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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당신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
+ 본 문 : 출애굽기 3장 1절 - 12절 (구약 84쪽)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아멘!
+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인사합시다. /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당신 안에 계신 주님께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 실패의 경험에 매여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아직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우리를 소중하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역사의 마운드에 다시 세우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옛날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는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자신의 뜻을 사람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우리는 지도자라 합니다.
지도자하면, 흔히 남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연상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배자이지,
지도자는 아닙니다. 나라의 정권을 잡은 사람, 회사의 사장님, 어느 단체의 기관장...,
이런 사람들은 지배자이지 지도자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싸워 이겨서,
얻은 세상의 자리는 지배자의 자리이지, 지도자의 자리는 아닙니다. 지배자는,
다스리고 군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입니다. 훌륭한 정치가들,
많은 기업가들은 부러움의 대상은 되고 있으나,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배자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지만, 지도자는 자기는 죽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지배자의 한때 세상을 지배하는 듯 하나,
언젠가는 이 세상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만, 지도자는 역사 속에 계속 살아 있습니다.
지배자는 기업에 필요하고, 정치꾼들이 모인 정당에 필요한 땅의 사람이지만,
지도자는 하나님이 쓰시는 하늘나라 사람이기에, 지도자는 하나님이 보내시고 하나님이,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배자가 아니라 지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행복은 쓰임 받는데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붙들리고 쓰임 받는 사람이다.”
여기에 우리의 행복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내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와 가격은 다른 것입니다. 그의 재산이 얼마냐? 월급이 얼마냐?
하는 것은 가격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사람의 가치는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어떤 일에 쓰임을 받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 에 따라 평가됩니다. 때문에 사람은,
그가 어디에 가든지 쓸모 있는 사람, 꼭 필요한 존재,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집안에 작은 그릇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들락날락 쓰임 받는,
밥그릇, 국그릇이 있는가 하면, 찬장 맨 꼭대기에 언제나 모셔져 있는 그릇이 있습니다.
이사 갈 때 한 번씩 꺼내 먼지를 닦고 제일 먼저 챙겨지는 비싼 그릇, 그러다가,
밥 한번 담아 보지 못하고 깨져서 버리는 그릇! 우리는 그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란? 밥을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와 보람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살면 행복할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존재다." 거기에 행복과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간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다.’ 하면서 낙심하고, 고개를 떨구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분이 계십니다.
나에게 기대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건강이 남아 있다는 것! 여러분이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여러분의 생명이 남아 있다는 것! 우연히, 어쩌다 재수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배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든지 지배자는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지도자가 되기를,
지금 기대하고 계십니다. 내 모습 이대로 잘 쓰임 받으면 나는 지도자입니다.
팀 라헤이라는 분이 쓴 “성령과 체질” 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울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담즙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충성의 열매를 맺고, 점액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화평의 열매를 맺고, 다혈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희락의 열매를 맺는다.“ 누구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건강해야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병든 사람도 하늘 사역에 쓰십니다.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있어야 쓰임 받는,
것이 아니고, 재주가 많아야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은 쓰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내 현실 이대로, 내 과거 그대로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었던 소중한,
의미를 가진 사건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가 부르시는 소명이요.
바로 지금 하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지도자가 되는 행복입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지도자" 라고 할 때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을 제일 먼저 생각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모세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 모세는 오늘 본문 11절에서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말합니다.
