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7일 일요일부터 6월 24일 일요일까지 강릉 남대천변 가장 서쪽 끝에서 강릉 단오굿
을 비롯하여 대관령 산신제, 강릉 농악, 관노 가면극, 오케스트라 연주, 경찰악대, 씨름대회,
그네 뛰기, 널뛰기 대회, 창포물 머리감기 등, 단오제 행사가 한 참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을 무렵,
강릉 남대천변 가장 동쪽 끝에서는 비암장사, 엿장수 각설이, 쥐약장사, 무좀약 장사, 옷장사,
벙거지 장사, 메리야스 빤스 장사, 80년 전통의 동춘서커스, 메밀국수, 수수 부케미, 오징어
순대, 동동주 감자전 장수등이 단오제 광관객들을 상대로 한창 활발하게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 단오 이불장 난전은 행사장의 가장 후미진 동쪽끝 각설이 엿장수 패거리들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작년의 단오제 주 행사장 부근에 자리 잡았을때보다, 장사는 그다지
시원치 않은 편이었다
단오 이불장을 펼치기 위하여 단오 행사 이틀전부터 포장치고 좌판깔며 장사 준비하는
기간만도 이틀이고, 장사 시작하면서 끌어들인 이불만도 5톤 화물탑차로 4대 불량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불장을 펼치기 위해 강릉까지 불러들인 인원만도 여덟명이나 되었으니,
웬만큼 팔아 가지고는 적자를 면하기 힘든 상황 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단오제때의 이불장사들은 작년보다도 훨씬 많은 약 20여개 팀이 좌판을 펼치며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강릉 단오장의 이불장은 옛 부터 명성이 나 있는 장터였다
그리고 강릉 단오 이불장은 서울을 비롯하여, 속초, 주문진, 강릉, 동해, 삼척, 태백등, 강원도
일대의 사람들이나, 펜션, 여관업, 그리고 민박집들까지 이불을 사기 위하여 일주일 내내
벌떼처럼 몰려들어 북적 거리며 북새통을 이루었었고, 아수라장 난장판이 되곤 했었던 것이다
전국에서 이불장사께나 한 다는 명성이 자자한 기라성 같은 이불장꾼들도 꾸역 꾸역 몰려들어
그야말로 강릉 단오 이불장은 전국 이불장의 축소판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단오 이불장은 완전히 조져 뿌린거나 마찬 가지였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새벽시간까지 벌떼처럼 무리를 지어 하루 웬종일 몰려 다니며, 먹고 마시고
겐세라 세라 세라 하고 다니다가, 심심 풀이로 이불값을 물어 보고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철수하기 이틀전 부터 꾸역 꾸역 몰려 들기 시작하더니, 단오장 마지막 날에는
이불을 사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불 좌판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기에 이르렀고,
다음날 좌판을 걷고 철수를 하고 있는데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판 사판 공사판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젠장헐 ~ 있을때 사러오지, 왜 철수 하고 있는데 와서 난리들을 치는지 모르겠어
하여간 철수 하는날 이불을 사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이불장은 한동안 아수라장이 되었었지만,
결국 얼마 팔지 못하고 철수를 하고 말았다. 행사가 끝나면 단오행사 주최측에서 포장 철거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단오 행사 첫날 개시부터 조짐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대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불장을 북적이며 돌아 다니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불값을 묻기만 하고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었다
첫 날이나 둘째날은 저렇게 묻기만 하고 지나가다가, 세째날 정도부터 몰려들어 철수 하기
이 삼일전쯤 되면, 한 꺼번에 벌떼처럼 몰려들어 아수라장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는것을...
