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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신자유주의론에 대한 단상-1부
슬픈한국 chltmdwhc**** 번호 981869 | 10.05.08 00:02
1980년대초 미국 레이건대통령은 훗날 레이건노믹스(Reaganomics)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는 공급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을 신봉하여 강력하게 밀어붙이게 됩니다.
신자유주의 노선 경제정책의 이론 토대인 이 공급경제학의 핵심은 바로 조세감면정책입니다. 이 부분을 잘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신자유주의노선의 이론토대는 공급경제학, 공급경제학의 핵심은 조세감면정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노회찬,심상정,정태인,우석훈,진중권같은 진보떨거지들이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로 몰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노무현이 감세, 복지축소에 혈안을 부렸다는 증좌를 들이대야만 합니다. 그러나 없죠.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이 바로 삼성유착설, FTA 신자유주의론인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집단은 삼성인데 노무현이 그들과 철떡처럼 놀아났으니 그도 신자유주의자, FTA는 신자유주의정책의 핵심인데 노무현이 한미FTA 추진했으므로 그도 신자유주의자.
둘 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뭐라고요. 조세감면, 복지축소.
노무현은 부자, 대기업 감세를 해준 적이 없고 복지는 재정대비 21%에서 28%로 끌어올렸습니다. 임기5년동안 복지비를 100조원이상 늘린 것입니다. 따라서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혐오론자인 것입니다.
그럼 레이건이 공급경제학을 신봉한 이유는 뭘까. 레이건 이전에 세계경제를 주름잡았던 경제학자가 바로 케인즈입니다. 이 사람은 총수요경제학의 거두였습니다. 수요측면과 공공부분의 역할을 강조했죠. 세련되게 말하자면 첫째-경제지표들의 총력관리, 둘째-재정(fiscal policy)과 통화(monetary policy)정책의 동원, 셋째-희망효과. 이 세 가지를 구사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케인즈는 먼저 통계를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데 GDP, 경제성장률, 물가성장률, 산업생산 등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관리하자라고 주장했죠. 이것이 발전한 것이 바로 거시경제학 입니다. 따라서 케인즈는 거시경제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케인즈는 재정과 통화정책을 구사하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복잡해지는데 그래서 제가 전에 여러 개의 글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때 뭐라고 했죠. 케인즈는 재정정책 우선, 통화주의자들은 통화정책 특히 금리정책 우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맞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inflation입니다.
통화주의자들은 무조건적 재정정책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재정정책을 해봤자 그것은 한시적인 것이고 그것이 만약 본질적인 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해내지 못한다 라면 역폭풍에 시달릴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럼 통화주의자들이 통화정책에는 무조건 호의적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통화량 확대는 심리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는 하지만 매번 성공하거나 영구적일 수 없습니다. 본원통화를 늘려 대출을 자극한다 해도, 신용화폐가 늘어나지 않을 수 있을 뿐더러 한번 늘어난 본원통화를 적기에 회수하지 못하면 역으로 인플레이션의 후폭풍만 얻어 쳐 맞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만 할뿐인 것이죠.
따라서 통화주의자들은 "재량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남발은 결국 그 정책에 대한 신뢰도저하, 예상치와 기대치 증가 등을 불러일으켜 성장률은 끌어올리지 못한 채 inflation만 높이게 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걸 재량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문제(time inconsistency problem)라고 합니다.
반대로 케인지안들은 통화팽창이 반드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죠. 이것은 통화정책의 효용을 긍정한 것도 부정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경제가 완전고용상태에 있는 경우와 불완전고용상태에 있는 경우를 분리해서 바라본 것입니다.
불완전고용상태 : 통화팽창->이자율인하->투자자극->고용증가->소득증가
완전고용상태 : 통화팽창->물가상승->임금상승->고용감소->소득감소
즉, 불완전고용상태에서만 통화정책의 효용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완전 고용상태에서의 통화정책이 실패하고 경제가 유동성함정으로 빠져 들어갈 때에는 재정정책을 함께 구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땅을 그냥 팠다 묻고 건물을 다 부순 뒤 1cm씩 옆으로 옮겨 다시 짓는 무의미한 작업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죠.
그러나 완전고용상태라면 통화팽창은 인플레이션으로만 이어진다고 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정정책 또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라고 했죠. 결론적으로 통화 재정정책의 가용성은 고용 소득상황과 밀접한 것이라 본 것입니다.
이 케인즈의 주창한 정책 효과가 주효한 것이 바로 대공황 시절이고 이후 이 효용은 그가 주도적으로 관여해 만들어낸 브레턴우즈체제(세계은행, IMF신설)가 종말나는 1970년경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으로 그랬을 뿐입니다.
대공황을 극복한 요인은 케인즈정책 때문이 아니라 바로 2차대전이었습니다. 다 때려 부수자 수요가 늘고, 그에 따른 기저효과 폭풍이 수십년간 이어진 것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전세계 주요국들은 갖가지 이유아래 무차별적 화폐증발경쟁을 벌였습니다.
경제규모가 커지자 이를 받친다는 명목 하에 과도한 화폐증발이 일어난 것입니다. 화폐증발과 인플레이션이 유발하는 제일효과가 무엇이냐. 바로 "부(富)의 이전"입니다. 양극화, 빈부격차를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자 국가간 국내간 빈부격차가 급증해 속이 썩어 들어가고 고용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요란을 떨어도 고용이 창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과잉유동성은 과잉유동성대로 속을 썩였습니다. 드디어 이 두 가지가 석유라는 발화점을 만나 두 차례 폭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1970년대 전세계 경제를 경악 속으로 몰아넣은 석유파동입니다.
석유파동은 스테그플레이션이란 악성기전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가를 잡으려들면 고용이 더 죽고, 고용을 잡으려면 물가가 대폭등하는데 이를 제어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고용을 잡기위해 물가를 폭등시켜도 고용은 별반 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해법은 분배. 조세복지 선진화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 길로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패권을 내려놓고 유럽을 추종하란 이야기였고 대내적으로는 부자들이 서민에게 부를 나누어주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이 조세복지 선진화로 가게 되면 저세금을 노린 국제유동성의 집중으로 인한 국제금융의 우월적 지위 또한 손상을 입을게 자명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작금의 위기가 지나친 수요진작책 남발과 공공부분의 비대화로 일어난 것이라 규정한 후 생산활동을 촉진시키는데 중점을 둔다는 명분하에 각종 민영화, 규제완화 그리고 조세감면 정책을 남발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급경제학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 노선인데 여기서 핵심은 바로 조세감면인 것입니다.
그럼 이게 케인즈의 실패일까요. 케인즈의 실패라기보다는 케인즈정책 중 취하고 싶은 효용만 취하고 그 부작용 경계는 거부한 위정자들의 실패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케인즈는 약을 줬을 뿐 그 약을 사탕처럼 물고 다니라고 한 적은 없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약의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온통 약 그 자체를 처방해준 의사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케인즈에게도 실패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앙은행 부분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일명 희망효과. 대공황과정 그리고 그 직후 전세계 주요국들은 앞다투어 중앙은행을 설립했습니다.
은행공황에 의한 금융위기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예금보험공사설립, 중앙은행설립 등 국가적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보 좌파 세력의 핵심정책이었습니다. 반대로 주요국 보수 우파들은 중앙은행 설립에 반대 했습니다. 화폐를 시장이 아닌 중앙은행이 가지면 결국엔 재량 정책의 남발로 인한 모럴헤저드 피해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공황에 아무것도 안하면 이상하다 라는 해괴한 주장에 밀려 결국 진보좌파진영의 논리대로 중앙은행들이 대거 설립되고 이후 각국정부는, 이 손에 틀어쥔 발권력으로 통화발행을 남발하게 됩니다.
이것의 부작용 누적이 석유파동, 스태그플레이션, 일본부동산버블붕괴(스테그디플레이션), 동아시아 외환위기, 서브프라임, PIGS사태 등으로 연달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상적으로 민영화에 반대할 것입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그럼 중앙은행도 당연히 민영화 반대가 옳은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발권력에 의한 시뇨리지라는 것은 민간은행이 가져야 맞는 것입니다. 대신 책임을 지고 망하게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럴해저드가 사라집니다.
반대로 그걸 정부가 뺏어가게 되면 정부는 세금징수, 국채발행 대신 미친듯이 통화만을 찍어냅니다. 그리고 시뇨리지를 뺏아간 대신에 은행을 무조건 보호해 줍니다. 시뇨리지를 뺏긴 은행은 대신 미친듯한 모럴해저드 운용을 합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공적자금을 투입받아 혈세로 손실을 보전합니다.
‘이익의 민영화, 손실의 사회화’, 대마불사, 연계불사, 복잡불사 등이 나오게 된 연유가 바로 중앙은행의 탄생이고 이것의 결정적 이론제공자가 바로 케인즈였던 것입니다.
전력,수도,가스 등에서도 공영화의 폐혜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민영화의 폐혜가 더 심각합니다. 반대로 화폐분야에서는 공영화의 폐혜가 민영화의 폐혜를 압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진국의 진보좌파 화폐금융론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앙은행의 국유화는 결정적 패착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EU가 유로화로 진행하고 있는 최종목표 귀착지점이 바로 각국 중앙은행 폐지 후 발권력 민간이양인 것입니다.
그럼 민간은행이 발권력을 쥐고 거대해지면 폐혜가 없을까요. 그래서 쪼개라는 것 입니다. 메가뱅크를 저지하라는 것이죠. 정부의 특혜를 없애고 규제를 강화하는 작업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민간의 선택도 중요합니다. 사회윤리적 선택으로 은행의 모럴헤저드를 예방해야 하니까요.
그래야 금융위기도래를 막을 수 있고 중앙은행 화폐발행 남발에 따른 빈부격차를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중앙은행 폐지의 핵심은 국유화냐 민영화냐로 따져보는 진보 보수의 구분이 아니라 바로 화폐증발 남발방어에 따른 "빈부격차 방어"로 따져보는 진보 보수의 구분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이러한 담론형성이 아예 부재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담론을 아는 보수우파들은 담론형성 자체를 막고 있고, 얼치기 좌파들은 그저 국유화=지고지선의 선이라는 공식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윗 내용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신자유주의자라는 경제학적 규정은 빈부격차를 막아내는데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어지는 것이지 단순히 어떤 정책의 시행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빈부격차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동산입니다. 그럼 부동산 급등을 막아야겠죠. 그럴려면 과표를 현실화하고 보유세를 강화해야 합니다. 노무현이 그렇게 했습니다. 따라서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두번째로 빈부격차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환율입니다. 환율이 폭등하면 수출기업이 달러로 수출해 벌어들이는 원화환산액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본원통화증가가 됩니다. 그럼 여기서 화폐비율의 증가만큼 부의 이전이 유발되게 됩니다. 연수출액이 800억달러에 달하는 삼성이 지난 2년반동안 이렇게 챙긴 금액이 100조원이 넘습니다.
반면 노무현은 환율을 930원으로 찍어 눌렀습니다. 왜 그랬을까. 환율폭등으로 인한 삼성 특혜를 막고 환율폭등으로 인한 1차빈부격차, 환율폭등이 물가폭등을 유발하며 만들어내는 2차빈부격차,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 몰락으로 유발되는 3차빈부격차를 저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것입니다.
당시 이것 때문에 시중에서는 이건희가 "진대제 홍석현"을 노무현에게 내줬는데 얻은 것은 저환율, 부동산증세뿐이었다며 이건희를 비웃었습니다. 이건희가 노무현에게 분노해 암이 재발하고 당뇨가 악화될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었습니다.
또한 홍석현은 주미대사에서 UN사무총장을 거쳐 대권을 노리려다 노무현이 발로 걷어차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죠. 노무현은 똑같이 고건,정운찬 등을 발라버렸습니다. 삼성과 놀아난게 아니라 불러서 옥상에서 같이 놀다 벌로 걷어차 아래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이렇듯 한국적 현실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혐오하는 정치인이 있다라면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지강화, 부동산 세제 증액 그리고 환율억제인 것입니다. 노무현은 이것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맥시멈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신자유주의자 혐오도는 100점만점에 100점인 것입니다. 그의 신자유주의자로서의 합격도는 100점만점에 0점입니다. 따라서 그를 신자유주의자로 몰아야 하는 심상정 노회찬이 걸고 넘어질 것은 삼성과의 유착설밖에는 없는데, 노무현은 같이 어울린 적은 있어도 준 것은 없으니 이것도 말이 안되는 트집이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이명박을 한번 보세요. 취임하자마자 부자 대기업감세 130조원, 대운하 등 건설공사 120조원을 퍼부었습니다. 무역규모 4천억달러 국가의 환율을 단기간에 500원이상 폭등시켰습니다. 여기서 2년반 동안 유발된 빈부격차만 500조원이 넘습니다. 그 돈이 서민 중소기업에서 부자 대기업으로 이동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부가 총 6조달러정도 되니까 임기 반 동안 10%의 부의 이전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무차별 민영화와 국가부채증가를 감행하고 있죠. 노무현은 민영화 거의 안했고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는 장기전략안까지 마련해 임기 끝나는 날까지 인위적 경기부양 없이 시행해 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 노무현은 어떤 면으로 봐도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이명박은 총수요경제학자들과 공급경제학자들의 이론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뽑아 쓰고 있죠. 이명박은 케인즈의 정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급경제학의 정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뭐만 한다. 닥치는 대로 부자 대기업 좋은 것만 뽑아 쓰고 있습니다. 통화 재정정책을 남발하고 있고 부자감세 복지축소 규제완화도 남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케인지언이나 통화주의자들은 모두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를 하고 있죠. 그런데 그 약 두가지를 다 가져다 쓰면서 부작용은 양쪽 모두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을려고 환장한 것이죠. 통계지표관리 대신 조작, 내일없는 통화 재정 정책남발, 언론매체 장악 후 땡전뉴스 종일상영. 이게 그의 정책 전부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명박은 신자유주의자도 아니고 케인지언도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을 무조건 쓰레기 취급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들이 그렇게 허접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분명 조세감면이 유발하는 본래의 효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세래퍼곡선(Laffer curve)에 따르자면 세율이 올라갈수록 조세수입이 증가하다 변곡점에 도달하면 역U자형으로 급강하하게 됩니다.
이 변곡점에서는 분명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간에 감세정책의 효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명박이 원하는 것은 everyday tax reduction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은 감세가 아니라 증세가 필요할 때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것도 절실하게 말입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민주당쪽 경제학자와 진보류類쪽 의원이 대화하는 장면이 TV토론에서 잡힌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이 어떤 경제정책을 하자라는 것이죠? -진보류의원" "케인즈식 정책을 쓰자라는 것이겠죠 -민주당의원" "이명박은 신자유주의자 아닌가? -진보류의원" "지금 급박하니까 다 가져다 쓰겠다 라는 것이겠죠-민주당의원"
이 대화에서 맞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맞는 단어가 바로 "다 가져다"라는 부분입니다. 그는 지금 전세계 위기의 근원인 통화증발, 빈부격차의 누적문제해소는 거부한 채 그것을 유발한 감세, 통화증발, 빈부격차강화정책만을 모조리 가져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케인즈고 신자유주의고 나발이고 말입니다.
반면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정책을 일부 받아들이되 진보적 정책의 극대화로 이 부작용을 막아내고,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자 라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자유주의자도 아니지만 노무현 지지진영의 저런 변호도 틀린 것입니다. WHY? 노무현은 신자유주의를 끝없이 혐오하고 저주하고 막아내려들뿐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부 받아들여 성장을 도모하고 진보분배정책으로 효용을 극대화하자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FTA. 그게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형입니까? 누가 그래요. 역사학과 나온 심상정이, 정치학과 나온 노회찬이, 그것도 아니면 미학과 나온 진중권이 그럽니까?
노무현은 FTA로 제조업 해외기지를 국내로 환류시키려고 했습니다. 반도체 등은 관세가 낮지 않나요 라고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관세는 상시가변 합니다. 따라서 FTA는 상시불변 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걸로 국내일자리창출 및 세수확보를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빈부격차를 약화시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이것은 신자유주의노선에 반하는 정책이 됩니다.
반대로 FTA가 누구 말대로 이런 효과없이 의료민영화, 서비스업 잠식 등으로만 연결된다 라면 FTA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준하는 정책이 됩니다.
이렇듯 FTA는 국내의 정치철학, 가치와 제도 등의 영향을 받는 하위정책일뿐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상징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치 금리가 진보 보수의 갈림잣대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이 차이를 전에 GDP와 GNP의 차이로 말씀 드린 적이 있었던 거 기억나시죠?
해외생산기지가 많은 나라는 FTA체결 후 생산기지 환류를 하면 손실보다 이익이 커집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일본, 한국 등입니다. 반면 생산기지 유치를 많이 한 나라는 FTA 체결 후 손실이 이익보다 커집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중국, 아이슬란드 등입니다. 전자는 GDP<GNP이고 후자는 GDP>GNP인 것입니다.
예전에 저의 외국인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미친 거 아닌가. 선진국은 고용률 70% 자영업 비율 10%로 100명중 63명꼴로 고용이 되어 있는 반면 한국은 고용률 55% 자영업 비율 30%로 기업에서 100명중 40명도 고용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전자,조선,자동차부터 섬유,완구에 이르기까지 해외로 미친듯이 생산기지가 나가있는 반면 국내 일자리창출은 물론 북한과의 경협도 도외시 하고 있다. 이게 미친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내수강화, 즉 조세복지선진화 작업을 가속화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라고는 "미친 나라 맞다. 대통령부터 미쳐 있다"라는 말뿐입니다. 대통령만 미쳐있는 게 아니라 진보류도 미쳐있습니다.
그들의 주(主)지지계층은 삼성 현대 등 재벌기업 정규직 입니다. 그래서 부동산상승, 환율상승 등 빈부격차 강화의 수혜를 입는 집단입니다. 그런데도 노무현이 양극화정책 한다고 난리를 칩니다. 마치 부동산투기정당 한나라당이 부동산상승 했다고 거품물며 화내는 것처럼 이상한 장면입니다.
상하위 10% 노동자간 임금격차가 4.74배로 전세계 1위이고 진보류의 지지계층은 당연히 상위 10%쪽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양극화를 노린 파업을 남발하면서도 하위 10%임금도 함께 올리라고 주장합니다. 일단 임금 상승을 잠깐만 멈추고 비정규직문제부터 해결하자라고 하면 그것은 거부합니다.
정규직마저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비정규직은 더욱 힘들다는 이른바 적하효과 (trickle down effects)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핵심매카니즘입니다. 그 반대는 중소기업의 독립경쟁력강화처럼 종속탈피를 수반하는 복지타케팅정책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자들이자 그 노선의 핵심정책인 양극화정책의 수혜계층이기도 한 것입니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자신들이 투쟁해 월급이 올랐으니 너희 비정규직들도 우리가 도와줄테니 투쟁 하라는 논리입니다. 그들의 월급이 오른 것은 투쟁의 댓가가 아닙니다. 바로 삼성 등의 농간입니다. 그들의 노동자 상대전략은 바로 양극화와 이로인한 분열전략입니다. 올려달라고 해서 무릎 꿇고 올려준 것이 아니라 선별 전략에 따라 올려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김대중 노무현도 잡아 죽이는 이명박이 그깟 진보류 하나 못조져서 임금과 고용을 안건드리겠습니까. 바로 양극화와 분열전략 때문인 것이죠. 이명박은 진보류의 조직만 건드리고 있지 임금은 안건드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직을 깨면 임금을 더 올려주겠다라고 꼬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다수가 백기투항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의 명분은 더욱 사라져 갑니다. 진보를 주창할 면목,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구호를 주창할 면목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약자로부터의 부의 이전과 그 약자를 위한다는 도덕적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은 진보류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김대중 노무현을 신자유주의 인간쓰레기로 몰아가는데 혈안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위선과 기만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지지율은 항상 제자리입니다. 딱 정규직노동자중 열혈계층만큼만 나옵니다.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고 있다란 반증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조만간 망하게될 것이란 암시입니다. 진보신당은 이익단체이지 정당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외연확장을 도모하려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부자 대기업정당임에도 40%의 기본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것을 지향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허나 한나라당의 기본지지율은 부자환상에 대한 추종심리보다도 경상도라는 지역기반에서 나오고 있는 측면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진보류의 외연확대는 오직 정규직확대의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 등의 전략은 딱 한줌만큼만 정규직의 길을 열어주겠다 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정규직화 되면 그것은 조세복지선진화이자, 자신들의 특혜박탈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보류 또한 마찬가지로 4.74배란 노동자간 빈부격차를 양보할 의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겉과 속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지속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좌우하고, 그들의 양극화를 만들어낸 것은 삼성,조선일보,이명박류이지 진보류의 투쟁의 성과물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단지 그들이 올려낸 성과물은 임금상승과 노동권 보장이 아니라 바로 일자리창출정지,양극화,부동산버블 등 일뿐입니다. 그들이 심어 놓은 혐오감과 반감 때문에 일어난 정권교체와 정치보복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로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더 김대중 노무현을 조질 수 밖에는 없는 길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외연확대는 커녕 비난과 혐오감 폭발을 감당해 낼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류에 불과한 것입니다. 속으로는 소유와 차별을 추종하면서도 겉으로만 존재와 공존을 외치는 위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그들이 하루빨리 소멸되어 없어져 주는 것만이 이 땅의 진보를 진정으로 돕는 길일 것입니다.
2부에서는 FTA가 왜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형이 아닌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심상정,진중권,노회찬,정태인이 안티노무현으로 돌아서게 된 데마고기,중상모략,인지부조화과정. 삼성,조선일보,한나라당이 양극화 정책으로 진보를 분열시키고 김대중 노무현정신을 말살하려고 드는 매카니즘 등에 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무현에 철저히 농락당한 삼성,조선일보,한나라당류가 부동산가격이 조세제도신설로 반발상승한 뒤 정점에 이르러 하락반전 하기 직전 세제폐지로 거품을 도모하고, 그 책임을 노무현에게 뒤집어씌운 과정, 내수복지강화를 저지하고 기업의 고용의무를 외면한 채 그로 인해 유발된 양극화책임을 역시 노무현에게 뒤집어씌운 과정, 그 과정에서 분열전략에 따라 수혜를 입은 진보류들이 되레 한나라당 등과 함께 김대중 노무현에게 칼을 겨눠 그 둘을 사망에 이르게한 과정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정치쓰레기적 이유의 근원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불법과 탈법으로 사유재산,자유경쟁,가격시스템을 훼손시키고 있는 삼성,조선일보류의 실체. 이로인해 일어나고 있는 독과점과 일자리창출 시스템붕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보류 들은 한나라당류가 무한경쟁을 유도하고 있고 노무현도 마찬가지라고 뒤집어씌웁니다.
그러나 한나라류가 원하는 것은 무한경쟁이 아니라 경쟁제로 입니다. 자신들은 경쟁하지 않고 독과점으로 불멸소득을 올리고 하위구조만 무한경쟁 시키는 것입니다. 일자리란 원래 경쟁과 성장을 해나가는 역동성에서 창출되는 것이지 기업의 존재로서 창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류들은 바로 이 무한경쟁에서의 열외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나라당류와 한 울타리 안에서 말입니다. 따라서 이 판떼기를 일시적으로라도 뒤집어엎지 않고서는 조세복지 발전을 해나갈 수 없습니다.
