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번 주말인 10월28일은 '서울 시민의 날'이다. 오옷! 그런 날도 있단 말인가!! 하고 놀라는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어찌됐건 서울 시민의 날을 맞아 서울시와 지역방송사·지역단체 등에서 이런 저런 행사를 많이 준비했다. 그중에서 가장 볼 만한 거 두가지를 꼽자면 드럼페스티벌과 불꽃놀이축제다. 이번주에는 이 행사들을 보러 가는 게 어떨까.
그/그녀와 함께 서울시의 랜드마크, 세종문화회관과 63빌딩을 찾자.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걸터앉아 타악기 소리에 맞춰 어깨도 들썩거리고 발장단도 맞추자. 늦은 시간 한강변에서 쏘아올리는 불꽃을 보면서 탄성도 지르고 칵테일도 한잔 하자.
축제라는 거, 즐기지 않으면 소용없다. 브라질의 리오카니발이나 뮌헨의 옥토버페스트같은 시민축제를 그리워해본 적이 있는가? 아직 시작단계지만 서울에도 사람이 주인공인 축제가 있다. 가서 즐기자.
서울시민의 날 전후로 한두주동안 서울시 전체가 축제의 마당이 되어 회사도 일찍 끝나고 사람들이 길에 나와 춤도 추고 차도 안 다니고... 이런 한판 잔치를 벌일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이번주 데이트 출발~
=13:00 단골 만남의 장소, 세종문화회관=
오늘은 지난회와는 좀 다르게 해볼까? 세종문화회관 옆길에 있는 던킨도너츠에서 만나자. 어디서 만나나 거기가 거기지만...헤헤헤.
=13:00 - 13:50 말하면 입아픈 깡장의 명수, 깡장집=
된장과 갖은 양념, 부재료를 함께 넣고 빡빡하게 끓인 깡장으로 유명한 집이다. 신문이나 각종 식당 탐방기에 어김없이 등장할 만큼 이름난 집이라 손님이 좀 많지만 사무실 밀집지역에 있는 식당이라 토요일 오후에는 좌석에 여유가 있어 찾아갈 만 하다.
깡장은 한여름 보리밥 위에 한숟갈 얹어 호박잎에 싸먹는 강된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강된장이 다른 부재료 없이 된장과 양념만으로 바특하게 끓여낸 것인데 비해 이 집의 깡장에는 오징어·돼지고기·양파·마늘·풋고추 등 각종 부재료가 한가득 담겨 있다.
깡장과 공기밥에 듬성듬성 썬 상추와 부추, 데친 콩나물이 따라 나온다. 야채와 공기밥을 한 데 담고 깡장 건더기를 듬뿍 퍼넣어 썩썩 비벼 먹는다. 반찬으로 딸려나온 열무김치를 함께 넣어도 맛있다. 좀 슴슴하다 싶으면 남은 깡장을 조금씩 얹어가며 먹어도 맛있다.
세종문화회관 뒷편의 로얄빌딩 지하에 있는데 벌써 여러번 등장한 LG25 있는 네거리에서 대각선 맞은편 블록에서 찾으면 된다. 건물 앞에 '깡장집' 간판이 붙어있다.
=13:50 - 15:30 북치고 장구치는 드럼페스티벌=
14시부터는 드럼페스티벌 오늘 행사가 열린다. 공식 명칭은 '서울 드럼페스티벌 2000'.
타악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악기다. 두두둥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되고 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본능적인 원시의 생명력이 솟아오른다.
올해로 두번째를 맞는 드럼페스티벌은 경연대회와 축하공연, 그리고 시내 요소요소에서의 소규모 공연 등으로 구성된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경연대회와 해외 연주자들의 축하공연이 열린다. 28일에는 결선진출자들의 경연과 프랑스 'Sylvestre Enjeu'의 공연이 있다. 특히 프랑스팀의 공연은 타악기와 하프가 함께 하는 오묘한 무대. 그러나, 저녁 여섯시 사십분까지 계속 페스티벌을 볼 사람이 아니라면 14시부터 15시30분까지 한시간 반 정도 결선대회만 보자.
세종로 쪽 중앙계단이 객석이 되고 계단 앞 넓은 마당이 공연장이 된다. 입장료는 고맙게도 무료. 길 가는 사람 누구나 흥겹게 어울릴 수 있는 잔치를 만들려는 의도로 마련한 자리니만큼 격식이나 절차가 따로 없이 그냥 보고 웃고 즐기면 된다.
야외에서 한시간 넘게 앉아 드럼연주를 듣다보면 몸에 제법 한기가 느껴질 거다. 이제 미술관으로 들어가 스페인이 낳은 전설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코르네(1852~1926년)의 작품을 보자.
