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宮 속의 또 다른 집
앙영하thㅔ영? 어째 맨날 나는 역사글로만 쩌리방에 오는걸까. 자꾸 나한테 정체가 뭐냐고 물어보는 여시들이 많은데.... 문화재청 관련자 아니그여, 역사학과 학생 아니그여. 호텔조리과 졸업한 역사 좋아하는 잉여에영. 이제 나한테 역사학과 다니냐고 물어보디망. 흑... T-T 그리고 책 추천 계속 해달라는 댓글이랑 쪽지 엄청 받아서... 역사책은 안 가리고 봅니다.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무쟈게 곤란해영. 나는 걍 교보문고 같은데 가면 자리 펴놓고 몇시간씩 집히는대로 보기 때문에(...)
이번 글은 궁 속에 있는 또 다른집에 대한 글이에영. 궁 속에 집이 또 있다그? 궁이 걍 집 아님? 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글은 정말 궁 속에 또 다른 의미 때문에 지은 집이라고 보면 되는거에영. 물론 궁 자체가 왕과 그 일가의 집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100% 집의 기능을 한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겠지영? 정말 말 그대로 집의 역할을 했던 전각들을 보고 갑시당.
1. 경복궁 건청궁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안에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궁, 건청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건청궁乾淸宮 이라는 이름은 자금성의 황제가 머무르는 침전의 이름과 같은 이름이에영. 솔직히 아주 안 베껴 왔다고 하기엔 이름이 한자마저 똑같은게 함정. 건청궁은 경복궁에서 유일하게 국가재정이 아닌 왕실의 내탕금(왕족에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도록 나온 일종의 연봉)을 고종이 들여서 지은 건물이에영. 유독 경복궁 전각 가운데서도 안 쪽에 위치해서 이 건청궁을 모르고 못 보는 사람들도 꽤나 많지영. 뭐 좋은 말로는 고종이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입지에서 벗어나고 독립을 꾀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종이 명성황후를 엄청 아껴서 명성황후와 둘이 양반집 부부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컸고 그래서 특별히 사비를 들여 둘이 꽁냥꽁냥도 할 겸 아버지인 흥선대원군도 피할 겸 여러 용도로 지었다고 하더군영. 그래서 일부러 양반집처럼 꾸미려고 건청궁의 건물에는 단청(궁의 기둥이나 벽, 기와를 받치는 처마등에 색칠함)을 하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질감이 살아있지영.
하지만 건청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건물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건청궁의 '옥호루'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살해당한 을미사변이 일어났던 그 장소. 건청궁의 장안당이 고종이 머무르는 사랑채와 같은 역할을, 곤녕합이라고 해서 황후가 머무르는 옥호루는 안채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명성황후는 고종이 지어준 건청궁의 곤녕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 명성황후가 자신이 지어준 건청궁에서 살해 되었다는 것에 제대로 멘붕 온 고종은 창덕궁에서 계속해서 지내게 됐고 1896년 아관파천(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이 일어난 후 다시 고종이 1897년 경복궁으로 환궁하지만 이 건청궁을 찾진 않아.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황후가 죽은 곳을 볼 자신이 없었던거지. (그래서 나중에 전화가 들어왔을 때 고종은 궁하고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가장 먼저 전화로 연결해서 항상 전화를 했다고 해. 왜 그대는 전화를 받지 않소, 이러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고종이 건청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건청궁은 1909년 일본에 의해 완전히 헐리게 돼. 고종과 명성황후의 추억의 장소가 헐리게 된거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다시 볼 수 있는 건청궁은 다시 복원 한 건청궁의 모습이야.
그리고 건청궁은 또 다른 역사적 의의가 있는데 1887년 조선에서 최초로 전기를 설치하여 전등으로 하여금 밝은 빛을 보게 했던 장소가 경복궁 중에서도 바로 이 건청궁. (흔히들 교과서에 실려있는 경복궁에 최초로 전등 켠 사진의 장소가 바로 이 건청궁.)
사진은 차례대로 건청궁의 입구, 고종이 머무르던 장안당, 그리고 명성황후가 머물던 옥호루.
2. 창덕궁 연경당
위의 건청궁이 고종과 명성황후의 애정과 슬픔이 가득 담긴 집이었다면 창덕궁에 있는 연경당은 애정 때문이 아닌 교육 때문에 지어진 집이야. 창덕궁에 있는 연경당은 순조 28년 지어진 집인데, 당시 왕세자였던 효명세자(문조로 추존)가 사대부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고 해서 순조가 기꺼이 윤허했고 그래서 지어진 집이야. 위의 건청궁과는 달리 이렇다 할 사연이나 그런 부분은 확실히 덜 해.
연경당은 99칸 사대부의 집을 그대로 모방해 지어진 부분이 있고,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있어. 게다가 건청궁은 왕과 왕비의 처소만 있을 뿐이지만 연경당에는 부엌이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머무는 행랑채까지 아예 사대부의 집을 똑같이 복사해다 놓은 부분이 크다고 볼 수 있고.