일자리 고정은 기업고정, 기업고정은 독과점, 독과점은 일자리 창출 마비, 일자리 창출 마비는 세수확충불가, 세수확충불가는 복지확충불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조세복지 선진화는 시장이 정상화되고 그 속에서의0 탈락자가 복지로 보호되는 가운데에서만 가능합니다. 북유럽의 분배는 성장 속에서, 안정은 경쟁확대 속에서, 조세복지선진화는 독과점과 철밥통 동시철폐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한나라류는 물론이고 진보류 또한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둘은 한통속이며, 한솥밥이며,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꼴통들임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독재와 독과점이 만연한 국가에서는 권위주의가 만연합니다. 지금 진보류도 권위주의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지킬 것이 많을수록, 탐욕과 위선에 쩔어 있을수록 사람은 누구나 독선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발전이 멈추고 철학이 실종하게 됩니다. 수구꼴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좌와 극우는 수구에서 만난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우꼴통보다 극좌꼴통을 상대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보수가면보다 진보가면을 벗겨내기가 더욱 힘들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신자유주의론에 대한 단상-2 슬픈한국 chltmdwhc**** 조회 209810.06.07 17:01 박노자의 엊그제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 입니다. 무지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짜증나는 것은 그 무지를 기반으로 김대중 노무현 세력에 아직도 끊임없이 국민을 오도할 목적의 독설을 퍼붓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세력은 양극화조장 신자유주의세력, 진보신당은 양극화해소 좌파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듯합니다. 틀린 이야기입니다. 제가 전 글에서 양극화세력으로 몰려면 부동산, 환율 그리고 복지정책을 보라고 했습니다. 김-노세력은 종부세신설, 저환율, GDP대비 복지비중 7%에서 28%증강 등의 정책을 힘겹게 밀어붙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양극화세력이 결코 아닙니다. 부동산상승, 통화증가발행, 고환율정책은 새로운 생산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동산을 나중에 매입하는 사람으로부터 먼저 매입한 사람이 부를 수탈해가고, 새로 유입된 화폐에 나중에 접근하는 사람으로부터 먼저 접근하는 사람이 부를 수탈해가고, 고환율로 손해를 보는 중소기업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대기업이 부를 수탈해 갈뿐입니다. 이걸 막지 않고서는 그 어떤 양극화 해소대책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은 이것을 알기에 종부세 신설, 통화증발 억제, 저환율정책, 복지증가, 세율인상 등을 다발적으로 밀어붙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양극화해소 작업의 시작이자 끝인 것입니다. 여기서 박노자씨가 두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그럼 김대중의 건설정책, 카드정책 그리고 노무현의 FTA는 어떻게 볼 것인가. 둘째-노무현시절 부동산이 상승하고, 노동유연화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서민이 고통 받은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김대중의 건설정책, 카드정책 비판에 대한 의문해소는 "청계천은 왜 실패했는가 2부"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전에 장하준씨와도 이 문제로 설전을 벌인 적이 있는데 박노자씨 같은 경우에는 설전이 필요없어 보입니다. 님이 이런 문제에 대해 쥐뿔이 아는 게 있을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FTA는 1부에서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그 문제는 3부에서 또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부동산상승과 노동유연화 비정규직 증가 등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죠. 부동산 상승은 일차적으로 가격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노무현은 분명 종부세로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그럼 가격이 바로 내려야 하느냐. 가격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세금부담을 가격으로 전가 하려는 반발상승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택가격 자체는 물론 전세비 인상, 월세비 인상 등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못가죠. 결국 세금부담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매도세가 일어나면서 주택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이에 기초한 전월세비용도 하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차"가 존재하게 되는데 내려야할 무렵에 정권교체가 일어나면서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결과 가격이 정점에서 붕뜨게 된 것입니다. 가만히 놔뒀으면 가격은 진작에 정상화되었겠죠. 그러나 이명박은 통화,재정,조세,규제정책을 총동원해 가격시스템을 인위적으로 훼손시켰습니다. 이것은 반시장 경제정책입니다. 즉, 미친 정책이란 소리입니다. 따라서 님은 이명박 노무현-부동산버블 조장세력 vs 진보류-부동산버블 억제세력 이렇게 뒤집어 씌우고 싶겠지만 실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명박 진보류-부동산버블 조장세력 vs 노무현-부동산버블 억제세력 또한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 진보류-시장경제,가격시스템 왜곡세력 vs 노무현-시장경제,가격시스템 정상화세력 두번째와 세번째가 왜 저렇게 되느냐. 노무현은 부동산가격이 지나치게 왜곡되는 가격 시스템을 조세제도로 정상화 시키려고 했습니다. 시장 경제는 가격시스템,자유경쟁,사유재산권보호를 잘해야 하는 전제가 지켜질 때 정상작동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안되고 있으니 부동산시장이 소수가 다수를 약탈하고,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무법천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박노자 당신이 그토록 주장하는 "분배"의 전제가 성립할수 없는 것입니다. 부동산시장에서의 재산가액 증가가 부당하고, 약탈이 밥먹듯 이루어 지고 있는데 복지 등을 통한 쥐꼬리 만큼의 사후분배 도모가 무슨 놈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박노자 당신은 정치적 목적으로 노무현의 부동산정책은 실패했고, 그는 부동산버블 조장세력에 불과하다라며 무차별 공격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종부세가 무력화되고 가격이 내려와야할 무렵에 내려오질 못했습니다. 대신 당신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고 김대중 노무현은 살해되었고 서민들은 초주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놈의 진보좌파입니까. 수구좌꼴에 불과한 것이지. 여기에서 일반인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수구 대 보수의 구도가 수구 대 진보의 구도로 바로 바뀔 수 없는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닙니다. 시장경제,자본주의,자유주의 세력도 아닙니다. 실패한 빨갱이 체제식으로 모든 것을 독식하는 부패세력 일뿐입니다. 시장과 자유를 가장한 꼴통들이란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무슨 합법적 진보가 나래를 펼 수 있습니까. 시장을 정상화시키고, 자유를 정상화 시키고, 가격을 정상화시키고, 사유재산보호를 정상화시키기 전에 죽어도 진보좌파의 본격적 비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진보좌파가 작금의 금융위기 세력의 원흉이라는 점입니다. 이게 오늘의 본론인데요. 제가 전 글에서 중앙은행의 국유화가 이번 위기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선진국의 건강한 보수우파들은 중앙은행을 국유화시키면 발권력을 손에 쥔 정부가 미친듯이 화폐를 찍어내 유동성이 범람하게 되고, 이것은 약소국에서 부국 서민에서 부자에게로의 부의 이전을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부동산버블 양극화 빈부격차 금융위기 등의 만연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진보좌파들에게 엄중경고 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보수우파는 양극화를 조장하고 무조건 진보좌파는 양극화를 해소한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서로 기여도 하고 훼방도 놓습니다. 서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역사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고 역사적 뻘짓을 하기도 합니다. 진보좌파의 가장 큰 역사적 뻘짓이 바로 화폐발권력의 국유화인 것입니다. 이것의 요체는 정부가 돈을 찍어 시장에 융단폭격을 퍼붓는 것입니다. 돈을 찍는다라는 것이 다른 말로 뭐죠? 바로 세금을 덜 걷는다는 것입니다. 세금대신, 채권을 찍어 부채로 자본을 조달하고, 채권을 찍는 대신 돈을 찍어대다 골로 가게된 것이 바로 작금의 금융위기 본질인 것입니다. 바로 조세징발 대신 화폐증발의 만연화 인 것이죠. 조세징발 대신 화폐증발의 만연화가 다른 말로 뭐죠? 조세후진화를 말합니다. 조세가 후진화가 되면 당연히 복지도 후진화됩니다. 이걸로 그치지 않습니다. 통화증발은 시장으로 새로운 화폐가 유입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위에서 새로운 화폐가 시장에 유입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먼저 접근한 순으로 부의 이전이 일어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끊임없는 부의 수탈과 이전이 반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증가와 노동유연화 증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재벌에게 특혜를 줬죠. 부동산버블, 고환율이 대표적 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것을 안해줬습니다. 그러니 풍선효과가 일어난 것이죠. 한 곳을 눌르면 다른 곳에서 튀어 오릅니다. 2곳을 억제하면 4곳에서 튀어오르고 4곳을 억제하면 8곳에서 튀어 오르게 되죠. 고용을 안하고 비정규직만을 뽑아댄 것은 바로 수구들의 역공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수구들이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임금 양극화죠. 상하위 임금격차를 확 벌려버린 것입니다. 많은 노동조직들이 마치 임금상승이 자신들의 투쟁결과라고 자화자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니 니들도 우리처럼 목숨걸고 투쟁해서 쟁취해라)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수구들이 일부러 조장한 것입니다. 그럼 무슨 효과를 기대한 것이냐. 덜 뽑고, 그 일부에만 고임금을 주면 진보좌파계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노동약자들은 수구보단 귀족노동자를 더 혐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고임금으로 부동산버블을 극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럼 그 밑의 계층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대출로 그 뒤를 따라붙습니다. 결국 다단계 부의 수탈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임금을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게 평등하게 주고, 최대한 고용을 하면 노동계의 대동단결 단합이 일어나게 되겠죠. 양극화, 빈부격차가 불가능해집니다. 대동단결해서 수구들을 향해 진격할 수도 있게 됩니다. 또한 부동산버블도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다단계로 착취할 수 있는 구조가 붕괴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가구당 상하위 10% 소득격차 17배, 노동자간 상하위 10% 소득격차 4.7배 등의 전세계 1위 불평등지수를 해소하는 일인 것입니다. 요새는 고임금자끼리의 결혼으로 가구당 소득양극화도 심하므로 획기적인 조세강화도 이루어져야 하고, 상위노동자들에 대한 획기적인 조세강화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진보좌파들이나 수구들은 절대 이것을 건들지 않습니다. 진보좌파들에게는 이것이 조직의 기반이고, 수구들에게는 노동분열, 부동산버블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부의 착취의 기본구조인 것입니다. 수구와 좌파의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합공의 경제학적 근원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 둘이 이것을 간파하고 여기에 손 대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말고 일단은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임금자들의 임금이 확 치솟아야 저임금자 임금이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앞서가며 같이 걸어가야 수구들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민주정치만 반발짝씩 앞서가면서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정치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 수구들을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노동좌파들은 무조건 김대중 노무현을 난도질하는데만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좌파들을 인정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김대중정부 시절에 카드대란이 있었습니다. 이때 무슨 이야기가 있었죠. "개나 소에게나 카드발급해준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버블을 굳이 일으키려거든 차라리 이렇게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기서 개나 소나 라는 것은 바로 서민을 말합니다. 증가된 화폐가 서민들에게도 간 것이죠. 반면 부동산대출은 정부주장대로 "일부에게만 대출해줬다"라는 이야기가 맞습니다. 이것은 재벌, 부유층,상위노동자,유산계승자 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양극화,빈부격차가 더 심해진 것이죠. 그들이 그 이외에 계층으로부터 부를 수탈해 갔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은 어쩔 수 없이 기업분식회계를 까기위해 일으킨 버블조차도 서민버블을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은 어찌되었건 이것의 후유증때문에 경기상승 유발정책을 접고 부동산버블도 종부세 조세정책, 규제정책(LTV DTI)정책을 동원해 짓눌러버렸습니다. 그리고 조세복지선진화 정책을 지향했습니다. 기초생활 보장제도부터 시작해 정부지출대비 복지비중을 제로수준 언저리부터 30%선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노무현은 내 계승자는 정부지출대비 30%가 아니라 GDP대비 30%선으로 복지비중을 늘려달라는 유지를 남겼습니다. 이를 위해 야권이 단결해 세율을 끌어 올리고, 이 세율제도가 후퇴하지 않으면서 지방균형발전에도 고착기여할수 있도록 대못을 박는 영리한 정책들을 야권대단결을 통한 국회장악으로 달성해달라는 유지도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이게 신자유주의론자입니까. 박노자같은 좌파들에게는 "경제학적 개념"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접근,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기반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접근이 없습니다. 무조건 좌파는 잘 났고 김대중 노무현은 인간쓰레기라는 인식만 머리속에 가득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진보로 규정하고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성장은 절대 없다라는 절박함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은 유감스럽게도 진보입니다. 그러면서 보수이기도 합니다. 사유재산권,시장경제,가격시스템,자유경쟁 체제를 정상화시켜야만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출발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복지분배 이전에 부당한 양극화 빈부격차를 막아내야 한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세복지선진화도 양립해 나갔습니다. 그런데도 사이비좌파들은 이것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그 두 분은 생전 좌파들에게 제발 거짓과 위선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자주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수우파적 고민도 함께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된 보수우파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된 진보좌파도 없습니다. 현재로선 김대중 노무현세력이 거의 유일한 보수이자 동시에 진보입니다. 따라서 거기서 잘 씨앗을 뿌리고 재배를 잘 해나가 제대로된 진보의 축으로 성장해 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노자류는 이런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려고만 드니, 그 태생적 설정오류로 인해 성장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생전 김대중 노무현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이 걸어온 인생의 궤적을 사랑했고, 그 궤적이 만들어낸 삶의 변화를 사랑했습니다. 그 삶의 변화는 길가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 조차도 희망의 열매를 맺히게 했고, 별과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조차도 빛나게 했습니다. 그들이 떠나고난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나 역시도 이 나라의 제대로된 기틀정립과 그 정통성을 기초로한 선진정치가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조세복지 선진화 구현으로 토목경제, 수출의존형 경제만을 향한 지향이 종식되기를 염원합니다. 바로 그렇기에 김대중 노무현을 계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치기 좌파류들은 그저 그들을 부정하는데만 여념이 없습니다. 박노자류들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거의 대다수 선진국들은 결국 무역의 힘으로 성장해 복지국가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네덜란드,벨기에,핀란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캐나다 등이 대공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 더해 전쟁 덕분이었는데 이것도 결국 전쟁물자 수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한국은 수출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를 계속 더 쌓아나가야 합니다. 물론 내수지향도 더욱 밀어붙여야 합니다. 비중이 턱없이 작습니다. 그러려면 조세선진화해야 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결국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 당신들 힘만으로 절대 수구들 눌러 가면서 그러한 민주주의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거 잘 아는 당신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 죽어야 이땅에 진보좌파의 세상이 열린다라는 논리로 만약 계속 들이댄다라면 정치적으로 소멸시킬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미 그런 식으로 국민들의 의사 또한 정리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 오로지 청정하고 내 길 만이 오로지 유일의 올곧은 길이다. 허니 너희 무식한 김대중 노무현 추종자들은 어서 좌파의 다리밑으로 들어와 무름꿇고 경배하라" 이런 말을 하는 박노자 당신 진보류의 입과 몸에서는 이미 수구들과 개독들을 능가하는 시궁창 하수도 악취가 나고 있습니다. 몸에서는 죽을 때까지 씻어도 씻기지 않을 김대중 노무현의 피비린내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고 거기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역겨운 악취 또한 진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좌파는 분명 옳고 지고지선한데 왜 무식한 국민들은 수구들 아니면 김대중,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일까" 그 악취와 피비린내를 깨끗이 씻어내기 전에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미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수구파쇼"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좌파는 소수가 아니라 "소수도 옹호할 줄 아는 세력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아직 소수가 아니라 까불다가 소수된 찌끄러기들 일뿐입니다. 진보는 멀리 앞서가며 빨리 따라오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리더라도 다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너무 멀리 앞서나가 있고 그 길 조차도 옳은 길이 아닙니다. 위선과 거짓, 혐오와 저주로 범벅이 되어 있고 감동과 눈물은 쥐꼬리 만큼도 없습니다. 그런 당신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한나라당에 입당원서 내라"라고 말입니다. 당신들 수준에 딱 맞는 무리들이 좋아하는 색깔은 당신들이 입고있는 빨간색 옷이 아니라 바로 파란색 옷일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대다수는 결국 일시적으론 실패 합니다. 그럼에도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이 전진해 나가야 하는 결론이 도출되는 이유는 결국 민주주의만이 대다수를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다수 진보적 성과는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가 조금씩 전진할 때마다 나오고 있고, 진보적 실패는 후퇴할 때마다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이 순간에도 김대중 노무현 부관참시에 여념이 없는 바로 박노자류 당신들입니다. 그렇기에 당신들이 사라져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고,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결국 조세복지선진화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이상 노동자와 서민 등에 빈대붙어 그들을 위하는 척 역겨운 위선질을 떨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글에서 김대중 노무현 언급도 빼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당신들 얼치기좌파, 가짜좌파들이 아닌 국민들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진보류들의 잔여 수명기간 동안 어디 죽도록 김대중 노무현을 씹어대 보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는 것은 결국 끝까지 외면 받다 지쳐 소멸되는 길 뿐일 것입니다. 당신들은 역사에 김대중 노무현을 죽이는데 기여해 민주주의와 진보를 후퇴시키고 욕보인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때 그 둘을 씹어 뭉개는 일로 영웅취급 받던 좌파 쓰레기들이 요새는 일감이 없어 좀이 쑤셔 죽을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럼 죽으세요. 부관참시 알바라도 간간히 하고 싶겠지만 이제 조만간 그 시장조차도 문이 닫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정희에 대한 단상 2부 슬픈한국 chltmdwhc**** 번호 984409 | 10.05.10 16:50
전글 노무현 신자유주의론에 대한 단상에서 노무현이 신자유주의자가 아님을 설명했다.
예상대로 격한 반발이 들어왔지만 역시나 제대로 된 반론은 하나도 없었다. 글을 쓸 때부터 우려했던 바 그대로였다. 진보류類들의 실체가 원래 그토록 허접스럽고 가증스럽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기가 싫다. 받아줄 사람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화가 나서 뭐라 하자니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역주의 정당으로서 한몸일뿐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호남지부이자 호남자유선진당일뿐이다. 한나라당과 진보류. 기득권으로서 한몸일뿐이다.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s) 이것이 한나라당에서는 부자 대기업 먼저 먹고 서민 중소기업 나중에 먹는 것으로 포장되고 진보류 에서는 정규직 먼저 먹고 비정규직 나중에 먹는 것으로 포장될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자 대기업이 서민 중소기업 등골을 우려 내는 일들만 벌어진다. 정규직이 파업 한번 하고나면 비정규직 사업장은 쑥밭이 된다. 아마 정규직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을 것이다. 그러나 니들도 파업해서 정규직되면 되잖아란 주장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규직경쟁이 부자경쟁보다 조금 덜 치열할뿐 속성이 같다라는 것을 이제 국민들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 둘은 부동산버블에서도 만나고 고환율에서도 만난다. 한나라당이 부동산버블을 만들어놓으면
진보류들이 올라 타고, 한나라당이 고환율을 질러 놓으면 진보류들의 월급과 보너스가 올라간다.
서민 자영업자들이 철저히 배제된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도 싫고
민주당도 싫고 진보류들도 싫다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왜 재임 시절 한나라당과 진보류로부터 협공을 받았는가. 한나라당은 노무현이 집값 올려 놓았다고 거품을 물었다. 그러나 집값은 한나라당이 올려놓은 것이고 수혜 또한 한나라당이 입었다. 내려가는 것을 저지한 것 또한 그들이다.
진보류들은 노무현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거품을 물었다. 그러나 양극화는 한나라당이 유발한 것이고 진보류들은 그 수혜를 누렸을 뿐이다. 진보류가 투쟁해서 얻어낸 성과물이 아니다. 진보류가
투쟁하자 한나라당이 차라리 양극화를 심화시켜 노동자간의 분열을 촉발시키는 쪽으로 치달아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진보류들은 상하위10% 근로자 임금격차 4.74배로 전세계1위로 양극화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눈길이 냉랭해지자 희생의 제물로 노무현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걸핏하면
노무현이 삼성,현대차 등의 개노릇을 했다라고 주장하지만, 개란 주인이 던져주는 뼈다귀를 받아먹는 부류를 일컫는 것이고 그들로부터 매달 뼈다귀를 받아먹는 개는 따로 있지 결코 노무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노무현을 잡아 죽이지 않고선 실업자,비정규직이 넘쳐나는 가운데 걸핏하면 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업을 남발해 결국엔 자신들의 복리후생만 도모하려 드는 파렴치함을 감출 수 없기에 노무현을 죽도록 물고늘어진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이 죽었다. 그리고 그의 서거 1주기가 이제 13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 기념 콘서트에 놀랍게도 이정희가 노란 옷을 입고 참석해 노래를 불렀다. 이정희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노무현과 가까워지려 드는 것인가. 혹시 다음 선거에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노무현 지지자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전초 작업을 해놓으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예전에, 이해찬이 이정희의 자서전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의 추천사에서 이정희에게서 노무현이 느껴진다란 극찬을 한 바 있다. 의정활동을 성실하고 전문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요, 국민들을 가슴과 영혼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해찬은 결코 칭찬을 남발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그에게서 이런 칭찬을 들었던 사람은
채 다섯명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그간 지켜봐온 사람 중 일을 잘하는 사람에겐 진정성이
부족하고, 진정성이 있는 사람에겐 거꾸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뛰어넘으려 드는 재목이 거의 없다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예컨데 민주당이나 진보류에게 자신들에게는 손해가 되지만 국가 국민적으로는 이익이 되는 담론이 놓여져 있다라고 치자. 그걸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인이 작금에 얼마나 될까. 내가볼 때 김대중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 정도다. 그런데 이해찬 눈에 이정희가 그런 재목으로 보였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이정희가 진보류에 오래 몸 담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지점이 된다. 진보류는
기본적으로 특정 계급의 이익수호 도모를 기반으로 그것 중심의 도모로 초래되는 위선과 가면을
가리개 해줄 수 있는 거대 담론을 함께 읖조리는 단체이지, 그러한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질타하거나 이익 수호에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모난 행태를 용납해주는 부류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후 이정희가 성장해 나가기 위해선 결국 진보류의 그릇이 커지거나 본인이 그 곳을 벗어나는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진보류가 커질 수 있을까. 정답은 커질 수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회적 담론은
바로 "빈부격차"다. 그 빈부격차를 잡으려면 일단 빈부격차를 멈춰야 한다. 빈부격차를 멈추려면 부동산버블, 고환율, 상하위 임금격차를 무조건 꺼뜨려야 한다. 과연 그걸 진보류들이 원할까. 정답은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연계불사의 덫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지금 수도권 APT 30평짜리 적정가격이 5억4천만원이 아니라 6600만원이고,
적정환율이 1100원이 아니라 850원이고,
상하위10% 임금격차가 4.7배가 아니라 3배여야 한다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까. 이런 것부터 용납하지 않고서는 그 다음의 무상급식, 의료민영화 반대, 사대강개발 중단같은 이슈는 먹힐 여지가
없다.
그러한 빈부격차를 유발하는 부의 이전과정을 완전히 중단시키지 않고서는 빈부격차개선 어젠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우리나라의 일자리는 선진국에 비해 1/3이나 부족한데 임금격차는 1/3을 줄이면 실업 비정규직문제를 거의 해소할 수 있는 수준에 달하고 있다. 정확히 역배수만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보류들이 임금격차부터 줄인 뒤에 총량증가로 나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간 분열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 진보연구소에서 정규직들이 먼저 APT 가격이 6600만원으로 떨어져도 감당하자, 강남APT 1억대에 공급이 가능하다, 임금격차 너무 과하니 1/3정도 해소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주장한다라면 진보류는 무한확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한나라당보고 경상도를 버리고, 민주당보고 전라도를 버리고, 자유선진당보고 충청도를 버리라는 이야기나 매한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틀림없이 이렇게 나올 것이다.
