇 번이고 지나놓고 온 것이 굵고 많을 성싶다. 노마는 다시 그런 놈을 찾으러 다닌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무서운 밤이 된다. 컴컴한 골목에서 밝은 거리로 나올 때보다 밝은 데를 버리고 컴컴한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무서움이란 또 유별하다. 노마는 우물 앞 골목을 들어서 눈감은 개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만가만 발자취를 죽인다. 그러나 발소리보다 더 똑똑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반대로 거칠게 발을 구른다. 목청을 뽑아,
“순풍에 돛을 달고…….”
맞은편 양철지봉을 울리는 그 소리가 또 노마 아닌 딴 목청 같아 무섭다.
이런 때 한번은 허연 것이 전선주 뒤에서 나와 앞을 막았다. 커다란 손이 어깨를 잡아끌었다. 가등(街燈) 밑 가까이 왔다. 아버지였다.
“더럽다. 그거 버려라, 버려.”
까닭을 모르게 아버지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도록 노하였다. 노마는 고개를 숙이고 종이봉지를 발아래 떨어뜨린다. 아버지는 발로 차 개천으로 굴린다. 몇 개 길바닥에 흩어진 것까지 발로 뭉걘다. 뤠퉤 침을 뱉고 더러운 그 물건에서 멀리하듯이 노마의 팔을 이끈다. 집과는 반대로 언덕 저편 뒤 사정(射亭) 있는 편으로 향해 길을 더듬는다. 아버지는 숨이 가빠 혁혁 한다. 터져 나오는 기침에 몸을 오그린다. 사정 밑 아카시아나무 아래 이르자 그는 더 걷지 못했다. 나무에 몸을 실리고 늘어뜨리고 서서 굵은 숨을 내쉰다. 노마는 조마조마 다음에 일어날 행동을 기다리며 발발 떤다. 아버지는 호흡이 차츰 졸아들며 평조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아카시아나무와 한 가지 아버지는 어느 때까지나 미동도 없다. 거칠게 들고나는 숨 그것 때문에 성미가 모두 풀리었는지 모른다. 노마는 좀 싱거워진다. 그 아버지가 묵연히 내려다보는 컴컴한 바다 저편에는 등대가 이따금씩 끔벅일 뿐 밤은 괴괴하다.
이튿날 아침, 노마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고 나갈 차비를 차리는 아내에게서 술병을 빼앗아 깨뜨리었다. 댓돌에 떨어져 강한 소리를 내고 병은 두 동강이 났다. 눈에 노기가 없었다면 그가 그랬을 듯싶지 않게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방 한구석에 맥을 놓고 섰다. 어머니는 돌아앉아 입었던 나들이옷을 벗는다. 인조견 치마저고리를 찌든 헌털뱅이*로 바꿔 입으면 고만, 이웃집에 쌀을 꾸러 갈 때, 그만 정도의 싫은 얼굴도 못된다. 입가에는 비웃음 같은 것이 돈다.
“누군 좋아서 그 노릇 하는 줄 알우. 모두 목구녕이 포도청이지. 남의 가슴 아픈 사정은 모르고.”
“굶어 죽드래두 그만두란 밖에.”
“이눔 저눔에게 갖인 설움 다 받구 하루 열두 번두 명을 갈구 싶은 것을 참구…….”
잠시 울음 없는 눈물을 코로 푼다.
“아아, 글쎄 그만두란 밖에 무슨 말야. 굶어 죽드래두 그만두란 밖에.”
나도 생각이 있다 싶은 노마 아버지의 호기 찬 소리는 별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랫집 춘삼네를 통해 성냥갑 붙이는 재료를 얻어왔다. 그 집은 아들이 조합에 든 인부여서 밥을 굶는 형편은 아니나 늙은이 양주가 심심소일로 성냥갑을 붙여 살림에 보탠다. 그러면 혹은 대끝에 올라 여기다 목숨을 걸고 바재면 구명도생이 아니될 것도 같지 않다. 하기야 하루 만 개 가까이만 붙였으면 공전이 일 원 오십 전, 그만하면 우선 급한 욕은 면하겠고 그리고 노마 어미에게 할 말도 하겠고, 하루 만 개!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니 인력으로 아니되란 법도 없으리라. 오냐 만 개만 붙여라― 번히 그는 열에 동하기 쉬운 성품이 어서 매무시를 졸라매며 서둘렀다.
그러나 곰상스런 일에 익지 않은 손가락은 셋에 하나는 파치를 내어 뭉쳐버린다. 풀칠을 너무 많이 해서 종이가 묻어난다. 사귀가 맞지 않고 일그러진다. 마음이 바쁜 반대로 손은 곱은 듯이 굼떠진다. 다른 때 없이 오줌이 잦아 몇 번이고 일어난다. 부엌 뒤로 돌아가 낙일(落日)을 바라보며 몸을 떨고 부지런히 돌아가 다시 일을 붙잡는다. 하지만 밤 어둑한 등불 아래 그림자가 크고 꽤 많이 쌓인 것 같아 세보면 단 오백을 넘지 못했다.
그보다는 아내가 손톱 하나 까딱지 않고 종시 코웃음으로 보려는 것이 괘씸하다. 그가 거들어주었으면, 못해도 오백의 갑절은 성적이 나올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편에 얄미운 경계심이 있는 것을 알고야 권하기는 아니꼽다. 앰한 노마만 볶는다.
“코를 질질 흘리고 넌 구경만 힐 테냐. 요 인정머리 없는 자식 같으니.”
그리고 물을 떠오너라, 풀을 개오너라, 아내가 할 일을 시킨다. 잘난 솜씨를 자식에게 본보기를 보이며 가르친다. 노마는 아버지의 시늉을 내어 무릎 하나를 올려 턱을 괴고 앉아 손등으로 코를 문대며 뺨에 풀칠을 한다.