이런 건축물이 있다니!! 탄성을 자아내는 가우디의 작품이 11월3일까지 전시된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절묘한 곡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로 가우디의 정교하고도 환상적인 1백78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가우디의 대표작인 '성가족 성당'을 비롯,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구엘공원' '카사밀라 저택' 등 신의 솜씨로 빚어낸 듯한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건축모형뿐만 아니라 평면도와 사진, 설계도·석판화·가구 및 세라믹 작품까지 선보인다니 스페인에 가지 않고도 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번에 눈에 잘 심어놓자. 혹시 아는가. 몇년 후 그/그녀와 함께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을 직접 가보게 될 지도. 그때 "아 이게 그때 봤던 성가족 성당이구나. 아직도 공사중이네. 실물이 더 멋지군." 이만한 추억이 또 있을까.
=16:00 - 16:30 여의도로 여의도로=
이제 장소를 옮길 시간이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여의도로 가자. 여의도. 서울이면서도 서울같지 않은 곳. 타지(他地) 사람들이 처음 찾으면 좀 어색하고 낯설기까지 한 곳. 글쎄, 주관적인 느낌일 지 모르지만 여의도는 본 기자에게는 웬지 좀 낯설다. 마치 '여의도 섬주민'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 것처럼 찾을 때마다 내가 꼭 뜨내기인 것 같아 걷는 폼새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본기자, 자주 여의도를 찾는다. 왜냐. 그곳의 독특한 향취가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 어찌보면 뉴욕 맨하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굿모닝증권 뒷쪽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빠보이는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 증권가 골목이며, 위풍당당 도도한 모습으로 하늘높이 송신탑을 뻗치고 있는 방송사들이며.
좀 색다른 체험을 하고 싶을 때 여의도역 네거리, take out 커피점을 찾아 멍하니 바깥을 본다. 그러면 사는 게 조금은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여의도에는 '여의도 공원'이라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5·16 광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져 이제는 숲과 산책로로 새단장한 여의도 공원. 이만큼 떠들었으니 이제 여의도역에 도착할 때가 된 것도 같은데...
=16:30 - 18:00 여의도 공원에서 커플자전거 타기=
여의도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가자. 증권감독원을 지나 길을 건너면 여의도 공원입구가 나온다. '자연생태의 숲 - 문화의 마당 - 잔디마당 - 한국전통의 숲' 이렇게 네구역으로 나뉘어 있다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차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자연생태의 숲과 한국전통의 숲은 정자가 있고 없고 말고는 별다른 게...
그런 구역같은 건 무시하고 그냥 천천히 거닐자. 공원을 크게 한바퀴 도는 순환길은 산책로와 자전거로 둘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고 자전거길로 걸으면 벌금을 받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아무데로나 걸으면 된다.
이곳은 정말 정말 정말 가을이다. 가만히 주위를 보면 나무들이, 숲에서 "지금은 가을입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연을 잊고 살아온 지금까지 몇개월이 한스러워 눈물이 날 정도로 가을이 엄습해온다. 노을빛에 물든 단풍으로, 우울한 입맞춤같은 은행잎으로 가을이 그/그녀와 내게로 온다.
잔디마당 옆을 거닐다가는 초록을 잃은 잔디 위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 그래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 공원에서는 '잔디밭 출입금지'같은 야박한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 정겹다.
잔디마당을 지나 국민일보 방향으로 가면 자전거 빌려주는 곳이 있다. 여기서 커플자전거를 하나 빌리자. 실제로 타보면 커플자전거보다 둘이 따로 하나씩 빌려 타는 게 더 재밌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데이트중입니다" 광고도 하고 연인의 특권도 누려보고 하기에는 커플자전거가 더 좋다.
한국전통의 숲에 있는 정자에 올라 LG 쌍동이빌딩쪽을 보는 맛도 새롭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저녁나절의 여의도 공원은 따사롭고 부드럽다. 조금 쌀쌀하기는 해도 그/그녀와 함께인데 무슨 상관이랴. 마음껏 걷고 마음껏 자전거 타고 마음껏 사랑하자.
=18:00 - 19:00 여의도, 여기가 맛있다=
타악기 선율과 여의도 공원의 바람에 한껏 젖다보니 어느새 뱃속이 허전~한 것이... 여의도의 맛있는 집들을 찾아 슬슬 걸음을 옮겨볼까.
다시 굿모닝증권·한화증권 방향으로 길을 건너서 여의도역 방향으로 열심히 걷자. 한화증권과 조흥은행 건물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코너에 던킨도너츠 가게가 나온다. 그곳을 왼편에 두고 쓱 걷던 방향으로 계속 걷다가 블록이 끝나면 왼쪽 길로 들어서자. 1층에 한미은행이 있는 한국화재보험협회 건물이 나올 것이고 그 맞은편에 여의도백화점이 있다.
이 동네가 증권거래소 뒷동네, 바로 여의도의 핵심역량인 증권가다. 여의도의 맛있는 집들은 이 부근부터 KBS 별관에 이르는 구역에 포진해 있다.