"부동산이 올라도 곤란하지만 급락하면 더 곤란하다"
"고환율이 우려스럽지만 안달하며 저지하고픈 생각은 없다"
"정규직임금이 떨어지면 비정규직은 더 떨어진다. 부러워말고 부지런히 따라올 생각을 해라. 우리가 피 터지게 투쟁해 월급을 조금이라도 올려야 너희들에게 떡고물이라도 떨어진다."
이것을 관통하는 논리가 바로 적하효과이고, 그 적하효과가 바로 신자유주의 이론의 핵심인 것이다. 대기업이 잘돼야 중소기업이 잘되고, 부자가 잘되야 서민이 잘되고, 정규직이 잘되야 비정규직도 잘된다. 그러나 잘되기는 커녕 대기업,부자,정규직은 오로지 중소기업,서민,비정규직의 피와 살을 뜯어 제배불리기에만 여념이 없다.
적하효과는 커녕, 1/n효과인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1/n씩 등쳐서 배불리기, 거꾸로 국민들에게 1/n씩 주는 것은 각각에게 돌아가는 파이가 너무 작아 무의미하다란 주장.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1/n씩 거두어올리는 펌프질은 일어나도,
1/n씩 나누어주는 폭포질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물이 넘쳐 흘러내리기 전에 부지런히 큰 그릇으로 교체하려 들기 때문이다. 불을 때면 아랫목 따뜻해 진뒤 윗목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윗목으로 가는 밸브를 막아놓고 아랫목으로만 난방을 보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차가운 윗목에서 여성근로자,비정규직,실업자,농민,장애인들이 방치된 채 죽어가고 있다.
이정희는 이제 서서히 그 부끄럽고 냉혹한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반한나라 연대를 거부하는 이유,
진보류가 무분별한 단일화에 응할 수 없다라는 이유의 기저에 바로 죽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기득권이 도사리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대중정당으로, 한줌 정규직들을 중심으로 노동자,서민,농민,자영업자들을 포괄하는 계층정당으로. 그것을 이루려면 결국 먼저 전라도를 내려놓고 정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진정성으로 함께 법과 제도를 평등하게 뜯어고치는 전문성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어도 못하겠다라는 것이 바로 진보류의 실체다.
why? 밥그릇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걸 느껴가는 이정희의 얼굴이 점점 노래지고 그녀의 옷도 점점 노래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비로소 노무현의 고충을 헤아리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이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좌파, 진보류로부터는 우파소리를 들었던 코미디의 근원을 드디어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다. 빈부 격차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이 땅의 민중들이 왜 부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한나라당을 거부하고, 정규직을 만들어 주겠다는 진보류를 거부하고 있는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도 없고, 정규직에서 탈락한 대다수 국민들을 껴안아 보듬어 주고 싶은 가슴과 영혼의 울림이 공명하고 있고, 지금 이정희는 그러한 공명대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정희는 진보류에 깃발을 꼿아 놓고 국민들을 부르는 것이 아닌 국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하는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해찬은 바로 그러한 이정희 모습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위기의 원인은 빈부격차증가,부채증가,이익의 민영화 손실의 사회화,대마불사,연계불사,복잡불사 등의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1/n씩 뽑아올려 쳐먹는 놈 따로 있고, 1/n씩 똥을 치우는 놈 따로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속에서 한나라와 진보류는 한 몸이자 한 운명인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이기도 하고 적군과 간첩의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진보의 가면을 쓰고,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썼다라는 점에서는 한나라류와 똑같지만 별로 크지도 않은 먹을거리로 기득권을 내려 놓지 못하다라는 점에서 그들보다 더욱 가증스럽다. 주체가 아니면서, 주변부만 긁적이면서 대의를 남발하고 치열함을 강변하는 대목에서는 슬픈 감정마저 복받쳐 오름을 절감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제대로 쳐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또하나의 걸림돌이 바로 지역주의 구도정치다. 한진그룹(한나라-진보류),한선민그룹(한나라-자유선진-민주류) 이 두 그룹이 복잡하게 국민앞에 얽혀 국민들의 민생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고 이것들을 모조리 쳐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절차적 경제적 민주주의의 구현 과정이고, 이땅에 제대로된 진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유일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노무현이 꿈꾼 진보의 미래이기도 하다.
지난 노무현 임기5년은 수구대 개혁의 구도도 아니었고, 보수대 진보의 구도도 아니었다. 오로지
진짜와 가짜의 대결이었고 국민과 귀족의 대결이었고 진실과 위선의 대결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5년이 걸리던 50년이 걸리던 이 땅위에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하는 척 하는 바로 이 위선의 가면을 벗겨 버려야만 한다.
위선의 탈을 벗겨야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위선의 탈을 벗기지 않는다라면, 자기감정을 감추고 백번을 단합해본다한들 결코 단합은 도모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을 위한 정치, 희망의 서광조차 비춰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을 노래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
정신의 계승만이 진실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정희,유시민,이해찬이란 재목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정신. 우리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이것들을 힘합쳐 굴려 눈덩이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라면 분명 정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 의한 정치없이 결코 국민을 위한 정치는 도래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길은 정책,
가치,노선이 아니라 바로 주권을 되찾는 일이고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고 사실과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혜안을 키우는 것이다.
그 주권 양심 시야 혜안으로 정당을 초월해 제대로된 정치인들을 선별해내고 다시 국민들이 그들을 뭉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의 정치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김대중-노무현 정신의 계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유산 3부 [31] 슬픈한국 chltmdwhc****
김대중 노무현의 계승
- 5월의 사랑이 깊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전라도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집안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금기 중의 하나가 바로 전라도였던 것이다.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남에 대한 거부감 또한 상당했다. 충북은 몰라도 충남쪽은 전라도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라도 뿐만 아니라 금기가 두개 더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데모였다.
데모하지 마라. 그것은 곧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것이고 빨갱이란 증좌다. 나 같은 경우에는 데모를 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집안에 검찰 경찰부터 군인에 이르기까지 사정기관 근무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렸을적 가끔가다 집안어른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거의 국가안보회의 비슷한 분위기가 되기 일쑤였고 그 자리에서 난 "너 커서 데모하면 호적에서 지워 버린 뒤에 총으로 쏴 죽여버릴 것이다"란 우스갯 소리라 할 수 없는 반 협박성 농담 또한 자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프레임처럼 어릴적 내 머리 속을 지배했다.
일년에 열차례 가까이 지내는 제사도 내게는 부담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6.25전쟁 도중 죽은 친척들의 제사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금기는 바로 여자였다. 지금이야 여자가 사람 취급 받고 살지만 옛날엔 어디 그랬는가.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겸상을 하지 않는 집안도 많았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일종의 권한에 속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처벌도 받지 않았다. 처벌은 커녕 경찰이 출동 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이 아내를 매로 다스리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집안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 인정하려 드는
잘못된 관습 때문 이었다. 그게 사그라들기 시작한 게 불과 십몇년도 되지 않는다.
이 전라도,데모,여성에 대한 금기에 대한 도전이 한국에서는 바로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진보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광주정신"이 있고 광주정신의 중심에 바로
김대중이 있다.
김대중은 무려 50년의 세월을 이것과 싸우는데 보내야만 했다. "전라도 사람도 인간이다." "국가의 주인은 정권이 아니라 국민이다." "여자도 인간이다." 좀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저런 당연한 명제
입증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워야 했고 결국 목숨을 잃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결국 그는 전라도사람으로서 최초로 정권을 잡았고, 정당한 의견개진과 집회에 관한 국민적 권리를 확립했고, 여성의 권리향상을 위해 여성가족부 설립 가족폭력방지법 등 획기적 법 제정을 이룩해 나갔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히 수구들에게 지대한 거부감을 나았다. 전라도,민주주의 그리고 여성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과 경멸감을 억누를 길이 애시당초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표출할 수도 없다.
이제 그들도 전라도 사위와 며느리를 많이 보고있고 자식들의 연애와 결혼을 막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며, 자신들도 촛불을 들고 집회를 하며, 딸이나 손주딸을 아들처럼 아끼며 살아가고 있기때문이다. 또한 그런 분노를 대놓고 표출하려 들다간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허나, 이런 상황도래가 혐오감과 경멸감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것이 잠재되어 있다 어디로 분출되고 있는가. 바로 북한인 것이다. 그들은 피를 토하면서 북한인권을 외치고,
이런 북한인권을 억압하는 김정일에게 퍼주기를 한 김대중 노무현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방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북한에 대한 혐오감에서만 기인하는 것인까. 결코 아닌 것이다. 그들의 머리속엔 여전히 전라도,자유로운 말과 집회 그리고 여성에 대한 본능적 본질적 혐오감이 지대하게 남아있다라고
봐야하는 것이다.
김대중은 이것을 깨기 위해 늘 고민했다. 김대중 뿐만 아니라 광주도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노무현의 선택이다. 충청,대구,경북을 껴안고 다시 부산을 껴안았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호남과 영남의 만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바로 호남, 참여 민주주의, 여성에 관한 비토와 배제론을 깨나가기 위한 고심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기치 못한 두개의 반反 기류를 나았다. 하나는 호남 지역주의자들의 반발이었고 다른 하나는 짝퉁 진보주의자들의 반발이었다.
성역은 부패를 낳기 마련이고, 권리 향상은 방종을 낳기 마련이다. 광주정신이 민주화의 성지로 부상되는 동안 그 뒤에 숨어 편하게 권력을 호가호위 하던 지역토호들이 김대중의 이런 고심어린 선택을 경상도의 패권주의로 폄하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전라도는 절대 안된다"란 지상명제와 싸워오던 인간들에게서 "경상도는 절대 안된다"란 잘못된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왜? 그래야만 광주정신의 그늘아래 편하게 누려오던 기득권력이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에선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성장모멘텀을 도모해오던 진보류의 저항이 일어났다.
김대중 노무현을 비토하고 배제하지 않고서는 성장의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진보의 원류로 인정하고서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간 둘을 싸잡아 신자유주의자, 진보를 말아먹은 원흉으로 비난하는데 혈안을 부려왔다. 이것은 수구들의 빨갱이프레임만큼이나 악랄한 것이었다.
결국 김대중,노무현은 전라도,참여민주주의,여성에 관한 혐오와 경멸을 완전히 깨기 전에 경상도
패권주의, 짝퉁 진보주의 프레임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허우적거려야만 했고 그 결과는 연 이은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
전통수구,호남지역토호,가면진보들의 3중주 5박자 합창에 결국 초토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은 역린을 불러왔다. 그간 김대중 노무현 혹은 그 양자 간을 비토하고 이간하여 왔던 것이
시대적 양심과 지성으로 들여다 볼 때 과연 정당했는가 하는 자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반성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구도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현재의 구도를 수구들은 반노 대 친노로 몰고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의 구도는 반노 대 친노가 아니다.
전라도, 참여 민주주의, 여성에 대한 사랑과 그것들에 대한 혐오감의 구도인 것이다. 수구들은 전라도를 혐오하고 정당한 의견 개진과 집회 등 국민의 정치참여를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 그리고 이걸 천안함 등 대북문제쪽으로 해방구를 몰아 분출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주류 구도를 마뜩치 않게 여기고 있는 호남토호들과 짝퉁진보들이 경상도패권주의, 진보기득권에 대한 성토를 내세워 마지막 시비질을 하고 있다.
지금의 구도는 바로 이러한 김대중 노무현의 계승발전과 김대중 노무현의 반성청산의 구도인 것이다. 국민들은 과연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전자를 포기한다라면 동서간의 통합을 포기해야 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하고 여성을 버려야 한다. 남북간의 통합을 포기해야 하고, 이땅의 민주 평화 개혁세력의 태동과 규합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이미 전자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잠시 중단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이어나가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반노 대 친노의 구도도 아니지만 한나라 대 반한나라의 구도라 부르는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바로 김대중 노무현의 계승 발전 대 독재로의 회귀 구도인 것이다. 지금 수구들은 빨갱이 프레임을 재개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 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전라도,민주주의,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생각만큼 거대하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계승발전세력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상도패권 혐오론자, 짝퉁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공격도 그들의 역량강화를 실추시키고 있다. 선제적 내부비판은 외부비판을 방어하는 최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 놓고 전라도,민주주의,여성혐오를 선동할 수도 없다. 더욱이 차기 수구진영의 후보는
여성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결국 대북혐오감의 극대화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전라도, 촛불, 여성, 여기에 빨갱이, 신자유주의자란 시비. 수구들과
지역토호 그리고 짝퉁 진보주의자들이 이렇듯 김대중 노무현을 시비할수록 역설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신은 더욱 공고해져만 가고 있다.
그럴수록 그들이 그간 쌓아오고 걸어온 길들이 옳았다는 것이 선명하게 입증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뼈에 살이 붙는 것이지, 살에 뼈가 붙는 것이 아니다. 위선과 가면을 벗어내는 것이 먼저지 진보와 보수를 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정신을 훼손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점이 바로 거기고 지역 토호들과 짝퉁 진보주의자들이 설 자리가 없는 지점도 바로 거기다. 수구들이 김대중 노무현정신을 진정으로 훼손하고 싶다라면 먼저 자신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만 한다.
전라도를 혐오하고,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북한을 혐오하고, 지역주의 청산을 혐오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란 거대한 물줄기를 시기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 내야만 한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정치적으로 곤란해진다. 바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할 수 없이 죽어라 북한을 활용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죽도록 김대중 노무현 사이를 이간하고 폄하할 수 밖에는 없는것이다.
원래 경상도는 전라도를 좋아하고 전라도는 경상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수십년에 걸친 지역주의와 사회현실구도가 이것을 훼방하여 왔다.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잡혀나가고 있고 잡혀나가게 될 것이다. 북한을 혐오하고 있는 부류들이 있지만 그리고 나도 시대적 아픔을 겪은 피해자중 한사람이지만 남북화해는 동서화해처럼 결국엔 피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남녀평등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김대중 노무현정신의 비토와 이간도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자死者가 된 그 둘은 죽어서 굳건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옳은 길만을 선택하여 왔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균형발전, 남북통일, 남녀평등, 사람사는 세상 구현, 조세복지 선진화는 결국 가야하는 길이다. 결국 전라도는 노무현을 사랑하고 경상도는 김대중은 사랑하게 되어 있으며,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있고 남녀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
수구들은 사람사는 세상의 이 기본적 이치를 역행하려고 들기 때문에 죽어도 좋은 정치를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다라면, 사람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위선과 가면의 탈을 벗고 서로 사랑할 수 없다라면 좋은 정치는 시작조차 될 수 없다. 합리의 구현도 불가능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화해와 포용도 불가능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신의 계승 발전은 바로 이것의 끊임없는 인식과 확인인 것이다.
어느 순간 집안에 바글거리던 사정기관 공무원들은 모두 사라졌다. 정보기관에 재직하던 한 어른은 독재정부에 환멸이 든다며 79년 박정희가 사망하기 몇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두 자식은 아버지를 이어받아 법대를 나와 변호사 자격증을 땄지만 공직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자식 대에서는 죽어도 정부부처나 판검사쪽으로 재직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였다. 죽어도 전라도 며느리를 반대하던 한 어른은 아들이 집을 나가 자식을 얻어 다시 돌아온 후에 결국 그 결혼을 인정하고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았다.
그러나 언로와 집회의 자유는 다시 예전처럼 막혀 들어가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혐오감은 다시 강화되고 있다. 천문학적 비자금을 만들지는 않고 있지만 재벌 부동산유지들에 대한 천문학적 퍼주기와 특혜남발은 예전보다 더욱 강화되고 있다. 심지어 죄없는 민간인을 군부대를 투입해 총으로 쏴죽였던 전두환도 이처럼 대놓고 무식하게 환율 조작, 물가 폭등, 부동산 투기질, 복지정책 감소, 조세정책 후퇴를 벌이진 못했었다.
사람들은 전두환이 사람을 죽인일만 기억할뿐 부동산 보유세인상을 강행하려다 수구들의 반발로 결국 장관까지 잘라야만 했던 일은 기억못할 것이다. 결국 지금 민주주의, 남북평화, 서민민생수준은 80년대도 아닌 6~70년대 수준으로까지 후퇴한 것이다.
무려 4~50년의 후퇴. 그리고 수백조의 환율조작, 수천조의 부동산거품, 그리고 수백조의 국가재정과 지방재정부채의 급증과 서민 중소기업에서 부자 대기업으로의 부의 이전. 그리고 이로인한 민생파탄. 그것을 원상회복할 수 있는 보루와 희망마저 송두리째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수구들은 전라도, 민주주의, 여성,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고 세종 신도시 북한과의 경협 등을 파탄내며 동서간 남북간 균형발전을 무너뜨리는데 혈안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천안함을 활용해 대북혐오감을 극대화하는데 안간힘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사태의 본질은 노무현의 국방증강계획, 특히 해공군 현대화계획을 이명박이 무려 22조원이나 삭감하고 4대강공사로 돌린데서 비롯된 인재형 참사이다. 엊그제뉴스를 보니 이명박이 이걸 다시 재검토할 수 있다란 뉘앙스를 풍긴 모양이다. 그럼 셋중 하나여야 한다. 그게 거짓말이든지,아니면 사대강 공사를 중단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국가부채가 완전히 파탄나든지.
이런 한심한 정부의 독재회귀와 경제파탄을 두고 광주정신을 기념하는 날과 노무현 서거 일주기를 기념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날 무엇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할까. 나는 그 대답과 선택이 이미 국민적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라고 본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정신은 확고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5월을 맞아 광주 정신과 김대중 노무현정신을 다시금 경건한 마음으로 되돌아 본다. 그 마음이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아름답고 눈부신 사랑으로 확인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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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에 대한 단상
유시민에 대한 단상 1 [9]
슬픈한국
chltmdwhc****
번호 976040 | 10.05.03 14:39
조회 1043
나는 유시민을 잘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이라면 우연한 경로를 통해 만나본 적도 있고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본 경험도 있으며 그들에 관해 쓰여진 혹은 그들이 직접 쓴 책을 몇권 읽어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유시민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 다만 개혁당 시절에 간접적이고 덜 적극적인 방법. 주로 글로서 꽤 진지하게 참여해본 적은 있는데 그것은 유시민이 좋아서라기였다보다는 노무현 때문에 일어났던 발로였다고 보는것이 정확할것이다.
누구는 서울대 재학시절 그가 써내려갔던 항소 이유서와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돌진하는 심정으로라는 감동적인 운 때문에 사람들이 분연히 일어나 순식간에 수만 명의 진성당원을 만들어 냈던 개혁당 열풍이 가능했다 라고 주장 하기도 하지만.
유시민은 개혁당 열풍의 주체였다라기보다는 그 수혜의 주체였다 라고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외형적으로 개혁당은 실패하고 유시민만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흔이 지금 가장 크게 유시민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내가 유시민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주위에 늘 김대중 죽이기,노무현 씹어 돌리기와 마찬가지의 근거 없고 논리없는 데마고기의 허위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약삭 빠르고,약속을 잘 지키지 않으며,노무현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꽤하려 드는 경상도 패권주의자에 불과하다라는 일명 유시민 한계론.
과연 유시민이 약삭 빠를까. 천만의 말이다. 만약 유시민이 그런 인간이었다라면 진작에 그는 서울시장선거에 출마를 선언했을것이다.
서울시장 자리는 이명박 오세훈등의 예에서 보듯 대권으로 가는 가도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에 경기지사 자리는 이인제 손학규등 전임자들이 하나같이 주류에 밀려 분열적 선택을 하다가 정치적 자살로 치달아간 악몽같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울을 기꺼이 한명숙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고분고분하게 경기도로 자리를 옮겨갔다.
이런 유시민의 행동들에 대해 예전에 딴지일보의 김어준이"자신을 객관화하여 스스로를 역사 속에서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놀랍도록 자연스러워 그에 따른 전략 전술을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따져 내는 것이 거의 비인간적인 수준에 도달한 당대의 돌쇠다."라고 평가한적이 있다.
그 말마따나 유시민의 이런 행동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이해찬에게 후보자리를 기꺼이 양보한 전례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한명숙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기꺼이 양보했다. 결론적으로 유시민의 이러한 일관된 흐름적 선택은 개인적 이기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전체의 판을 내다본 전략적 결과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시민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라는 부분에서는 절망감마저 느낀다. 유시민이 개혁당을 닫고,열린우리당을 닫은 행위를 배신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유시민에 대한 과대평가라기 보다는 한국정치에 대한 과대평가일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는 틀리다. 미국의 경우 기업 등이 공화 민주당 어느 한쪽 으로만 일방적으로 쏠려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거의 대부분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한나라당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은 혈연 학연 지연의 네트워크로 거미망처럼 엉켜 그들만의 기득권층을 단단하게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구조적 프레임을 뒤집고 깨뜨려 버릴수 있는 허점을 제대로 보고 진정으로 공격해 들어갈수 있는 역량과 자질의 입증이 아닌 오직 한나라당을 단번에 쓸어 없애 버리거나 적어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우뚝설수 있는 결과물로서만 유시민의 약속을 평가하겠다라는것은 애시당초 유시민에 대한 기대가 아닌 모략이자 음해의 심리만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방증일뿐일것이다.
더욱이 이런 유시민 불가론은 김대중 불가론을 연상 시킨다. 예전 김대중 불가론의 핵심은 김대중에게 역량과 자질이 없다는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비토세력이 너무 많아 대통령이 되는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논리였다. 즉,김대중불가론의 핵심은 바로 김대중불가론 그 자체였던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들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말이 안되는 논리다. 빨갱이프레임론이나 만들어내 정치적 이익을 향유하는 한나라당을 처단하기 위해 김대중이 나섰는데 저들의 빨갱이론이 워낙 확고해 넘을수 없는 장벽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전혀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빨갱이프레임론에 대한 패배가 아니라 프레임론 전체에 대한 패배인것이다. 왜냐하면 프레임 따위는 권력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저들 입장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프레임을 깨는 유일한 길은 오직 프레임 그 자체를 깨나가는길뿐이라는것을 김대중은 절감했고.
그런 김대중은 4번째 도전만에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기어코 불가론을 깰수 있었다. 그것이 깨지자 다른 프레임 들도 줄줄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김대중 불가론 프레임에 이어 김대중은 빨갱이니 나라를 붉게 물들일것이라는 빨갱이 프레임,개혁진영은 데모나하는 무식쟁이들이니 정권을 맡기기엔 너무 위험하다라는 좌파 프레임,그에게는 비토세력이 너무 많아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협조가 전혀 없을것이란 비토 프레임에 이르기까지.
유시민의 정치적 어려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도전의 시작인 개혁당의 실패로 인한 개혁당프레임,열린우리당 실패로 인한 열린우리당프레임,대구선거 실패로 인한 지역주의프레임,경기지사출마로 인한 분열프레임.경기지사 대성불가 프레임.
