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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itar Berbatov (Bulgaria/Tottenham Hotspur)
어디서 왔었더라? 2001년 CSKA 소피아에서 이적해온 후 바이엘 레버쿠젠의 붙박이 공격수로 2002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는 '무려' 지네딘 지단과 맞붙기도 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레버쿠젠에 있었던 마지막 두 시즌동안 분데스리가에서만 46골을 몰아치는 대활약을 펼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리버풀 등 많은 클럽들의 타겟이 되었다. 그리고 2006년 여름, 마틴 욜 감독에 의해 £10.9m의 가격(역대 불가리아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이적료 기록)에 토튼햄 핫스퍼로 이적.
얼마나 잘했더라? 이전까지 미도나 그레고리 라시악의 험악한 플레이만 보던 토튼햄 팬들에게 베르바토프는 은완코 카누나 데니스 베르캄프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아름다운 볼터치를 선보이며 순식간에 화이트 하트 레인의 왕이 되었다. (당시 그의 부드러운 볼 처리 능력은 '비단'에 비견될 정도.) 또한 동료였던 로비 킨, 마이클 케릭과 보인 훌륭한 앙상블은 이적 첫 시즌에 팀을 프리미어리그 5위로 끌어올렸고 본인 역시 PFA 선정 'Team of the Year'의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금새 토튼햄에 있기엔 '너무 커 버린 사나이'가 되었고, 결국 그를 염원하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의해 2008년 여름 이적시장의 마지막 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 토튼햄에서의 총 기록은 102경기 46골.
지금은 뭐하더라? 나름 승승장구 하시며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도 하셨으나 요새는 노리치 시티나 QPR전에 나오셔서 5골씩 몰아넣는 베기옥이 되셨음.
Obafemi Martins (Nigeria/Newcastle United)
어디서 왔었더라? 2001년,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영입된 오바페미 마르틴스는 아드리아누, 훌리오 크루즈, 크리스티앙 비에리의 백업으로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인테르의 주전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틴스가 막 재계약을 마치고 웅비할 참이었던 2006년 여름, 인테르는 거액을 들여 에르난 크레스포와 즐라탄 이브라모비치를 영입해버렸고 배신당한 조강지처마냥 빡친 마르틴스는 팀에 이적요청서를 제출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 임시감독 딱지를 떼고 정식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준비하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글렌 로더 감독은 £10m의 가격에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얼마나 잘했더라? 위닝 일레븐에서 스피드를 99 가까이 찍어주는 준족인 마르틴스의 영입에 뉴캐슬 팬들은 흥분했다. 등번호도 '성자(聖者)' 앨런 시어러가 남기고 간 9번, 거기에 특유의 아크로바틱한 덤블링 세레머니까지.. 여러모로 큰 기대를 받으며 타인사이드에 입성한 마르틴스였지만 그가 뉴캐슬과 함께한 세 시즌동안 남긴 기록인 107경기 35골은 2008/09 시즌 팀의 강등과 겹쳐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강등시즌에 리그에서 고작 8골 넣은 것은 좀 뼈아팠다.) "팀이 조금 더 안정되었더라면",(그는 뉴캐슬에서 8명의 감독을 모셨야 했다.) 혹은 "부상이 조금 덜했더라면" 등의 아쉬움을 남기고 마르틴스는 팀의 강등과 함께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지금은 뭐하더라? 독일에 잠깐 있더니 어느새 러시아에 가 있다가 잠깐 또 버밍엄 시티로 돌아온 마르틴스. 그는 2011년 2월 15일 세인트 앤드류스 경기장에서 펼쳐진 버밍엄 대 뉴캐슬의 경기에서 뉴캐슬 원정팬들의 격한 야유 속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57분만에 교체아웃되었다. 뉴캐슬이 2-0으로 승리.
Afonso Alves (Brazil/Middlesbrough)
어디서 왔었더라? 2007년 10월 7일.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헤렌벤은 리그 라이벌 헤라클레스 알메로를 만나 9-0의 역사적 대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홀로 7골을 몰아친 브라질인 아폰소 아우베스가 있었다. (이 기록은 여전히 에레디비지 한 경기 최다득점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아우베스는 원래 잘나가던 사나이였다. 그는 스웨덴 클럽 말뫼에서 헤렌벤으로 이적한 후 에레디비지에서의 첫 시즌에 38경기 37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과시하며 에레디비지의 전설들인 호마리우와 호나우두에 비견되었고, 브라질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으며, 프란세스코 토티에 단 1골차로 밀려 유럽 골든 부츠를 타지 못했던 선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뻑적지근한 경력들은 미들스브로의 야심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
얼마나 잘했더라? 2008년 1월 미들스브로 클럽 레코드인 £12.7m의 이적료에 프리미어리거가 된 아우베스는 풀럼전에서 '동-국 리'란 선수의 교체맴버로 데뷔전을 치른다. 그리고 곧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일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팀의 2-2 무승부를 이끄는 등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08/09 시즌 아우베스는 리그에서 31경기 4골이란 처참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강등에 일조했고, 팀의 강등과 함께 카타르의 알 사드로 적을 옮기며 두 시즌에 걸친 미들스브로 생활을 끝냈다. 1,000만 파운드의 사나이 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했던 퇴장. 당시 가디언의 해리 피어슨 기자는 "미들스브로가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 영입한 스트라이커는 전부 망했어, 이건 그냥 저주야 저주."라는 논조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뭐하더라? 지금은 카타르의 알 라얀이란 클럽에서 뛰고계신다.
