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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귀(鬼)나 신(神)은 공경하면서 멀리하면 된다는 뜻이다.
敬 : 공경할 경
鬼 : 귀신 귀
神 : 귀신 신
而 : 말이을 이
遠 : 멀 원
之 : 갈 지
(유의어)
경원(敬遠)
경이원지(敬而遠之)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樊遲問知하신대 子曰 務民之義하고 敬鬼神而遠之면 可謂知矣니라.
번지문지하신대 자왈 무민지의하고 경귀신이원지면 가위지의니라.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지(知)에 대해 묻자 공자는 백성들을 의롭게 만드는데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知)라고 할 수 있다.
問仁한대, 仁者는 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문인한대, 인자는 선난이후획이면 가위인의니라.
다시 인(仁)에 대해 묻자 인자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면 인(仁)이라 할 수 있다.
번지는 공자의 제자로, 지(知)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仁)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공자는 여기서 백성의 뜻을 이야기 한다. 절대 권력의 왕이 지배하던 시절이지만 공자는 백성의 뜻을 헤아려 그에 힘쓰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낱 귀신에 불과할 뿐인 신에게는, 존경을 바치는 것으로 족하지 거기 매달리는 어리석은 짓은 말라고 한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22장에 나오는 말로, 원문에는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즉, 귀신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한다고 되어 있다.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의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인류의 인식 수준이 저급한 단계에 머물러 있던 고대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었으며, 그러한 경향은 공자(孔子)가 출현하기 이전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공자는 아직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면서 오직 현세에서의 도덕적 완성을 기하는 데 인간의 모든 노력을 투여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에서 스스로 탈피하는 동시에 인류의 인식사(認識史)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 구절은 공자(孔子)의 이러한 사상적 경향을 잘 나타내주는 것으로 유학(儒學)의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전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논어(論語)에서는 귀신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지혜로움[知]으로 파악하였는데, 그것은 이러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귀신에 대해서도 미혹되지 않는[不感] 지혜로움의 속성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귀기를 꺼리고 멀리한다는 뜻을 가진 경원(敬遠)이란 말은 이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자가 백성들을 의롭게 만드는데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의(義)에 따른 삶을 살기 보다는 이익에 따라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살아가면서 이익에 따라 살다보면 사람이 추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항상 남들과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 역시 피곤해집니다. 하지만 의(義)에 따른 삶은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스스로 양심이 길러지기 때문에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공자가 지(知)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백성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인(仁)을 강조했습니다.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하고 이익은 나중에 챙기게 되면 서로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즉 자기반성을 통해 백성들이 인(仁)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이 말은 비단 백성들의 길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병든 세태를 깊이 반성하게 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많은 학자들이 이 말을 자신을 경계하는 잠언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 말기의 학자인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라는 선비의 문집인 운양집(雲養集)에 실린 선난후획잠(先難後獲箴)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野有良苗라도 非耘何穫이리오.
야유양묘라도 비운하확이리오.
풀이하면 ‘들판에 좋은 싹이 있다 할지라도 김매지 않고서 무엇을 거둘 수 있겠는가’라는 뜻입니다.
이 잠(箴)의 서문(序文)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재주가 모자라는데서 구애를 받고, 도에 나아가려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 헤매게 된다. 그러면서도 늘 꿈결에 신이 와서 알려주었으면 하고 바라니, 이는 마치 농부가 밭을 갈지 않고 수확을 하려하고 행인이 길을 나서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려는 것처럼 수고는 하지 않고 하루 아침에 부귀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는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또 학문을 하면서 노력은 하지 않고 지름길만 찾는다거나, 일을 할 때 힘은 덜 들이면서 할 수 있는 묘책을 찾는 것, 남들은 백 번 할때 자기는 단 한 번을 하면서 공은 그 보다 크기를 바란다거나, 무실역행 하지 않으면서 명예를 구하는 것, 이 모두가 그렇게 될리도 없으면서 오히려 심하게 자신의 도를 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학자들이 공자의 선난후획(先難後獲)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자신을 인(仁)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수없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경전은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공자가 말한 선난후획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라면 참된 사람의 길인 인(仁)을 따라 행할 뿐, 오로지 이로움만 추구하는 말단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후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말 가운데 ‘강물이 얼어붙는 것은 하루의 추위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연현상과 인간사를 티도 안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겹쳐놓은 탁월한 성어로 회자되고 있는 말입니다.