그러나 부자의 힘을 모아 하루의 성적은 천을 한도로 오르내리었다.
“이것두 기술인데 하루 이틀에 될라구. 차차 졸업 이 되면…….”
하고 장래를 둔다고 하여도 며칠에 한 번 모아서 아내가 머리에 이고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하찮게 몇십 전 은전을 손수건에서 풀어내었다. 그래도 생화*라고 여기다 세 식구가 입을 대야 했고, 그들 하루소비량에 비하면 그것은 황새걸음에 촉새로 따르지 못할 경주였다.
밤이 깊어서 노마 어머니가 문득 잠이 깨어 눈을 떠보면, 그때까지도 남편은 이불을 들쓰고 앉아서 쿨룩쿨룩 어깨를 들먹거리며 손을 놀리고 있다. 가슴에 찔려 일어나 거들까 하다는, 그는 못 본 척 돌아눕고 만다. 번연히 생화가 안 되는 노릇을 공연한 고집을 쓰는 남편이고 보매, 일찍이 지쳐 자빠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옳다 싶었다.
딴은 그대로 되고 말았다. 그는 동네 이 사람 저 사람 선창과 인연이 있는 사나이를 만나는 대로 농을 주고받는다. 마당에서 바가지 움집을 쳐다보고 말을 건다.
“요새 벌이 많이 했수, 여보.”
문 앞에 구부리고 열쇠구멍을 찾다가 바가지는 돌아다보고 어리둥절해한다.
“지금 돌아오는 길유? 선창에 자거리배, 약산배 들어왔습디까?”
그러나 노마 어머니의 전에 못 보던 상냥한 얼굴에 의아하여 바가지는 내려다보기만 한다.
“아, 새우짓 선창에 가봤었어? 자거리배 들어왔습디까?”
창밖에서 아내는 근심 없이 웃고 지껄인다. 그 소리에서 아내의 선창을 못 잊어하는 마음을 노마 아버지는 자기 자신의 그것처럼 느끼며 순간 일손을 놓고, 슬며시 벽을 향해 몸을 실리었다. 피대가 벗어진 기계처럼 갑자기 가슴의 맥이 높고 녹즈러진다. 오장이 그대로 목을 치밀어 넘어오려는 덩어리를 이를 악물고 막는다. 급기야는 한 모금 한 모금 입 밖에 선짓덩이를 끊어냈다.
가을 하늘과 같이 깊고 가라앉은 눈으로 노마 아버지는 윗목에 돌아앉은 아내를 누워서 고개만 들고 본다,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검정함에서 꺼내 하나하나 내 입고 얼굴에 분첩을 두들긴다.
‘오냐 두 달만 참아라.’
하고 노마 아버지는 아내의 등을 향해 말없이 변명을 한다.
‘몸을 추스르는 대로 나도 하던 일을 계속하겠고, 하루 천이 되든 이천이 되든 붙이는 대로 쓰지 않고 모으면 새끼 꼬는 기계 한 틀쯤은 장만할 밑천은 모일 게구. 그것 한 틀만 가졌으면 앉어서도 아내가 하는 하루벌이는 나도 능히 벌 수 있겠고. 오냐 두 달만 참아라.’
곁눈으로 남편의 안색을 살피는 아내의 눈을 피해 그는 고개를 돌린다. 아내의 그 눈에도 노마 아버지는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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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면 아침에 나갔던 사람들이 각기 제 나름대로 컴컴한 얼굴로 돌아오고 이 집 저 집 풀떡풀떡 풀무질하는 소리와 매캐한 왕겨 때는 연기가 온 동네를 서린다.
노마 어머니가 늦게 돌아오는 날은 영이 할머니가 저녁을 지어주러 왔다. 재물재물한* 눈을 인중을 늘이며 비집어 뜨고 풀무질을 하랴 아궁이에 왕겨를 한 줌씩 던져 넣으랴 주름살 많은 깜숭한 얼굴을 더욱 오그린다. 그러나 노마 아버지는 알은체도 않는다. 밥쌀을 내라고 바가지를 내밀어도 얼굴이 보기 싫어 고개를 돌이키지 않는다. 저 늙은이가 저녁을 짓는 때문으로 아내가 늦게 돌아오게 되기나 하던 싶다. 아니라 해도 아내의 밤늦게 돌아오는 그 일에 분명 노파의 짬짜미*가 있으리라. 이것만이 아니다. 노마 아버지 자기가 당하는 오늘날의 불행 전부, 자기가 불치의 병을 얻어 눕게 된 것도, 아내를 들병장수로 내보낸 것도 모두―부엌에서 영이 할머니의 홀짝홀짝 코를 마시는 소리에도 비위가 상했다.
“저녁 그만두슈.”
“웨.”
하고 노파의 빨간 눈이 방 안을 들여다보며 재물거린다.
“우린 걱정 말구, 댁 저녁이나 가보슈.”
“또 속이 아픈 게로군그래, 어째.”
“먹든 안 먹든 우리가 할 테니, 당신은 가요, 가.”
그러나 이만 말에 뇌까리지 않을 만큼 면역이 된 영이 할머니려니와 말을 한 당자도 오래 선금을 세우지 못했다. 본시 모두가 앞뒤 절벽으르 답답한 제 운명 ― 이것은 더욱이 아내를 거리로 내보내 함을 새우게 하는 사실로 나타나 속을 뒤집 어놓는다―에 대한 제 입술을 깨물 때 같은 암상*이 충동이는 때문이다. 조금 지나 영이 할머니가 밥상을 받쳐 들고 들어올 때쯤 되어서는 그에게 아랫목을 권하리만큼 노마 아버지는 마음을 돌린다.
그러나 영이 할머니는,
“아닐세, 여기두 좋구먼.”
“아 글쎄, 이리 나려와 앉으라니깐두루.”
“아닐세 아닐세.”
노파는 좀더 제 모가치의 밥그릇을 밀며 모로 앉는다.