Dirk Kuyt (Netherlands/Liverpool)
어디서 왔었더라? 위트레흐트 시절부터 이미 떠오르는 스타였던 덕 카이트는 2003년 더치컵 결승에서 페예노르트를 4-1로 박살내고 곧바로 페예노르트로(-_-) 이적했다. 사실 피에르 반 후이동크의 대체자로 낙점받았던 만큼 카이트에게 실릴 부담감은 막중했으나 그는 기복없는 골기록을 보이며 네덜란드 최고의 공격수로 발돋움한다 - '골 못 넣는 선수'라는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오명과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골잡이였던 것. 실제로 2004/05 시즌에는 29골을 기록하며 에레디비지 득점왕까지 차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무쇠같은 체력에 있었으니, 그는 99년에서 06년까지의 7시즌동안 단 5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01년 3월에서 06년 4월까지 무려 179경기 연속출장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잘했더라? 2006년 여름, 리버풀의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은 £10m의 뭉칫돈을 풀어 카이트를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그는 이적 후 첫 시즌에 준수한 골 기록과 경기가 끝나면 언제나 경기장을 돌며 팬들에게 찾아가 박수를 보내는 멋진 모습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타 팀 팬들은 그를 85년 개봉한 영화 'Goonies'의 괴물(sloth)과 놀랍도록 닮았다며 야유를 보냈지만..) 그는 지금까지 리버풀에서 250경기 넘게 우측 윙과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성실한 활약을 보이고 있고 그 사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07), 프리미어리그 준우승(2009), 월드컵 준우승(2010)을 경험했다. 그의 리버풀 커리어 하이라이트는 아마 2011년 3월 6일 안필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기록한 헤트트릭일 것.
지금은 뭐하더라? 여전히 리버풀과 네덜란드의 선수로 열심히 뛰고 있다.
Jose Antonio Reyes (Spain/Arsenal)
어디서 왔었더라? '오토바이'(혹은 나훈아..)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는 어려서부터 고향팀 세비야의 각급 유스팀을 거치며 99년 1군으로 데뷔, 다양한 공격옵션으로 활약하며 01년부터 세 시즌동안 92경기에 출전해 25골을 남긴다. 곧 유수의 스페인 클럽들이 그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세비야 이사회는 팬들의 원성을 의식해 그를 해외로 보내기로 결정, 레예스는 2004년 1월에 £10.5m의 이적료를 남기고 아스날로 적을 옮기게 된다.
얼마나 잘했더라? 레예스가 영입되었을 당시 아스날은 시즌의 절반을 무패로 달려오고 있었고 그는 곧바로 팀에 녹아들어 저 유명한 '무패 우승'을 이루는데 일조한다. 다음 시즌인 2004/05 시즌에도 레예스는 첫 6경기에서 모두 1골씩을 기록했고 당시 '멋이나 부리는 애송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교되며 '진짜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4년 10월, 숙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맨유의 수비수 게리 네빌과 필립 네빌은 레예스를 향해 난폭한 태클을 일삼았고 그는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채 질린 표정으로 교체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경기 이후 레예스의 폼은 '마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처럼' 급격하게 떨어진다. 가뜩이나 영국의 거친 날씨와 음식 적응에 실패해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던 그가 "이런 축구는 나와 맞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 또한 그는 스페인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하던 도중 스스로를 레알 마드리드의 이사 에밀리오 부트라게뇨라고 자칭하는 장난전화에 속아 제발 자신을 영입해달라 읍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고, 2005년 FA컵 결승에서는 '그' 호날두를 향해 바보같은 태클을 하다가 레드 카드를 받았다. 결국 레예스는 다음 시즌인 2005/06 시즌이 끝나자 미련없이 아스날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간다. 그의 아스날 기록은 110경기 23골.
