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芍藥翻階上 섬돌 위에 나부끼는 작약 꽃송이
盈盈媚晚晴 맑게 갠 날 한들한들 교태부리네
鳳池才子詠 봉지에서는 재자들 그대를 노래했고
溱水美人情 진수에서는 미인의 정 그대에게 붙였어라
落蕋隨風擧 떨어지는 꽃잎 바람 따라 날아가고
殘紅倚日明 스러지는 붉은 빛깔 햇빛 받아 타오르네
客中無意緖 나그네 생활 시 지을 뜻 없었는데
照眼句還成 그대 모습에 저절로 한 편을 이루었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의 작약(芍藥)을 읊은 시다.
작약(芍藥, Paeonia lactiflora var. lactiflora)은 작약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50~80cm이
며, 잎은 일회 또는 이회 우상 복엽이며 작은 잎은 피침 모양 또는 타원형이다. 관상용 또는 약
초로 재배하며 중국이 원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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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의 꽃말은 ‘부끄러움’이다. 영국의 전설에 의하면 잘못을 범한 요정이 볼 면목이 없어 작약
그늘에 숨었고 이때 꽃이 빨갛게 물들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작약은 이름부터 약이다(芍은 함박
꽃을 뜻한다). 작약의 영어명 Peony는 그리스 신화의 의술신 파이온(Paean)에서 따 온 것이다.
파이온이 작약의 뿌리를 이용해서 하데스(Hades, 플루톤 Pluton) 등 많은 신들의 상처를 낫게 했
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때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작약은 최고의 효능을
가진 약초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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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에 대한 시로 자주 들먹여지는 고려 말 학자 가정 이곡(稼亭 李穀, 1298~1351)의 「홍양파
(洪陽坡) 제거(提擧)가 작약(芍藥)을 감상한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次韻和洪陽坡提擧賞芍
藥)」라는 시다.
曾見東君卷旆廻 동군 깃발 거두고서 돌아가는 걸 보았는데
却留妖艶滿園開 요염한 꽃 남겨 두어 정원 가득 피게 했군
宦途誰是看花伴 벼슬길에서 그 누가 꽃구경 함께 해 줄까
縱使招呼不肯來 아무리 불러도 기꺼이 오려 하지 않을 걸
尋花痛飮戴花廻 꽃 찾아 통음하고 꽃 꽂고 돌아오는 것은
爲是今年不再開 금년엔 다시 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料得殘紅應滿地 붉은 꽃잎 아마도 땅에 가득 졌을 텐데
豈容俗子扣門來 속인이 문 두드리면 혹 열어 주실는지
동군(東君)은 봄을 맡은 신 이름이다. ‘동군 깃발 거두고서’는 봄철이 이미 지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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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천재 문인인 백운거사 이규보(李圭報, 1168~1241)의 「양공(梁公)의 집에 작약꽃이 한
창 피었는데 이에 대한 시를 청하기에 그를 위하여 짓다(梁文家芍藥盛開。梁君請詩爲賦之)」
의 전문이다.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백운거사의 박학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百花開了靜掃空 온갖 꽃 피었다 모두 져서
萬眼渾無一片紅 여러 눈에 한 점의 붉음도 없었는데
西隣詩家赤芍藥 서편 이웃 시호(詩豪)의 집에 붉은 작약
活豔明冶溫香濃 탐스럽고 선명하며 향기가 그윽해
紅肌花疊爛如蒸 짙게 붉은 꽃 겹겹으로 고운데
碧股叢低弱不勝 파란 줄기 섬약하여 감당하지 못하네
偸栽赤城晩霞灩 선경(仙境)에서 훔쳐 심으니 저녁놀 비치는 듯
奪下碧落朝日昇 하늘에서 빼앗아 왔으니 아침 해 솟는 듯
鮮葩倒垂露密蘂 숙여진 송이는 이슬을 머금었고
點綴金粟排紅燈 이어진 금속은 홍등을 벌였구나
乃知造物蓄意慳 이제야 알겠노라 저 조물주의 마음을
留此窈窕仙姝顔 선녀처럼 요조한 자태 아껴 두었다가
欲將餘巧動新賞 남은 재주 과시해 새 감탄 받으려고