여기 "내가 누구이기에" 라는 말에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누구이기에”
하는 고백은 "나는 살인자입니다." 하는 고백이요. "그 옛날 내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힘 한번 써보다가 살인자라는 오명만 남긴 채,
도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실패자요. 나는 패배자입니다." 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둘째, “내가 누구이기에” 하는 고백은 "나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에게 붙어사는 사람,
지금 나는 처가살이로 연명하는 사람, 이미 이방과 세상에 오염된 사람입니다." 하는,
나약한 고백이요. "직업도 변변치 못하고 가진 재산도 없고, 이리저리 양을 몰고 다니며,
양을 치는 목동으로서 만족하는, 실패와 좌절 속에 희망을 버린 지 오래 전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나약한 인간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셋째, “내가 누구이기에” 하는 고백은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내 나이 80, 하나님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이 늙은이가 무엇이기에” 하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모세의 “내가 누구이기에” 하는 고백은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겸비도 아니며, 자기 비하도 아닙니다. 정직하고 솔직한 고백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쓰시겠다고 선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도 그렇고,
내가 나를 보더라도 별로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잘난 구석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습니까?
모세가 부름 받은 자리는 바로 여기입니다. 모세가 민족의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금식기도하고 철야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로, 목자가 되어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으로 나타나 모세를 사명자로 쓰시려고 부르십니다.
호렙산 중턱 떨기나무에서 일어난 그 불은, 나무를 태우는 불이 아니었습니다.
그 불은 모세의 못난 과거를 태우는 불, 못난 나의 마음을 태우는 불이었습니다.
소망도, 꿈도, 싸늘하게 식어진 모세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하는 불이었습니다.
죄악을 소멸하고 인간의 삶을 거듭나게 하는 불이었습니다. 사명의 불이었습니다.
타오르는 성령의 불이었습니다. 믿음을 회복하고 사랑을 회복하는 불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 앞에, 모세는 자신의 생을 보는 눈이 180도 달라집니다.
지나온 생애, 지금 이 순간 내 위치를 보는 해석이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집니다.
부름이 있기 전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비극적인 인물로만 보였습니다.
이름조차 “물에서 건져낸 놈” 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부름의 순간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구나. 물에서 건짐을 받았듯이 내 백성을 건지는 것이,
내 사명이구나!“ 생애자체가 말씀이요, 메시지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보였습니다.
애굽 왕궁에 들어가 공부를 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키우시는 훈련코스였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가 된 것은 이름 한자,
변변히 내어놓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보니,
양을 치면서 낮추시고 기다리게 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중동 속담에 "미련한 양을 쳐보지 않은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미련한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아무튼 모세는 부름 받았습니다. 부름 받고 보니, 지나온 생이 새롭게만 보였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귀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름 때문에 가치평가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부름 받은 자리는 초라한 딸기나무 앞에서였습니다.
아더 핑크라는 성경학자는 가시떨기나무는 모세 자신의 모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시떨기나무는 모세의 그림자입니다. 사막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그 흔하고,
흔한 가시떨기나무, 이 보잘것없는 가시떨기나무, 이것이 모세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모세는 한때 오만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이 가시떨기나무에 불과한 모세는 자기 힘으로 불을 붙이는 혈기에 가득 차,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채 타지 못하고,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연소되어,
재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첫 번째 가시떨기나무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이상한 광경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두 번째 떨기나무의 경험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시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연기가 나지 않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할 때에는,
연기를 피우고 다닙니다. 마음의 향기를 뿜어내지는 못할지언정 아름답지 못한 연기를,
피우고 다니고 쉽게 꺼집니다. 그러나 이 이상한 나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십시오.
불이 계속 피어오르고 가시떨기나무는 아름답게 탑니다. 그러나 연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기 전에 내 몸에 삶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올 때, 자기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인 줄로 압니다.
“나는 많이 배웠잖아. 이만하면 나는 중산층 이상이 돼. 나는 이만하면 신실하게,
살아왔잖아. 'I'm somebody. 나는 꽤 괜찮은 존재야.“ 어깨를 세우고 주님 앞에 섭니다.
그러다가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존재를 발견하고 나면,
“I'm nobody. -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나를 세워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게 될 때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I'm everybody.”
나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예수 이름 앞에 능한 존재로 세움 받게 됩니다.