다시 풀어보면 사람이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게 되면 그것이 오랜 세월동안 축적돼 오로지 이익만 쫓는 하급인생이 되고 말지만, 한결같이 인(仁)을 추구하는 사람의 길을 걷게 되면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 성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렇게 자신만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마저 백성들을 인(仁)의 길로 인도하지 않고, 스스로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길을 걷게 된다면
그 고을의 미래는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청말(淸末)의 유능한 정치가이자 군사가이며 또 뛰어난 문인이기도 했던 증국번(曾國藩)의 이 말은 오로지 성과주의를 지향해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폐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莫問收穫하고 但問耕耘하라.
막문수확하고 단문경운하라.
풀어보면 ‘수확은 묻지 말고, 그저 밭 갈고 김매는 일만 묻거라’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만연해 있는 성과주의와 이익주의에 매몰된 세상을 향해 던진 명쾌한 말입니다. 공자가 말한 선난후획(先難後獲)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바라본 자신과 지금의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한번쯤 마음에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성종 98권, 9년(1478 戊戌 / 明 성화(成化) 14년) 11월 30일(丁亥)
홍문관 부제학 성현 등이 임금의 정사와 학문, 인재 등용 등에 관해 상소하다.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성현(成俔)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정당한 귀신이 아닌 것을 제사함은 아첨하는 것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하늘에게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공경하지 아니하면 무람해지고, 멀리하지 아니하면 친압하게 되며, 제사지낼 것이 아닌 것을 제사하면 모독이 되고, 빌 것이 아닌 것을 빌면 아첨하게 되는 것입니다.
孔子曰: 敬鬼神而遠之,
又曰: 非其鬼而祭之, 謟也,
又曰: 獲罪於天, 無所禱也.
夫不敬則褻, 不遠則昵, 非所祭而祭之則瀆, 非所禱而禱之則謟.
이 말은 논어 옹야(雍也)편 20장의 말과 위정(爲政)편 24장의 말과 팔일(八佾)편 13장의 말이다.
樊遲問知(智)한대 子曰 務民之義요 敬鬼神而遠之면 可謂知矣니라.
번지가 지(智)에 대해 묻자 공자 曰 사람이 지켜야할 도의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한다면 지(智)라 할 수 있다.
問仁한대 曰 仁者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다시 인(仁)에 대해 묻자 曰 인자(仁者)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나중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에 주자(朱子)가 주해(註解)하기를 ‘오로지 인도(人道)의 마땅한 바에 힘을 쓰고, 귀신의 알 수 없는 것에 혹하지 않는 것은 지자(智者)의 일이요, 일의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그 효과의 얻음을 뒤에 함은 인자(仁者)의 마음이니, 이는 반드시 번지의 결함에 따라 말씀해 주신 것이다’라고 했다.
또 여대임(呂大臨)이 말하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급하게 여기고 귀신같은 알기 어려운 것을 구하지 않아야 하며, 아는 바를 힘써 행하고, 하기 어려운 바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이천(程伊川)이 말하길 ‘어려운 일을 함은 극기(克己)의 일이니,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음을 헤아리지 않음은 인(仁)이다. 사람들이 귀신을 많이 믿으니, 이는 미혹된 것이요, 귀신을 믿지 않는 자는 또 공경(恭敬)하지 않으니, 능히 공경하되 멀리할 수 있다면 지(智)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위정(爲政)편 24장에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요. 見義不爲 無勇也니라.