“아 글쎄, 거긴 차다니께두루.”
소리는 다시 퉁명스러워진다. 밥상을 거칠게 앞으로 당긴다. 모래알을 씹는 상으로 맛없이 밥을 떠 넣는다. 그 얼굴이 좀 풀릴 만해서 영이 할머니는 코를 홀짝홀짝 뚝배기 바닥을 긁더니,
“노만 그래두 어멜 잘 둬서.”
하고 아랫목 편을 흘낏 보고,
“여편네 손으로 밥 걱정, 땔 걱정 안 시키구, 그건 수월헌가. 맘성이구 인물이구 마당에 나오는 여자치곤 아깝지 아까워.”
노파는 그 말이 노마 아버지의 성미를 긁게 될 줄은 꿈밖이다. 젓가락짝으로 소반 귀를 두들기는 서슬에 놀라 입을 봉한다. 노마 아버지에겐 아픈 데를 꼬집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자기를 향해 배를 채는 큰소리라 하여 괘씸해하는 거다. 이내 밥상을 밀어낸다. 까닭을 모를 이런 경우에는 모두 제 잘못으로 접고 마는 영이 할머니는 우두망찰해 어쩔 줄을 모른다. 만약에 노마 아버지가 돌부리에 발을 차이고 화를 냈다 하여도 노파는 역시 제 잘못으로 안심찮아하리라.˙
노마 아버지는 이불을 쓰고 눕더니, 갑자기 이불자락을 젖히고 뻘겋게 상기한 얼굴을 든다.
“모두 그놈의 편지 땜야. 그게 아니드면 이놈의 고장이 어디 붙었는 줄이나 알았습디까. 뭐, 하루 이삼 원 벌이는 예사구.”
그가 편지 때문이라는 것은 곧 영이 할머니 탓이란 말이다. 그러나 한 고향에서 아래윗집 사이에 지내던 정분으로도 그에게 해를 입히고 싶어서 부른 것은 아니다. 갑자기 의지하고 살던 아들을 여의고 선창에 나가 품을 파는 자기 아들과 같은 사람들을 볼 때 그 가치가 갑절 돋보였을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나 노마 아버지는 좀더 심악하게 ,
“노마 어밀 쓰레기꾼으로 꼬여낸 건 누구구. 들병장수로 집어넌 건 대체 누구여 .”
“그건 앰한 소릴세. 첨 날 따러 나올 때두 난 열 손으로 말리지 않었든가, 웨, 젊은 사람은 할 노릇이 못된다구.”
모두 선창에 나가 영이 할머니는 낙정미를 쓸어 모으는 쓰레기꾼, 노마 어머니는 잔술을 파는 들병장수, 일터를 같은 마당에 가진 탓으로 듣는 억울한 소리다.
하기는 노마 어머니가 처음 쓰레기꾼으로 마당엘 나오자 영이 할머니는 은근히 반기었다. 그는 인물보다 맨드리*가 쓰레기꾼 축에 섞이기는 아까웠다. 번히 쓰레기꾼이란 정작 볏섬도 산으로 쌓이고 낙정미도 많이 흘려 있는 지대조합 구역 내에는 얼씬도 못하고, 목채 밖에 지켜 섰다가 벼를 싣고 나오는 마차가 흘리고 가는 나락을 쓸어 모은다. 그러나 기실은 구루마 바닥에 흘려 있는 나락을 쓸어 담는 척하고 볏섬에다 손가락을 박고 치마 앞자락에, 후비어내는 것을 본직으로 꼽는다.
그러다 들키면 욕바가지를 들쓴다. 쓰레받기 몽당비를 빼앗긴다. 앙가슴은 떠다박질리고 채찍으로 얻어맞는다. 그러나 마차 뒤에 달라붙은 여인들을 향해 채찍을 든 마차꾼도 노마 어머니를 대하고는 그대로 멈춘다. 머리에 숙여 쓴 수건 아래 수태*를 품고 고개를 숙인 미목이 들어앉은 아낙네가 노상 봉변을 당한 때 싶다. 마차꾼은 금세 언성이 숙는다. 욕이 농으로 변한다.
차츰 노마 어머니는 이력이 나서 자기가 먼저 선손을 건다.*
“아제, 내 이것 가져다가 돌절구에 콩콩 빻아 가는체로 받쳐서 대추 박어 꿀떡 해놀 테니 부디 잡수러 오슈.”
하고 마차꾼의 뒤로 실리는 등판을 떠다민다. 그 틈에 나머지 여인들은 볏섬에 달라붙어 오붓이 긁어모은다.
선창 사나이들은 노마 어머니에게 실없이 굴었고 노마 어머니는 그들이 만만히 보였다. 여봐란듯이 쓰레받기를 내흔들며 노마 어머니만은 지대조합 구역 내를 출입해도 무관했다. 쓰레기꾼을 쫓는 것이 소임인 털보도 그에게는 막대기를 들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슬슬 따라다니며 실없이 지근덕거리었다. 차츰 노마 어머니는 쓰레기꾼 여인들에게서 멀어갔다. 얼굴에는 분을 바르고 번쩍 번쩍하는 인조견 치마를 흘게* 늦게 끌었다.
그가 누구 발림으로 들병장수가 되었는지 영이 할머니는 도시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를 자기가 꼬였단 말은 참 앰하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을 노마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여읜 영이 할머니는 아들에게 해보지 못한 부족한 한을 노마 아버지에게 풀기나 하는 듯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음으로 양으로 마음을 쓰는 것이나 노마 아버지는 그 뜻을 받아주지 않는다. 아마 영이 할머니가 인복이 없는 탓인가보다.
그러나 이유는 하여튼 까칠한 귀밑, 어복이 떨어진 다리, 엄나무가시같이 피골이 맞붙은 아들의 몰골대로 되어가는 노마 아버지를 대하고는 불쌍한 생각은 곧 자신에게 무거운 죄밑이 되어 내리덮어 할 말도 못한다. 다만,
“남의 앰한 소리 말구, 자네 몸만 꺾이네. 화가 나두 참어야 하네. 참어야 해.”