故待春歸芳意闌 봄 지난 뒤에 이 같은 향기 풍기게 하였네
滴露洗新猩血釅 이슬에 씻기고 나니 성성이의 짙은 피인 듯
微風吹側鶴頭丹 미풍이 살짝 부니 선학(仙鶴)의 붉은 머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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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疑王母朝漢皇 나는 서왕모(西王母)가 한 무제(漢武帝)를 뵈올 때
殿前拆破雲錦囊 전 앞에 운금랑을 흩어 놓음인가 하였고
又疑火帝下閶闔 또한 화제가 하늘에서 내려오자
祝融仙隊拖裙裳 축융의 선대가 치마를 걸침인가 하였네
西施玉骨埋泥塵 아니면 서시의 옥골이 진토에 묻혀
卷却人問一餉春 인간의 짧은 봄 몽땅 몰아갔다가
芳魂散漫自難收 산만한 꽃다운 혼 수습할 길이 없어
直作妖花還媚人 요화(妖花)로 변해 사람을 유혹하는가
故應婀娜嬌無力 요염하게 보이려고 가냘픈 몸맵시에
猶帶吳宮醺醉色 오궁의 얼근히 취한 빛을 띠었네
高唐虛役巫峽夢 고당에는 헛되이 무산(巫山)의 단꿈을 꾸었고
楚國枉有陽城惑 초나라에는 부질없이 양성의 고혹도 있었네
可忍相看不殢腸 눈으로 보고 어찌 그냥 모른 체 할 손가
嫣然向客偏輕盈 사람을 향해 생긋 웃는 모습 곱기도 하네
白日勺開嬌解笑 낮에는 활짝 피어 고운 웃음 띠었고
黃昏微斂靜含情 밤에는 약간 오므려 깊은 애정 담겼어라
梁公好事人所誇 양공의 좋은 풍류 누구나 자랑하는 바이라
請我試作看花歌 나더러 꽃구경하는 노래 지어 보라고 하였네
頑桃俗杏粗可狀 보잘 것 없는 복사꽃 살구꽃이면 몰라도
我才豈合賦名花 나 같은 재주로 어찌 이름난 꽃을 읊으랴
況今落魄情興淺 더욱이 지금 불우하여 의욕을 상실한 데다
白也筆老奈花何 이백(李白)의 붓마저 늙었으니 무슨 재주 있겠는가
謝公曾詠中書階 사조는 중서성 뜰의 작약을 읊었고
韓子又歌司馬家 한유는 사마 집의 것을 노래하였네
嗟渠妖態生何晩 이 요염한 꽃이 어찌 늦게 태어나서
未使此輩煩吟哦 이들로 하여금 읊도록 만들지 않았던가
玉樽浮蟻倘呼斟 옥 술잔에 술 가득 따르고
掀出風情更一吟 풍정 쏟아 다시 한 번 읊어보리라
사공(謝公)은 중국 남제(南齊)의 시인 사조(謝朓, 464~499)를 말한다. 그의「중서성에 당직을
서며(直中書省)」이라는 시에 ‘붉은 작약 섬돌 아래 펄럭이고, 푸른 이끼는 돌층계 따라 올라오
네(紅藥當階飜 蒼苔依砌上)'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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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의 「중서성에 당직을 서며(直中書省)」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紫殿肅陰陰 궁전은 엄숙하고도 깊숙한데
彤庭赫弘敞 궁전 뜰은 밝고 넓게 트였네
風動萬年枝 바람 일어 나뭇가지 흔들고
日華承露掌 햇빛은 이슬 받은 손바닥에 빛나네
玲瓏結綺錢 동전 모양 비단 창이 곱고 환하고
深沈映朱網 주홍 망사 창문 깊숙이 비추네
紅藥當階翻 붉은 작약은 섬돌 아래 펄럭이고
蒼苔依砌上 푸른 이끼는 돌층계 따라 돋아나네
茲言翔鳳池 지금 궁중 연못을 배회하고 있는데
鳴珮多淸響 울리는 패옥 맑은 소리 요란하네
信美非吾室 정말 아름다우나 나의 집이 아니니
中園思偃仰 정원 한가운데서 하늘 쳐다볼 생각하네
朋情以鬱陶 친구 생각에 가슴 답답하지만
春物方駘蕩 봄 경치는 이제 한창이네
安得凌風翰 어떻게 하면 바람 탈 날개 얻어
聊恣山泉賞 산천의 감상을 실컷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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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가에 작약이 처음 보이는 것은 고려 의종(毅宗, 1127~1173) 때라고 한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에 의하면, 현량 황보탁(皇甫倬)이 작약을 좋
아하는 의종(毅宗)에게 작약시를 지어 올렸는데, 의종이 이를 크게 칭찬하였다고 한다. 황보탁
은 이 시로 말미암아 동관(東館)의 직에 보(補)하게 되었다.
誰道花無主 누가 이 꽃을 보고 주인이 없다 하는가
龍顔日賜親 임금님이 매일 친히 와 보신다네
也應迎早夏 첫여름을 응당 맞이해야 할 텐데
獨自殿餘春 혼자서 남은 봄을 지키고 있구나
午睡風吹覺 졸던 낮잠 바람결에 깨이고
晨粧雨洗新 새벽 단장 빗물에 지워졌네
宮娥莫相妬 궁중의 여인이여 질투 말게나
雖似竟非眞 아무리 닮아도 진짜 아니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