이런 프레임들의 줄줄이 증가는 외형적으로는 유시민의 정치적 장애물이 증가하고 있는것으로 비춰질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유시민의 정치적 자산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why? 김대중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킬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김대중 죽이기와,노무현 씹어 돌리기였기 때문이다. 개혁당 열풍의 원동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면 김대중은 죽고 노무현의 정치자산은 그대로 땅속에 묻혀 들어가게 될것이다란 절박함.
그 절박함이 본질적으로 김대중불가론,노무현불가론에서 비롯된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강력했던만큼 역설적으로 그것을 깨려는 힘도 커질수 있었던 것이다. 매칭상대가 강해질수록 본인도 강해지는 것은 운동경기에서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니다. 정치에서도 마타도어,데마고기가 거세질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결국 그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유시민을 죽이려들수록 유시민의 존재감이 되레 커가는 역설은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것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박해와 탄압. 기성정치에 대한 포괄적 혐오감.
이제 그런 경우를 목도하게 되면 국민들은 더이상 저 정치인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란 포기감을 가지게 되기 보다는 되레 들러붙고 참여해 도와주고 싶다라는 동정과 열의를 느끼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근원이 바로 김대중 노무현의 불가론과 그들에 대한 죽이기인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꽤하려 드는 경상도패권주의자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의 균열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것이다.
노무현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유시민을 차세대리더로 키우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했었다. 이것은 유시민이 그의 후계자 이기 때문도 아니요 개혁당 시절의 고마운 도움에 대한 보답의 의미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드라이한저울로 평가해 보았을때 그것이 적재적소의 인사란 나름의 판단과 확신 때문에 그렇게 한것뿐이다.
마찬가지 관점으로 노무현이 설사 나의 후계자는 유시민이라고 했었던들 그것은 그렇게 옮겨 질수 있는 성격의 유형 자산도 아니다. 국민들이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는 공사를 구분못하고 인정과 사적안면에 좌우되는 인간들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지가 올바른 공적 평가에 기반한 가치판단이 아닌 절차에 의해 옮겨질수 있다라고 믿는다라는것 자체부터가 유시민 이전에 노무현에 대한 음해라 할수 있을것이다.
그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주류에 배척당하고 남은 잔존세력끼리 뭉친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공적인 도덕률의 기제하에서만 우연히 의기투합하게 된것 뿐이고 그런 모습들이 거듭되자 정치적반대파들에 의해 계파로 매도되게 된것뿐이다.
우습게도 유시민은 노무현의 정치적경호원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 노무현 그만팔고 그와 같이 사라져라. 그런주장을 하는자들이야말로 노무현정신을 팔아 정치적이득볼 궁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노무현을 박해하고 탄핵하고 죽게 만들었던 자들이 이제와서 노무현정신을 목놓아 외치면서 거꾸로 여전히 그정신과는 정반대의 짓거리에만 여념이 없는것이다.
그 대표적인것이 바로 유시민불가론이라고 할수 있다. 유시민은 경상도패권주의자라서 절대 안된다. 이 논리는 그들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가게한 "노무현 씹어돌리기"의 메인메뉴였던것이다.
노무현살해자들이 노무현정신을 내세우며 그 노무현살해의 메인메뉴였던 유시민불가론을 다시 꺼내들고와서 유시민을 죽이며 노무현을 계승 하겠다라고 외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한나라당이 웃으며 서있고 그구석 한켠에는 생전 지금의 유시민과 똑같은 박해를 당했던 김대중 노무현의 영정사진이 놓여져있다.
그들은 과연 그 영정속의 김대중 노무현이 하늘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모습들을 내려다보며 지켜보고 있을지 생각이나 한번 해보고는 사는 것일까.
아무 생각 없이 저러는것이라면 차라리 낫겠다라는 생각을 까끔가다 할때가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에게 있어 그런 부분들에 대한 행동은 늘 치밀한 계산하에서 이루어지는것들이다. 노무현이 싫지만 노무현을 팔수밖에 없는것도,그러면서 한편으론 유시민도 경상도패권주의자로 몰아 처단할수밖에 없는것도 모두 치밀하기 짝이 없는 계산에서 비롯된 행동들이란 이야기다.
그 인간들은 과거 김대중 역시도 호남지역구도의 단물을 독식하는 패권주의자로 매도했던 인간들이다. 그 둘을 분열시켜 야권을 무력화시킴으로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준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경선 때는 노무현을 계승한 이해찬을 걷어낸뒤 공천권을 장악한후 노무현 계열의 씨를 말려 한나라당의 노무현 김대중죽이기를 수월하게 유도한 역적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교묘한 노풍 빼앗기와 유시민밀어내기로 한편으로는 노무현계열을 모두 지자제장으로 당에서 몰아내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유시민을 지자제장에서마저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 악독하게 이를 박박 갈고 있다.
그러나 예의 그렇듯 유시민은 그 어려운 와중에서도 고군분투,숨을 골라가며 한발 한발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누가 때리면 아얏소리도 내지르고 누가 억지소리를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하는 특유의 조목모목 합리적인 반박소리도 내어가며 힘겹게 발걸음을 떼어나가고 있는것이다.
유시민 불가론의 폭풍속에서의 그러한 서글픈 행보. 이것은 또다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고 있다. 차라리 김대중처럼 그자신이 훌륭한 정치인이면서도 탁월한 기획능력까지 갖춘 양수겸장의 정치인이었더라면 국민들이 이렇게 고달프진 않았을텐데.
그는 그런것도 없이 그저 노무현처럼 옳다고 믿는바대로 소신있게 눈앞의 길만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그러면서 가끔씩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도와주세요"를 외치는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한없이 지겨우면서도 한편으론 한없이 애잔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묘한 희망같은것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것을 절감한다. 이 순간이 바로 유시민에게서 노무현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리고 작금의 정치상황 속에서 유시민이 노무현처럼 박해 받고 있는 진정한 이유인것이다.
이런 유시민이 과연 성공할수 있을까. 그 질문은 02년 노무현때와 똑같은 우문이다. 전혀 성공을 확신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가만히 지켜 볼수도 없는 상황을 끊임없이 유도해 내는 저 모습속에 바로 과연 이 땅에 진정한 참여정치가 꽃피울수 있겠는가 하는 유시민이 진정으로 이 시대에 던지고 싶어하는 화두가 담겨 있다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결실을 맺는 순간 유시민에 대한 모든 잘못된 프레임은 산산조각 깨져나갈수 있게 될것이다.
유시민에 대한 단상 2 [4]
슬픈한국
chltmdwhc****
번호 976044 | 10.05.03 14:41
조회 810
노무현과 이해찬 두사람은 1987년 재야단체인 민주 통일 민중 운동연합(민통련)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됐다. 당시 이해찬은 서울본부 정책실장이었고 노무현은 부산 민통련 간부였다.
그 두사람은 13대때 나란히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이후 서로 어려운 고비처마다 도와 주기를 거듭했는데, 13대때 노무현이 제 구실을 못하는 국회에 회의가 든다며 잠적했다 복귀한 뒤 궁지에 몰리자 이해찬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엄호했다. 14대때는 이해찬이 김대중의 제왕적권력을 문제 삼으며 반 동교동 깃발을 들었다가 공천탈락위기에 몰리자 노무현이 나서 이해찬 같이 뛰어난 사람을 공천하지 않으면 나도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나서며 이해찬을 도와 주었다.
DJ정부 시절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이 되자 노무현은 교육 위원회를 선택한 뒤 교원 정년 단축 등(IMF 시절이었다)에 대한 반발로 이해찬이 어려움에 처하자 적극 나서 그를 도왔다.
한편 이해찬은 DJ에게 노무현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적극 추천했고 DJ는 노무현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장관으로 기용했다. 2002년 노무현은 이해찬에게 선대본 기획본부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이해찬은 흔쾌히 응한 뒤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이해찬에게 여러 요직들을 제의했으나 이해찬은 극구 사양했고 그러다 가장 어려울 때 그의 곁으로 돌아와 조선일보 한나라당과 당당하게 싸워가며 훌륭히 국정을 수행해 냈다.
여기까지가 노무현과 이해찬 인연스토리의 요약본이라고 할수있다. 이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반유시민진영에서 끝없이 유시민의 "김대중불가론"을 물고 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97년에 김대중불가론 조순지지를 주창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라고. 나도 김대중을 좋아하긴 하지만 김대중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조차 해서는 안되며 그에 대해 비판한 과거전력이 있는자는 어떠한 선거에도 나서서는 안된다라는 이야기인가.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할수 있을 것이다.
당시 김대중은 건국이래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명목 하에 수십년째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야당내에서 무수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대놓고 용기있게 김대중을 비판하고 나서는자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호남에서 공천을 받을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대중의 권한에 대해 용기있게 이의를 제기하곤 하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들이 노무현,이해찬 그리고 유시민의 3인방이었던것이다. 윗부분에서 언급했듯 이해찬은 김대중의 지나친 공천권행사를 비판하며 탈당한 전력이 있다. 그 과정에서 당에 다시 복귀하지 않는것은 물론이고 정치를 아예 그만둘 결심까지 했었다.
그때 이해찬의 그러한 행동을 지지하며 결국 이해찬을 살려냈던것이 바로 노무현이다. 만약 김대중이 이해찬을 자르면 나도 정치를 그만 두겠다라는 식의 강경모드로 나왔던 것이다. 그러자 김대중은 고민했다. 그냥 놔 두고 둘을 잘라야 하는것일까. 그러지않으면 총재의 권한에 흠집이 갈것이 자명했다. 동교동가신들과 주요당직자들 사이에서도 그 둘을 자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자신이 쳐내려는 것은 정치꾼들이지 능력있는 정치인들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 둘을 살렸고 이후 이해찬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공헌을, 노무현은 정권교체의 당사자가 되는 공을 세우게 된다.
반면 정동영이라는 정치인은 김대중에게 픽업된 방송인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김대중 이후의 제왕적 자리 등극,그러니까 야당의 호남지역에서의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를 노렸기에 김대중이 건재한시기에는 한없이 그에게 고분고분했다.
그러다가 김대중의 권한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그의 등에 칼을 꼿고 나섰다. 이른바 천신정이 주도한 정풍운동이라는것에서였다. 이때 탄생한 정당이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그러나 이후 유시민등에 의해 상향식공천등 바텀업기세가 등등해지자 유시민쳐내기에 사활을 걸게 된다. 당원이 당을 장악하게 되면 공천권행사는 물건너가게 될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당정분리를 명목으로 노무현의 당운영 간섭도 불허했다. 그리고 독주를 시작했다. 위로는 김대중을 쳐내고 아래로는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 등을 쳐내가며 그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제왕적 권한의 기분을 만끽했던것이다.
그러다 열린 우리당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그는 돌연 노무현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나왔다. 노무현이 대통령질을 엉망으로 하고 당과 소통을 게을리해 지지도가 추락했다라는 시비였다. 이행태는 과거 김대중이 건재할때는 꼼짝하지 못하다가 그의 권위가 시들해지자 맨앞에 서서 칼을 들이댔던 과거력과 정확히 일치하는 추태였다.
김대중 때와 마찬가지로 탄핵정국 등을 거치며 노무현의 인기가 치솟을 때는 한없이 그를 입에 물고 살다가 자신의 잘못된 당운영으로 열린 우리당 인기가 시들해지자 그 과오를 몽땅 노무현에게로 뒤집어 씌워버린것이다. 그리고 난후 열린 우리당을 해체 했는데 이때도 유시민이 혹시나 남아 당을 사수할까 자신이 최후까지 남아 유시민마저 내쫓은후 아무도 남은 사람이 없는것을 확인한뒤 마지막으로 자신이 나가 당을 없애 버렸다.
그 후에 만든 정당이 바로 대통합 민주 신당이라는 일회용 선거용 껍데기 정당이다. 이 정당에서 그는 손학규,이해찬등을 누르고 과거 공천권등을 행사하며 얻어놓았던 특유의 인심을 바탕으로 대선경선에서 표를 무더기로 동원해 그들을 누르고 대선후보에 당선되었다 정작 본선에 올라가서는 이명박에게 500만표 차이로 패하게 된다.
경선예선에서는 야땅 버스떼기가 먹혔을지언정 전국적인 바람이 필요한 대선본선에서는 그것이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결과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후 다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정치적으로 피살된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김대중마저도 천수를 누리지 못한채 사망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것이 정동영 때문이었다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봉하마을로 조문을 하겠다고 기어 내려갔다 성난 지지자들에게 쫓겨나고 야밤에 간신히 도둑조문을 한뒤에야 올라가오게 된다.
지금 바로 이 정동영의 지지자들이 걸핏하면 개혁당실패론,김대중불가론을 들먹여가며 유시민을 헐뜯고 있는것이다. 어떤분들은 노무현,이해찬,유시민도 김대중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정동영 또한 김대중을 비판했다 한들 그것이 무슨 큰잘못이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떻게 어떤 사람의 권력이 강할때 당당히 맞서다가 인기가 시들해 질때 돌보는것과,권력이 강할때는 꼼짝 못하다가 인기가 시들해지자 헐뜯고 나서는것이 똑같을수 있다는 말인가. 예컨데 지금 한없이 이명박정권을 띄워주고 그권력에 영합해 단물을 누리다가 향후 레임덕이 도래하게 되면 그때가 되서야 앞장서 실정을 비판하고 나서는 매명지식인들이 있다라면 그들을 칭찬해줄수 있겠는가.
조만간 한나라당에서도 지금은 이명박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정몽준 박근혜 오세훈 나경원 등이 이명박을 앞장서 비판하고 나서는 예의 전임자 밟고 가기 전통을 보여줄 것이 자명하다. 그때가 오면 당신들은 그들을 장하다고 칭찬해 줄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있을수 없는 일이듯 정동영지지자들이 유시민의 김대중 비판을 힐난 하고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김대중의 권위가 강력 했을때 김대중을 비판했다 그가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퇴임한후 그에 대해 박수갈채를 보낸 유시민의 행위를 이중적이라 비판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그럼 정동영처럼 김대중의 권위가 강력했을때는 설설 기다 그가 퇴임한후 칼이라도 꼿았어야 덜 이중적이란 말인가. 정동영과 그지지자들이 가증스러운 것은 그들이 유시민힐난에 그토록 열성적인 이유가 바로 그러한 자신들의 과거력에서 기인한 정치적열세를 만회하기 위한것이라는데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 정동영을 지지하는 세가 얼마나 되나. 지난번 대선에서도 볼수 있듯이 이명박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 이유의 근원이 바로 그의 김대중 노무현 죽이기에서 비롯된것이라 할수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지지를 받는 인물은 김대중 노무현인데 대체 그들을 죽이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정동영이 무슨 지지를 받을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만회할 유일한 길이라 할수있는 유시민 죽이기에 목을 메고 있는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것은 그러다 힘에 붙이면 예의 경상도패권주의를 들고 나온다라는점이다. 유시민이 경상도출신이라서 전라도출신인 정동영을 괴롭힌다라는것이다.
유시민이 정동영과 경쟁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가 경쟁한 것은 정동영도 아니요 전라도도 아닌 바로 당공천권의 상향식 운영에 관한 것이다. 정동영이 당운영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가 그토록 주창한 김대중퇴진론,노무현당정분리론 또한 말장난에 불과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당권을 장악한후 그렇게 당운영을 하지 않았고 그런 자신의 과오가 부각 될수록 더욱 더 자신이 전라도 출신이라서 박해를 당하고 있음을 서글프게 내세우고 있는것이다.
유시민이 경상도인의 숫자를 등에 업고 자신을 괴롭힌다라는것이다. 그리고 뒤로는 유시민의 개혁당실패전력과 김대중불가론 언급전력을 쉴새없이 떠들어 댄다.
이 모든것이 결국에는 그놈의 알량한 호남공천권 장사에서 비롯된것이라 할수 있다. 민주당깃발만 꼿으면 개도 당선된다라는 그 지긋지긋한 지역주의 말이다. 사실 노무현이 돌풍을 일으키며 2002년 대선에서 광주에서 승리할수 있었던데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노무현이야 큰정치를 할수 있는자지만 정동영 이인제 한화갑이야 보나마나 지역에 눌러앉아 공천권장사나 하며 노닐 그릇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수작질이 지긋지긋해 광주인들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준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지금와서 대체 뭘 또 어쩌겠다고 이명박과 바둥바둥거리며 싸우는 유시민의 목에 칼을 그어대겠다라는것인가.
정세균 김민석이라는 인간도 웃기기 그지없다. 정세균이라는 인간이 과연 정동영을 제치고 또한 김근태등을 끌어안고 당을 장악할수 있는 그릇 이라고 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저 할일이라고는 어떻게든 노풍은 품에 끌어 안는척 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시민을 말려죽이고 마지막으로 당권을 장악 하려는 탐욕을 부리는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선가능성도 전혀 없는 김진표 따위를 내세운채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외견상으로보면 지자제에 친노무현인사들을 대거 내세운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노풍을 활용해 지자제에서 승리를 거두어 대표자리를 공고히 하는 한편,친 노무현 인사들을 대거 지자제로 내보내 당운영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중노림수의 의미가 크다라고 할수 있다.
김민석 또한 2002년 대선당시 뜬금없이 새처럼 정몽준 진영으로 날라가 노무현을 흔듦으로서 반한나라 진영을 벼랑으로까지 내몬 뻘짓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에게 패해 5년뒤 노무현 김대중이 살해되는 단초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노무현이 서거하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봉하 마을로 기어 내려갔다 노무현지지자들에게 맞아죽을뻔한 정동영같은 인간이기도 하다.
이런 인간들이 지금 유시민을 못죽여 안달하고 있는 인간들의 실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과거 유시민은 분명 김대중에 대해 비판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십수년전부터 김대중에 관해 수백개의 호의적인 글을 써온 나도 김대중의 제왕적 권한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여러번 비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비판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그것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빨갱이론과 같은 프레임처럼 악의적이고 본질호도적이지도 않다.
다만,김대중에게 그가 어쩔수 없는 대의명분하에서 행사하고 있는 강력한 권한을 좀더 세분화해 민주적으로 분산시킬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해 나가라는 조언적 비판에 불과한것이다. 그런것조차 안할것이라면 아무리 건국이후 최초의 정권교체 명분을 띤 한시적 제왕적권한 행사라 할지라도 비판받아 마땅한것이라는 이야기일뿐인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판을 한자는 더 이상 정치를 하지 말라니 이런 궤변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김대중 노무현의 권위와 인기가 강력할때는 단물만 빨아먹다가 그것이 시들해지자 앞장서 칼을 꼿고 거꾸로 자신은 제왕적 권한을 만끽하다 그로인해 빚어진 실정에 대한 심판이 도래하자 적반하장격으로 그 비판의 화살을 그들에게 되돌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자가 이제와서 그들에 대한 가당찮은 추모물결을 빙자해 가며 되레 마지막 순간까지 그둘을 계승한 유시민을 공격한다라는것은 있을수도 없는 이중적 행동의 극치라 할것이다.
인터넷에서 김대중불가론을 주장하는자들중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은 김대중불가론 이라면 되레 만세를 불러야 온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시민을 저주하고 힐난하는 자들은 민주당의 공천권을 노리는 당권파 그중에서도 정세균 아니면 정동영계열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끝내 지자제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나섰다. 호남지역에 대한 아주 작은 공천권 양보조차도 거부하고 나선것이다. 결국 그들의 관심은 MB 심판도 아니요,지자제 승리도 아닌 총선지분확보,그 과정에서의 공천권 행사임이 입증된것이라 할수 있다.
그런가운데 오늘 유시민의 선거자금 펀드모금액이 모금 첫날부터 수십억에 달한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대관절 대한민국에 그 어떤 정치인이 있어 이런 열풍을 일으킬수가 있겠는가.
민주당에서 한나라당보다도 유시민을 더 못잡아 먹어서 안달하는 이유를 알듯도 하다. 지금 찌라시에서 내보내는 지지율에 따르자면 김문수가 유시민을 상당히 앞서고 있는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표본조사가 조작된 가짜 여론조사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세론이 휩쓸던 몇년전에도 유시민은 서울의 강남과 비견되는 대구 수성구에서조차도 33%의 득표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반MB정서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그것도 수도권에서 유시민의 지지율이 이에 못미친다라는것이 대관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결국 이런 뻘짓의 대가는 하면 할수록 더 크게 치르게 되어 있다. why? 나중에 드러나는 진짜 지지율이 결국은 돌풍해석으로 편입되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유시민은 경기지사에 당선된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있다.
만약 당선이 안되면 어떻게 할것이냐고. 그럼 그만이지 뭘 걱정인가. 국민들이 언제 당선만을 바라보고 당선이 되면 궁물을 바라 보고 정치에 참여를 했었는가. 그것은 2002년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늘어나는 이유에는 승리로 이루려는 대의에도 그 목적이 있겠지만 그 과정의 정당한 진일보에도 그 목적이 있다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의 선거자금 펀드모금은 유쾌하고 희망적인것이라 할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모든 국민들이 유시민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지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희망과 인내는 반MB진영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 할수 있을 것이고 바로 그렇기에 유시민은 꺾이지 않고 온갖 질시와 힐난에도 계속 커나갈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 오직 유시민에게 희망이 있는 진정한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인것이다.
유시민 경기지사론 1
유시민 경기지사 당선이 확실해 졌습니다. 따라서 금일부터는 유시민경기지사의 의미를 분석하는 글을 시리즈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몇몇분들은 아직 유시민 김진표 사이에 단일화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거기서 단일후보로 선출된 유시민이 김문수와의 지방 선거에서 이겨 경기지사로 확정된 것도 아닌데 유시민 경기지사를 운운하는것은 너무 성급한것 아니냐고 반문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4월9일날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은 한명숙 5만달러건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있었던 날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명숙 무죄판결의 의미"란 글을 아고라에 올리기전에 먼저 개인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그랬더니 어떤 분이 물으시더군요. "아직 법원에서 선고를 내리기 직전이고 따라서 언론 속보도 당연히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대체 뭘 믿고 이런 글을 먼저 올리느냐"
미안하지만 그 글은 선고당일 바로 직전에 쓴글이 아니라 이미 보름 전에 써놓았던 글이었습니다. 당연히 무죄판결이 나오리라 확신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유죄판결이 나왔더라면. 그렇다면 저는 정치 글에서 완전히 손을 뗐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단 0.1%도 희망이 없는 나라란 의미일것이기 때문 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직 후보등록일인 5월 14일까지는 지난번처럼 보름여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시민 단일후보는 물론 유시민이 김문수를 꺾고 경기지사에 당선될 것을 확신 합니다.
먼저 그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 보도록 하죠. 처음부터 유시민 김진표 단일화는 시간과의 싸움 이었습니다. 즉,단일화에는 크게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여론조사 참여경선 두가지를 포함한 안으로 단일화,여론조사만으로 단일화,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의 양보.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세가지 중에 참여경선을 포함한 방법은 불가능해졌습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것은 100% 국민여론조사 경선방법과 대승적 차원에서의 양보. 이 둘뿐인 것입니다. 이 경우는 오로지 유시민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현재지지율추이,순간적 폭발력,당선가능성 모두 유시민이 김진표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입니다.
지난 4월16일 단일화 협상 당시 문제가 되었던 "김문수와 붙어 누가 이길것 같은가" "단일화후보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두가지 질문방식을 놓고 벌이던 신경전도 의미가 없어 졌습니다. 두 경우 모두 이제는 유시민이 김진표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입니다.