지금은 뭐하더라? 에지간히 추위에 질렸는지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벤피카 등 따뜻한 남쪽나라 클럽에서만 뛰고 계신다.
Juan Pablo Angel (Colombia/Aston Villa)
어디서 왔었더라? 고향팀 아틀레티코 나시오날(그는 이 팀에서 '전갈 골키퍼' 르네 이기타와 함께 뛰었다.)에서 축구를 시작한 후안 파블로 앙헬은 비범한 재능을 뽐내며 콜롬비아를 평정, 1998년 에르난 크레스포를 막 떠나보낸 아르헨티나의 명문 리베르 플라테로 적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하비에르 사비올라, 파블로 아이마르와 극강의 공격진을 이루며 132경기 62골의 빼어난 활약을 선보였고, 2001년 1월에 그의 재능을 탐낸 존 그레고리 감독에 의해 프리미어리그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료는 당시 아스톤 빌라 클럽 레코드인 £9.5m.
얼마나 잘했더라?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입성한 아스톤 빌라였지만 그의 출발은 좋지 못했다. 전혀 새로운 방식의 축구 스타일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막 태어난 아들과 산모 모두가 극심하게 아픈 탓에 잉글랜드에서 생활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 빌라 팬들은 앙헬의 첫 골을 보기 위해 거진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적응에 성공한 이후 앙헬은 곧 훌륭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우상이 된다. 2003/04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16골, 컵대회 포함 23골을 넣으며 커리어 하이를 맞기도. (아직까지도 아스톤 빌라는 앙헬 이후 한 시즌 20골을 넘긴 선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경기력은 다소 들쭉날쭉한 면이 있었고(그의 부진을 그레고리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그레햄 테일러 감독의 롱볼 전략의 탓으로 돌리는 견해도 있다.) 아스톤 빌라의 쇠락과 함께 그의 득점력도 떨어져갔다. 결국 2007년 4월, 햇수로 6년을 채우며 205경기 74골란 기록을 빌라에 남긴채 그는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한다.
지금은 뭐하더라? 뉴욕 레드불스에서 LA 갤럭시, 치바스 USA 등을 돌며 미국 생활에 꽤나 만족하는 모양새다. 요새는 축구 기술로 인터넷 슈퍼스타가 된 꼬마 아들 토니 앙헬이 더 유명할지도?
El Hadji Diouf (Senegal/Liverpool)
어디서 왔었더라? '연쇄살인마'라는 섬뜩한 별명의 엘 하지 디우프의 커리어는 진정한 '떠돌이 악당'의 모습을 유감없이 대표한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태어나 축구를 하며 생계에 보탬을 주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프랑스로 이민 온 디우프는 프랑스 리게앙 클럽 소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후 소쇼에서 렌을 거쳐 랑스에 입단한 디우프는 2001/02 시즌 54경기 18골의 '대박'을 터뜨리며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고, 마침 펼쳐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세네갈 돌풍의 주역으로 전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된다. 그리고 당시 니콜라 아넬카와 디우프를 저울질하던 리버풀의 제라드 울리에 감독은 디우프에게 £10m의 이적료를 베팅하기로 결심한다.
얼마나 잘했더라? 총 스탯부터 말하자면 그는 두 시즌동안 80경기 6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냈고 울리에의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다. 가끔 터지는 스피드와 예측할 수 없는 창의성은 제법 훌륭했으나 그뿐인, 소위 '월드컵 먹튀'가 되어버린 것. (그리고 이 경우는 2010년에 웨스트 햄과 윈스턴 리드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된다..) 또한 그는 커리어 평생에 걸쳐 숱한 말썽을 피운 인물로(무면허 운전.. 배우자 폭행.. 인종차별 혐의..) 리버풀에서도 그의 악행은 멈추지 않았다. 2003년 9월 셀틱과의 UEFA컵 8강전에서 셀틱 팬들에게 침을 뱉은 행위로 글래스고 법원에서 5,000파운드의 벌금형을 받은 것이 대표적. 무엇보다 그는 팀의 기둥인 제이미 캐러거와 스티븐 제라드와 사사건건 충돌해대며 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캐러거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를 '이길 마음이 전혀 없는 최악의 선수'라고 언급하기도. - 물론 곧 디우프의 "캐러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선수"라는 인터뷰를 읽어야 했지만.
지금은 뭐하더라? 볼튼으로 이적했다가 숱한 팀을 거쳤고 지금은 돈캐스터 로버스에서 말년을 보내고 계신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재밌네요^^
카윗은 참 매력적인 선수인 듯-
앙헬 AV시절 한경기에서 PK실축하자마자 수비하다 자살골넣은 기억이 새록새록.. 혼자서 1경기 -2골 ㅠㅠㅠ
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