공자 曰 자기가 제사지내야 할 귀신이 아닌 것을 제사하는 것이 아첨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비기귀(非其鬼)란 말은 마땅히 제사지내야 할 귀신이 아님을 이른다. 이른바 서인(庶人)이 오사(五祀)에 제사하고, 대부(大夫)가 산천(山川)에 제사하고, 제후(諸侯)가 천지(天地)에 제사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 당시 계씨(季氏)가 천자(天子)의 예(禮)인 팔일무(八佾舞)를 추고 태산(泰山)에 여제(旅祭)를 지내는 등 참람(僭濫)한 짓을 이른다. 의(義)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못한다면 용(勇)이라 할 수 없다. 즉 알면서 하지 않으면 이것이 용기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앞의 옹야(雍也)편 20장의 말과 서로 통한다.
그리고 회죄어천(獲罪於天)이면 무소도야(無所禱也)란 말은 팔일(八佾)편 13장의 말로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론 寧媚於竈라하니 何謂也잇고?
왕손가가 묻기를 “성주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조앙 신에게 잘 보이라 하니 무슨 말입니까?”
子曰 不然하다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공자 曰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왕손가(王孫賈)는 위(衛)나라 大夫로 병권(兵權)을 쥔 권신(權臣)인데, 그 당시의 소문을 비유하여 군주보다 차라리 실세인 자신에게 잘 보이는 것이 어떠냐는 우회적인 표현인데, 공자께서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천(天)은 곧 리(理)이니, 그 높음이 상대가 없어서 성주 신이나 조앙 신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치를 거스르면 하늘에 죄를 얻게 되니, 어찌 성주 신이나 조앙 신에게 아첨하여 빌어서 면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마땅히 이치를 따라야 하니, 성주 신이나 조앙 신에게도 아첨하지 않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 홍문과 부제학 성현(成俔)의 상소는 성종이 정사(政事)를 바르게 하고 공경함이 해이해짐을 경계한 것이었다. 이 상소를 받은 성종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내일부터는 조회(朝會)도 열고 경연(經筵)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삶에 대한 인식
어느 한 곳에 빠지면 안됨에 대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다 보니 자꾸 현란한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고 기이한 행동이나 사건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그래서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세상사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특별한 사건이라야만 관심을 가진다. 이런 현상은 친구, 가족, 직장동료, 사회, 나라 등 모든 일에서도 그렇다.
그냥 일상적이면서 사람다운 삶의 요소를 이끌어 가는 것은 별 관심이 없으니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이벤트라는 외국 낱말을 쓰면서 그 앞에 특별한 이라는 형용사를 써야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그렇다.
이렇게 기이한 일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정작 사람살이의 중요한 일은 치지도외(置之度外; 내버려 두고 상대하지 않음)시 한다. 그래서 함께 살아야 할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러다 TV 화면에 특별 방영이 되면 마치 별안간 그런 일이 생겨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든가 얼굴을 붉히며 큰 목소리를 낸다. 쉽게 끓었다 쉽게 식는 냄비처럼 말이다. 이런 걸 냄비여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이상하고 특별한 사건에 대한 의미를 공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난신)이라. ‘공자는 괴이한 것, 힘센 것, 어지러운 것, 귀신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문장은 아주 간단하다. 아주 유명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장이기도 하다. 문법적인 요소를 말할 것도 없이 주어와 동사와 목적어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조금만 알면 해석하기도 쉽다.
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난신)은 공자(子)는 괴이함(怪) 힘(力) 어지러움(亂) 귀신(神)을 말하지(語) 않았다(不)로 풀이된다. 여기서는 다만 앞에서와 같이 말할 曰(왈)이 아닌 말씀 語(어)가 쓰였다는 것에 주의하면 된다.
말씀 語(어)는 국어(國語), 영어(英語), 언어(言語) 등과 같이 말을 뜻하는 한자어에 주로 쓰인다. 말이 이치에 닿지 않음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 한다. 터무니없이 떠도는 말은 유언비어(流言蜚語)라고 한다. 여기서는 동사로 ‘말하다’로 쓰였다.
기이할 怪(괴)는 괴상망측(怪常罔測)하다고 할 때의 한자다. 모양이 아주 기이하고 이상하게 생겨서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괴상한 물건 또는 기이한 물건이 바로 그 유명한 영화 제목 괴물(怪物)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병은 괴질(怪疾)이다. 해괴망측(駭怪罔測)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아주 괴이함을 나타낸다. 괴상한 이야기는 괴담(怪談)이요, 괴상한 짐승은 괴수(怪獸)요, 행동이 수상한 놈은 괴한(怪漢)이다.
