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태운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 ...
허준은 아직도 텅 빈 나루의 눈발 속에
서 있었다.
배꾼들이 선객들을 위해 피워놓은
통장작더미 모닥불이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아침 한나절은 더 이상 원행 떠날 큰 배는 닿지 않을 모양이었다.
" ......."
뜨거운 머리가 식어가고,
갯바람에 목덜미와 발이 시려오자
허준이 자문했다.
"어떡할 건가 ..."
오도곶에서 용천읍까지 25리.
오늘 같은 날 집에 돌아가봤자,
어머니의 한숨이나 눈물을 볼 게 뻔하다.
허준은 군서산 봉수군에 말똥창고지기로
있는 술친구 양패놈을 생각해내고서야
못박혀 있던 오도곶 해안에서 발길을
돌렸다.
봉은 홰에 불을 켜는 야간 신호용이요,
수는 싸리나무에 불을 피워 그 연기로
신호를 삼는 주간용 신호인데,
그 연기를 바람에 흐트러지지 않게 올리기 위해선 불길에 말똥을 섞어 태우는 게
비방이다.
때문에 각 봉화대의 말똥창고지기는 제법 완력을 앞세워 말발이 서는 자가 맡았고,
욕 잘하고 주먹질이 날랜 양태놈은
최적임자였다.
특히,
허준과는 용천 관내를 쓸고다니는 호가
난 왈패 한짝이기도 했다.
"양태놈이나 끌고 사위포 퇴기년이 벌이고 있는 술집에나 파 묻혀서!"
그 뒤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술이나 퍼마시고,
잡년의 허리나 끌어안고 만사 잊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생부를 남편이라거나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그들 모자지만,
그래도,
'사또의 품위를 손상케 하는 행동'
을 해서는 안된다며,
때마다 한사코 타이르는 어머니의 말도
오늘의 허준에게는 염두에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신세가
아닌가.
아니면,
차라리 묵묵히 논밭이나 일궈먹는
농사꾼의 신세 정도로라도 태어났던가."
국법에 매인 태생은 미천할지라도
사람으로서의 행동은 천하지 말라며
정실 추씨 몰래 한사코 글을 배우게 한
어머니의 눈물도 지금은 가소로울 뿐이다.
북으로는 의주, 삭주로 이어지는 인산,
도산 봉화대를 바라보고,
남으로는 철산의 웅골산 봉화대와
호응하는 용천 군서산 날망에 위치한
봉화대는 산세가 험준했다.
발 밑에 밟히는 건 눈이 아니고 겨우내
녹지 않은 얼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산비탈을 기어오르는 허준의 격정은, 핑계는 말친구인 양태놈이요,
소위포 잡년의 허리요 술이요,
하면서도 기실 그건 어머니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어쩌면,
그 반대인 어머니의 비극을 짐짓 한번
찔러보는 의식적인 가학행위인지도 몰랐다.
저지르면 괴로워하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저지른 후면 더 많이 감싸려 들고
서러워하고 위로하려 드는 어머니의
설움 속에서 또 한번 허준은
어머니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어두운 숙명을 지그시 확인하고 싶은 아련한 쾌감 같은 것인지도 ...
"불쌍한 어머니."
어릴 적 정실 추씨에게 곧잘 저고리섶이
뜯기고 안채 높은 마루에서 툇돌 아래로
떠밀려 떨어지는 모습을 담 너머에서
지게를 받쳐놓고 올라서 들여다보았었다.
감히 뛰어들어 말릴 권리도 없던
천첩의 아들은 그 어머니의 비명을
속절없이 들으며 담벼락에 이마를 박고
울기가 일쑤였다.
그런 밤.
어린 허준은 '종년' 어머니의 멍든 곳을
어루만지며,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어머니로 여겼었다.
그러나,
자라오면서 허준은 어머니를
'불쌍한 어머니'에서 '불쌍한 여자'
로 여기게 되는 두어 가지 사건을 겪었다.
허준의 생모 손씨에 대한 정실 추씨의
오만가지 투기를 보다못한 아버지가
허준의 나이 아홉이 되던 핸가 ...
그녀를 천적에서 뽑아,
자유로이 떠나보내려 했음에도 남편에
대한 정을 끊을 수 없었던지,
그 보호를 떠나서는 현실 만한 의지처도 없다고 보았는지 어머니는 떠나지 않았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신분이야 어쨌든 사랑에 빠진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그칠 수 없는 정염이었을까.
아니면,
장성하기까지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정이었을까.
추씨가 부리는 종년들에게 걸핏하면
머리끄덩일 들려 안채 샛문으로 끌려들어가 마침내, 발가벗기우고 안채 육간대청에서 툇돌
아래로 굴러떨어져서야 닦달이 끝나는
그 지독한 박해를 감수하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허준은 어머니를 '불쌍한 어머니'에서
'불쌍한 여자'로 바꾸어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 있다.
연전에 정실 추씨가 깊은 병이 들었을 때,
밤을 꼴딱 새워가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그래도 끝내, "자네, 수고허네."
소리 한마디 않던 20여 년을 마주보던
연적에 대한 헌신. 뿐이랴.
그녀의 죽음 앞에서 대성통곡해 울어야
하던 여자.