이제 김진표에게 남은 선택은 지는길로 굳이 걸어들어가 질것인가. 아니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하고 박수를 받을것인가 하는것뿐입니다.
혹시 끝까지 출마를 강행하지는 않겠는가. 그러려면 손학규의 호응이 있어줘야 합니다. 유력정당의 선거라는것은 혼자서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이 함께 치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경기지사 후보는 야권 전체의 판세를 좌우할 자리입니다. 그러나 손학규가 22일 춘천에서 급거 상경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습니다.
무조건 단일화하라는것이죠. 이것은 사실상 유시민의 손을 들어준것입니다. 선대위원장을 맡아 지자제 선거 전반을 반한나라 진영의 승리로 이끌어내야 하는 손학규 입장에서 김진표로는 어렵다라는 최종판단을 내린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유시민후보로 단일화된다라는것은 더이상의 야권연대는 필요 없다라는것을 의미 합니다. 즉,안동섭 심상정과의 후보단일화는 필요없다라는 것입니다.
why? 유시민이 비록 단일화의 도움을 얻어내긴 했지만 현재 차기 대선후보에서 박근혜에 이어 2위에 랭크되어있는 사람 입니다. 그것은 민주당과의 단일화만 얻어낸다라면 추가적 단일화없이 김문수정도는 이겨낼수 있는 정치인이란 이야기입니다.
6월2일 지방선거에서 유시민이 당선되고 출마 강행할 안동섭,심상정의 지지율 합계는 제로수준까지 찌그러 들게 될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차기대선 후보군에서 유시민 한명숙이 사라진다라는것을 의미 합니다. 이제 유시민이 경기지사 후보가 되면 그열풍은 서울을 에워싸게 될것 입니다. 사실 한명숙은 그 자체로 전혀 선거열풍을 일으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시민의 도움을 받으면 이야기가 틀려집니다. 바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되는것이죠.
한명숙이 당선될 가능성이 급증하게 됩니다. 이렇게되면 결국 차기대선에 유시민 한명숙이라는 유력대권후보들이 지자제장에 당선되어 출마할수 없게 됩니다.
대신 손학규의 주가가 상종가로 뛰어 오르게 됩니다. 정동영이 있긴 하지만 만약 이번 지자제선거에서 손학규가 선대 위원장을 맡아 서울,경기,인천,충남,강원,경남,호남등을 싹쓸이 하게 되면 당주류로 복귀할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것입니다.
더욱이 정동영은 김대중 노무현의 등에 칼을 꼿은 전력에 지난 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온갖 추잡스러운 방법을 동원해 대선후보가 되었다가 이명박에게 500만표차이로 대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후에도 동작에서조차 정몽준에게 참패를 함으로서 대선후보에서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그럼 이해찬만 남게 되는데 이해찬의 성장여부는 향후 지켜보아야 할것입니다. 다만 적어도 손학규는 이번 지자제선거에서 흥행 보증수표 유시민을 활용해 선거태풍의 주역이 되고,대선경쟁자인 유시민 한명숙을 지자제로눌러앉히고,정동영의 복귀를 주저 앉히는 1타 3피의 효과를 기대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득이 실보다 압도적으로 큰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이라는 유력한 반한나라 진영의 대표주자가 지자제로 소모되는 것에 대한 지지자들의 상실감과 손학규의 부상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몇년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아마 07년 대선후보경선이 한창이었을때일것입니다. "유시민은 언젠가 대통령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차기는 아니다. 차차기도 아니다. 만약 유시민이 대통령이 된다라면 차차차기가 될것이다."
그랬더니 유시민지지자들이 광분을 하더군요. 저는 대신 유시민에게 "유시민 서울시장론"이라는 글을 통해 지자제장에 도전할것을 권유했습니다. 아마 유시민도 제 글을 읽었을것이라 사료 됩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 경기지사에 도전하게 되었죠.
그 지자제장이 유시민에게는 최적의 길입니다. 유시민은 국회의원도 해보았고 장관도 해보았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대통령에 도전하기전에 지자제장을 한번 해보는 것이 나쁠 것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지지제장 이야말로 유시민의 끼가 가장 최적으로 발휘될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유시민본인도 아마 즐겁게 도지사생활을 하게 될것이라 생각 합니다.
유시민은 이 도지사 수행과정에서 연대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시민단체 등의 정책제언을 과감히 받아 들이고 시민들이 도정에 참여할수 있는 길을 획기적으로 늘리라는 이야기 입니다. 제가 전에 유시민이 대통령이 되려면 합리적인 힘,감성적인 힘 그리고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시민에게 가장 필요한것은 바로 연대의 힘입니다. 이것은 손학규문제와도 연결되는 문제 입니다. 개중에는 손학규가 민주당내에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는 점을 못마땅해 하는 분도 분명히 계실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도 김종필과 손을 잡고서야 비로소 정권교체의 꿈을 달성할수 있었다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고도 이인제의 분열표,IMF라는 외환위기상황의 도움을 얻고서야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될수 있었습니다. 노무현이야기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몽준과의 단일화과정을 통한 표 흡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제2의 노무현의 도래는 다시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노무현같은 정치인의 출현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치적 과정을 통한 대권등극은 요원해졌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끝없는 연대의 시대인것입니다.
그리고 유시민이 바로 그걸 해낼수 있어야 합니다. 배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유시민은 이미 그걸 알고 있고 본인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유시민이 큰성공을 거두게되면 유시민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합리적인 힘이 한단계 도약할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게 될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가장 부족한것은 바로 합리적인 힘입니다. 어떤 문제도 합리적인 절차,과학적 논리성등에 의해 처리되지 않습니다. 그저 이명박같은 독재자가 탑다운 방식으로 권위주의적 일처리 지시를 내리면 언론,관료들이 그저 잘될것이다란 낭만적 합창을 부르며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할뿐입니다.
이런것에 가장 반발을 하는것이 바로 진보류들입니다. 그들은 이명박과 그 지지자들에게 나름의 합리적인 논리들을 들이대가며 저지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혀 먹혀들지를 않죠.
바로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주장 합니다. 그러나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그저 유럽식 사회민주정책같은것을 모방하고 광신하고 있는것에 불과 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각종 지식과 문구들을 인용해와 잔뜩 늘어놓는것을 즐깁니다.
짧은글을 하나 써도 "선진국의 유명한 모모가 뭐라고 말하거나 행동한 적이 있다" 라는 식의 서두로 글을 시작 하는것을 절대로 잊지않는 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대단한 자랑인양 늘어놓습니다. 자랑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새로운 기득권과 거기서 비롯되는 신권위를 창출하려고 시도합니다.
슬프게도 이런 권위주의와 기득권은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합리주의적 사고와 차별철폐주장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게끔 만듭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것은 반지성주의의 창출로까지 연결됩니다.
지식이 싫다라기보다는 지식인이 혐오스럽다라는 기류가 만연하게 되는것입니다. 이것은 가짜지식인 매명지식인 양산의 토대를 가능케 해주고 이들끼리의 이전투구가 최종적으로 합리주의적 사고가 설 자리를 없애 버리게 만드는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직접적 소통입니다.
그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과감하게 지식도매상들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진보류 같은 정치궁물들을 짓누르고 직접적으로 국민과 대화하라는것입니다.
그것은 유시민 특유의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받아 들이고 내보내는 피드백 장치의 지자제도정에서의 구현으로도 가능할 것이고,진보류에 수직적으로 종속화된 수많은 시민단체들을 바텀업방식으로 펌프해 끌어올리는 방식으로도 가능할것입니다.
유시민은 바로 지금 그의 머리속에 있을 이런 수많은 방식의 구현과정에서 그간 김대중에게는 있지만 유시민에게는 없었던것으로 평가되어 왔던 연대의 힘을 길러낼수 있게될것입니다. 지금 유시민이 보수와 진보 양진영에서 무차별적 공격을 받고 있는것도 바로 이러한 유시민의 불길한 행보의 예고가 자신들의 밥줄을 끊어놓을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는 권위주의적이면서도 합리주의적인척을 해야 하는데,소통하는척하면서 괴리되어야 하는데,차별을 해소하는척 하면서 키워나가야 하는데 유시민은 이것을 정면으로 공략하려고 들기 때문입니다. 보수보다도 진보가 더 유시민을 공격하는 이유이면서 보수들이 유시민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유의 출발점이 바로 이지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유시민 경기지사 확정의 의미는 결국 이땅위에 진정한 진보적 정치가 시작됨을 의미한다라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손학규는 그것을 가능케 해줄 도구인것입니다. 유시민지지자들은 유시민을 키워내려면 갇힌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구는 절대로 안되고 누구는 절대로 된다라는 식이 그것 입니다. "차라리 도지사 못하는 한이 있어도 누구의 도움은 받지 마라." 그 누구가 누구입니까.
유감스럽게도 제가 보기에는 손학규가 예전 한나라당 경선 당시의 후보인 이명박 보다 훨씬 나은 후보 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유권자들은 손학규를 못알아봤다라기보다는 이명박이 더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줄수 있으리라 보았기에 그를 선택했었습니다.
손학규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봐도 그는 여지껏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나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나와 합류한 대통합민주신당경선에서 정동영은 온갖 막장 추태를 보여주며 손학규를 찍어 눌렀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온갖 추한꼴을 보고 넘어온 손학규도 두손두발 다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정동영이 손학규보다 절대로 나은 인간이라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온갖 추잡스러운 요구를 남발해대는 진보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결국 대선에서 이기려면 김종필과 손잡고 이인제정도가 분열해줘야 이긴다라는 결론입니다. 물론,야권이 총연대하는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야권이 총연대하는것 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진보류들이 출마 그 자체를 절대포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라면 김종필 2명과 손잡고 이인제가 나와주거나,김종필 3명과 손잡거나,이인제 3명 정도가 나와 줘야 한다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게 정치 공학적으로 가능 합니까. 불가능합니다. 결론은 차기대선에서 마음을 비우고 완전히 판떼기를 다시 짜는 길뿐입니다.
진보류들을 걷어내고 수많은 새로운 진보세력을 이 땅위에 태동시켜 내고,보수쪽에서도 이에 대응해 새로운 세력이 자리매김할수 있도록 정치토양 자체를 완전히 다시 바꾸어내 버려야 비로소 정권교체의 활로가 열리게 될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데 이상돈교수같은 사람은 비록 보수지만 진보류들보다 훨씬 사고의틀이 건전한사람입니다. 유시민은 바로 이런 보수와 진보를 넘나 들며 전방위적으로 연대의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한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현재 민주당 내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사람이 바로 손학규입니다.
비록 그에게는 한나라당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유시민과는 훨씬 더 말이 잘통할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적어도 정동영,진보류들보다는 거짓말을 덜하고 살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수 진보를 망라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이세상에서 가장 혐오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위에 진정한 의미의 보수 진보세력은 사실상 없다라고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유시민이 이번 경기지사당선을 통해서 바로 그 토양을 만들어 내주길 원하고 있는것입니다.
만약 유시민이 그걸 해낼수 있다라면 향후 정치판도는 물론 대선구도 자체가 격변할수도 있게 될것입니다. 그럼 또 모르죠. 그때가서 유시민 이해찬에게 획기적인 기회가 올수 있을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현재로선 갈길이 너무 멀기만 합니다.
허나,이제 그 길은 시작 되었다라고 봅니다. 2부에서부터 제가 생각하는 현재 경기지사 당선후의 유시민의 머리속 구상을 본격적으로 한번 거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이해찬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될것입니다.
유시민 경기지사론 2
노무현 이해찬 그리고 유시민의 Dry함에 관하여
-그들의 임명자는 오직 국민
1.
"Dry가 뭐죠?"
사람들이 흔히 노무현 이해찬 그리고 유시민에 대해 dry하다고들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사람들은 아침에 머리감고 수건으로 안말리고 바로 드라이 한다라는 소리인가.
아니다. dry함 이란 "정치인 언론인 학자등 우리사회의 기득권적 네임벨류의 평가라인에서 대단히 박약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이란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것이다. 반대말은 "공사구분 못하고 인정과 사적안면에 좌우되는"이란 의미의 cool함일것이다.
이해가 잘 안되거나 헷갈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것이다. 자세히 한번 이야기해보자.
2.
흔히 조선일보의 전성기 하면 전두환때부터 김영삼 임기중반까지를 일컫는다. 조선일보는 독재정권을 빨아주고 독재 정권은 그 댓가로 조선일보에 특혜를 줬다. 조선일보가 점유율 1등 신문으로 등극한 시기가 바로 전두환재임 7년기간이었던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관계는 정권과 재벌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부비부비해가며 cool 하게 해쳐먹은것이다. 그 가교역활을 했던 상징적 정치인이 바로 김윤환이었다. 이자는 조선일보 출신으로서 킹메이커로 불렸는데 노태우,김영삼 대세론 조성에 일등공신 역활을 한 때문이다.
이런 조선일보의 전성기 도래는 "이제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의 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조선일보의 개다"란 주종역전의 신문장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그 위세가 막강했다.
이러한 무소불위의 조선전성기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게 바로 이건희였다. 이건희는 "이러다간 정권 뿐만 아니라 재벌까지도 조선일보의 개로 전락하겠다"란 위기감을 빌미로 김영삼정권을 악착같이 파고들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것을 황당시츄에이션으로만 폄하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why? 독재정권이 사라지고 문민정권이 들어섰으니 당연히 권력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 꼴을 보기 싫은이상 독재권력 바로밑의 2인자였던 재벌과 언론이 무주공산을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된것은 어찌보면 그 속성상 당연한 일이었을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방사장 무서운줄 모르고 홍석현을 내세워 도전장을 내민 이건희의 방자함은 얼마뒤 그 유명한 조선일보 vs 삼성의 전쟁으로까지 연결된다.
3.
아마 30중반 이상 나이드신 분들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된다. 김영삼임기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전쟁을 벌인일을 말이다.
삼성은 조선일보에 광고를 중단하고,조선일보는 삼성을 비리기사로 도배폭격한것이다. 이전쟁의 외형상 승자는 조선일보였다. 그러나 실질적승자는 이건희였다. why? 아무리 조선이 언론,사학,교육분야를 장악했다라지만 삼성은 그런 조선과 용량크기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선이 5천억 해먹을수 있다면 삼성은 50조 해먹을수 있는 것이다. 이러니 시간이 지나면 비교가 되겠는가. 결국 사태전개는 삼성이 무릎을 꿇고 광고를 재개함은 물론 이건희가 이학수에게 당분간 앞으로 광고물량을 무조건 중앙일보보다 조선일보에 더 줄것을 지시하는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조선은 전쟁 한번으로 국내최대기업의 광고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과를 올리게 된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은 틀렸다.
1995년 지자제 선거를 앞둔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는 해괴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현철:아버지,정원식으로는 힘들어요, 차라리 박찬종을 민자당으로 영입하자니까요.
김영삼:뭔소리야? 정원식이면 충분하지. 자금력과 언론장악력에서 여당이 압도적으로 앞서는데 말이야.
김현철:아이참. 이명박은 몰라도 정원식으론 힘들다니까요. 자,안기부에서 내게 보고한 내용을 한번 보세요.
김영삼:니가 뭔데 안기부보고를 받고 있나. 쓸데없는 짓말고 삼성그룹 보고서나 봐라.
김영삼은 지가 대통령도 아니면서 안기부지휘부로부터 직접보고를 받고있는 김현철이 어이가 없었고,김현철은 삼성그룹 보고서에 휘둘리고 있는 김영삼이 어이가 없었다.
당시 삼성그룹 보고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이명박 서울시장 거쳐 대권노릴것이 확실
2.민자당의 자금과 조직력을 활용하면 정원식으로 박찬종제압가능,조순은 위협거리도 안됨.
현대의 경쟁자였던 삼성은 현대출신 이명박의 서울시장,대통령을 저지하기 위해 김영삼을 부추겼고 결국 김영삼은 이를 받아들여 강제로 이명박을 서울시장 유력후보군에서 주저앉혔다.
이렇듯 실제적으론 삼성이 막후에서 김영삼을 휘드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조선일보의 "이제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의 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조선일보의 개다"란 발언에 대응해서 나온 말이 바로"삼성의 정보력은 국가를 능가한다"라는 발언이었다.
이런 유착은 환란을 지나서 이회창때까지 이어졌고,삼성은 이회창을 장악하기위해 차떼기로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중앙일보는 이인제 200억 수수설을 제기하며 측면지원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듯 정관계 학계 언론계 사법부 시민단체등에 전방위로 떡값을 뿌려가며 국가시스템 전반을 휘어잡게 된다.
4.
cool함이란 이렇듯 기본적으로 정경언 유착을 일컫는다. 권력,삼성 그리고 조선일보. 이들이 특혜,떡값,안면,인정등으로 얽혀 그들만의 리그속에서 서로를 핥아주고 빨아주고 챙겨주는 문화. 그 문화에 크게 이의가 없는 정치인을 우리는 보통 cool함을 갖춘 정치인이라고 한다.
반면 이러한 문화에 대해 "이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라면 그 사람은 바로 권력으로부터 dry하다라고 낙인찍히게 되는것이다. 그 대표적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이다.
노무현하면 생각나는게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설렁탕 한그릇 안사준다" 라는 불평불만이다. 그는 논공행상을 쏟아내도 부족할 취임초에 안면몰수로 대응했다. 당연히 공신들은 노무현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둥 가신들만 중용한다는등 온갖 중상모략을 쏟아냈다.
그러나 노무현은 후단협등에 받은 설움때문에 그리한것이 아니다. 바로 그가 역사에 정통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리한것이다. 원래 논공행상이라는것은 무서운것이다. 역사를 봐도 개국초에 무슨일이 벌어졌나.
고려 광종은 아버지 태조 왕건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운 호족들의 씨를 말려 버렸다. 호족들이 삼국통일의 공을 내세워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친형들이었던 혜종 광종은 요절해야만 했다. 따라서 광종은 이런호족숙청 없이는 국기확립이 불가능하다 라고 보았고 취임초 힘이 없을 때는 쓸개라도 내줄듯 개처럼 기다가 힘을 기르자마자 죄다 쓸어버렸던 것이다.
조선 태종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공을 내세워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측근들을 쳐내지 않았다라면 세종은 대왕칭호를 받기는 커녕 제명도 못살고 요절을 했을것이라는게 대다수 역사학자들의 공론이다.
노무현은 바로 이러한 역사인식에 기반한 dry함을 제대로 발휘했던 것이다. 따라서 원래 dry함의 원조큰형님은 고려 광종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원조 작은형님은 조선 태종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국가지도자가 이런 dry함을 보여주지 않는다라면 어떻게 될까.
김영삼,이명박처럼 끼리끼리 해먹다 국가가 파탄나게 되는 것이다.
5.
이런 노무현의 dry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 바로 이해찬이다. 이해찬의 dry 함은 정치권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한마디로 "저런 독불장군이 어떻게 5선의원,장관,국무총리까지 해먹을수 있었는지 불가사리하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갸우뚱해할것 없다. 바로 김대중,노무현이라는 dry함의 원조큰형님들이 우뚝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던것이다.
이해찬의 신조가 바로 정치인이나 관료는 오로지 공적도덕률에 기반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라는것이다. 그는 사적으로 안면이 있으면 설령 공적으로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그냥 눈감고 대충 넘어가 주는 식의 행동을 잘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와 같은 정당이라는등의 이유만으로 청탁을 넣거나,느슨하게 업무처리에 임하는 정치인들은 그에게서 모욕에 가까운 낭패를 겪게 된다. 그 결과가 그가 도전한 3번의 공직선거에서의 모조리 낙선이었다. 96년원내총무,00년최고위원,04년원내대표등 당내 선거란 선거는 다 떨어졌던것이다.
계파를 만들지 않고,안면 인정 청탁이 통하지 않고,무능력을 용납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줄을 설 이유가 없는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96년 정책위의장,00년 정책위의장,04년 국무총리등으로 낚아 올렸다.
김대중 노무현이 정치판의 cool한 문화에 좌우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수 있는 시야와 혜안을 가지고 있었던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이해찬과 두사람 사이에는 아주 일화가 많은데,
김대중은 자기가 말할때 다른사람이 말을 자르는것을 아주 싫어했다라고 한다.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다음번 총선떼 공천명단을 보면 알수있을 정도였다. 그걸 종종 짜른게 바로 이해찬 이다. 그러고도 살아남은건 이해찬이 유일하다 라고 한다. "말이 되는 소리로만" 잘랐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절 국무총리 때도 이해찬은 말을 잘 잘랐다고 한다. 노무현 말하는 도중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고" 라는 말로 수시로 치고 들어간 것이다.
장관들은 어이없어 했지만 노무현은 웃으면서 받아냈다. 역시"말이 되는 소리라고"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해찬을 유능하다라고 인정은 하지만 dry하기 때문에 먹을게 없어 뽑지 않는 동료 정치인들의 cool함. 사적으로 볼때는 다소 불쾌하긴 하지만 공적으로 볼때는 옳은 소리이기에 이해찬을 용인하고 끝없이 발탁을 거듭한 김대중 노무현의 cool함.
여러분은 이 지점에서 그들간의 cool함의 차이를 배울수 있어야 할것이다. 가끔씩 cool함의 용어구사에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꾼의 cool함과 올곧은 정치인의 cool함은 엄연히 틀린것이다.
6.
dry함 하면 멀게는 고려광종큰형님 조선태종작은형님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해찬까지 쭉 이어지고 있지만 역시 현존하는 가장 dry함의 대명사는 유시민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여러분은 유시민하면 뭐가 떠오르나. 그렇지 dry함.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dry로 일관하는게 바로 유시민인것이다. 우선 그의 주변부부터가 온통 드라이하기 짝이 없다. 그가 좋아하는 노무현은 dry함의 원조격이다. 그의 정계입문 계기가 되준 이해찬은 말할 필요도 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dry하다.
저 위의 사진속의 미녀가 바로 유시민의 아내인 한경혜씨인데 얼굴은 예뻐 보이지만 참으로 dry하기 짝이 없게 생겼다. 머리속은 더 dry하기 짝이없다. 그것은 대입예비고사 당시 제주도수석을 차지해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한뒤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라는 이력만 봐도 잘 알수있다.
수학이라. 가뜩이나 dry하기 짝이 없는 유시민인데 거기에 수학을 전공한 dry한 아내라. 그러니 어디 유시민에게 대충대충이 통하겠는가. 그에게 가까운 정치인이 별로 없는 첫번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해찬에게 지난번 대선 경선에서 dry한 자신을 끝까지 수행해준 김모 현역의원이 있었다. 먹을게 없는 이해찬과 끝까지 함께한것을 보면 얼마나 진심으로 이해찬을 좋게 평가했었는지 잘알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경선이 끝나자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유시민에게도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주던 김모의원이 있었다. 그가 유시민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dry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도 그 dry함을 몸소 체험한후에는 유시민근처에서 잘 볼수 없어졌다. 그정도로 이해찬과 유시민의 dry함은 지독하다.
따라서 김대중 노무현 정도의 9갑자 내공이 없으면 옆에만 가도 얼어버릴 지경이 된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쯤되면 무협지에 나오는 장풍에 한기를 실어보내는 무공이 부럽지 않을 수준이란 생각이 든다.