힘 力(력)은 잘 아는 글자겠지? 노력(努力), 능력(能力), 세력(勢力), 협력(協力), 창의력(創意力), 상상력(想像力) 등에 두루 쓰인다. 온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은 전심전력(全心全力)이라 한다. 어떤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을 역량(力量)이라 한다. 개인의 능력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하니 유의해서 암기해두면 좋다.
아주 뛰어난 기운 또는 놀라운 기상을 나타내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초(楚)나라 왕인 항우(項羽)라는 사람이 자신을 이렇게 비유해서 말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한문 성어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는 뜻이다.
어지러울 亂(난)은 국사시간에 자주 나온 한자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등과 같이 쓰인다. 난리(亂離)났다고 할 때도 사용한다. 몹시 거칠고 사나움은 난폭(亂暴)하다고 한다. 총 같은 것을 함부로 쏘는 것은 난사(亂射)한다고 하고, 질서 없이 여기저기 마구 들어서는 것은 난립(亂立)하다고 한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은 요란(搖亂)하다고 한다. 소란(騷亂)하다고도 한다.
귀신 神(신)은 종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신과 관계되는 낱말을 보자. 신기(神奇)하다, 신비(神祕)스럽다, 신령(神靈), 신화(神話) 등과 같이 쓰인다. 유일신(唯一神), 다신교(多神敎)는 신을 믿는 것에 대한 낱말이다. 그런데 정신(精神)과 같이 사람의 마음과 관계되는 뜻으로도 쓰인다. 신경(神經)은 육체를 이루는 한 요소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간단한 문장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자는 평소에 괴이한 것, 힘센 것, 어지러운 것, 귀신에 관한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이 문장의 중요한 의미가 된다.
괴상한 것은 남들에게 주목을 끌지는 모르지만 일상생활에 별 소용이 없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신경이 무뎌져서 괴상한 내용이 더욱 큰 것이라야 사람들에게 먹혀들게 된다. 그러니 평범하면서 함께 살기 위한 일상적인 내용 속에서 모두가 어우러지는 삶에 대한 내용이 중요하기에 괴이한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힘센 것은 잘못하면 폭력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제자인 자로가 힘자랑을 할 때 포호빙하(暴虎馮河;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걸어서 황하를 건넘, 무모한 행동을 말함)라는 말을 인용하여 무모한 행동이나 쓸데없는 용기인 만용을 부리는 것에 대해 아주 언짢아했다. 특히 춘추시대는 폭력에 의한 정치가 일상화된 사회였기에 인(仁)을 강조한 공자의 입장에서는 폭력을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다.
어지러운 것도 당연히 좋아할 이유가 없다. 혼란스러운 것을 말하니 말이다. 평온하고 평화스러운 것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춘추시대는 난리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사회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당연히 든다. 난리가 나면 민중들이 이산가족이 되고 죽고 다치고 하니 어지러운 것에 대해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귀신에 관한 것은 잘못 말하면 괴상한 내용이 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신에 관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없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서 질문하자 공경하기는 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 경귀신이원지)는 말을 했다. 너무 귀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또 죽음의 세계에 대해 물어보니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焉知死 미지생언지사)라고 대답함으로써 현실의 문제가 더욱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서 생각해 보자.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일관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꾸 기이함에 빠지다 보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힘만 강조하면 자기보다 더 강한 사람을 만나면 비굴하고 초라하게 된다.
어지러움은 정상적이지 않은 일상생활을 말한다. 하루하루를 그냥 그렇게 살면 어지러움에 빠지게 된다. 귀신에 맹목적으로 빠져도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 가끔 신을 잘못 믿은 사람들이 가정이 파탄나고 개인 생활도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을 목격하거나 매스컴에서 접하게 된다.