연경당의 위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원(비원은 일본이 붙인 말)에서도 좀 더 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어서 이곳도 사람들이 잘 몰라. 하지만 들어가 보면 궁 안에도 이런 건물이 있을 수 있구나 뭐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주는 전각이기도 함. 연경당 또한 건물 전체를 사대부의 집과 동일하게 꾸몄기 때문에 단청이 되어있지 않아.
3. 창덕궁 낙선재
낙선당은 조선의 24대 임금 헌종이 사랑하던 후궁 경빈김씨를 위해서 지은 집이야. 헌종과 경빈의 사랑이 어느정도였냐면, 헌종의 원래 왕비는 안동김씨 집안의 효현왕후 김씨였어. 하지만 효현왕후가 일찍 죽었고 나라에는 국모가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왕비를 뽑기위해 간택이 열렸지. 거기서 헌종은 당시 간택에 참가했던 후궁인 경빈을 보고 첫눈에 반했지만 정작 왕비는 경빈이 아닌 남양 홍씨 집안 출신인 효정왕후 홍씨가 낙점이 됐어. 낙심해 있던 헌종은 효정왕후와 가례를 치뤘지만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고 후사를 잇기 위해 왕비를 간택한건데 왕과 왕비의 사이에 항상 불화가 돋궈지니 후사가 생길 수 있나. 그래서 헌종의 할머니인 순원왕후와 어머니인 신정왕후는 후사를 잇기위해 다시 한 번 후궁 간택을 실시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후궁 간택에 헌종이 마음에 두었던 경빈이 또 다시 참가를 했고 결국 헌종은 첫눈에 반한 여인인 경빈을 후궁으로 맞이하게 됐어.
그런데 경빈이 생각보다 궁 안에 적응을 잘 하지를 못했나봐. 사랑하는 여인을 궁 안에다가 앉혀놓긴 했는데 얼굴에 항상 수심이 드리우니 지아비가 되어서 마음이 편할수가 있나. 헌종은 경빈을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해. 궁 안에 일반 사대부집과 같은 한옥집을 지어놓고 그걸 경빈에게 헌정하는거지. 하지만 헌종과 경빈의 러브스토리는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어. 헌종이 23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거든. 그리고 경빈은 헌종이 자신을 위해 지어준 집인 낙선당에서 홀로 평생동안 헌종을 그리워하다 1903년 타계.
그리고 낙선당은 낙선재로 불리게 돼. 낙선재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기 시작한건 1980년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대한제국 황실들의 영구귀국을 반대해. 그래서 건강했을 때 자신의 발로 대한민국땅을 밟지 못한 황족이 바로 영왕이 은이야. 영왕은 이토히로부미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과 강제 결혼을 해야했고 일본 군대에서 근무도 했지만 항상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데. 하지만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일본에서 지내야만 했고 건강이 악화되어 식물인간 상태로 결국 19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의 배려로 한국땅을 밟아. 본인의 발이 아닌 식물인간 상태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결국 몇년 되지 않아 영왕은 세상을 뜨게 되고 영왕비인 이방자 여사(일본명 나시모토 마사코)와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 그리고 역시 박정희 정권의 배려로 영구귀국한 덕혜옹주, 의왕의 둘째아들 이우공(흔히들 말하는 운현궁오빠 = 얼짱왕자)의 부인인 박찬주여사가 이 낙선재에서 머무르고 순정효황후는 1966년에, 덕혜옹주는 1989년에, 이방자여사는 덕혜옹주가 사망한지 8일 후에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해. 망국의 황족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오르내린 이름이 바로 낙선재였지.
낙선당은 세가지 건물로 구성되어 있어. 왼쪽의 낙선재, 가운데의 석복헌, 오른쪽의 수강재. 이와 같은 구조 또한 헌종이 구상한건데. 낙선재는 왕인 헌종의 처소, 가운데 석복헌은 후궁인 경빈의 처소, 오른쪽의 수강재는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처소였어. 경빈을 가운데 둔건 왼쪽의 왕과 오른쪽의 대왕대비 사이를 오가며 좀 더 편하게 지내라는 의미였지.
낙선당이 조금 특이한건 원래 궁궐의 경우엔 단청이라고 해서 건물에 색을 입히게 되는데 왕이 머무르던 낙선재와 경빈이 머무르던 석복헌에는 단청을 하지 않았어. 유일하게 할머니인 순원왕후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수강재에만 단청을 조금 한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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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왜 브금 쩐다...ㅠㅠ..제목 아는 여시있어..? 아 그리고 이런 역사관련 사실들 진짜 계속 올려주는언니들 있어서 넘 감사함 ㅠㅠ..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지만 다 알고싶다
명성황후 OST I`ve Dreamde Of The Land
고마어 여시얌!!
삭제된 댓글 입니다.