아내도 수학박사정도 내공이 되기에 유시민 옆에서 한이불을 덮고 잘들수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노무현 이해찬은 물론 유시민과 그의아내 한경혜씨는 그렇게 dry 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cool하다라는 말이 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
예전에 이해찬에 관한 평론글을 썼더니 어떤분이 이렇게 말하더라.
"이해찬에 관한 글을 보고 이해찬이 좋아지긴 했는데 사람이 좀 어려워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하루는 우연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주친적이 있는데 아는척을 했더니 소탈한 웃음을 띠고 정중하게 인사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그런 선입견이 싹 사라졌어요"
이 분이 이해찬을 좋아하게 된것은 바로 정치인으로서 지켜야할 dry한 덕목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는데, 정치인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덕목이 요구 된다. 바로 정치인끼리는 끝없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가끔가다 언론에서 "제발 정치인들은 정략적 싸움을 멈추고 민생을 챙겨라"라는 주장을 하는것을 우리는 목도한다. 사실 가끔이 아니라 거의 매일 볼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생이란 수구들의 이익과 관련된것이지 국민의 이익과 관련된것이 아니다. 그들이 요구하는것은 바로 수구들의 불로이익 창출에 브레이크를 거는 싸움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반면에 그들이 정략적으로 싸운다라는 주장 또한 틀린것이다.
그들은 단지 카메라 앞에서만 싸우는척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싸움이 끝난후 사석에서 만나면 죄다 혈연 지연 학연에 기반한 형님 동생간으로 변신한다. 비록 당은 달라도 같은 철밥통의 일원으로서 밥그릇을 챙기는일만큼은 철썩같이 대동단결하는것은 물론이다.
그들이 사석에서 자주 전화하고,룸쌀롱에서 술먹으며 부비부비하고,고스톱 같이 치고 하는것을 누가 모르고 있겠나. 그들은 실제로는 cool하게 어울리고 다니면서도 공석에서만 서로 으르렁거리며 dry하게 굴뿐인것이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면 서로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함께 밥이나 술을 먹으러 간다.
그런데 연극이 끝났는데도 계속 dry하게 구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이해찬과 유시민이다. 따라서 정치꾼에게 이런 정치인들이 제정신으로 보일리 만무하다. 그냥 쿨하게 좀 어울려서 같이 나눠먹으면 참 좋겠는데 사사건건 훼방을 놓으니 분통이 터지게 되는것이다.
이때 나서는것이 바로 정치꾼들과 언론이다. "이해찬은 싸가지가 없더라" "유시민은 맞는 말도 싸가지 없게 하더라" 정치인끼리에서만 공적 도덕률을 엄하게 내세울뿐 실제 가정사나 국민들을 대할때는 한없이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정치인들이 졸지에 패륜아로 둔갑하게 되는 순간이다.
국민들이 바로 이런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저런류의 직접확인후의 인식변화과정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만약 정치꾼과 언론들이 농간해 만들어내는 가짜 이미지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고 있다라면 어찌 수구들의 농간 따위에 올곧은 정치인이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고 온통 가짜 정치인들만 활개를 치는 일이 일어날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김대중 노무현 이라는 거목이 이제 부재한 이상 여러분 개개인이 직접 그들의 시야와 혜안을 배워 정치인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감별해낼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며,이러한 과정을 참여정치라고 하며,그것을 주도하고 있는것이 바로 유시민인것이다.
8.
유시민을 비판할때 가장 흔하게 따라 다니는것이 바로 유시민한계론이다. 유시민은 약삭 빠르고,약속을 잘 지키지 않으며, 노무현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꽤하려 드는 경상도 패권주의자에 불과하다라는 일명 유시민 한계론.
이것이 왜 말이 안되는지에 관해서는 지난 번에 디테일하게 설명한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시민은 개혁당 실패의 원흉이며,그의 참여정치는 실패했으며,이 실패가 앞으로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게 될것이며,따라서 국민참여당도 당연히 실패하게 될것이란 악담은 실로 지겹기까지 하다.
유시민의 실패.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유시민의 참여정치가 실패했다라는것일것이다. 그럼 참여정치의 주체는 누구인가. 유시민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바로 국민인것이다. 그럼 개혁당이 실패했다라고 하지 말고 거기 참여한 국민이 실패했다라고 말하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럼에도 죽어도 그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책임을 유시민에게만 뒤집어 씌우려 혈안들을 한다. 그것은 책임전가측면에 있어서는 시원한 일일는지 모르겠으나 결국엔 자신이 정당의주인이 아닌 주인이 부리는 "개"에 불과하다라는것을 자인하는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작 유시민이 원하는 것은 바로 참여정치의 발전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늠하기 위해 그는 국민들이 손놓고 가만히 지켜 볼수 없는 상황을 끊임없이 유도해내고 있다. 그때 평가는 국민참여에서 나오는 것이지 유시민에게서 나오는것이 아니다. 유시민은 도구일뿐 평가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국민이기 때문이다.
헷갈리신가. 정치는 유시민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참여가 하는 것이고,그런 정치의 주인이 참여정치 구현으로서 주권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단지 유시민은 평가하고 있을뿐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여러분은 유시민이 아니라 본인들에 대한 평가만 하면 될일이다. 유시민에 관해서는 도구로서 유효한가에 관해서만 말하면 될일이다. 만약 폐기해야 될정도라면 대체재를 찾아내면 될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유시민만한 대체재가 없기에 계속 "유시민"을 이용하고 있을뿐인것이다.
만약 유시민이 싫다면 참여정치를 포기한다라고 선언하고 계속 주권을 정치꾼들에게 맡겨놓던가,참여정치를 계속하고 싶은데 유시민이라는 도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면 다른 도구를 찾아내서 유시민과 대체하면 될것이다.
전자라면 스스로 정치꾼의 개로 전락해 살길 원하는 국민들의 개짖는 소리이니 무시하면 될것이고,후자라면 다른 정치인을 대체시키거나 추가투입하면 될일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계속 유시민에게만 목메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유시민에 대해서 뒤바뀐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9.
내가 유시민에 관해 글을 몇개 썼더니 자칭 유시민 지지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라.
"글 잘쓰시네요. 님같은 분이 유시민 보좌관으로 들어가서 유시민을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이런 분들의 이런 말투는 미안하지만 유시민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되레 욕보이는것이다. 유권자 지지자란 단어구분,참여정치의 의미,유시민의 진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부류들이다.
내가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위에서 말했듯 참여정치구현의 도구로서 아직 유효하다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유시민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바로 그런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참여주권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정치판에서 자꾸 도망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떤인간은 유시민이 노무현 팔아 호의호식,개혁당 팔아 금뱃지,지지자 팔아 장관해먹었다라고 비판하더라.
만약 그가 자꾸만 뭘 팔아먹고,등쳐먹고,그래서 호의호식하려는 인간이었다라면 나는 진작에 유시민을 버렸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자꾸만 도망 가려고 한다. 당초 유시민이 정치 6년만 할려고 했다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 정도면 그는 국민들에게 주권을 돌려줄수 있다라고 "계산을 착각"한게 아니라"국민을 신뢰"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런 유시민의 기대를 배신하고 정치를 놓아 버렸다. 그러자 조선일보등이 다시 국민들로부터 주권을 거둬가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서 바로 노무현이 죽은것이다. 조선일보,정치꾼등이 야합해 노무현을 죽인것은 맞지만 그들이 범행에 사용했던 칼은 바로 국민들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린 소중한 주권을 주워 사용한것이라는 이야기다.
유시민은 바로 그 점이 울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뺏어서 돌려주려 했더니 길바닥에 버려서 그걸 수구들이 주워 사용하게 방치하네. 그래놓고 스스로 주인에서 개로 내려온 국민들이 유시민 보고 주인 노릇 똑바로 못했다고 짖어대나.
저 위에 사진을 보면 유시민의 처참한 표정이 눈에 들어올것이다. 여러분 눈에 과연 유시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수구들에 대한 원망,복수에 대한 집념,슬픔에 젖은 감성등이 느껴지시나.
천만의 말이다. "이제보니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였다. 주권과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려 했는데 그걸 땅바닥에 집어던져 버리네. 어른에게 1억짜리 수표를 주면 은행에 바로 입금을 시키거나 지갑에 잘 간수를 하고 잃어버리지 않겠지. 그러나 아이에게 주면 딱지를 접어 가지고 놀다 버리거나 종이비행기로 만들어 베란다밖으로 날려 버리는구나.
이걸 다시 난지도까지 가서 그 쓰레기장을 절규하고 돌아다니며 찾아내 돌려주고,그것을 그렇게 함부로 버리면 안된다라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 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 지겨운 짓거리를 나보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그는 분노하며 바로 이 점을 되묻고 있는 것이다. 저 사진속의 유시민은 바로 그런 의미의 표정을 짓고 있는것이다.
10.
유시민이 경기지사에 출마한다고 하니 난리를 치는 인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대구에서 죽으라고 하고,어떤 사람은 반대로 대구에서 죽어야 감동을 줄수있다라고 한다.
둘다 틀렸다. 그는 서울과 경기처럼 사람이 많은곳에 출마해야한다. 그럼 차라리 대선에 나가면 되겠군요. 천만의 말이다. 그의 방점은 참여정치에 찍혀있다. 따라서 지자제,총선등 참여정치 구현의 장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 아무 힘없이 대선에 나가 당선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무현처럼 고립당해 또 죽임이나 당하라고. 그건 너무 서글프지 않겠나. 유시민이 대구에서 출마한것은 겉으로는 참여정치 비판에 대한 반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던것이다.
즉,커리어를 쌓기 위한것도 아니고,디딤돌로 사용하기 위한것도 아닌 국민여망의 크기를 측정해보고 싶었던것뿐이다. 그 저울추의 결과가 33%로 합격점으로 나왔다.
그것은 바로 참여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지대하다라는 반증이다. 주권과 권력을 돌려주면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잃어버려 김대중 노무현같은 소중한 정치인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할테니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면서 돌려달라는 것이다.
그 사용 설명서 과정의 몸소시범이 바로 경기지사출마및 당선후 도정구현 그리고 정당활동인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뛰어들어 주권과 권력을 행사하면 된다.
그러지않고 또다시 유시민은 실패할거라는등,국민참여당은 결국 민주당과 통합할거라는등 악담을 퍼부으려 든다라면 그것은 악담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정치와 주권및 권력행사를 포기한 자신이 개로 전락했음을 알리는 행위에 불과한것이다.
그 참여정치를 통한 주권및 권력행사의 요체가 무엇인가. 바로 정치인의 임명권자인 국민에게는 한없이 cool하고,동료들에게는 한없이 dry한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뽑아 밀어올려내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내 제대로 작동하게끔 관리하는것이다.
예전에는 이런게 없는 대신 김대중 노무현 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했기에 결국 자신조차 지킬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허무하게 가지는 않았다. 이해찬 유시민이란 좋은 씨앗을 뿌려놓고 간것이다.
이들을 통해서 진정한 국민주권정치가 도모될수 있게 해주고 간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국민들이 받아내 올곧은 정치인을 뽑아내고 밀어올리고 떨어뜨리고 하는 정치 피드백과정을 완성해낼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 스스로 끝없이 참여하고 발전해 나가야만 한다. 그것이 어느정도 가능할때까지만 이해찬 유시민은 국민들을 도와주려고 할것이다. 고맙게도 말이다.
그 첫시작이 바로 dry함과 cool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시전하는일인것이다. 과연 어떤 정치인이 국민을 주권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주권과 권력을 강탈하려드는 개들을 향해 제대로된 저항을 해줄수 있을까란 올바른 시야와 혜안을 길러내는 지난한 작업. 그 시작과 어느 정도의 한단락 맺음을 바로 이해찬과 유시민이 함께 해줄수 있을거란 이야기다.
지금 그들만큼 dry함을 갖춘 정치인들은 그어디에도 없다. 한번 상상해봐라. 모든 정치인,언론인,지식인들이 이해찬 유시민만큼의 dry함을 갖춘 세상을 말이다. 그렇다라면 아마 참여정치 따위도 필요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군대는 백년동안 단한번도 사용하지 않을수 있지만 단하루라도 갖추지 않으면 바로 국가가 위태로워진다라는 말처럼 참여정치가 사라지는 순간 바로 정치수구들은 활개를 칠것이 자명하다.
정치는 오직 국민 그 수준 이하에서만 최저치로 작동하려 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감스럽지만 국민들이 끝없이 dry해질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dry한 사람들끼리는 cool하게 지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dry 함이 발휘 되어야할 장에서 dry한척 하면서 실제로는 cool 함을 발휘하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cool함과는 전혀 틀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감추기 위해 끝없이 dry함과 cool함을 교란시킨다.
여러분이 이런 교란에 속지 않고 올곧은 시야와 혜안을 발휘할수 있는 능력을 갖출수 있을때 비로소 김대중 노무현의 유산이 이 땅위에 진정으로 구현되고 그런 그들처럼 훌륭한 정치인들을 더 이상 가슴 아프게 잃어 버리는 통한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을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수 있게 될것이다.
유시민처럼 dry한 면모를 갖추고 공직에 임하는 올곧은 사람들은 일부 있겠지만 이것을 전국적 전국민적으로 확산시켜 낼수 있는 정치를 유발할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오직 유시민뿐이다.
지금 유시민은 경기지사 출마로서 국민들에게 과연 이 땅에 진정한 참여정치가 꽃피울수 있겠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제 이에대한 대답을 여러분이 할 차례인것이다. 그러한 질문과 대답이 국민들속에서 어느 정도 내려질수 있을때 유시민은 조용히 진정한 자신의 길을 고민할수 있게 될것이다.
유시민 경기지사 출마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해찬이 움직이고 있다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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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tmdwhc****
번호 976052 | 10.05.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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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이등을 이유로 서울시장 출마를 완강하게 사양하고 있던 한명숙을 끌어낸것도 이해찬이고 100% 국민 여론조사 경선방식을 이끌어낸것도 이해찬입니다. 지금은 서울시장 선거 공동본부장 직함을 맡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해찬은 한국 민주주의사에 있어서 3대대첩으로 불리는 95년 서울시장 선거,97년 대선,02년 대선을 모두 승리로 이끈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이해찬이 공을 세운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이해찬 덕분이라고 하는 것은 과한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적으로 이해찬 덕분 입니다. 이해찬이 없었다면 김대중 노무현은 절대로 대통령이 될수 없었을것입니다.
95년에 조순이 서울시장이 된것은 기적입니다. 3대대첩 중에서도 저는 이 승리를 가장 믿기지 않는 승리로 봅니다. 당시 조순의 당선가능성은 지금 차기 대통령에 허경영이 박근혜를 제치고 당선될 확률을 조사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것보다도 낮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박찬종 아니면 정원식이었습니다. 2강1약 구도가 아니라 그냥 2강구도였던것입니다. 조순은 열외였습니다. 이걸 뒤집어낸게 바로 이해찬입니다.
이때 그가 들고 나온게 바로 TV토론 입니다. 이해찬은 TV토론이 시작되면 머리에 깡통만 찬 정원식과 이미지정치의 대가 박찬종이 논리의 대가 조순 앞에서 쩔쩔매게 될것이라고 공언했는데 과연 TV토론이 시작되자 대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일부 사람들은 이해찬을 정신병자 취급까지 했습니다. 누가봐도 박찬종이 확실한데 TV토론때문에 조순이 박찬종을 이길것이다. 그럼 아이패드 때문에 허경영이 박근혜를 꺾을것이다도 말되겠구만. 뭐 이런식이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TV토론이 시작되자 2강(조순따윈 열외)->2강1약(조순 드디어 후보로 취급)->1강 2중(정원식과 경합)->1강1중1약(정원식 추월)->2강1약(박찬종과 경합)의 믿기지 않는 상승세가 시작된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막판까지 좀처럼 승리를 낙관할수 없었습니다. 박찬종이 대통령후보급 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온 두가지가 바로 박찬종의 유신발언록 파문과 이해찬의 정무부시장 자폭입니다.
박찬종이 박정희때 유신을 찬양했다. 충격적인 이슈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박찬종은 당연히 극구부인 했습니다. 그러나 조순이 즉각 TV토론도중 증거를 들이 밀었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와중에서 도덕적 치명타를 입은 박찬종은 침몰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해찬의 작품입니다.
또 하나는 이해찬의 의원직사퇴와 정무부시장 자폭이었습니다. 서울시장도 아니고 정무부시장따위 때문에 의원직을 사퇴까지 한다. 지금의 잣대로도 당선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지 않다라면 의원직 사퇴는 쉽지 않은 결정일것입니다.
그때는 지방선거가 워낙 오랜만에 실시된것이라 더욱 그랬습니다. 더욱이 서울시장도 아니고 부시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해찬은 이를통해 지자제 탈환이 2년뒤의 대선승리에 있어서 얼마나 전초적의미가 있는지를 김대중은 안된다는 패배의식의 나이브함에 쩔어있는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몸을 폭사해 건국이래 최초의 정권교체. 그것의 불쏘시개가 되려 했던것입니다. 그것도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말입니다. 결국 선거초반 2강(조순따윈 열외)의 구도는 선거막판 이 두가지 사건으로 인해 조순 42.4% 박찬종 33.6% 정원식 20.7%의 대역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훗날 97년 감격적인 첫 정권교체의 디딤돌이 됩니다.
이 97년 선거에서도 사람들은 이해찬의 역활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것은 사실상 기적입니다.
당시 자민련은 충청권전역뿐만 아니라 대구 경북지역까지도 초토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민련과의 연합. 여기에 이인제가 경상권을 중심으로 500만표 이상의 표를 이회창에게서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IMF외환위기까지.
이 전부분에 이해찬이 개입하지 않은곳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김대중 자신의 공도 큽니다. 흔히 김대중의 3가지 공을 들라고 하면 독재정권과 맞서 야당의 존재수호,87년 직선제 쟁취 그리고 91년 지자제 쟁취를 듭니다.
이중에서도 저는 지자제쟁취를 김대중의 가장 큰 업적으로 봅니다. 사실 이것은 노태우정권때 5공 청산과정에서 얻어낸것입니다. 그러나 3당야합이 일어나면서 슬그머니 수면아래로 가라앉습니다. 바로 이때 김대중이 장장 12일에 걸친 목숨을건 단식으로 지방의회와 지자제선거실시를 위한 법개정관철을 이뤄내 95년선거가 실시될수 있었던것입니다.
김대중은 바로 이 지자제 쟁취만 해내면 사상최초의 정권 교체 교두보가 열리게 될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도 최소한 2번연속 정권지속이 가능할것이라고 보았습니다.
why? 당시 선거라는것은 신문과 유세가 다였습니다. 결국 돈과권력이죠. 이른바 권력에 의한 금권선거,관제선거가 되버리고 마는것입니다. 아무리 바둥거려도 절대로 그 틀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지자제가 정착이 되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커버할 선거횟수,지역 그리고 사람의 숫자가 급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숫자란 결국 국민을 말하는것이고 국민참여를 말하는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에 힘입은 국민정부,참여정부의 등장이 가능해 지게 되리란 예측이었던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론 책과 학원수강증에 불과한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도구가 주어진 시작에 불과한것이지 그것이 내실을 만들어내기까지는 또다시 고단한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해찬이 바로 그에 대한 해법으로 "바람"을 내놓았던것입니다.
수십년에 걸쳐 독재정권과 수구언론의 프로퍼갠더에 쩔은 국민들. 그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깨어나게 하려면 최소 30~7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할것 입니다. 죽어야 끝이 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역사,교육,언론의 폐혜라는것이 그토록 지대한것입니다.
결국 단기적으로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합리적인 설득을 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의 한계를 넘어설수 있는 감성적공명으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던것입니다. 조순 산신령,김대중 인동초,노무현 눈물등은 바로 이런 이해찬의 철저히 계산된 논리적 프레임위에서 탄생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정판이 바로 2002년 대선입니다. 2002년 대선직전 노무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자신의 지지율은 횡보하는 가운데 정몽준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고 그 속에서 이회창의 당선이 확실해져 갔기 때문 입니다. 당연히 단일화 압박이 거세졌습니다.
노무현은 단호히 거부 했습니다. "단일화 가능성은 0.1%도 없다."그러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정몽준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일까. 정녕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일까. 주위에 물어본 결과 대세는 단일화는 있을수도 없다라는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끝까지 완주.
이때 이해찬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섭니다. 단일화에 응해라. 여론조사로 가자. 노무현은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에 지면. 나의 정책 가치 철학을 믿고 지지해준 유권자의 신의를 배신하는것이 되는것이 아닌가.
이해찬의 대답은 단호 했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 죽어라. 이해찬은 단일화 여론 조사에 응하는 것이 신의를 배신하는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믿지 못하는것이야말로 신의를 배신하는것이라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해찬이 믿었던것은 당시 여론의 향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인터넷의 힘과 폭발력이 이끌어낼 "바람"이었습니다. 반면 정몽준은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신문등의 기득권 매체를 신뢰했습니다. 인터넷대 조중동. 그 결과는 인터넷의 압승이었습니다.
단기간의 승부에서 자금력을 앞세운 언론 도배와 지명도가 아닌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조회수와 댓글. 그속에서 이루어지는 쌍방향 소통과 무한 피드백 과정에서의 신뢰망 구축. 그 구축 과정에서 파도처럼 일어나는 이성적 신뢰와 감성적 공명의 물결.
정몽준은 결국 그 앞에서 허망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던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인터넷의 힘만은 아니었습니다. 이해찬은 민심의 수면 아래에서 끓어 오르고 있는 국민적 분노와 변화를 향한 열망의 에너지는 엄청 났지만 그것이 훌륭한 정치인과 융합해 제대로 점화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제대로 간파했기에 이 셋을 "단일화"란 재료를 매개로 그것을 단 한번 단 한지점에 모아 폭발 시켜낼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당시 노무현이 없었다면,인터넷이 없었다면,극한의 분노와 열망의 에너지가 없었다면,이해찬이 없었다면,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라서 지금처럼 언론을 조작하고 인터넷을 탄압 했더라면 이 중 단 하나라도 없었다면 승자는 노무현이 아니라 정몽준이 되었을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해찬이 없었더라면 결국 단일화는 없었을것이고 노무현은 결국 패배했을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번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장을 탈환해야 차기대선을 탈환하는 교두보가 된다는점. 경기지사부분에서 후보단일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
결정적으로 이해찬이 직접 한명숙을 후보로 밀어 올리고,선거 본부장으로서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이번 지자제 선거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유시민과는 둘도 없는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하다라는점등이 그러합니다. 이해찬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장 절체절명의 변곡점에선 시기에 또 한번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 있게 된것입니다.
그런 이해찬의 무서운 점은 논리적이고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감성적이고 숙명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자신이 합리주의적이면서도 그한계를 명확히 인식 돌파해낼수 있는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인물이라는것입니다.
이런 인물은 이해찬전에 딱 한명 있었습니다. 그렇죠. 바로 김대중이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사에 있어 최대거목으로 기록되고 있는 바로 그 풍운아입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정치현역으로는 이해찬 단 한명만이 남았습니다.