이런 행위는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다. 내 삶을 되돌아 보고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삶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어느 한 곳에 빠지면 안된다. 컴퓨터 게임에만 너무 빠지는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 敬(경)자는 회의문자로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苟(구)의 합자(合字)이다. 등글월문(攵)部는 급박하여 다가온다는 뜻이다. 혁은 엄격하게 격려한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는 뜻이 있는데 다시 등글월문(攵)部를 더하여 敬(경)은 한층 더 게을리하지 않음을 뜻으로 삼가다, 조심하다의 뜻이 있다. 敬(경)은 공경, 예(禮), 감사, 공경하다,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마음을 절제하다, 정중하다, 예의가 바르다, 훈계하다, 잡도리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공손할 공(恭), 공경할 흠(欽), 공경할 지(祗), 공경할 건(虔)이다. 용례로는 노인을 공경함을 경로(敬老), 공경하는 마음을 경의(敬意), 존경하고 사모함을 경모(敬慕),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경청(敬聽),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경례(敬禮), 존경하여 일컬음을 경칭(敬稱),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대상 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에 있음을 경건(敬虔), 공경하고 중하게 여김을 경중(敬重), 공경하고 사랑함을 경애(敬愛), 존경하여 높이어 부르는 말을 경어(敬語),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함을 경원(敬遠), 공경하여 삼가 답장한다는 경복(敬復),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을 경이원지(敬而遠之),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을 경천애인(敬天愛人), 노인을 공경하는 생각을 경로사상(敬老思想),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경외지심(敬畏之心) 등에 쓰인다.
▶ 鬼(귀)는 상형문자로 무시무시한 머리를 한 사람의 형상으로 죽은 사람의 혼(魂)의 뜻을 나타낸다. 부수로 쓰일 경우에는 영혼이나 초자연적인 것, 그 작용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다. 鬼(귀)는 귀신, 혼백(魂魄), 죽은 사람의 넋, 도깨비, 상상의 괴물, 별의 이름, 먼 곳, 지혜롭다, 교활하다, 귀신을 믿다, 멀다 따위의 뜻리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귀신 신(神), 신령 령/영(靈), 넋 혼(魂), 넋 백(魄), 마귀 마(魔)이다. 용례로는 귀신같은 솜씨를 귀공(鬼工), 여자 귀신을 귀녀(鬼女), 귀신의 울음을 귀곡(鬼哭), 세상에서 드물게 뛰어난 재기를 귀재(鬼才), 귀신이 됨을 귀화(鬼化), 나쁜 음기의 화신을 귀물(鬼物), 사람의 죽은 넋 또는 어떤 일을 유난히 잘하는 사람을 귀신(鬼神), 나쁜 마음이나 음모를 귀태(鬼胎), 귀신의 도끼라는 뜻으로 신기한 연장 또는 훌륭한 세공을 이르는 귀부(鬼斧), 귀신같은 모양이라는 귀형(鬼形), 용마루 양끝에 세운 도깨비 머리 모양의 장식을 귀두(鬼頭), 귀신의 얼굴을 귀면(鬼面), 귀신도 피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단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여 해롭게 하지 못함을 이르는 귀신피지(鬼神避之) 등에 쓰인다.