그러나,
“제발 내 눈앞에 뵈이지 좀 말라니께두루. 그럼 내가 먼저 피해 나가야겠수.”
하고 노마 아버지는 경망스레 일어나 대님을 친다 하여 그예 노파를 쫓아낸다.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들고, 어린애처럼 면난쩍어하며* 방문 밖을 나갔다. 그 팔짱을 오그린 알스연스런* 어깨가 길 아래로 사라지자, 노마 아버지는 문득 일어나서 방 밖에 머리를 내민다.
“영이 할머니, 영이 할머니.”
조금 전과는 음성도 딴판으로 안타깝다. 대답은 없다. 끙 하고 자리에 몸을 담아 누우며 쓰게 눈을 감는다. 어미 없는 어린 영이를 업고 울타리 밑에서 호박잎을 헤치고 섰던 영이 할머니. 아들을 앞세우고는 밖에 나갔다 길을 잃어버리기 잘하는 영이 할머니. 뉘우치는 것은 아닐 덴데 영이 할머니의 이런 장면도 머리에 얼씬거린다.
그러지 말자 해도 영이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 노마 아버지는 그예 비위가 상한다. 늙은이가 박복해 아들 며느리 다 앞세우고 같은 운명으로 호리려고 노마 아버지를 가까이한다. 아니라 해도 그를 보기는 싫다. 그러나 하루라도 아니 보면 공연히 기다려지는 영이 할머니다.
며칠 발을 끊어 아주 노했구나 하였더니 영이 할머니는 전에 없이 신바람이 나서 왔다. 그는 제멋대로 드나드는 방문 위에 부적 한 장을 붙여놓았다. 또 있다. 검정 보자기를 끌러 무엇을 내놓는데, 난데없는 남생이 한 마리다. 요술쟁이처럼 노파는 호기 차게 노마 아버지를 쳐다본다. 남생이 잔등에도 노란 종이에 붉은 글자를 흘려 쓴 부적이 붙어있다.
“금강산에서 공부를 하구 나온 사람이라는데, 아무데 누구두 이걸루 십 년 앓든 속병이 씻은 듯이 떨어졌대여.”
그러나 노마 아버지는 마이동풍으로 응등그리고* 앉았더니 남생이를 윗목으로 밀어버리고 이불을 들쓰는 거다. 영이 할머니는 어안이 벙벙하고 만다. 남생이는 항아리 뒤로 들어가 기척도 없다. 한참 그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이 치마고름을 말며 앉았더니 영이 할머니는 소리 없이 돌아갔다. 얼마 후 노마 아버지는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이켰다. 남생이다. 그는 난데없는 것을 처음 보는 듯이 신기하게 고쳐 본다. 부스럭부스럭 남생이는 어둑한 함 뒤를 돌아 벽과 반짇고리 사이에서 기웃이 머리를 뽑아 들고 좌우를 살핀다.
“잡귀를 쫓고 보신을 해주고, 있는 병은 떨어지고 없는 병은 붙지않고, 남생 이 이놈만큼 무병장수를 하리라.”
남들이라 영험을 보았겠나 하고 영이 할머니가 옮긴 말 그대로를 남생이 이놈도 그 징글징글한 상판에 말하는 듯싶다. 느럭느럭 방바닥을 긁으며 남생이는 천근들이 무거운 잔등어리를 짊어지고 가까스로 몸을 옮긴다. 알 수 없는 무엇을 전할 듯이 음흉스레 노마 아버지에게로 가까이 온다. 그는 숨을 죽이고 누워 지켜본다. 남생이가 베개 밑 가까이 이르는 대로 조금씩 몸을 일으켜 마주 노리다가 살며시 일어앉는다. 가만히 남생이를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남생이는 머리와 사지를 옴츠러뜨린다. 차돌과 같이 묵직한 무게다. 아니 전혀
차돌이다. 산 물건치고는 이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방 전체의 침묵을 남생이는 삼킨다. 한참만에 조심조심 머리를 내민다. 손바닥을 흔든다. 도로 차돌이 된다.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몽친 덩어리다. 그것은 하루 저녁에 묵은 씨앗에서 새움이 트는 그런 힘이리라. 여기다 노마 아버지 자신의 시들어가는 가지를 접붙여서 남생이의 생맥이 그대로 자기에게도 전해올 듯싶다.
“영물의 즘생이라, 사람의 일은 모르는 걸세.”
이번에는 노마 아버지 자신이 무심중 영이 할머니의 말을 입에 옮기어본다.
이튿날 영이 할머니는 부적을 말아가지고 와서 내놓지를 못하고 망설이는데, 의외로 노마 아버지는 두 손으로 받다시피 하여 대견하였다. 까닭에 그는 부적 한 장을 구하는 데 은전 한 닢이 드는 것과 매일 한 장씩을 써야 한다는 말을 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마 아버지는 불에 태워서 그 재만 정 한수에 타서 먹으라는 부적을― 이것이 또한 영이 할머니에게 하는 단 한 가지 고집이리라―맞은편 바람벽에 붙여놓고 바라보는 것 이다.:
남생이가 생긴 후 아버지는 노마에게 범연해졌다.* 한종일 눈에 아니 보여도 부르지 않았다. 노마는 제 세상을 만났다. 아버지가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남생이가 무서워 피하는 것이니까 노마는 한종일 밖에 나가 놀아도 구실이 되었다.
먼저 영이에게 까치걸음으로 뛰어가 얼마든지 놀아도 좋은 몸임을 자랑한다. 창문 앞 양지쪽에 앉아서 영이는 할머니가 선창에서 쓸어온 흙에 섞인 나락을 고른다. 그 앞에서 노마는 혼자 팔방치기를 한다. 길바닥에 금을 긋고 될 수 있는 대로 손을 저고리 소매 속으로 넣으려니까 팔죽지를 새새끼처럼 하고 깡충깡충 뛰며 돌을 찬다.
