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흐의 꽃 | 따끈따근 고흐뉴스
1 반 고흐 <12송이의 해바라기 >
1888년, oil painting,91ⅹ71cm, 뮌헨 Neue Pinakothek 미술관 소장
2 반 고흐 <아이리스>
1889년, oil painting,71ⅹ93cm 개인 컬렉션 3 반 고흐 <두송이의 절단된 해바라기> 1887년, oil painting,43ⅹ61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해바라기, 아이리스, 히아신스, 체리블로섬, 아카시아, 들장미, 아네모네… 등 수많은 꽃들을 모델로 삼았던 고흐는 자연과의 격렬한 씨름 후에, 태양을 의지해서 자라나는 꽃들과 자연을 연인처럼 사랑했다. 자연과의 씨름을 고흐는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 싫든 좋든 대립을 조금씩 완화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부른 것과 흡사하다고 표현했다.고흐는 표면적으론 삶에 대해 부정으로 일관하는 사람 같았지만, 사실 그 속엔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묘하게도 고흐의 꽃 그림은, 정열적이면서도 슬프다. 고흐는 왜 귀를 잘랐을까? 그가 죽고 난 후에서야 불행은 모두 움켜쥐고 있던 것 같은 그를 향해 온갖 ‘러브콜’을 보내게 되고, 그 결과는 미술품 경매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는 천문학적인 작품 가격이나, 불행했던 가난한 예술가의 전형이라는 신화, 영화를 비롯해 전기소설의 대가 어빙 스톤은 역사소설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고흐를 만들어냈는가 하면 시, 음악 등이 앞다투어 그의 편지 속 다짐 이상으로 후세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기에 이른다.
37년 간의 짧은 삶 속에 힘겹던 그를 지탱해주던 두 축이었던 고갱과 테오. 고갱과의 만남은 1888년 2월, 아를르에 머물며 남프랑스의 눈부신 햇살에 매료된 고흐가 고갱을 불러 두 사람의 그림도구를 겨우 놓을 만큼 비좁은 아틀리에를 함께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가난했지만 마흔 살 고갱과 서른 다섯 고흐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고 서로를 아껴주었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생활은 성격적인 충돌로 오래가지 못했다. 1888년 크리스마스날, 고흐가 발작으로 면도칼로 자른 귀를 고갱에게 전달하면서 둘의 우정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형과 나는 몸은 둘이지만 한사람이야. 형은 정신이고, 나는 육체라구.”
동생 테오의 확신처럼 고흐의 삶은 평생 그의 동생 테오와 맞닿아 있다. 화상이었던 테오는 형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그의 천재성을 믿어준 단 한 사람이었다. 1872년 8월부터 평생을 걸쳐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백68통이나 된다. 형의 죽음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테오는 반 년 만에 3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화장된 유해는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
이외에도 고흐의 두 번째 테오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고흐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오베르 쉬르와즈에 있는 ‘반 고흐의 집’의 도미니크 샤를르 얀센 관장이 그 주인공. 이 사람은 1985년 고흐의 집 앞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이 인연이 돼 결국 관장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프랑스의 일간지는 그를 ‘고흐의 두 번째 형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얀센 관장은 고흐의 유언대로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고 있으며, 해마다 두 차례씩 고흐가 머물던 방에서 딱 한 점씩만 전시를 하고 있다.
고흐의 마지막 안식처인 오베르 쉬르와즈는 파리에서 3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아주 작은 시골인데, 여기서 고흐는 정신과 의사 가쉐 박사를 만났고, 수작들을 완성했다. 고흐는 이 집에 하루에 3프랑(약 5백20원)씩 주고 1890년 5월20일부터 7월27일까지 약 70일간 묵는 동안 이젤 하나와 침대 하나를 놓고 1.5평 남짓한 방에서 매일 한 점씩 불후의 명작 70여 점을 남겼다.
4 1888폴고갱의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호> 1888년, oil painting,73ⅹ92.5cm 암스테르담 국립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 (National Museum Vincent Van Gogh) 소장 5 반 고흐 <핑크 복숭아나무 > 1888년, oil painting,73ⅹ59.5cm, 네덜란드 오텔로 Rijksmuseum Kroller-Muller 뮤지엄 소장 6 반 고흐 <아몬드나무에 핀 꽃(Detail)> 1888년, oil painting,24ⅹ19cm 암스테르담 국립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 (National Museum Vincent Van Gogh) 소장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하지만 그의 생전에 팔렸던 작품은 어떠했는가?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으로 겨우 4백 프랑(6만원)에 팔렸던 것이 가장 높았던 가격이었다. 1890년 1월 18일 브뤼셀의 20인 전에 그의 유화 여섯 점이 전시되었고, 권위 있는 평론가 알베르 오리에르의 지극히 호의작인 평론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실린 것을 읽은 안나 보흐라는 사람이 구입하였다.
전 생애를 통해 유일하게 유화 두 작품만 팔렸던 고흐의 작품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에 각각 한 점씩 개인소장하고 있었다. 1994년 암스테르담에 살던 한 기술자는 우연히 반 고흐 미술관에 갔다가 그의 집 다락방 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림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곧 스위스 미술상에게 의뢰하여 진품임을 확인한 후 이 작품이 50여 년 전 벼룩시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구입했던 그림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5센티미터인 꽃이 가득한 화병을 그린 이 작품은 다행히 서늘한 다락방의 어둠 속에 보관되어 원색을 선명하게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1937년에 건립된 고흐 박물관이 매입하였다. 이 작품은 고흐가 인상파 화법을 배우기 위해 파리에 머물던 1886 ∼ 1888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라고 박물관측은 설명하였다. 고흐는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고 산책을 자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길 바랐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욱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라 본인도 그 임무를 성스럽게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작품은 대답이라기보다는 물음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필자의 생각에 확신을 준 그림이 고흐의 ‘꽃 시리즈’이다.
색 다루는 연습을 위해 꽃을 주제로 한 연작을 시작했던 고흐는 선택이 없었던 벼랑 같던 삶과 죽음, 추억과 광기 등을 수없이 많은 꽃들에 발산하여 생명력 있는 자연을 그려냈다. 미치광이로 취급받던 그의 인생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눈부시도록 밝고 원색적인 솔직한 색채들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고흐는 천재적인 재능이라기보다는 에너지를 한 곳으로 응축시켜 빠른 시간에 거침없이 발산해내는 재주가 탁월한 기인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형태이지만 이상하게도 사진처럼 그당시의 고통이나 사건의 흐름이, 그의 따뜻한 인정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직설화법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글·박정민(예술품 경매전문가)
* from: http://cafe.naver.com/vangoghmuseum/19 http://blog.naver.com/diana2509/2000242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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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현도 / John CHANG 원문보기 글쓴이: 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