▶ 神(신)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보일시(示=礻; 보이다, 신)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申(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申(신)과 만물을 주재하는 신(示)의 뜻을 합(合)하여 정신을 뜻한다. 申(신)은 번갯불의 모양이고, 示(시)변은 신이나 제사에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神(신)은 천체(天體)의 여러 가지 변화를 부리는 신, 아주 옛날 사람은 천체의 변화를 큰 신비한 힘을 가진 신의 행위라 생각하고 그것을 번갯불로 대표시켜 神(신)자로 삼았다. 神(신)은 인간의 종교심의 대상이 되는, 초인간적 위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는 존재로 명명(冥冥)한 중에 존재하며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고 인류에게 화복(禍福)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신령(神靈) 곧 종교 상 귀의(歸依)하고 또 두려움을 받는 대상이다. 또한 하느님, 귀신, 신명(神明), 삼신(三神), 영묘 불가사의하여 인지(人智)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것, 거룩하여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것. 신성(神聖) 등의 뜻으로 神(신)은 귀신, 신령, 정신, 혼, 마음, 덕이 높은 사람, 해박한 사람, 초상(肖像), 표정, 불가사의한 것, 신품(神品), 신운(神韻), 영묘하다, 신기(神奇)하다, 화하다, 삼가다, 소중히 여기다, 영험이 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신령 령/영(靈), 귀신 귀(鬼), 넋 혼(魂), 넋 백(魄)이다. 용례로는 선도를 닦아서 도에 통한 사람을 신선(神仙), 신과 사람 또는 신과 같은 만능의 사람을 신인(神人), 죽은 사람 위(位)를 베푸는 나무 패를 신주(神主), 신의 종복이란 뜻으로 기독교 신도가 스스로 낮추는 말을 신복(神僕), 신령의 자리로서 설치된 것이나 장소를 신위(神位), 영성의 생명 또는 신의 명령을 신명(神命), 신묘하고 기이함을 신기(神奇), 신령을 모신 집을 신당(神堂), 신기하고 영묘함을 신묘(神妙), 신의 공덕을 신덕(神德), 귀신이 몸에 접함을 신접(神接), 비밀에 속하는 일을 누설함을 신기누설(神機漏泄), 신이 행하는 뛰어난 계략을 신기묘산(神機妙算), 큰 일을 당해도 냉정하여 안색이 평소와 다름없이 변하지 않음을 신색자약(神色自若), 예술작품 따위에서 신비한 기운이 어렴풋이 피어 오름을 신운표묘(神韻縹渺), 신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신인공노(神人共怒), 헤아릴 수 없는 변화의 재주를 가진 힘을 신통지력(神通之力), 귀신처럼 자유자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는 신출귀몰(神出鬼沒) 등에 쓰인다.
▶ 而(이)는 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 수염을 뜻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 쓴다. 而(이)는 말을 잇다, 같다, 너, 자네, 그대,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만약, 만일, ~로서, ~에, ~하면서, 그러나, 그런데도, 능(能)히, 재능, 능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제 와서 또는 이금에를 이금(而今), ~할 따름 또는 ~뿐임, ~일 따름임을 이이(而已),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30세를 일컬음을 이립(而立),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가만히 기다리고 있음을 정이사지(靜而俟之),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갈이천정(渴而穿井),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고침이와(高枕而臥), 남과 사이 좋게 지내되 의(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 등에 쓰인다.
▶ 遠(원)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袁(원)은 衣(의)자 속에 ○을 쓴 낙낙한 긴 옷이고, 책받침(辶)部는 움직이는 일, 나아가는 일, 즉 길게 하다, 길다, 멀어지다, 멀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遠(원)은 멀다, 심오하다, 깊다, 많다, 세월이 오래되다, 멀리하다, 멀어지다, 소원하다, 내쫓다, 추방하다, 싫어하다, 어긋나다, 먼 데, 선조(先祖)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미륵 미(彌), 멀 유(悠), 길 영(永), 멀 하(遐), 멀 요(遙), 멀 료/요(遼), 길 장(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까울 근(近)이다. 용례로는 멀고 가까움을 원근(遠近),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격(遠隔), 먼 곳으로 싸우러 가는 것을 원정(遠征), 먼 데 것은 잘 보이고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을 원시(遠視),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를 원양(遠洋), 멀리 가서 놂을 원유(遠遊), 중심으로 부터 멀어져 감을 원심(遠心), 아득한 먼 시대를 원대(遠代), 멀리 바라다 봄을 원망(遠望),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을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곳에 있어서 올 수가 없음 원막치지(遠莫致之),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임을 원화소복(遠禍召福), 먼 데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함을 원족근린(遠族近隣),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원수근화(遠水近火) 등에 쓰인다.
▶ 之(지)는 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之(지)는 가다, 영향을 끼치다, 쓰다, 사용하다, 이르다, 도달하다, 어조사, 가, 이(是), ~의, 에, ~에 있어서, 와, ~과, 이에, 이곳에, 을, 그리고, 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