“오랴. 이랴.”
“걸렸다.”
노마는 곧잘 일인이역을 한다. 한편은 노마, 또 한편은 영이다. 되도록 저편의 골을 올리려고, 걸리는 때는 전부 영이 쪽으로 꼽는다. 그러나 영이는 대척*도 않는다. 여전히 저 할 일만 한다. 키에 담아 두 손으로 비비어 흙을 가루가 되게 한 후 바람에 날린다. 다음 모래와 나락이 남은 데서 모래를 골라내는 것이 아니고 모래 틈에서 나락 알을 골라내는 거다. 손에 융 헝겊을 감아쥐고 모래 위를 눌렀다가 떼면, 누릇누릇 나락알만이 붙어오른다. 그것을 둥구미*에 털며 영이는 능청맞게 웃더니,
“너희 어머닌 그런다지.”
“뭐.”
달아날 준비로 담모퉁이에 붙어 서서 고개만 내놓고 영이는 해해거리며,
“너희 어머닌 그런다지.”
그리고 담 저쪽 모퉁이로 달아나 아옹거린다. 노마는 바지 괴춤을 움켜쥐고 머리를 저으며 쫓아간다. 쫓기며 쫓으며 네모진 영이 집 둘레를 두고 맴을 돈다. 거진거진 잡힐 듯해서 영이는 숨이 턱에 차,
“아니다 아니다.”
굴뚝 구석에 머리를 박고 오그린다. 노마는 양어깨를 찌그려 누르며,
“이래두. 이래두.”
“안 그럴게. 안 그럴게.”.
그러나 영이는 몇 걸음 물러서 머리카락을 다듬어 올리며 정색을 한다.
“너, 바가지가 그러는데 너희 어머닌 달어난데.”
“거짓부렁.”
“정말이다. 너, 너희 아버진 앓기만 하구 벌이두 못하구 하니까.”
“그럼, 좋지. 나두 쫓아다니며 구경하구.”
“누가 달어나는 사람이 널 다리고 가니, 얘 쉬라.”
“그럼 어머니 혼자.”
“아니래, 너 털보하구래.”
“거짓부렁 말어.”
“정말이다, 너.”
“거짓부렁야.”
“정말이다, 너.”
“거짓부렁. 거짓부렁.”
옆의 .고무래 자루를 집어 들고 다가선다. 그 얼굴에 장난이 아닌 정색을 보자 영이는 겁이 난다.
“그래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노마는 안심이 안 된다. 요즈음으로 더 아침은 '일찍이 나가고 저녁에는 늦게 돌아오는 어머니는 이렇게 야금야금 노마와 집에서 떨어져가는 시초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와도 사이가 더 차고 노마에게도 쌀쌀해진 어머니다. 그렇다면 집에는 노마하고 아버지만 남게 되겠고――그때엔 노마가 대신 벌지 그까짓 거, 그러나 무섭다.
영이의 그 아니다 소리를 좀더 분명히 듣고 싶어서, 노마는 고무래*자루를 둘러메고 달아나는 영이를 부엌 뒤로 쫓아간다.
문득 노마는 걸음을 멈춘다. 어쩐지 그동안 집에 무슨 변고가 났을까 싶은, 사실 다른 때 같으면 아버지는 벌써 열 번도 노마를 찾았을 것이 아니냐. 어쩌면, 지금도 그랬는지 모를 일. 그것을 못 듣고 장난에만 팔려 있었던 것인지 눠 알리요.
노마는 살금살금 방문 밖에 가 귀를 기울인다. 아무 기척도 없다. 문구멍으로 방 안을 살핀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앉아 먼 소리를 듣는 사람의 모양으로 두 손을 한편 쪽 귀에다 몰아 대고 있다. 손바닥 안에는 남생이가 들어 있다. 맞은편 바람벽에는 여남은 장의 부적이 가지런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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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가 쌓인 토담 모퉁이 양버들나무는 노마의 아름으로 하나 꼭 찼다. 노마는 두 손에 침을 바르고 단단히 나무통을 안는다. 두어 자 올라갔다는 주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허리띠를 조르고 다시 붙는다. 또 주르르 머리를 기웃거리며 아래위로 나무를 살핀다. 쌍가지에 구름이 걸린 듯이 높다. 한데 수돗집 곰보는 단숨에 저 끝까지 올라가니 놀랍다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기차가 보인다, 윤선이 보인다, 큰 소리다. 노마가 곰보에게 따르지 못하는 거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제법 곰보는 어른처럼 그들의 세계를 아이들 말로 해석해 들린다. 선창에 관한 동화 같은 소문을 알린다. 유행가를 전한다. 활동사진 시늉을 낸다. 또 어른처럼 돈을 잘 쓴다. 마음이 내키면 일전에 하나짜리 눈깔사탕을 매 아이 하나씩 돌리고도 아깝지 않아 한다. 그러나 그 돈의 출처를 묻는 때만은 자랑을 피한다. 다만 “저 나무도 못 올라가는 바보가” 하고 어깨를 씰기죽한다.* 그는 헌 양복에 캡을 젖혀쓰고 어른과 함께 선창에 나가 해를 보낸다.
노마는 틈틈이 나무 올라가기에 열고가 난다.* 볼따구니를 긁혀 미고 손바닥에 생채기를 내고 바지를 찢기고, 그래도 노마는 그만두지 않는다. 장난이 아닌 거다. 곰보가 가진 높이까지 이르는 그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이 곧 이놈이었다.