노무현은 김대중처럼 합리적이긴 했지만 정몽준과의 단일화에 응하라는 이해찬의 서릿발같은 요구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반면 김대중은 고개를 끄떡이며 기꺼이 응했습니다. 자민련과의연합을 외형적으로 진두지휘한 사람은 한광옥,김용환 같은 인물이었지만 뒤에는 이해찬이 있었습니다. 실무는 그가 다한것입니다.
유시민 또한 김대중처럼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처럼 치밀한 사람은 못됩니다. 많은 사람들,심지어 유시민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유시민이 대권욕이 강하다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옳다고 믿는바대로 행동할뿐이며,그 길 그대로 나아갈뿐인것입니다. 서울시장이건,경기지사건,대통령이건 그게 욕심 만으로 될수 있는것일까요. 아닌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원래부터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해찬에게 배운것입니다. 그가 만약 혈기방장한 30였대였더라면 그리고 노무현처럼 02년 단일화상황이었더라면 그는 아마도 그처럼 등에 식은땀을 흘렸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몇년전 언제부터 김대중처럼 초연한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믿는 바대로 대의를 추구하며 나아가되 최종부에서는 대세를 추인할줄 아는 큰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이 노무현이 되어가고 있는것이 아니라 김대중이 되어가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이해찬으로부터 배운것이며 좋은것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안좋은것이기도 합니다. 이해찬은 냉혈한같은 인간입니다.
그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물러설줄 압니다. 그래서 역으로 그는 멀리 넓게 볼수있는 양수겸장의 면모를 갖출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가 한쪽면만 갖춘 노무현과 만났을때 부족한 면을 채워주며 가장 큰 시너지가 발휘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추가 유시민에게로 기울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유시민의 김대중화인것입니다. 많은사람들은 유시민에게서 제2의 노무현을 기대하겠지만 이제 그런 기적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단기필마의 효용은 노무현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효용은 무려 60년 간에 걸쳐 민주주의와의 투쟁,직선제쟁취,지자제쟁취등으로 이루어낸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그걸 또 만들어내기 위해 60년을 싸워나가느냐. 아니면 합리적인 힘,감성적인 힘, 그리고 연대의 힘등을 총동원해 새로운 버젼을 만들어내느냐의 두길중 하나의 선택만이 남게되는것입니다.
국민들을 하나하나 합리적으로 설득시킬수도 있어야 하고,그러면서 전혀 이성기반적이지 않은 감성적인 바람을 불러 일으킬수도 있어야 하며,정치를 구도적으로 재편해내 국민 앞에 투표의 당위성을 깔아줄수도 있는 세가지 능력을 겸비할수 있을때만이 오로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라는것입니다.
유시민은 그중 두가지를 갖춘 유일한 현역정치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부분 ,그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기 위해 이해찬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로 이해찬이 움직이며 정치구도 개편을 서서히 해나가고 있는것입니다. 그는 지금 분명히 정치인으로서의 욕심은 부리고 있지 않지만 구도재편의 욕심은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권장악,당대당통합,당대당연대등의 모색등을 혹은 "만을" 의미 하는것이 아닙니다.
바로 인물을 정점에 놓고,정책 가치 철학을 포함한 모든것을 망라해 양보해줄수 있는 카드를 말하는것입니다. 유시민이 어디까지 성장할수 있느냐는 역설적으로 오직 두가지에 달려있는것입니다. 하나는 그가 독자적으로 어느수준의 바람을 일으켜 낼수 있느냐. 또다른 하나는 그가 어디까지 양보해낼수 있느냐하는것입니다.
전자는 유시민펀드 2일만의 모금으로 어느정도 입증되었습니다. 지지율도 지금 시중여론조사기관의 결과는 한나라당 당직자들조차 믿지 않는 상황입니다. MB 열풍으로 전국이 초토화되어 가는 와중에서 대구의 심장인 수성구에서조차 33%의 지지율을 얻어낸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시민에게 필요한것은 앞으로 얼마 만큼의 양보를 해낼수 있느냐 하는 그릇의 크기를 보여 주어가는 일이 될것입니다. 정답은 최종적으론 "아내만 빼고는 다 내주어야 한다"라는것입니다.
그것은 유시민이 노무현식 정치를 하고 있다라는 분통과 음해를 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다가가 김대중식 정치를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광주와 대구가 만나는 정치를 하겠다라는 의지를 표출하는 것입니다. 유시민에게 지금 필요한것은 바로 광주이고 광주정신이고 그리고 김대중정신인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김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유시민을 국민들에게 알려 나가는것입니다. 그길을 지금 이해찬이 움직이며 하나하나 깔아주고 있는것입니다.
이해찬은 이미 한손에는 한명숙을 쥐고 그를 통해 여성계 전체의 표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다른 한쪽 으로는 유시민을 쥐고 그를 통해 노무현 지지자 전체의 표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이것에 광주를 더하려 들것입니다.
이해찬은 광주정신을 입에 언급할 자격이 있는 몇안되는 정치인중 하나이며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유시민을 아우를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 이기 때문 입니다. 바로 지금 그 이해찬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해찬의 안목과 능력 그리고 정권교체를 향한 국민적열망을 믿기에 결국 서울시장은 한명숙 경기지사는 유시민이 될것이라고 보며 차기 대선 또한 한명숙 유시민 둘중에서 박근혜를 제압하는 승자가 나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해찬의 초상 1 [6]
슬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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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976070 | 10.05.03 15:07
조회 1634
이해찬의 인상에 대한 평은 대략 후하진 않다. 좋게 말하면 샤프해 보인 다고 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날카롭게 보인다고 말한다. 본인은 그걸 약시와 난시 탓으로 돌린다. 멀리 바라 보면 자연스레 얼굴이 찡그려 진다는 거다.
그러나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듯이 그건 핑계는 될수는 있어도 이유가 될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얼굴은 마음을 닦은만큼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의 핵심은 결국 대중 정치를 꿈꾸는 사람 이라면 결코 피해 갈수 없는 이미지 관리의 요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흔히 이미지 관리의 실천 방안으로 자주 웃고, 인사하고, 칭찬 하라고 한다. 그럼 이해찬이 그런 것들을 통 안하고 사는 것일까? 그렇진 않은것 같다. 사적으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만큼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은 드물다고 이구동성 으로 이야기 한다.
그럼 그에게선 왜 유독 남들보다 좀 더 냉정한 평가가 불거져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그의 외모나 사적 영역 에서의 품행이 아닌 공적영역에서의 업무 태도에서 주로 기인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으로 잘해 주면 설령 공적으로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그냥 눈감고 대충 넘어가 주는 식의 행동을 잘 하지 못한다. 일단 업무의 의사 결정과 판단 과정에 돌입하게 되면 사적인 안면을 철저히 몰수하고 오로지 공적인 도덕률에만 좌우 되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의 사적 친분만을 믿고 느슨하게 업무를 논의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종종 낭패를 겪게 되어 유독 독불장군스러운 그의 그런 행태를 아주 못마땅 하게 여기게 되고 업무 처리에 있어서 매우 유능하고 합리적인 인물 이기는 하지만 사적으로 어울리거나 무리짓는 과정에 있어서 내밀한 논의를 함께 해도 좋은 인물로 까지는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선입견은 정치인과 정치인,정치인과 기자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적 네임벨류의 평가 라인에서 대단히 박약한 평가를 불러오게 만드는데 단단히 일조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이해찬은 너무 드라이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각의 그런 냉랭한 평가는 그가 정치 인생에서 마음 먹고 도전한 세번의 국회 선출직 선거에서 모조리 낙선 하게끔 만드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96년 원내총무, 00년 최고위원, 04년 원내대표 선거등 세번의 실패 직후마다 이해찬 에게는 즉각적으로 그에 버금가는 직책들이 떨어졌다. 96년때는 정책위의장, 00년 때 다시 정책위의장, 그리고 04년 때는 국무총리에 기용이 된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 했을까.
바로 이해찬의 주위 로는 공사를 구분 못하고 인정과 사적 안면에 좌우 되는 인간들이 많았지만, 그 위로는 적확하게 인재를 적재 적소에 등용 할줄 아는 김대중과 이해찬보다 더욱 드라이한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우뚝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이해찬이 동료들에 의해 바닥으로 내리꼿혀 꼬꾸라 질때 마다 올바른 평가에 기반해 일으켜 세워 제자리로 돌려놓길 반복했고 고비처 마다 그를 불러 중용 하길 잊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매우 가능성이 희박한 이해찬식 스타일의 성공 그 이면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 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척박한 풍토에도 개의치 않고 무모할 정도로 공익적이고 내면적으로 가치판단을 들이댈줄 아는 올곧은 한 정치인과 시대를 한발 앞서가는 시야와 혜안을 가진 두정치인의 올바른 평가가 공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의 정치적 거목이 되는 길엔 전적으로 공적 마인드에 기반한 정치를 펼치고서 동료 정치인들에게 쿨한 평판을 얻어내는 것 그 몇배 이상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그가 김대중 노무현이란 확실한 저울이 작동하지 않는 국민의 평가란 영역 속으로 자신을 내맡기기까지 얼마나 고심을 했을런지는 그의 성격과 기질을 미루어 보건데 짐작키 어렵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커다랗게 그에게 다가왔을 장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의 성공 전례 그 자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성공을 가능 하게끔 만든 외양적 조건과 지지 기반은 예의 드라이한 행태의 고스란한 답습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사회의 토양은 그것을 되풀이 하기에는 매우 척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쪽이 처한 상황적 입지 하에서는 국민의 가슴에 공명 할수 있는 능력 혹은 쇼맨쉽에 기반한 정치적 슬로건 구호의 제창 만으로 확실한 돌파구를 보장 받을수 있는 처지가 아니란 얘기다.
정치참여 전문 집단의 점증으로 인한 사회적 다원화와 이에 따른 세분화된 정책적 실현욕구의 분출,이것이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기득권적 장벽의 여전한 견고함과 정체 현상의 누적들로 인한 피로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정당 체계의 판갈이 시도의 실패와 거기에 자발적으로 참여 했던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 하게 유발ㅤㄷㅚㅆ던 좌절과 은둔.
거기에 다시 새로이 신뢰와 희망을 불어 넣을수 있는 작업의 형태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정확히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할수밖에는 없다. 우리 내부에서조차 그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지나칠 정도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분명한 것 하나는 모호하고 불투명한 제세력간 이해 관계간에 합의와 연대를 모색해 내는 역활은 주변부에서 맴도는것이 아닌 오직 그 중심 속으로 뛰어 들었을 경우에만 설정 가능한 것이며, 현 정치 역학속에서 이해찬이 차지하는 비중에는 그것을 중재하고 정리해내는 역활을 뛰어넘어 이니셔티브를 거머쥘수 있을 정도의 역사적 적통성이 무게감 있게 부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해찬은 과거 이 부분에 대해 여러차례 부연한 적이 있다. 자신은 호감가는 인상도 아니며 대중적 인기가 부족하다는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과 역사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서 여러분 앞에 나서게 됐다.
시대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인물상이 무엇이냐.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 나오는 요구들을 제대로 된 사실 관계로 엮어내 합리적인대안으로 매듭지어 달라는것 아니냐. 나는 언제나 부단한 노력으로 지적 통찰력을 쌓으려 노력해 왔으며 그 위에서 모든 제반 사안들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내 언제나 합리적인 해결점을 도출해 왔다고 자부한다라고 말이다.
나는 다름아닌 이 부분에 그의 역사적 적통성의 본 모습이 담겨있다 라고 본다. 이제 단순히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핵심요직을 맡은 과거 전력이나,그들의 심중에 차기를 이어갈 최적의 인물로 각인되고 있다는 사실이 적통성으로 운위되는 시대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것이 누가 시대적으로 요청 받고 있는 과제들을 합리적인 리더쉽으로 처리해 낼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 보며, 이해찬 후보가 총리시절 보여 주었던 원전 방폐장 문제, 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해결 과정 등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잘 증빙 되었다고 본다.
물론 그런 그에게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 가치 부여를 해줄지에 대한 확신은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해찬이 갖는 초상에 대하여서는 몇마디 논할수 있겠다. 그것은 이제 일은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특정 정치인과 언론의 고의적 외면에서 기인한 대중적 성향의 부족으로 선택의 오류에 놓여지게 되는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적성찰이 갈수록 광범위하게 일어나고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해찬의 부상이 그러한 국민적 역량의 성숙 여부에 대해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적어도 정당 정치에서는 정체되고 후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 그럴수 밖에 없는 한계적 현실을 내재하고 있는 우리 정치지만 합리적인 인물을 끊임없이 선택해 냄으로서 우리 정치가 처한 기득권적 질서의 모순을 다시 한번 극한으로 끌어 올려 보여 줄수 있다만 있다면 그 괴리의 역설로서 거기에서 개혁 아젠다에 대한 또 하나의 담론과 희망을 이끌어 낼수도 있다 라고도 본다.
만약 때로는 정체성이 이기적이고 때로는 방향성이 흔들리기도 하지만,역사의 긴 흐름 한 가운데에서는 늘 정의로운 선택을 해온 국민에 대한 이해찬의 믿음이 헛되지 않은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좀 더 진일보한 결과물이 나올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최종적 결과물이 이해찬 일지 아니면 다른 누구 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던 것처럼 그가 폭풍의 핵으로 진입하고 있는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국민적 선택의 몫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해찬의 모습이 보고 싶다.
이해찬의 초상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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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976060 | 10.05.03 14:56
조회 1130
나는 이해찬을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도 없고 편지나 이메일로 대화해 본 적도 없다. 그에 대해서는 어느 날 문득 관심이 생겨 그에 관해 쓰인 저서를 한 권 찾아 읽어본 게 전부다.
그러나 책을 본 후 그에 대한 호감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그 속에는 그가 민주화 운동으로 두 번 투옥을 경험한 후 비교적 연소한 나이에 정치에 뛰어들어 별 어려움 없이 내리 5선에 당선되고 그 와중에 정책위의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등의 요직을 두루 경험했던 화려한 이력만 무미건조하게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화려한 경력과 책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드라이한 그의 내면적 성격과 행보부터가 잘 매치가 되지를 않았다. 여느 유명인의 자서전에서나 흔히 보이던 적당한 정도의 분칠 이상의 느낌이 적어도 나에게는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학생 시절 목숨을 던져 독재에 항거하다 두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력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경력을 가진 정치인은 주위에 그 말고도 많다. 김대중만 하더라도 그보다는 훨씬 굴곡이 질퍽했던 정치 행보를 걸어왔다. 되레 목숨을 건 민주화 운동을 하고도 형장의 이슬로 허망하게 사라지거나 아무 대가나 보답 없이 은둔 된 황폐한 삶을 살다 말없이 이 땅을 떠나간 이름 모를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다.
그는 유능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는다. 말 그대로 그는 여지껏 직책을 맡을 때마다 늘 공부하고 늘 연구해가며 언제나 기대 이상의 발전적 성과를 보여주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건국 이래 임명직이나 선출직을 수행하면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수많은 인사들을 딛고 일어서 오로지 혼자서만 독야청청할 정도의 압도적 그 무언가는 절대 아니다.
기득권들의 패거리 문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상황에 따라 본심과는 다른 거짓을 밥 먹듯 쏟아내는 위선을 견딜 수 없어하는 쿨한 정치인을 찾는다면 그는 그 점에서도 노무현 그 이상은 결코 아니다. 그럼 그만을 좋아하고 지지해야 할 그 무언가를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내게 그 계기가 된 지점은 이후 그에 관한 자료들을 여기저기서 하나씩 스크랩해가면서 찾은 그에 대한 한가지 중요한 발견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드라이하게 자존심과 철학을 고수했지만 중요한 결정적 고비에선 의외로 쉽게 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승산은 없지만, 국민의 날 선 시선을 의식해 명분에 집착하는 척 소득 없는 투쟁만을 밀어붙이던 동료의원들로부터 날 선 원성을 사는 계기가 됐다.
이해찬이 지나치게 현실 순응적이라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이해찬이 손에서 놓은 것은 명분이 아니라 타이밍이었을 뿐이다. 그는 수로 승산이 없을 때 일단 중단한 뒤 후일 덜 중요한 법안으로 딜을 해 미리 우군을 확보해 놓은 뒤 투쟁중단 이후 모두가 방심하고 있는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 허를 찌르며 중요 법안을 통과시켜 냈다.
수구신문이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이해찬은 정책 방향은 절대로 굽히지 않되 그 시기는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찬사를 할 정도로 발군의 능력이었다. 이런 이해찬에 대한 그들의 호평이 힐난으로 돌변한 이유는 그가 후에 이런 식으로 관철시켰던 법안들이 복수노조, 전교조 설립 등 하나같이 그들에게 당장뿐 아니라 두고두고 후환을 가져올 우환 법안들이었기 때문이다.
전교조 설립 같은 경우 이해찬이 단순히 재야의 숙원을 정책 공조 차원에서 풀어주는 의미로 통과시킨 법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수구 기득권의 뿌리가 가짜 지식인들의 소굴인 학원과 신문이며 이들과 맞설 견고한 대항조직의 설립 없이는 그들과의 대결이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밀어붙인 것이며 복수노조 또한 유령 노조의 설립으로 노조활동을 방해해온 재벌의 횡포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바로 세워내기 위한 유일한 길임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의원들이 그런 본질적 법안들은 수구세력의 저항이 심하다는 이유로 외면한 채 다른 껍데기 민주 법안들의 발의숫자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이해찬 만은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국회에서 국가유공자 중 친일혐의자를 색출 퇴출하는 법안을 발의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해찬은 이 법안의 방향이 옳지만, 타이밍은 좋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일단 얼마 못 가 수구신문의 등쌀에 못 견디고 도망갈 게 눈에 훤히 보이는 동료 들의 요청에 조용히 응했다. 결국, 동아일보가 발끈하자 동료 의원들은 모조리 도망쳤고 이해찬만 덩그러니 남아 몰매를 맞았다.
그 후 이해찬은 이번에는 모두가 거부하던 교육부 장관직을 맡았다. 모두가 거부했던 이유는 김대중이 교사를 자르고, 교육예산을 줄이고, 사학비리를 혁파하라는 개혁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IMF의 요구로 교원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 한 마디로 손에 피를 묻힌 뒤 정치적 자살을 하란 소리였다. 그러나 이해찬은 말없이 묵묵히 교육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찬찬히 왜곡 교과서를 뜯어고치며 친일 사관에 물들어 있던 공직사회를 조용히 뒤집어엎어 버렸다. 그러나 사학은 건들지 않았다. 대신 사학의 부당한 횡포질을 묶는 법안들을 만들어 계속 국회로 날렸다. 이번에도 동료 국회의원들은 법안통과는 미지근거린 채 사학(특히 서원대사건)을 조지지 않는 이해찬의 우유부단함을 맹공했다. 그러나 이해찬은 이번에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덩그러니 혼자서 몰매를 얻어맞았다.
결국, 얼마 못 가 촌지 개혁작업을 벌이다 교총과 수구신문의 총공세를 받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그 이후로도 지속했다.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전교조가 교총에 대항할 정도로 커져 잘못된 친일 역사를 바로 세우고 수구 신문의 해악을 학생들에게 가르쳐낼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또한, 뉴라이트계열이 이해찬이 교육부에서 개조시켜 놓은 아이들 때문에 친일매국사관으로의 교육과정 개선작업이 어렵다며 이를 박박 갈 정도로 그는 여기저기 대목을 심고 나왔다.
이런 식으로 이해찬이 심어놓은 수구진영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위력의 씨앗들이 지금 이 순간 사회 곳곳에서 드디어 자라나 영글어 터지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친일 매국노 경제파탄세력이 나라를 절단 내는 와중에 이해찬의 정치적 위상은 민심의 물밑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시류와 현상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해찬 그만이 가지고 있는 놀라울 정도의 웅대한 정치적 심혼을 느낀다.
적어도 이해찬이라는 인간을 단순히 일 잘하는 정치인 정도로 바라보는 것은 그의 진면목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단견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정치인에 요구되는 식견 경력 지성은 물론이요 눈높은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자존심과 철학 그리고 위선과 싸울 줄 아는 강직한 인품도 두루 갖춘 신뢰감 있는 정치인이다.
무엇보다 내가 그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스크랩해 보면서 느낀 점은 그만큼 강직하게 수구세력과 맞서 싸워낼 만한 현역정치인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그간 수구신문은 야권의 분열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아왔고 그 첫 번째 작업이 죽일 정치인과 살릴 정치인의 분류였다.
이에 따라 근래 야권사 중 유능하면서 수구신문과 진정으로 날을 세우고도 피 흘리지 않았던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수구신문과 날을 세우고도 피를 흘리지 않은 정치인은 상대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능하거나, 가짜로 날을 세운 매명 정치인들뿐이었다. 예외적으로 매명질과 계보질에 도취되어 보스 대신 수구신문과 대결하는 정청래 같은 정치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수구신문에 있어 정청래는 깜이 아니고, 정동영은 살릴 정치인이다. 왜냐하면 그는 분열의 최적작업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동영은 이후 수구의 염원대로 김대중 노무현 이해찬의 등에 차례로 칼을 꽂았다.
이런 간악한 수구언론의 농간질에 가장 심한 고초를 당했던 정치인이 바로 김대중 노무현이다. 그리고 현역 정치인 중엔 오직 이해찬만이 남아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존재가치는 이 시점에 찬란한 빛을 발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조국을 팔아 매국하고 환란을 불러 일으켜 경제를 파탄 낸 세력들이 책임을 지기는커녕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앉아 이런 세력을 이해관계로 엉켜 비호하는 재벌 수구신문들과 함께 특권과 반칙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세력에 한 마디 일갈 할 수 있는 정치인의 존재조차 씨가 마른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안하무인이 된 수구들에 의해 공안정권 경찰국가 독재정부의 본 얼굴로 되돌아가려는 광기가 사회 전반을 온통 뒤덮어 가는 암울한 시국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구들의 오랜 작업의 산물인 것이다. 허니 그 속에서 당당하게 정면 대결을 펼치고도 피투성이가 되어 살아남은 이해찬의 존재감이 이런 난국에서 어찌 빛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은 정책, 가치, 철학 나위로 말장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건 기본으로 갖춘 진짜 정치인이 나서고 용감한 국민이 합세해 60년에 걸쳐 나라를 거덜내온 경제파탄 수구 친일매국노들을 척결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향한 사회적 분노의 에너지도 충천해 지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그 위난에 처한 나라를 누가 구할 것인가. 그럴 능력은 물론이요, 자격까지 겸비한 정치인은 오로지 현재로선 이해찬뿐으로 보인다. 그것이 지금 이 시점에 내 눈에 비친 이해찬의 진정한 초상이다.
김대중의 유산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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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976077 | 10.05.03 15:16
조회 2033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따른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한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하늘이 바로 국민인것입니다.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수 있는
국민에게서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습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中
-1993年 김대중
예전에 70~80년대에 저희집 근처에서 김대중 전대통령께서
연설하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먼곳에서 운집해 빈공터를 에워싸고
그 분의 연설을 듣더군요.
어떤분은 저희집 옥상에 올라가 함부로 장독대까지 밟고 올라가
그분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군요.
결국 장독몇개가 깨졌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물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날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끝나고 사과드린뒤 물어드리겠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물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저분의 연설이 그토록 당신을 사로잡는 것입니까.
