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부제: 텍스트의 사람으로 사는 일
240104 문예진
항상 고민하게 되는 일이다. 글을 한동안 쓰지 않다가도, 종국엔 글을 쓰는 나를 관망하며 몇번이고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결국 글로 돌아오는가. 왜 음악도, 그림도 아닌, 콕 집어 ‘글'인가. 그렇게 몇 년 간 고민한 끝에, 완벽한 결론은 아닐지라도 납득은 가능한 답 몇가지를 찾아냈다.
음악이나 그림과 달리, ‘글'은 객관적인 축에 속한다. 특정 분야의 글이 아닌 이상, 별개의 해석 없이도 이해 가능하다. 음악이나 그림의 추상성과 달리, 글은 구체성과 객관성, 보편성을 지닌 것이다. 또한,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 없이도 즉각적으로 창작해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상, 글은 보통의 사람들이 지리멸렬한 생각들을 명징하게 정리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살면서 철학적 고민들을 할 때가 있고, 윤리적 선택들 앞에서 머뭇댈 때가 있으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에 대해 분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느낌으로만 그 답을 내려버린다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글로서 나름대로의 답들을 명백하게 기록해두는 것이다. 갈피 잡기 힘든 나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기록해두기 위하여.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첫째 이유이다.
한편, 글은 보편성과 구체성을 지니는 동시에, 사적인 성격과 추상성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시, 일기 등에서 그렇다. 그 때문에, 글은 어떤 것을 명징하게 적어내는 것도 가능하게 하며, 명확하지 않은 어떤 것을 모호한 모양 그대로 적어내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글의 성격은 감정을 쏟아내는 데에 용이하다. 감정은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단어로 정의된 감정들이 중첩되어 한 단어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종종 이렇게 넘치는 감정들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면, 글로 쏟아낼 수 있다. 그렇게 쏟아낸 글들은 어찌할 줄 모르던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남은 기록이 되어 그 감정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차분해진, 그리고 분석이 끝난 감정은 한층 해결이 쉬워진다.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고 해결하는 것,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두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글을 쓰는 세번째 이유는, 정체성 확립과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함이다. 인류는 ‘글자'라는 발명품을 창조하고, ‘글'을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명을 이루었다. 한 개인도 비슷하다. 글을 남김으로서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지 깨닫고, 실존적인 질문,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어놓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성장을 하는 것에 있어서, 나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가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나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취향부터 시작해서, 도덕적 선택, 삶의 이유, 나의 존재, 사랑의 정의 등을 글로 기록하면, ‘나'라는 자아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것들은 한 곳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 변화하겠지만, 변화하는 과정조차 ‘나'이므로, 글은 스스로를 아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하여 현재에 있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잘 이해하고, ‘나'를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함이다.
글을 쓰는 네번째 이유는, 미래의 닥칠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함이다. 삶에 있어서 같은, 혹은 비슷한 문제를 다시 맞닥뜨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현재의 분쟁이나 고민들을 명료히 정리해두면, 미래의 유사한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의 글만큼 자신에게 맞춤형인 해결책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순간순간 더 성숙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대응들이 쌓이면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글을 쓰는 다섯번째 이유는, 읽는 글이 나의 들숨이라면, 쓰는 글이 나의 날숨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은 삶의 부가적인 요소였지만, 이제 ‘글'이라는 존재는 나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나를 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다음엔 나의 감정을 알기 위해 글을 썼고, 그러다가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썼으나, 그 위로들은 결국 돌아와 나를 위로했다. 글은 새로운 연대를 만들었고, 공동체를 구성했으며, 일방적인 글로도 어설프나 깊은 우정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종국엔 한껏 성장한 내가 있었다. 그것이 결국 내가 ‘글'로 돌아오는 이유이며, 내가 삶을 살며 글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이유이다. 나는 타인의 글이든, 나 자신의 글이든, ‘글'에서 배우며, ‘글'에서 깨닫고, ‘글'로서 나를 고쳐나간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텍스트의 자식이며, 텍스트의 제자, 텍스트의 사람이라고 느낀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모든 이유에서, 결국 나에게 글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