부인 시신 못봤어... 고종은 당시에 명성황후가 쫓아보내서 창덕궁에 있었고 일본놈들이 명성황후 살해하고 나서 바로 불에 태웠기 때문에...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그사건은 너무 끔직한 사건인거같아 글로봐도 멘붕오는데 ㅠㅠㅠㅠㅠ
근데 일본놈들은 명성황후 밴 칼을 지금 무슨 신사인가에 놓고 절올리고 그런다며.. 그 칼에 글이 쓰여져있는데 뭐였지 늙은여우를 배었다 였나 암튼 늙은 여우가 들어갔었음......
ㅎ ㅏ..ㅡㅡ난 첫번쨰꺼 지금까지 계속 있어온건줄알았는데 그새끼들이 헐고 복원된거라니ㅡㅡ.....ㅇ ㅏ.........
[역사] ㅋ 나 맨날 언니글있으면 광속클릭함 ㅋㅋㅋ 이것도 재밌게보고간다언니..!
낙선재하면난자꾸덕혜옹주생각남ㅜㅜ거기갔을때덕혜옹주설명을들어서그런가암튼정신오락가락하는와중에대한민국만세였던가어마마마아바마마보고싶습니다이런거쓴거ㅜㅜㅜㅇ우ㅜ우우
[역사 궁속에존재하는또다른집] 이런거느므좋당 핡 재밌게읽었엉 ^^
삭제된 댓글 입니다.
444 내말이..!! 파도파도 더러움이 나오는 새끼들임.ㄷㄷㄷ
55 오기륭 언니 글 읽을수록 애국심은 높아지고 내안에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은.......ㅎㅎ 진짜 좆같은 나라......명성왕후 진짜 너무 불쌍하다......고종도 마찬가지고....
경복궁 갔을때 왜 이런 평범한?건물이 있나했더니...그런 사연이.... 다음에 갈때 다시한번 잘 봐야겠다~역시 알고보는거랑 모르고 보는거랑 천지차이구먼
우와! 경복궁 구경 갔을 때 건천궁 몰랐는데 담에 가면 꼭 봐야겠다!
와... 언니 진짜... 와... 뭐라고 칭찬을 해주고싶은데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없네 진짜 와..... 언니 짱이다
시발 일본 개새끼야 우리 궁궐 복원하는 비용 시발 일본이 내야하는거 아냐? 생각해보니까 ㅡㅡ 존나 짜증나네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비용 내라그래 씨발년들이 사과한마디도 안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들어
존나 맞는말인데 이런식으로 치면 가장많은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이랑 프랑스는 시발 국고 개털릴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 언니 고마워 이렇게라도 역사를 조금이나마 더 배운다는게 ㅠㅠ 해외나와서 인터넷으로 배운 역사가 조금씩 조금씩 늘어서 박식해 진 느낌!
일본은 정말 쓰레기중에 쓰레기야...
로맨티스트 고종ㅜㅜㅜㅜㅜ 어찌이런 슬픈사연이ㅜㅜㅜㅜㅜ
졸리니까 낼정독하겟으 ㅜㅜ
아 진짜 고종 로맨틱하다ㅠㅠ 일본 나쁜놈들 진짜 생각할수록 빡치네ㅠㅠ 우리는 전쟁안하는 착한 나라예요 뿌잉뿌잉 이러는거 진심 가증스럽고 짜증난다
[궁] 아 나 이런거 너무 좋아 ㅜㅜㅜ 지금 자야되는데 ㅜㅜ 낼 꼭 읽어봐야지ㅠㅠㅠㅠㅠ
[궁궐안에또다른집]내일정독해야겠다ㅜㅜ
요새 궁 투어 다니면서 생각하는데, 날 맑은 날, 하늘 파란 날엔 단청이 그렇게 예쁘고, 오늘처럼 날 흐린 날엔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목조건물이 정말 예쁜것같아..오늘은 경운궁 석어당이 그랬찡.. 운현궁도 정말 예쁘고. 언니 글들이 다 정말 좋아!!고마워!!
궁궁궁!! 읽어야지
궁이 진짜 은은하면서 멋스럽다...
[고궁속 또다른 궁] 아............
에라이 하여간 일본노무새끼들 존나 왜 남의 궁은 헐고지랄이야 시발 입속이나 다 헐어버려라 시발!!
궁......한옥에살고시퍼
잘 읽었어~ 우리 궁은 정말 곳곳에 역사의 흔적들이 배어있구나..
후원 비오는 날에 가봤는데 정말 분위기 좋았어. 연경당 정말로 다른 세상같음ㅋㅋㅋ살짝 들여다보긴 했는데 안에 들어가보고싶었음 ㅠㅠㅠ
낙선재도 일반에 공개하는 날 있는데 언제인지 기억 안난당 아무튼 가보면 좋아
[운현궁 궁궐] 올 재미써 여시야 ㅠㅠㅠ
쩌리방 - 궁궐 언니글너무너무고마워ㅠㅠ!!!!
[궁궐이야기] 아직 궁 가본적이 없는데 가보고싶어진당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