이 고비를 넘기기만 하였으면 금방 거기는 선창이 있고, 활동사진이 있고, 돈이 있고, 그리고 능히 어른의 세계에 한몫 들 수 있는 딴 세상이 있다. 그때에 노마는 자기 ˙아니라도 족히 아버지 모시고 잘 살 수 있는 노마임을 여봐란 듯이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도 있으련만 아아!
노마는 두어 간 떨어져 달음박질해 나무에 달라붙는다. 서너 자 올라간다. 한 간 길이쯤 올라간다. 옹이 뿌리를 딛고 손바닥에 침칠을 한다. 찍 미끄러지며 쿵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저절로 울음이 터지는 것을 꽉 입을 다물고 아픔이 삭기를 기다린다.
뒤에서 호호호 웃음소리가 나며 누가 목 뒤를 잡아 일으킨다. 바가지다.I
“임마, 나무엔 뭣 하러 올라가는 거여?”
그리 고,
“너 떡 사줄련?”
“……”
“너 나 따라오면 떡 사주지.”
“어디 말야.”
“선창 마당꺼지.”
떡 아니라도 반가운 소리다. 금방 아픈 것이 낫는다.
두루마기 아구리*에다 손을 넣어 뒷짐을 지고 바가지는 앞으로 쓰러질 듯이 구두를 끈다. 노마가 천천히 걸어도 그 걸음은 뒤떨어져 노마를 부른다.
“너 아버지가 좋으냐, 어머니가 좋으냐?”
“다 좋지 뭐.”
네거리를 건너서 구듯방 옆을 지나며 바가지는,
“너 마당에 있는 털보 알지. 그게 누군데…….”
“……”
“너희 집 아랫목에 누워 있는 사람이 정말 아버지냐, 털보가 정말
아버지냐?”
“……”
“정말 아버진 털보지, 털브여, 응.”
노마는 저고리 소매루 코를 문댄다. 모자점 유리창 안의 발가숭이 인형에 눈이 팔려 못 들은 척한다. 혼자 바가지는 흐흐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선창 칠통 마당 어귀에 이르렀다. 갑자기 엉덩이를 들이대며 바가지는 노마의 다리를 잡는다.
“업혀라, 업혀.”
어린애 아닌 노바를, 그리고 제 걸음도 바로 걷지 못하는 꼴불견이 아닌가. 노마는 싫다고 등을 내민다. 그러나 업혀야지 떡을 사준다는 거다.
시커먼 화물차가 한참 지나가고 훤하게 앞이 열리자, 건너편 일대는 전부 볏섬이 더미더미 산을 이루었다. 말구루마 소구루마가 길이 미어 나온다. 볏섬 사잇길을 왼편으로 꺾어 나서면 바다, 제2잔교서부터 제3잔교 일폭은 크고 작은 목선이 몸을 비빌 틈이 없이 들어찼다. 꾸벅꾸벅 고개를 빼고 볏섬을 져 나르는 자, 섬에다 색대를 찔렀다 빼며 “다마금*요, 은방요” 허청대고 외는 자, 뒷짐을 지고 서서 두리번저리는 모직 두루마기를 임은 자, 그리고 지게를 벗어놓고 볏섬 위에 혹은 가에 무더기무더기 입을 벌리고 앉았는 자, 그들의 무심 한 눈은 거의 한 곳으로 모인다. 가운데 무럭무럭 오르는 더운 김과 시큼한 냄새를 휩싸고 섰는 한 덩어리가 있다. 각기 젓가락과 사발을 들고 고개를 쳐들어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쩍쩍거린다. 바가지는 그들 사이를 뻐기며 소리를 친다.
“여기두 탁배기 한 사발 노슈. 그리구 시루떡 한 조각허구.”
앞에 선 자가 팔을 내리자, 노마는 수건을 오그려 쓰고 시루의 떡을 베는 여자의 모습이 익다. 남 아닌 자기 어머니였다. 떡을 들고 내밀던 손이 멈칫한다. 잠깐 낭패한 빛이 돌더니 태연하다. 노마 아닌 남을 보는 거나 다름없다. 노마는 차마 손을 내밀어 받지 못한다.
뒤에서 노마 머리에 손을 얹으며 굵은 음성이,
“얘가 누구요?”
“내 아들놈여.”
하고 바가지는 다 들어보라는 음성으로,
“머리는 장구통이라구 이눔 신통헌 눔여. 제 에민 노점을 앓구 자빠졌구 애빈 이 모양으로 난봉이 나 다니구, 집에서 어미 병 고신이며 부엌 설거지까지 이눔이 혼자 허는데 해두 잘허거든.”
노마 어머니는 손구루마 한 채에다 한편에는 시루떡, 한편에는 막걸리 항아리 모주 냄비를 걸어놓고 사발에 술을 부으랴 보시기에 모주를 놓으랴(이렇게 하아 노마 어머니는 바가지의 의기를 꺾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손을 놀린다.
더부살이는 아닐 덴데 여기 털보가 시중을 든다. 일일이 술값을 받아 목걸이를 해 앞에 늘인 주머니에 넣는다. 막걸리통을 날라온다. 냄비에 부채질을 한다. 바가지는 노마를 내려놓고 앞으로 어머니의 정면에 서게 한다. 그는 한층 목청을 높인다.
“이 녀석, 에미 말 좀 들어보슈.”
하고 여자 음성으로 고쳐서,
“나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몸이니께 날 버리구 맘대루 딴 계집을 얻든 살림을 배치하든 상관없지만 이 자식은 무슨 죄로 굶주리게 하는 거냐. 선창엔 그렇게 드나들면서 그 흔헌…….”
털보가 앞치마에 손을 씻으며 뒤로 돌아와 바가지의 구두를 툭 치고 턱으로 건너편을 가리킨다.
“나두 내 돈 내구 술 사 먹는 사람유. 어째 함부루 툭툭 치구 내모는 거여.”
“누가 내모는 건가 이 사람아. 나허구 헐 얘기가 있으니 저리 좀 가잔 말이지.”
“헐 말이 있거던 예서 해.”
