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성서형제회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그 주일의 목음을 읽고 묵상을 합니다
그 묵상가운데 특히 우리의 공동체생활 가운데 과연 하느님이 중심에 서 계시는지를
아울러 성찰해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게 50여년전에 시작한 이 공동체인
성서형제회는 주춤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주 작은 유대민족들을 이끌어내시면서
많은 축복을 주셨지만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이방민족을 통해서 그들을
힘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일 주변 여건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우리가 과연 하느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지를 아울러 성찰해 봐야 할것입니다
저의 본당 성서공부여정은 창세기를 마치고 탈출기로 접어듭니다
탈출기에서 시나이정산에서 모세는 계액의 궤인 십계명을 돌판에 받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해서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잃고
가나안땅에 막 들어서려는데 하느님의 의지와 달리 그들은 먼저 정탐꾼을 보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유다지파의 여호수아와 에프라임지파의 칼렙등 12명이 파견되나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하고 나머지 정탐꾼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게되어서
이집트를 출발한지 사십년이 지나도록 요르단강을 던너지 못하였다
요셉의 덕분으로 요셉과 그 아들의 지파는 많은 영토를 얻게 되었는데
하느님이 원하시는 그곳에서 완전히 가나안족속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이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모든 것의 중심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가나안땅에서 12지파의 정착과정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만일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과연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아울러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에프라임 지파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야곱의 자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에프라임(그리고 므나쎄)의 경우에는
그의 손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에프라임은 이집트에서 요셉의 아내 아스낫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요셉은 “ “하느님께서 내 고난의 땅에서 나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셨구나.”(창 41:52)고 하여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프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손자 에프라임과 므나쎄에게 축복을 주었을 때 요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 에프라임을 먼저 축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야곱은 에프라임이 므나쎄보다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창 48:5-21).
구약성서 전체에서 에프라임이라는 이름은 종종 요셉의 아들의 이름을 딴 한 지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북왕국을
구성하는 열 지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에스겔 37:16; 호세아 5:3).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는 북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예레미야 7장). 유다라고도 알려진 남왕국은 거의 140년 후
(기원전 586년) 바빌론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우리는 에프라임 지파(및 다른 지파)로부터 인간의 본질, 즉 우리가 누구인지 배웁니다.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는 우리의 보편적인 결함과 죄악된 본성을 반영합니다. 로마서에는 “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로마 3:2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에프라임 지파와 관련된 몇 가지 구체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지파를 전사
와 용감한 투사로 주셨지만(1역대 12:30), 에브라임은 약속의 땅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제거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습니다(탈출기 23:23~25; 판관기 1:29; 여호수아 16:10). .
판관 시대에 에프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이 처음에 미디안 사람들과 싸울 때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화를
냈습니다(판관 8:1). 기드온은 현명하게 경건한 친절을 베풀고 주님을 섬기려는 부족의 헌신과 의지를 칭찬하여
추악한 상황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확산시켰습니다(판관 8:2-3).
그러나 추악함은 나중에 생겨났는데, 이는 다시 에프라임의 교만, 질투, 자기중심주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입다가
자랑스러운 에프라임 전사들의 도움 없이 암몬 사람들과 싸워 패배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내전이 일어나 에프라임
전사 42,000명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듯이,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마테오 6:33).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마십시오. 모든 영예와 영광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께 속합니다.
종종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덜 화려하거나 극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사용하기로 선택하십니다.
우리는 삐죽거리나요? 우리는 영광을 갈망합니까? 우리는 교만과 질투를 억제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에프라임 사람들처럼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교훈을 잘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상황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1데살 5:16-18).
에프라임의 다른 교훈은 인간 행동의 광범위한 그림을 완성합니다. 우리는 에프라임이 하느님에게서 돌아서서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을 봅니다(이사야 28:1-3).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지파가 선지자 오뎃의 지시를 따름으로써
회개하고 순종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봅니다(2역대 28:12).
에프라임 역사에서 가장 큰 교훈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참으시고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징계하시고 인도하시며, 우리가 회개해야 할 순간을 아시고, 우리가 그분과 완전한 교제를 나누기를
갈망하십니다(예레미야 30:22; 31: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