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2품 소나무(천연 기념물 제 103호)
1464년 (갑자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의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이 걸린다'고 말씀하시자 이 소나무는 가지를 위로 들어 어가를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이런 연유로 '연걸이 소나무'라느 별칭을 얻었다 하며, 또 대왕께서 이곳을 지나시다가 비를 피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사연으로 세조께서는 이 소나무에 정2품(현재의 장관급 위계)의 벼슬을 내렸다 한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앞마을의 이름을 진허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 당시 대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 한다.
원래의 정 2품소나무(사진 : 모셔 옴)
보은이 처가인 친구의 장모님이 별세하셔서 문상을 하고 법주사를 둘러 보기로 했다.
이름 난 곳은 좀(?) 찾아 다녔는데 속리산과 함께 유명한 법주사가 처음이다.
소나무의 표본인 정 2품 소나무는 법주사에 들어가는 길목에 있기에 차를 세우고 구경을 했다.
600년 세월 때문인가? 바람, 눈, 노화, 최근에 볼라벤 태풍 등으로 온갖 수난을 격었다.
인간의 삶을 대변이라도 하련지 철창문 둘러처진 요양병원에 갇혀 그 위상, 그 벼슬 어떡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앓고 있었다.
차라리 깊은 산속에서 태어나 자연을 벗삼아 살았드라면 슬프지나 않을 것을,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은 것을, 인간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망산창이 된 몸은 구경거리가 되어, 전에는 없었던 매연을 들이키며 이름값 하느라고 사진이나 찍히고 있다.
소나무가 그랬다. " 나를 보고 무엇을 느끼고 가냐고?"
겨울 문턱의 해는 짧아 노을이 깔리고 눈까지 내렸다. 법주사에 들어가려다가 주차비가 아까워(?) 날씨 좋을
다음으로 미루고 매표소 입구에서 돌아서버렸다.
사실은 눈으로만 보고 오기는 그렇고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날씨 때문이었다.
들은바로는 보은 대추가 유명하다하여 가계를 찾아보니 보이지 않아 구경도 못했다.
어둠깔린 평일의 보은 읍내는 꼭 휴전선 부근에 위치한 군 부대 있는 마을 같이 외출 없는 평일 모습 같았다.
옆 길로 새지 말고 곧 바로 내려갈 것이지 기름값 뽑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미워서 날씨도, 보은 읍내 대추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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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2012. 11. 23)
소나무 씨앗이라도 한 개 줏어 오려 했는데 솔방울이 달려 있지 않았다.
그럼 숫놈?
하여 무슨 사연이 있나 싶어 이야기를 찾아보니 부인도 있고 첩도 두었다.
보은군 외수리면에 두 가지로 된 600년된 정부인 소나무가 있는데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삼척시에 있는 100여년 된 젊은 아가씨와 혼인을 했는데,
그 사유로 삼척시와 보은군은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고한다.
첫댓글 이리도 좋은 자료들을 어디에서 가져옵니까
퍼가겠습니다
고운 시간 되십시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