하고 이건 뭐냐 어깨를 잡은 손을 툭 쳐버리고 몸을 뒤로 채기는 했으나, 너무 지나쳐 뒷사람의 팔을 쳐 술사발을 엎지르고 쓰러졌다. 와아 하고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둘레가 터져 더러 짓가락을 든 자가 그편으로 둘러선다. 잠시 땅을 짚고 주저앉아 바가지는 눈을 지릅떠* 털보를 노리더니 한번 해볼 양으로 일어선다. 몇 보 걸음을 옮기자,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한 자가 보자 하나를 집어 들고 쳐든다. 허리에 찼던 이발기계를 싼 보자다. 바가지는 기겁을 해 돌아서 손을 벌린다. 그러나 먼저 털보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일은 우습게 되
고 말아, 보자 한끝은 털보가 잡고 한끝은 바가지가 매달려,
“이리 내여, 이리 내여.”
“이리 좀 와, 이리 좀 와.”
털보가 끄는 대로 바가지는 달려서 건너편 창고 뒤로 사라진다. 벌어졌던 자리는 다시 오므라들었다. 겹으로 울립*을 한 사람 가운데 노마 어머니의 모양은 파묻히었다.
그편을 멀찍이 등지고 돌아서, 그러나 어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리를 두고 노마는 뒷짐을 지고 섰다. 제2잔교 위 엿목판 옆이다. 어머니가 노마를 노마 아니로 보아준 야속함은, 노마도 어머니를 어머니 아니로 보아주었으면 고만이다.
너무 잔잔해 유리 같은 바다다. 놀라움밖에 더 표현할 줄 모를 커다란 기선이 가로 떠 있다. 가난한 사람처럼 해변 쪽으로는 목선이 겹겹이 모여서 떠든다. 잔교 한편에 여객선이 붙어 서서 사람과 짐을 모아들인다. 통통통 고리 진 얻기를 뽑으며 발동선이 우편으로 물살을 가르며 달아난다. 저 배가 보이지 않거든 노마는 고만 집으로 돌아가리라 한다. 마침내 발동선은 시커먼 중국배 뒤로 사라진다. 그러나 어쩐지 미진해 다시 이번에는 여객선이 사람을 다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하거든 하고 노마는 자리를 뜨지 못한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배가 움직이기 전에 어머니는 왔다. 그러나 건너편 세관 앞을 오면서부터 눈을 흘기고,
“뭣 허러 까질러 다니니. 배라먹게.”
하고 노마의 머리를 쥐어박고,
아버지에게 말하면 이거다, 이거여.”
주먹을 쥐어 우리는 시늉올 내다가, 그 손바닥을 펴 돈 한 닢을 보이며 어머니는 능친다.
“바가지가 오재두 듣지 말구, 아버지 시중 잘 들고 있어, 웅 착하지. 그리구 아예 나 봤단 소리 말구, 응.”
어머니는 둥을 두들기며 음성이 다정하다. 노마는 낯을 찌푸린다. 그 속은 어쩐지 울음이 나와 참는 것이다.
이날처럼 노마에게 집의 아버지가 불쌍하고 쓸쓸하게 생각된 때는 없다. 아버지는 쓰레기통 옆에 다리병신보다 더 가엾고 노마 자신보다 더 작고 쓸쓸하다. 오늘도 아버지는 앞가슴에 남생이를 올려놓고 누웠으리라.
노마는 지나가는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손아귀의 돈 한 푼과 그곳에 놓인 물건과를 비교한다. 사과, 굴, 감, 유리병 속에 든 과자, 모두 엄청나다. 골목길로 들어서 늙은이가 앉았는 구멍가게에서 노마는 붕어과자 하나와 바꾼다. 아버지에게 드릴 생각이다. 아버지는 노마 이상으로 이런 것들에 군침이 나리라.
조금 후 눈으로 박은 콩알이 떨어져 손에 잡힌다. 할 수 없으니까 노마는 먹는다. 비위가 동한다. 이번에는 제 손으로 지느러미를 떼어 먹는다. 이런 것은 없어도 붕어 모양이 틀려지는 것이 아니니까 표가 안 난다. 그러나 꽁지만 먹자는 것이 야금야금 절반을 녹이고 만다.
노마는 차츰 무거운 마음에서 풀어져― 즐거워진다. 멀리 떨어지면 항구는 마치 커다란 소꿉장난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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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가 급기야 토담 모퉁이 양버들나무를 올라갈 수 있던 날 노마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실로 이상한 날이다. 그렇게 어렵던 나무가 힘 안 들이고 서너 간 높이 쌍가지 진 데까지 올라가졌다. 거기서부터는 손잡을 데 발 놀 데가 다 있어 한 층 두 충 곰보 이놈도 이만큼 높이는 못 올랐으리라.
그 내려다보이는 시야가 결코 뒤 언덕 위에서 보는 때보다 그리 넓지도 멀지도 못하다 할지라도 이렇게 늘 보던 길, 집, 사람 들이 아주 달라 보이도록 나무 쌍가지에서 거꾸로 보기는 노마 아니면 할 수 없다.
“곰보야, 곰보야.”
제법 큰 소리로 별명을 부를 만도 하다. 저 아래서 조그맣게 영이 할머니가 울상을 하고 쳐다본다. 이런 데서 거꾸로 보는 사람의 얼굴이란 저런 게다. 음성까지 울음에 섞여 손짓을 한다. 오늘 노마의 성공은 영이 할머니를 울리다시피 장한 것인지도 모를 일. 그런데 노마 집 문 앞에는 동넷집― 여인들이 중기중기 큰일 난 얼굴로 모여 섰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러나 어머니 음성 이 분명 한 곡성이 모깃소리 만큼 가늘다.