가시떨기나무가 이처럼 놀랍고 아름답게 변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그 이유는 영광의 하나님,
야훼, 여호와 하나님이 이 가시떨기나무에 친히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와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나 혼자 서 있을 때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할 때, 나는 무능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때에, 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예배의 전에 나올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영광스러운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을 할 때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신명기 33장에 보면, 모세가 가시떨기 나무에 타오르는 불꽃같은 이 사건을,
죽기까지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은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임하면,
내가 네 삶을 붙잡으면 너는 다시 할 수 있다. 잠깐 있다가 꺼지는 연기를 피우는,
인생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길과 영원토록 찬란한 빛을 발하며, 아름답고 거룩하게,
불빛을 내는 삶으로 네 삶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너는 보지 못하는가?“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모세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신을 벗기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4-5)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모세의 신을 벗김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건 역설 - paradox 입니다. 신을 신는다는 얘기는 활동의 시작이요.
신을 벗는다는 말은 “네 일이 끝났다.” 는 말입니다. 출애굽을 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제 네 인생은 끝났다. 너의 모든 과거를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하라.” 는 말입니다.
이력서란? ‘밟을 이(履) 신발바닥 력(歷)’ - 자기 신발이 걸어온 경로란 말입니다.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땅의 이력서를 내려놓고 하늘 이력서를 쓰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땅의 이력서 가지고 가는 곳 아닙니다. 자기 자격이나 공로로 가는 곳 아닙니다.
하늘의 이력서가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땅의 신발을 벗은 자들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라.“(수 1:3)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 또 말씀하십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제사장들이 법궤를 매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 발바닥으로 요단강 바닥을 밟고 건너가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 옛 사람을 벗으라! 내 생각, 내 활동, 내 인생 다 벗고,
하늘 인생으로 살아라. 그런 점에서 교회는 신발을 벗는 곳입니다. 신발을 벗은 자가,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험한 세상 살아가다가 지치고 피곤한 심령들! 사람으로 인해,
이리저리 시달리고 찢긴 심령들! 병든 몸 의지할 곳 없어 외로움에 지친 심령들!
이곳에 와 신발을 벗고 쉬십시오. 교회에까지 와서도 자기 신발을 벗지 못하고,
목에 힘 주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신발 벗고 어린아이처럼,
아버지 품에 안겨야 쉼이 있습니다. 신발 벗지 못해 현관에서 서성거리며 주변을,
맴도시는 분들 신발 벗고 아버지 집에 풍덩 들어서십시오. 그래야 지도자로 쓰십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세상이력서가 화려한 사람들을 특별대접 합니다.
교회에서는 세상 이력서가 화려하신 분들이라고, 특별대접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모두가 평등하고, 하나 된 가족입니다. 세상의 자랑도 내려놓고,
실패도 내려놓고, 화려한 이력서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로만 서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면서, 과거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발을 벗으라. 지난날의 성공을 가지고 무슨 큰일이라도 한 듯이 교만해서도,
안 되며, 실패했다고 해서 오늘까지 좌절하여 자포자기해서도 결코 안 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아멘! 믿습니까?
세상에서 잘 나가시던 분들이 은퇴를 하면, 대부분 초라해지고, 빨리 늙고,
빨리 병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은퇴가 곧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삶의 긴장과 삶의 소망을 다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은퇴가 영어로 retire, 이 말은 re 다시, tire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은퇴는 세상을 달리던 타이어를 내려놓고 이제는 하늘가는,
타이어로 바꿔 끼는 때입니다. 바쁜 세상 살다보니 하지 못했던 일들, 하나님 앞에,
마음껏 쓰임 받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 은퇴하면서부터,
마음껏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은퇴 후 사는 분들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쓰임 받던 타이어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쓰임을 받는 새로운 타이어로,
갈아 끼워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멋지잖아요. 여러분 세상 달리던,
타이어, 교회 오면 갈아 끼우는 겁니다. 세상에서 잘나가던 신발을 갈아 신는 겁니다.
벗어 던지고 새 신발 신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붙들어 사용해 주십니다.