가장 찾기 쉬운 곳이 맞은편에 보이는 여의도백화점 지하의 음식백화점. '음식백화점'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면 복잡한 식당가가 나온다. 길 잃어버릴 정도로 크고 작은 식당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식당가다. 이중에서 두집을 꼽자면 전주집과 일억초밥을 꼽겠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쭉 걷다가 막다른 길이 나오면 다시 오른쪽으로 턴해서 걷는다. 걷다보면 '냉콩국수·손칼국수·비빔국수' 세가지를 전문으로 내건 전주집이 나온다. 여기는 한여름에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이름난 콩국수집이다.
그렇지만 본 기자의 국수사랑이 맘에 안 드는 독자를 위해 일억초밥을 더 중점적으로 안내하겠다. 전주집을 스쳐지나면 그 길 끝에 있다. 번듯한 의자나 테이블이 있는 집이 아니라 한켠에 바(Bar)만 만들어놓고 초밥을 파는 집이다. 평일 점심에 가면 샐러리맨의 허기진 위장을 위해 생선에 비해 밥을 좀 많이 쥐어준다. 이때는 제대로 된 초밥이라기보다는 배부르게 먹는 초밥을 만나는 셈이다.
그렇지만 점심시간이 지난 후나 주말께에 가면 밥을 좀 적게 쥔 고급 일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초밥을 먹을 수 있다. 가격은 1인분에 7천원. 스넥코너의 다른 식당을 생각하면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고급 일식집의 생선초밥과 비교하면 꽤 저렴한 가격이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환상의 맛은 아니지만 언제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가격 대비 효용. 가격에 비하면 흠잡을 데 없이 맛있다. 제대로 맛을 보려면 평일 점심시간에는 안 가는 것이 낫다. 아무래도 초밥을 하나 쥐어도 좀 여유있게, 정성껏 만드는 게 나을테니 혼잡한 시간은 피해서 가자. 토요일 저녁이라면 여유 만만일 거다. 곁들여주는 오뎅국도 푸짐하고 뜨끈한 게 좋다. 일반적으로 초밥에 같이 나오는 된장국보다 어쩌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증권전산 건너편쪽의 '대여'죽집이나 KBS 별관근처 '초정'의 가정식백반, 여의도의 별미집 '너섬가' 등 이 근처에는 알짜배기 맛집이 너무나 많다. 최고로 신선한 쥐치와 옥돔회를 전문으로 파는 횟집도 있지만 너무 가격이 부담스러워 여기서는 생략.
=19:00 - 20:00 어머, 불꽃놀이 아름다워라=
그옛날 모 보청기 광고 "안 들려요~ 안들려요~ 아름다워라~"를 기억하는가. 이번 코너는 그 광고를 염두에 두고 제목 붙인 건데... 난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변함없이 유치한 인간이다. 푸헤헤.
10월 한달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불꽃놀이축제가 벌어졌던 건 알고 있는가? 이번 주말은 그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다가 시민의 날이기도 해서 한강 시민공원에서 TV행사도 있고 라디오 행사도 있고 한 모양이다. 시민공원에 가서 이런 저런 행사도 보고 사람들이랑 부대끼기도 하면 더 재밌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데이트인데 너무 혼잡한 데는 곤란하겠지. 혹시라도 인기가수를 찾아온 오빠부대에게 밀리기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그러니, 오늘은 63빌딩 60층에 있는 전망대에 가자. 여의도백화점에서 63빌딩은 생각만큼 가깝지는 않다. 한 15분 정도 걸리려나? 힘들 것 같으면 택시를 타는 것도 괜찮다. 기본요금이면 된다.
63빌딩에 가면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불꽃축제는 19시30분부터이니 여유를 갖고 서울의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기다리자. '불꽃축제'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니 오늘 불꽃놀이는 그야말로 장관일 거다. 전망대에도 다른 날보다 사람이 좀 많을 지 모른다. 그래도 그/그녀와 함께 63빌딩 전망대에서 보는 불꽃놀이라니... 웬지 영화의 한장면 같지 않은가. 음 멋지다.
매일 여섯시 반마다 재즈 라이브 연주도 한다는데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이나 'Misty'같은 스탠더드 재즈 넘버를 연주해준다면 오늘의 63빌딩행은 얼마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될까. 남들의 눈만 의식하지 않는다면 천천히 춤이라도 한곡 추고 싶은 기분이 될 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 전망대에서 불꽃놀이와 재즈 라이브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그/그녀와 당신. 아마 주위사람들도 흐뭇한 표정을 지어주지 않을까.
=20:00 -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다면 59층의 칵테일 전문바 'Sky Bar'로 가자. 전망대만큼의 야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수십여종의 칵테일과 차분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전통의 바(Bar)다. 칵테일을 잘 모르면 바텐더에게 자세히 문의해도 괜찮다.
어떻습니까? 축제를 즐기는 것도 좋은 데이트 방법이지요? 칵테일 얘기를 쓰려다보니 본 기자, 근무시간인데도 블랙 러시안 한잔이 먹고 싶어져 계속 쓰다가는 쓱 나가서 한잔 하고 싶어질 것 같아 그냥 짧게 끝냈습니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