저 연설을 듣기위해 회사까지 빠지고(당시만 해도 그런게 어렵던 시절입니다)
남의 집을 밀고 들어와
장독까지 깨면서 봐야 합니까?"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희망입니다."
"네?"
"희망이라구요.
제겐 유일한 희망..
하루에 18시간을 일하고 한달에 두번 밖에 쉬지 못하는
희망없고 낙없는 비천하고 고단한 노동자의 삶이지만..
저분을 보면 언젠가는 우리같은 천한 노동자에게도
사람답게 살수있는 희망의 서광이 비칠날이 혹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줄분이 정말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말입니다.
그래서 모든것을 제쳐놓고
달려 왔습니다."
"정권교체라..
언론이 진실을 말할수 있는 시대라..
국민을 위해 국민을 사랑하고 정치할수 있는 대통령이라..
그런 날이 과연 올까요?"
"올거라 믿습니다.
믿고 희망을 놓지 않으면
이땅에도 반드시 민주주의가
도래할거라 믿습니다..
여기 구름처럼 운집한 수십만명의 사람이
그걸 입증한다고 봅니다."
(전 아직도 그때 그분의 기름때 쩔은 옷과 그럼에도 그 옷조차
흥건히 물로 적셔버릴 정도로 연설내내 그분의 목을 타고 흘러 내린 그분의 눈물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분의 나이가 40-50대 후반 정도로 기억하니
아마도 지금쯤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과 열망은 헛되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위대한 진전을 이룰수 있었습니다.
그 영광과 희열의 위대한 순간의 한복판에
바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의 품으로 돌아가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이땅위에 뿌리고 간 위대한 노력과 사랑과 그리고 열정을 말입니다.
그 모든것들을 남은자가
이어받아 행하고,
또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줌으로서
사람사는 세상..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갈수 있도록
한알의 밀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님을 따라갈겁니다.
그 언제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3분 중에 올해에만 벌써 두분이 가셨군요.
노무현님 그리고 김대중님
이제 저희 어머님만 남았습니다.
좀 더 오래동안
최대한 오랫동안 이세상을 함께 하고 싶은데
과연 그날이 언제까지 일진 모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뵙게 될겁니다.
조만간..
그때까지 산자로서의 소명과 의무를
잊지 않고 행하겠습니다.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정말로 슬픈한국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노무현의 유산 1 [14]
슬픈한국
chltmdwhc****
번호 976037 | 10.05.03 14:37
조회 2133
"가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외롭게 버려져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세계에 몸담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들...
아내는 대체로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다. 특히 1990년 3당합당을 반대할 때 그랬다. 그렇지만 내가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는 아직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정치를 하거나 말거나 한국정치가 달라질 것이 없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다.
아직도 나와 한참을 더 싸워야 할 것 같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씨!! 우리 같이 한번 미쳐보자 응??"
-하로동선 시절 中 노무현.
미친 꿈이란 무엇일까..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그런 것일 수 있고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것일수도 있습니다.
생전 노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적어도 이런 것들에 대한 정면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거부했던 "노무현"의 키워드는 이제는 이런 것들이 미친 짓으로 치부되도록 한국정치를 발전시켜 달라는것에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죠...
어느 어린이날을 맞아 노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꿈이 있었는데 꿈보다 조금 높게 되어 버렸다."
노 대통령은 나의 꿈은 사실 정치에 있지 않았고, 수도 없이 정치를 그만두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계속 끌려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바로 그랬기에 그는 목표했던 것보다 조금 더 높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뱃지를 달았으나 그 뱃지를 욕심내지 않았고,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 자리를 탐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그 자리들이 어떡해야 국민의 의사대로 움직여줄 수 있는 시스템 속에 바인드될 수 있는가 만을 고민했었고 지금도 아마 하늘에서 그것만을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미친 꿈을 꾸는 사람은 누구..
누군가는 4년 혹은 5년간 어느 정치인의 개줄에 묶여 살 것인가 하는 선택만을 편하게 고민하지 말고 상처받고 아픔도 겪으며 당당히 참여해 주권을 행사하라고 국민들에게 거침 없이 요구 했습니다.
아고라처럼 먹고사니즘을 훼방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자발적 참여세력의 증대는 이러한 시대적 주문에 대한 화답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지시에 따라, 국회의원들은 당원의 지시에 따라 정치하고 각 정당들은 국가와 국민를 위한 정책만을 입법해 나아가는것. 보수는 조금 더 가깝게, 진보는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시차의 차이 이외에는 하나의 목적으로만 균일되는 정치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램들이 또 다시 미친 꿈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제왕정치, 지역주의를 포기 못하겠다고 합니다. 자유선진당 민주당 등도 보스정치는 몰라도 지역주의는 버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차라리 민주주의 아예 못하겠다고 버티는 한나라당이 솔직할 지도 모릅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쥐어주면 나라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그들은 대놓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상위 2%가 부와 권력을 장악한 나라에서 어느 것이 정상일런지는 알아서들 판단 하겠지요.
그에 반해 민주당의 정체성은 도대체 뭔지 의문 입니다. 한나라당은 총론,각론 모두 민주주의 못하겠다고 선언한 집단인데 반해 민주당은 총론에서는 하겠는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못하겠다고 버티는 집단으로 보입니다.
노무현이 예전에 결혼식 축사에서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 있습니다. "너무 큰 기와집을 짓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불안해하지도 마십시오. 30년쯤 지난 선배로서 내게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신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 저게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생각해 봤는데 이 시점에 딱 적합한 말인듯 싶습니다.
소신과 신념은 언제나 시련의 시간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시련속에서도 희망과 열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사랑과 다시 조우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노무현에 대한 국민적 사랑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대통령 재임시절 임기 내내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서 벗어난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것입니다. 댓가로 그는 5년 내내 거친 시련에 시달렸습니다만 그 시련속에서도 국민에 대한 희망과 내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놓지않았기에 결국 반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닥으로 내려갔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국민적 사랑의 실체는 실상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던 것뿐일런지도 모릅니다.
정치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희망과 열정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사랑과 지지는 결국 다시 돌아오며, 그것은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임을 결국 깨닫게 되는것일뿐입니다.
노무현은 2%의 수구 기득권 때문에 임기 내내 미친놈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98%의 국민을 바라보고 묵묵히 이겨냈습니다. 지금 그 노무현의 임기가 끝이 났고 이명박이란 정반대 극단에 서있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그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할까요? 저는 아직 잘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국가의 운영권을 진정으로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개혁의 적임자가 다시 전면에 나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물이라면 지금쯤 동료 의원들 또는 수구 기득권 들에게 미친놈 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 그럴게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 시련쯤은 능히 이겨내며 국민들에게 개혁을 안겨줄 수 있는 정치인이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거라 기대합니다.
만약 그러한 정치인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는 분명 생전 노무현 대통령처럼 어느 어린이 날에 아이들을 청와대에 불러놓고 "꿈이 있었는데 그 꿈보다 조금 높게 되어 버렸다." 라는 말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개혁을 미친듯이 열망하고 있는 국민적 에너지는 그토록 거대한 것입니다.
미친 꿈. 노무현의 그 위대한 유산..
그럼 그 거대한 국민적 에너지를 어디로 모아 내야 할것인가. 현재 로선 이명박 다음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99.9%입니다.
그녀는 이명박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배금주의자입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며 오로지 돈모으기를 국가와 국민의 목적으로 지향하는" 배금주의 말입니다.
그들은 선전합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오직 돈이 없는것이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패해도 좋으니 돈을 모아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부자가 될수 있고 행복해 질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죠.
지난세월 전세계는 오로지 통화교란에 의한 힘으로 부국이 빈국을 ,부자가 서민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는 식으로만 성장해 왔습니다.
이 수법의 특징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을 돈만 아는 배금주의자로 전락시키고, 이를 위해 그들 머리 속에서 철학적 사상을 말끔히 지워버리는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투기꾼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수구들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투기판위에서 아무 생각없이 서로가 가진것을 뺏기위해 처절한 이전투구만을 벌이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간다움은 심각하게 훼손되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제 누구도 거의 모든 사람이 투기꾼으로 전락한 매트릭스 같은 현실을 지적하려 들지 않는 처참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설사 지적하고 싶어도 지적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적 빈곤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여 고민끝에 일부에 의해 "너희들은 부패한 투기꾼 놈들" 이라는 인신공격만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없는 감정적 대응입니다. 이러한 철학 없는 비판은 이내 한계에 부딪혀 버리게 되죠.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나만 손을 놓고 뒤쳐지란 말이냐. 아니면 머리깍고 중이라도 되라는 말이냐?" 국민들로부터 이내 이런 볼멘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명박같은 수구는 "좋아, 그런 너희들은 털어서 먼지 안나오나 보자. 만약 먼지가 한올 이라도 나오면 죽여주마" 라며 악독하게 이를 박박 갈아 댑니다. 이것은 생각없는 감정적 대응이 아닙니다. 지난 수천년간 배금주의를 역사적으로 유지 시켜온 그들 나름의 지고지순한 삶의 철학방정식인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수천년간의 대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본주의 입니다. 우리는 지금 감정적 대응이 아닌 그것을 꺼내 들어야만 하는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필요한것으로 대체하라고 한다면 저는 오직 하나 "조세 복지 선진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지금 이 순간 휴머니즘이 곧 조세 복지 선진화인가.
조세 복지 선진화는 나만 손을놓고 뒤쳐지란 말이냐라는 국민적 두려움도 없애 줄수 있고, 너희는 털어서 먼지 안나오나 보자라는 국가적 폭력도 없애줄수 있고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고민해가며 살아가야 하는것인가라는 철학적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도 이끌어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로지 투기판으로 전락한 작금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상적으로 되돌릴수 있는 "유일의 길"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그것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설명하는 미시이론의 핵심화두입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무지막지하게 돈을 찍고 국채를 찍어 시장에 퍼부어라"그것은 거시이론의 만병통치약처럼 남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부질없는 이야기일뿐입니다.
공정성이 부재된 효율성,내일의 기약이 없는 오늘만을 위한 정책. 이런 발전적이기는커녕 후퇴적이고 적확한 사용을 통한 구제는 커녕 오용과 남용을 통한 면피적 수법으로는 경제발전을 통해 사람들의 행복을 도모해낼수 있기는 커녕 부패하고 삭막한 결과만이 초래될뿐이기 때문 입니다.
조세 복지 선진화는 바로 이런 사막화된 정글자본주의와 카지노시장경제를 향한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인것입니다.
노무현의 유산은 모든 국민이 바로 이런 꿈을 꾸어달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꿈도 아닌 당연한것이 미친꿈으로 치부되는 정신나간 세상을 "원칙과 상식"이 바로 서는 세상으로 되돌리고 그 세상위에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 바로설수 있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엉이바위 아래로 초연히 몸을 던진것입니다. 노무현을 죽인것은 누구입니까.
투기판속에서 나만 손을놓고 뒤쳐지란 말이냐라고 말했던 국민입니다. 너희는 털어서 먼지 안나오나 보자라고 말했던 이명박과박근혜입니다. 노무현 살해의 공범은 바로 철학없이 세상을 살아가던 우리 모두였던것입니다.
그 죄를 씻는 길은 노무현의 유산을 이어받아 우리 모두가 또다시 미친꿈을 꾸는 것입니다. 미친 꿈을 꾸는 정치인을 떠받들고 밀어 올리는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미친 꿈을 꾸어 그 미친꿈을 꿈, 그리고 꿈이 아닌 원칙과 상식으로 되돌리는것입니다.
그럼 사람사는 세상이 기적적으로 활짝 열리게 될것입니다. 지금 이순간 여러분에게 나즈막하게 묻고 싶습니다.
"또 다시 미칠 준비가 되었는가"
그 꿈에 우리가 자신있게 답할수 있다 라면 몇년이 지난 어느 어린이 날을 맞아 우리는 자식들에게 "꿈이 있었는데 그 꿈보다 조금 높게 되어 버렸다."라는 말을 인생의 황혼에서 말할수 있는 삶을 한번 꿈꾸어 보라고 말할수 있게 될것 입니다.
노무현의 유산 2 [43]
슬픈한국
chltmdwhc****
번호 976029 | 10.05.03 14:33
조회 3870
한 3~4년전 쯤의 일이다. 한창 치과치료를 받고 있느라 컨디션이 몹시 안좋았을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날 노무현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가 죽는 꿈이었다. 불길했다. 원래 꿈 자체를 잘 꾸지 않는데다 노무현꿈을 꾼적은 더더욱 없던터였다. 하여 다음날 하루종일 온통 그 꿈에 대한 생각만이 내 머리속을 지배했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저녁때 내 주위에 유일하게 노무현과 관련이 있는 지인 한명을 불러내 술을 한잔하며 그 이야기를 했다.
"지금 봐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을게 확실한데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노무현을 죽이려 들지 않겠나."
"그렇겠지,그런데 노무현이 어디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올 사람인가."
"가족,친척,측근등을 족쳐 노무현에게 연계성을 뒤집어 씌운뒤 죽을때까지 조지지 않을까"
"글쎄,그렇게까지 할까. 그런데 너 신경과민증 걸린거 아니냐. 뭐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내내 그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새벽에 다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말이야,정권을 빼앗기고 나면 한 2~3년 정도 해외로 가족이 모두 나가 있는게 어떨까. 92년 김대중이 대선에서 패한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던것처럼 말이야"
"난반댈세. 그거야 김영삼이 김대중을 조질게 확실하니 그랬던거고 노무현은 아무리 뒤져도 나올게 없잖아.그리고 노무현은 대통령 퇴임 후에도 계속 한국에 남아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관련 활동을 해야 되. 그게 내 견해일세"
그리고 몇일후 또 다시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일면식도 없는 유력인사와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지금 추이로 봐선 정권교체가 확실하고,정권교체가 되면 노무현이 바로 정치적으로 살해될게 확실하니,그걸 100% 실제도래 상황으로 가정해 철두철미한 준비를 해둬라?"
"그렇지"
"이거 미친거 아냐."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대화는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가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더이상 듣고 있을 이유가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꿈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이후 대통합 민주신당에서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이 벌어졌다. 최종후보로 정동영,손학규,이해찬,유시민,한명숙이 올라갔다.
여기서 목표는 후보선출및 대선승리가 아니었다. 당내 역학상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도 적었고 선출된다 한들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더욱 적었기 때문이다. 다만 1위에 근접한 2위라도 해야 총선에서 친노 인사들이 폐족을 면해 퇴임후 노무현을 지켜줄 정치적 힘을 가질수 있다라는 의미가 있었을뿐이다.
그러나 한명숙이 이해찬에게 양보하고,유시민이 다시 이해찬에게 양보 했음에도 결과는 3위에 그쳤다. 결국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은 대선에서 500만표차이로 대패한뒤 무책임하게 미국으로 떠나갔고, 2위로 당권을 잡은 손학규는 친노인사들의 공천을 철저히 외면했다.
대선 총선 연이은 완패.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잊고 있었던 노무현이 살해 되리라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미국산 광우병소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멱살을 잡히고,조선일보 사옥이 시위대의 오물투척으로 버무려지는것을 지켜보면서 오래전 꾸었던 꿈생각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김대중정권 당시 세무조사도중 신경쇠약 악화로 투신자살한 동아일보 명예회장 부인의 사진속 모습도 자꾸만 오버랩 됐다.
"조만간 노무현이 정치적으로 살해 되겠구나. 그리고 막을 방법이 없겠구나." 다른 사람들은 이때 노무현이 정치보복을 당하리라는 전조조차 별로 못느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포기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불현듯 노무현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얼마후 내가 예전에 썼던 수많은 글중 하나를 가지고 봉하 마을로 내려갔다. 글제목은 "또 다시 미칠 준비가 되었는가" 바로 노무현의 유산 1부였다. 노무현은 종이를 펼치자 마자 바로 입가에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던졌다.
"예전에 읽은적이 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감명깊게 읽었던 글중 하나인데.. 글속의 이때가.. "
"하로동선 시절이죠."
하로동선은 3당 합당의 야합에 반대한 댓가로 정치적시련을 겪던 동료들 끼리 낙선의 아픔도 달랠겸 민심에 귀도 기울일겸해서 차린 고기 집의 이름이었다. 여름에 난로 겨울에 부채라는 말로 무더운 한 여름에 화로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찬바람이 쌩쌩부는 한겨울에 부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으나 계절이 바뀌면 화로없이는 안되는 겨울이 오고 부채 없이는 안되는 여름이 온다라는 뜻이다.
"그때가 가장 힘든 시절이었나요."
"글쎄요,힘들다기보다는 뭐랄까. 씁쓸했죠."
"제가 보기엔 노대통령의 가장 씁쓸했던 시기는.."
"가장 씁쓸했던 시기는?"
"이빨이 깨졌는데 치아를 해넣을 돈이 없어 그대로 놔둔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하하..그랬었죠"
그는 젊은시절 막노동판을 전전할때 앞이빨을 다쳤지만 치아를 해넣을 돈이 없어 고생하다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에야 제대로된 치아를 해넣을수 있었다.
그리고 몇년간의 편했던 판사출신 변호사 생활도 잠시,노동자와 양심수를 위한 고난의 인권 변호사로 나섰고,그걸 발판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그것도 잠시,다시 3당야합에 반대하는 바람에 고기집에서 손님옆에 무릅 꿇고 앉아 고기를 썰어주고 가끔씩 따라주는 술이나 얻어 마시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5년뒤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것도 역시 잠시,퇴임후 2년도 안되어 정치적 살해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벌써 일주기가 되어간다. 이제 22일만 더 있으면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아래 솔숲으로 몸을 던진지 정확히 일년이 되는 것이다.
그는 과연 몸을 던지기 바로 직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가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 들였으리라 짐작한다. 그의 인생에서 편한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편할만하면 곧 애환이 찾아들고 순탄할만 하면 곧 삶의 전환적계기가 도래했다.
깨진이빨을 치료할 돈이 없어 겪는 비참함을 겪어야 했고,공안탄압과 재벌착취 속에서 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의 애환도 맛봐야 했다. 계보정치의 위력을 낙선으로 겪으며 지역주의의 폐혜를 절감했으며,정치인생 대부분을 검찰과 언론권력에 시달리다 결국 생의 마지막도 그들의 횡포에 의해 마감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판사,변호사를 하면서 호의호식 잘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를 하면서 김영삼을 순순히 따라갔더라면 대통령은 못되었더라도 중진의원이 되어 편안한 삶을 살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거부했다.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부정과 불의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못본척 하고 넘어가기엔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명을 외면하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응하고 공명하다보니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으로 얽히게 되고 결국 그 인연이 모여 발휘된 국민적 힘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천명이라 믿었다. 따라서 권력에 유착하고 구도를 계산해가며 오른 자리가 아닌 철저히 그것들을 멀리한 댓가로 오른 자리인 만큼 끝까지 국민적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정치를 해야만 한다라는 강박관념이 그의 삶전반을 관통하며 지배했다. 이런 지배는 그에게 많은 기쁨도 가져다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수밖에는 없었다.
그럴수록 수구들이 부당한 자신들의 행태가 끊임없이 지적 당하고 있는 위협의 원흉으로 노무현을 지목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둘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싸움. 결국 그 싸움에서 자신이 질수 밖에 없으리란 것을 잘알고 있었고 그는 그것을 숙명이자 천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노무현의 이런 숙명적 죽음을 남아있는 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노무현은 자신의 죽음을 숙명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것을 한없이 미안해했다. 살면서 많은 짐과고통을 안겨 주었는데 자신의 몸을 던지는 죽음 이외에는 그것에 보답할 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것이 그의 진심이며 계산된 것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것은 겸손,배려일뿐이지 당부는 아니다.
노무현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사는세상을 구현 하려는 꿈을 단 한번도 품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 다만 역활고민이 있었을 뿐이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 설정을 마무리 해가는 와중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만이 희망이라는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어렵고 고되기에,부끄럽고 미안 하기에 쉽고 명료하게 손내밀지 못했을 뿐이다. 따라서 당부에서 생각과 행동을 읽으려들지 말고 겸손,배려에서 화답을 도모할수 있어야 한다.
생전에도 노무현은 전혀 계산적이지 못한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기억 해야만 한다. 노무현은 합리적이지만 계산적이지 않고,감성적이지만 엉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수구들은 그의 재임시절에 늘 노림수에 빠지지않을까 조바심을 냈다. 부산에서 연거푸 낙선한것도,탄핵후폭풍도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 공격했다. 계산된 것이라 공격해야 자신들의 불합리를 감출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순방 귀환도중 자이툰 부대를 기습방문한것도 엉성한 정치적쇼로 폄하했다. 그러나 그것은 타국에서 자신의 정치적소신과 배치되는 국익차원의 결정으로 목숨을 건 임무수행을 하는 장병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온 진심어린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공격하지 않으면 노무현의 눈물에 쏟아지는 환호에 대응할수 없었기에 그리한것이다.
우리는 이런 수구들의 계산적이고 엉성한 시선이 아닌 노무현의 합리적이고 감성적인 잣대로 그를 평가하고유산을 물려받을수 있어야 한다.
그 길은 힘을 모아서 4대강을 중단 시키고,이를 악물어 아파트마약에서 깨어나고,정신을 모아서 민주주의의 길로 다시 나아가는것이다. 조세복지선진화의 점진적 완성으로 작금의 모든 한국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사는세상을 구현을 해나가는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매우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서 마음이 매우 아프고 한없이 안타깝더라도. 희망을 버리지않고 노무현을 뽑아올렸던 국민적저력의 보이지않는 힘의 실체를 믿으며 한걸음씩 최선을 다해 뚜벅뚜벅 걸어가는것이 노무현의 유산을 진정으로 받드는 길인 것이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씨!! 우리 같이 한번 미쳐보자 응??"
3당야합 합류거부 댓가로 낙선을 거듭하던 시절 아내의 정치중단요구에 대한 노무현의 답변 이었다.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것이고 아내말을 잘들어야 집안이 화목하다라는 말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결국 노무현은 아내 말을 듣지 않은 댓가로 15년뒤 정적에 의해 살해되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또다시 저런 길을 걸어 가려들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또 다시 그런 길을 걸어 가야만 하고 국민들은 반드시 누군가를 찾아내 맨앞에 다시 세워야만 한다. 그 사람을 죽이지 않는 길은 그길을 만류하는것이 아니다.
누군가 희생하지 않고서는 사람사는세상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며 사람사는세상은 그위에 올려지는것이다. 그 사람도 살고 민주주의도 살고 사람사는세상도 사는길은 오직 모두가 약간씩 미치는 길뿐이다.
모든 국민이 살짝 미칠수만 있다면 인생은 즐겁고 아름다워질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그토록 어렵기 때문에 노무현은 죽어야만 했고 앞으로도 또 누군가는 죽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지않는 삶이란 없다. 다만 가치있는 죽음인가의 여부만이 있을뿐이다. 노무현은 죽었고 그는 그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 들였다. 그가 숙명으로 받아들인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가치있는 죽음이었다. 그는 나즈막한 한마디를 던진채 저 세상으로 사라져갔다. " 또 다시 미칠 준비가 되었는가" 국민들이 사람사는세상의 길을 포기할수 없다면 노무현의 이 질문에 어떤식으로든 대답할수 있어야 할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매년 5월마다 국민모두가 접하게될 노무현의 진정한 유산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