하나님 부름 앞에 선 모세는 몇 번이고 자신의 부족함도 드러내고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모세가 “저는 빈손이고, 말을 잘 못합니다.
저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면, 하나님은 ”나는 세상 주인이다.
네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거절하면 다리를 꺾어서라도, 손발을 묶어서라도 쓰고야 마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실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학위가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백그라운드가 아닙니다. 주의 종들의 실력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거기에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쓰십니다. 장로님이 되실 분들을 교육하는,
자리에서 제가 묻습니다. “장로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대부분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사님의 목회를 잘 돕고 협조하는 일이지요.“ 저는 아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목사는 장로님 도움 없어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주님의 일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로님들이 꼭 해야 할 큰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은혜 받는 일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장로님들이 은혜 받지 않으면 목사가 가장 괴롭습니다.
장로님이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가 시끄러워집니다. 장로님만 그런 게 아닙니다.
권사님 집사님들도 은혜 받고 순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목회도, 교회도 어려워집니다.
은혜 받지 않고 일하면 시험 들고, 순종 없이 교회 일하면 교회가 시끄러워지게 됩니다.
교회 지도자는 은혜를 잘 받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순종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순종하여 나아가는 사람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맨손으로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라는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네가 누군지 아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존재다.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존재다. 역사의 주인이 함께 하는 존재이다.
전능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존재이다.“ 할렐루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순간,
전능하신 그 주님, 능력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붙잡는 그 순간,
가시덤불 같은 내 인생의 나무에 하나님의 불이 붙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불이 붙었습니까?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이 선교 보고를 하려고 고국에 들렸다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물었습니다.
이미 이 때는 리빙스턴이 사자에게 물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 빈 소맷자락이,
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굶고 못먹어 얼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바라만,
보고서도 모인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님,
사나운 맹수, 야만인들 속에서 그토록 어려운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리빙스턴이 대답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여,
지도자로 나서는 사람을 홀로 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도자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모두다 직장으로 나가겠지요. 혼자 가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 가 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 주시는 사람은 직장의 지도자입니다.
이 예배를 마치면 여러분의 집으로 다 가시겠지요. 혼자 가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과 함께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사람이 그 동네 지도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최대의 셀 교회로 성장한 인도네시아 GBI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오바자 목사님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강조하며 선포하는 말은,
“You can be a leader. Just do it.” - “당신도 리더가 될 수 있다.” 는 말입니다.
오바자 목사의 이 외침은 그가 담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GBI교회가 쓰임 받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회교권 국가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시아 최대의 교회로 발돋음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교회 모든 성도들은,
세계 교회의 영적 물결을 이끌어 가는 위대한 지도자들로, 그 열정이 타오릅니다.
불타오르는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지금 성령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의 가치를 아십니까? 우리교회의 비전과 함께,
생각하십시오. 우리교회의 비전과 함께 행동하십시오. 큰 지도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지도자를 세우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의 불길이 강렬하게 타오르게 됩니다.
사과 하나보다 사과나무는 더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귀한 것은 사과밭입니다.
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얼마나 복된 영광스러운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또 다른 열매를 많이 맺는 사과나무가 되는 것은 훨씬 더 소중한 것입니다.
나 혼자 은혜 받는 것 소중하지만 지도자가 되는 일은 훨씬 더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 가는 일,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며 지도자로 만들는 일, 곧 사과밭 역할을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살리는 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
주님이 세우신 지금 우리교회 안에서 여러분 모두가 영적 지도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일하는 그 직장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십시오.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모두 다 이 지역을 이끌어 가는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You can be a leader!”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Just do it!” 지금 결단하고, 주님이 부르신 영적 지도자의 삶을 시작하십시오.
+ 자기 자신을 향해 ‘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하고 큰소리로 외쳐 보겠습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 잠시 침묵기도를 드리겠습니다.
+ 마무리기도 / 침묵 기도 후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