내가 어른이 되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호강을 시켜
드리겠노라고 마음에 되뇌던 맹세도,
어른만 되면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있고 온갖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
어린 소년의 순진한 소망이었을 뿐 ...
'어른이 된 지금 오늘 겪었던 친구들과의
이별은 무엇을 뜻하는가.'
'불쌍한 여자'의 불행까지 떠맡을 주제는
고사하고 자기 또한 자기 한 몸조차
주체하지 못하는 무력한 '천것'의 아들일
뿐이 아닌가.
'나의 운명은 끝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훨씬 이전 어머니가 종의
신분이 된 그 순간부터 ...'
우물가 아녀자들 앞에 바지를 걷어내리고 나타나기나 해야 풍속을 해친 놈쯤으로
몰려 관아의 문턱을 넘어볼까
자신의 운명 속에서 내가 누구노라며
세상에 외쳐댈 문벌도 희망을 가질 신분도 없다.
그렇다면 뻔하다.
자기 또한 어머니가 겪는 저 고통을
일생 벗어날 길이 없으리라 ...
천것이라는 손가락질 속에서
자기가 보았던 저 수많은 눈물과 마소처럼 부림을 받으며 사는,
저 허드레 인간들의 처량한 모습들이
허준의 걸음을 또 멈추게 했다.
추씨의 죽음 후에도
안채 육간대청 위에 서보기는커녕,
그 정실부인이 생활하던 안채엔 여전히
발길도 못하며 그녀가 거느리던 종년들조차 함부로 부리지 못하는 천첩의 질곡.
"죽어도 하나 아깝지 않은 목숨이야.
숨만 쉬고 있지 이미 나는 죽은 목숨인즉 ..."
울창한 닥나무숲을 지나자,
봉화대의 불꽃이 날아 산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섯 칸 너비의 방화벽이
꾸불꾸불 나타났고,
그 한쪽 바위가 사태나듯 무너진 길
아닌 비탈을 오르며 허준이 또 생각했다.
'살았되 인간답기는 아예 바라볼 수도 없는 어머니와 나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행복은 무엇일가.'
"행복? 내가?"
코방귀부터 뀌어졌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청년'의 행복을 골똘히 생각해내려 했다.
" ..."
허준이 어린 날 ...
어머니가 아직 젊고 아리따웠을 때,
어머니의 몸종 삼월이에게 손을 잡혀
아침 문안차 어머니의 방에 들르면
어머니는 늘 무언가 한 가지씩 군것질할
것을 쥐어주었고,
그런 어느날 허준은 문득 느꼈었다.
곱게 개켜놓은 이불단 속에서 살풋 피어나!
소년의 꼬끝에 맡아지던 비밀스러운
꽃내음 같기도 한 성의 향기를 ...
그리고,
때로 삼월이의 방에 내처진 채
오늘은 들어가자 말라고 타이름을 받던 밤.
몰래 숨어들어가 들여다본 방안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얼굴의 어머니가 기척도 모르고,
분단장에 열중하던 그 기다림도 첩년의
행복이었을까?
산성 봉수대에는 분명 오늘 직숙일
터인데도 양태놈은 직처에 없었고,
사또의 자제 허준의 출현에 오장 한 놈이 다가와 아첨기 어린 말을 걸다가 사라졌다.
허준은 봉수대 북쪽 비탈 말똥창고 앞에
서서 눈 아래 올망졸망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저 아래 철산과 의주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큰길을 따라 번화한
용천읍이 백설에 덮여가는 것을 언제까지나 보고 서 있었다.
눈발이 허준의 맨상투 위로 엉겨붙고,
옷자락이 깃발같이 펄럭였다.
"열길 백길 천길 이까짓 세상 모조리
파묻어버려!"
파랗게 얼어가던 허준의 입이 다시
들끓기 시작하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절망에 찬 파란 불덩이를 내뱉었다.
주먹만한 북국의 눈발들이 그 허준의
주변에서 생물 떼처럼 소란하게 맴돌았다. 봄을 맞이하는 마지막 대설이 될 모양
이었다.
<< 이 소설은 임진왜란을 당해 선조가 몽진을 떠난 뒤, 허준이 그 환난중에도 "동의보감"의
자료묶음을 둘러메고,
선조의 일행을 뒤쫓아가고, 기어이 동행을 자청한 의녀 미사가 그 참담한 둘만의 피난길에서 그간 사무친 모정을 이슬처럼 애잔하게 내비치는 중에 중단되고 만다.
"일요건강"과 "주간부산"에 1984년 11월 11일부터 1988년 2월 14일까지 3년여에 걸쳐
연재되던 도중,
작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그리 된 것이다.
이은성씨는 자택에서 집필중 지병인
심장병으로 쓰러져,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 한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51세의 한창 나이로 1985년 1월 30일 상오 9시에 별세했다. 작가는 생전에 이 책의 각권을
춘하추동으로 이름 붙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동'편 한 권 분랑의 얘기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77년,
MBC TV의 일일연속극으로 방영되었던 "집념"을 소설화한 것인데,
연속극으로서도 소설로서도 끝내 완성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TV쪽에서는 비록 방영은 되지 못했으나 허준이 끝내 "동의보감"을 완성시키기까지 10회 가까운 대본이 더 씌어졌고,
그 대본에 잇따라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허준이 펼치는 의성의 세계가 작가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첫댓글 소설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