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의 역사적 실체
1베드 1,10-16; 마르 10,28-31 / 연중 제8주간 화요일; 2024.5.28
어려서부터 율법은 잘 지켜왔지만 가진 재물이 많아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던 부자 청년과 달리,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켜 왔다고 자부했으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인색했던 부자 청년이 그토록 바라왔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뒤로 한 채 슬프게 떠나간 뒤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드린 자신만만한 대답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그런 다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을 대표하여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마태 19,27) 하고 그 보상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이 질문은 내세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의 현실에 관한 일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기대를 담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에게 돌아온 예수님의 대답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포기한 것의 백 배나 되는 큰 보상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실제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부활 신앙 위에 세워진 공동체의 현실에서 이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의 궁핍함을 덜어 주어서 부활 신앙을 증거하였던(사도 4,32-35 참조) 초대교회 신자들은 처음에 백스무 명 가량이었습니다.(사도 1,15 참조) 그런데 사도 바오로의 회고에 의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룩한 공동 생활, 즉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궁핍함을 덜어 줌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한 이들은 모두 오백 명 가량이었습니다.(1코린 15,6) 공동 생활을 통한 예수 발현 체험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 독립전쟁(68~70년) 당시 로마군에 의해 백십만여 명이 학살당하는 그 끔찍한 불행 속에서 살아 남아, 소아시아의 에페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함께 겪은 일이었습니다. 그 비결이란 아주 단순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는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사도 4,32-33)함으로써 누린 큰 은총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걸어 가야 할 ‘길’이요 또한 믿어야 할 ‘진리’라고 계시해 주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요한 14,6), 즉 ‘영원한 생명’의 실체가 바로 이런 현실이었고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의 열매였습니다. 이에 대해 오늘 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1베드 1,13) 영원한 생명의 역사적 실체가 세상에 베푸는 은총은 거룩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1베드 1,14-15) 라고 말하며 권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권고한 이러한 내용은 예언자들이 수도 없이 내다본 역사적 심판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이사 2,4; 11,4; 에제 7,8; 다니 8,19; 호세 6,5)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루카 22,30)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미리 보여 주신 심판은 자비와 사랑의 심판이었습니다. 간음했다는 혐의로 현장에서 끌려 온 가련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심판이 그러했고(요한 8,1-11 참조), 스승을 배신하고 십자가 죽임의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제자들에게 그분이 보여 주신 심판이 그러했습니다.(요한 20,19-23 참조) 그 중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풍어의 기적으로 보여주신 심판이 또한 그러했는데(요한 21,1-14 참조), 이 경우에는 무려 백쉰세 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로 심판의 결과로 거룩하게 변화될 사도들이 이룩할 선교적 성과를 미리 보여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공동 생활이나, 그 후 로마제국이 신앙을 공인하고(313년) 국교로까지 제정하게 된(392년) 로마 복음화의 현실이 이를 역사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이렇듯 영원한 생명의 역사적 실체는 로마 복음화에서 시작되어 서방 세계 전역의 복음화로 나타났듯이 인류 문명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로 복음화된 서방 세계에 의한 복음화, 특히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에 대한 선교 활동에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20세기 중반에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서방 라틴 교회에 의해 수행된 복음화 2천년을 뼈아프게 성찰하면서 새롭게 복음화 제3천년기를 준비하고자 열린 ‘현대판 성령 강림 사건’이었습니다. 이 공의회에 의한 교회 쇄신과 복음화를 실제적으로 준비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을 앞두고 아시아에서 바야흐로 펼쳐질 하느님 계획의 경이로움에 관하여 사도적 권고의 첫 머리에서 이렇게 선언한 바 있습니다.
아시아 교회는 하느님께서 이 대륙의 남녀 인간들을 통하여 아시아 땅에서 그분의 구원 계획을 시작하도록 선택하셨기에 “우리 구원의 하느님”(시편 67,20)을 찬미하며 노래합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아시아에서 처음부터 당신의 구원 계획을 계시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조들을 인도하셨으며(창세 12장 참조), 당신 백성을 해방으로 이끄시려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애 3,10 참조).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하신 백성에게 많은 예언자들, 판관들, 임금들 그리고 굳건한 믿음의 여인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을 때”(갈라 4,4),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시아인의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이 대륙 백성들의 선량함, 문화, 종교적 활기, 그리고 양심, 동시에 모든 이의 선을 위하여 받은 신앙의 유일한 선물을 기뻐하면서, 아시아의 교회는 끊임없이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 117,1) 하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지에서 태어나시고 생활하시고 돌아가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에, 서아시아의 이 작은 지역은 모든 인류를 위한 약속과 희망의 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알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기 백성의 역사, 고통, 희망들을 자기 것으로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백성을 사랑하셨으며, 유다인의 전통들과 유산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오래 전에 이 백성을 선택하셨으며, 그들에게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성령의 힘 안에서 복음 설교를 통하여, 교회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고자”(마태 28,19 참조) 나아갔던 것입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함께, 아시아 교회는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신 모든 것에 경탄하면서, 그리고 “제1천년기에는 십자가가 유럽 땅에 심어지고, 제2천년기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심어졌던 것처럼, 제3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이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갈 것입니다.(‘아시아 교회’, 1항)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아시아에 태어나셨고 교회도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분을 모르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복음화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고, 지난 복음화 2천년의 역사적 교훈은 복음화 제3천년기에 이룩되어야 할 복음화 과업이 역설적이게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복음화 활동을 본디 그래도 행해질 수 있는 다행스런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첫 머리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바입니다.
교회에 위임된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명(Redemptio Missio)은 아직 완수되지 아니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강생 제2천년기를 마감하며 인류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에서 보면, 이 사명은 여전히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우리는 이 사명 수행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선포하도록 재촉하십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저는 바오로 성인의 이 외침을 온 교회의 이름으로 되풀이할 의무를 절실히 느낍니다. 교황직 시작부터 저는 선교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고자 땅 끝까지 순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민족들과 직접 만나면서 선교 활동이 절박함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으며, 이 회칙에서도 이 주제에 전념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세계의 필요에 부응하여 교회 생활과 활동을 쇄신하고자 하였습니다. 공의회는 삼위일체의 사명에 역동적 근거를 둔 교회의 ‘선교적 본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교 충동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성에 속하며, 교회 일치 운동을 고무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 (교회의 선교 사명, 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