모두 거짓부렁이다. 참 설움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이고야 목청만이 노래 부르듯 청승맞을 수 없다. 치마폭에 얼굴을 싸고 엎드리었다. 문득 낯을 드는 때 어머니가 굴뚝 뒤로 돌아가 틸보와 수군수군 공동묘지를 쓸 것인가 화장을 할 것인가 손가락을 꼽으며 구구를 따지는데, 어머니는 영 이 할머니보다도 예사롭다.
만약에 노마 아버지의 뒤축 끊어진 커다란 고무신을 전대로 방문 앞 댓돌 위에 놓아만 두었으면 한잠 깊이 든 때 아버지나 다름없다. 그것을 신을 임자가 없다는, 듯이 뒷간 옆에 내던져 굴리는 고무신을 볼 때만 노마는 언짢은 생각이 들어 도루 제자리에 집어다 놓는다. 그러면 어머니는 고질을 떼어버리듯이 한 짝씩 집어 멀리 길 아래 쓰레기더미가 있는 편으로 팽개쳤다.
영이 할머니는 노마를 집 뒤 들창 밑 아무도 없는 데로 끌고 가 은근히 묻는다.
“노마, 너 남생이 어디 간 거 아니?”
“어제는 보았어두 오늘은 몰라.”
“거 참 심상헌 일이 아니다.”
하고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남생이가 없어졌음으로 해서 그런 일이 생기었다는 듯이 갑자기 울음에 자지러진다.
저녁때 길목을 막고 허갈*을 하고 서서 바가지는 노마 집 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 서방은 속여두 난 못 속인다. 담벼락에 붙여논 건 뭐구, 남생이는 다 뭐여. 멀쩡하게 산 사람을 앉혀놓고 연놈이 방자*를 해. 방자대루 돼서 좋겠다.”
아이들 머리 너머로 어른들도 팔짱을 찌르고 우뚝우뚝 서자, 바가지는 기세가 높아진다.
“모두 그눔의 농간야. 그눔이 뒤에 앉어서 방자두 놓게 하구 그리구…….”
그리고 저녁밥에 필시 못 먹을 독을 탔을 것이다. 아니면 멀쩡하게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별안간 요강 요강 선짓덩이를 쏟아놀 리가 없지 않으냐―그러나 바가지가 취중이 아니고 성한 정신으로 한 사람을 붙잡고 넌지시 하는 말이라 하여도 곧이들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가지 자신의 처신이 글러 그런 것만이 아니다.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서 초상비 일동일정을 대고 백지 한 장을 사려도 손수 비탈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털보에게 일반은 인정 많은 사람이라 지목이 돌았다.
저녁에 노마는 잠자리를 영이 집으로 옮기었다. 방울등잔을 가운데 두고 앉아서 노마는 영이에게 전에 없이 다정히 군다. 위하던 호루라기를 저고리 고름에서 풀어 영이에게 주어도 아깝잖다. 이런 때 노마에게 호루라기 이상의 무슨 귀중한 것이 있었다면 좋았다. 왜냐하면 노마는 어떻게 영이에게 착한 일을 하고 싶으나 그 방법을 몰라 한다.
그날 동네 여인들은 변으로 노마에게 곰살궂게 하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머리도 쓰다듬고 떡 같은 것도 갖다준다. 측은해하는 낯색으로 노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노마는 그들이 하는 대로 풀 없는 낯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그 속은 어쩐지 겉과 같지 않은 것이 있어 외면을 하는 거다.
“넌 울지두 않니? 남들이 숭보라구.”
어머니는 눈을 흘기며 노마에게 울기를 권한다. 그러나 자기처럼 아니 나오는 울음을 소리만 높여 울면 더 흉이 되지 않을까, 노마는 남부끄러 못 운다. 그러나 영이 할머니가 진정으로 자기가 먼저 울어 보이며 권하는 때도,
“어떻게 울어.”
노마는 사실 제 식으로 진정 울려 해도 도시 울음이 나지 않는다. 거기 실감이 따르지 않는다.
호젓한 집 뒷담 밑으로 돌아가 노마는 짐짓 시르죽은* 표정을 한다. 담벼락의 모래알을 뜯어내며 “아버지는 영 죽었다” 하고 입 밖에 내어 외어본다. 그리고 되도록 울음이 나오라고 슬픈 생각을 만든다. 하나 머릿속에는 담배물부리를 찾느라 방바닥을 더듬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거미발 같은 손가락이다. 창밖에서 쿵쿵 발을 구르며 먼지를 터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얼굴은 형용을 잡을 수 없다. 그보다는 오늘 노마가 나무 올라가기에 성공한 그 장면이 똑똑히 나타나 덮는다. 갑자기 노마의 키가 자라난 듯싶은 그만큼 보는 세상이 달라지는 감이다. 노마는 부지중 마음이 기뻐진다. 어쩔 수없는 기쁨이다. 아아,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에게 죄스런 마음이다. 어떻게 무슨 커다란 착한 일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무얼로 이 마음을 씻을 수 있으리요.
“영이야.”
“응―.”
노마는 빤히 영이의 얼굴을 마주 본다. 이처럼 영이가 어여뻐 보이기는 처음이다. 눈두덩 위의 곁두데기까지 무척 귀엽다. 노마는 불시에 두 팔로 영이 목을 끌어당겨 흔든다. 다시 무릎 사이에 넣고 꾹꾹 누른다.
“아이 아이 아이.”
뜻에 반하여 노마는 고만 영이를 울리고 만다.
『조선일보』 (1938. 1. 8~25); 『남생이』 (아문각 1947)
현 덕
본명이 경윤(敬允)인 현덕(玄德)은 191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집안 사정으로 제일고보를 중퇴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했다. 193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가작으로 뽑혔고,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 가 당선 되면서 본격적으로 등단했다. 해방을 전후로 세태풍자적인 경향에서 전환하여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을 표출했다.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출판부장으로 활동하다 6·25 때 월북했다. 「경칩」 「군맹」 「충」 「녹성좌」 둥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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