이제 단오 이불장을 찾는 아즈매들도 잘 알고 있는듯 했다
철수하기 바로 직전에 오면 모든 이불들을 아주 싼 값에 가져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무리 맘에 드는 멋진 이불이 바로 코 앞에서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그저 묵묵히 때를 기다리면서 쉽사리 물건을 사들고 가지를 않았다
" 조금만 참자...조금만 참고 있으면 저눔들이 철수하게 될것이고, 그때쯤 되면 막 싸게 주니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보자. 세월이 좀먹나 ? 모래알이 썩나 ? 저 비단이 장수
왕서방들 물건 가져온것을 보아 하니 산더미 처럼 싸였구만...한 달 후에 와도 상관 없겠다 "
이렇게 되면 일개 강원도 아즈매들이 전국을 무대로 행세께나 한다고 자부하는
기라성 같은 이불장수 왕서방들의 하이바 위에서 느긋이 앉아 놀고 있는 셈인것이다
이불 난전을 펼쳐놓은 첫날부터, 아즈매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이제 장사가 본격적으로
좀 터지나부다 싶었는데, 젠장헐~ 오픈께임 선수들이 께임을 하기에 앞서
탐색전을 벌이는것처럼, 이리 저리 탐색만 하다가 대부분 그냥 가는 것이었다
하옇튼 그날 첫날은 개시부터 이백만원도 체 못 팔았었다
아무리 첫날 이라지만, 지금까지 이백만원도 체 못 팔아 본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 단오 이불장은 출발부터 뭔가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이백만원이라도 팔았지만 다른 이불 장수들은 그 반절 정도 밖에 못 팔아 놓고
있는것 같았다. 여덟명이라는 인원동원에, 그 여덟명의 인원들이 먹고 마시고 숙박하는 비용과
5톤 트럭 탑차 4대 분량의 이불과, 비싼 자리세를 감안 한다면 이백만원을 판다는것은
곧 " 나 망했습니다 " 라는것을 의미 하는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그날은 밤 10경에 장사를 접고 겔로퍼 차에 8명이 탑승,
동해해변 경포대 콘도에 도착하여 쐬주 몇병 퍼마시고, 모두들 그대로 거꾸려져 버리고 말았다
스리랑카에서 온 아거들, 왼쪽은 시실, 오른쪽은 볏산
숙소인 경포대 콘도에서 아침먹고 강릉 남대천변 단오장 이불난전으로 돌아와 포장 올리고
좌판을 펼쳐 놓은 다음, 청주쪽에서 올라온 이불솜 한 차를 하역하고 잠시 쉬고 있을때,
사진한컷 찰칵 찍었다
시실은 스물여섯살이라 하고 볏산은 스물 두살이라고 하는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을 따라 다니다 보니, 이미 반쯤은 한국인이 되어
쐬주도 조금씩 마시고 고기와 김치도 좀 먹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고기 보다는 김치를
훨씬 더 좋아 하는 편이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아마 고기 보다는 김치를 선택하여 먹는듯 했다
이 스리랑카 애들이 좋아 하는것은 카레 라이스 같은 음식들인데 이 곳 단오장 난전 주변의
음식점들은 맨 고기와 회, 그리고 술 뿐인걸 어쩔 것이여 !
돈을 벌려고 부모형제와 이별하고 이억만리 타국까지 왔으면 닥치는대로 먹고 마셔야 건강도
유지할수 있고, 또 돈도 벌어서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스리랑카로 돌아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비지니스 사업이라도 할 수 있을것 아닌가 ?
이 애들은 한국에 온지 약 일년정도 된다고 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이년정도 한국에서 돈을
더 벌은 다음,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고향인 스리랑카로 돌아가, 비지니스 사업을 하는게
꿈이라고 야무진 포부를 밝힌적이 있었다
이 애들은 우리친구 똥털이라고(일명 똥털) 하는 친구가 운영하는 이불공장에서,
솜도 틀고 킬딩도 하고 포장작업도 하는 애들인데 강릉 단오장에서 물건 상하역 작업등,
잡일을 시키는데 써 먹으려고 빌려온 스리랑카 출신의 애들이다
궂은일이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도맡아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꾀 한 번 부리지 않고 잘 하는 편인데, 일 하는 동작은 좀 느린 편이었다
스리랑카나 인도, 방글라데쉬, 필리핀, 인도 네시아, 캄보디아등, 더운 적도 지방에 사는 사람
들은 일년 내내 계속 되는 무더위와 풍토 탓인지 모든 전체적인 생활리듬이 느린 편이었지만,
그 특유의 기질은 낙천적이고 성실하며 순수한것이 특징이었다
첨에는 묻는 말 외에는 거의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맡은 일만 묵묵히
하면서 침묵으로만 일관 하던 애들이였다. 그런데 스리랑카 사람들이 좋아하는 샤카모니(석가
모니)와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에 대하여 이것 저것 물어 보면서, 시큰둥한 농담 한 마디씩
툭툭 던졌더니, 그 후부터는 나에게 먼저 말도 걸어오고 또 이것 저것 물어 보기도 했었다
한 번은 단오장 이불난전이 시작된지 삼일째 되던 날인가 하던 날에
시실이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한국말로 무엇인가 물어 오고 있었다
" 샤장님 ! "
" 어 ! 시실 ! 뭔일이야 ? "
" 샤장님 ! 우리...언제...공장에 가요 ? "
우리가 아무리 신경써서 잘 해 준다고 해도 이 애들은 첨 보는 낮선 한국사람들과 같이 먹고,
같은 잠자리에 들면서 같이 생활 한다는것 자체가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불편한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묵묵히 일만 해 오던 애들이었다
30도를 오르 내리는 강릉 단오 행사장의 무더운 날씨도 힘들었겠었지만, 무엇 보다도
낮선 사람들과 낮선 풍경과 낮선 풍토에 적응 하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오늘...투데이...송탄 매직베드 싸장 있지..."
" 네...매직베드 싸장님 ! "
" 송탄 매직베드...3인치 이불 싸장...투데이 이브닝...여기로 컴 히어..."
"..............."
" 그러니까...오늘...투데이...아니면...내일 목요일... 더즈데이..."
"..............."
" 송탄 매직베드 싸장하고...차 타고...부릉 부릉 ~ 부르르르릉 ~ 끼이이익 ~ 하면서
송탄 이불공장에...먼저... 가게 될거야 "
" 매직베드 싸장님...오늘...이브닝...여기 온다고 했어요 ? "
" 오늘...투데이 이브닝...송탄 매직베드 싸장...컴 히어..."
그제서야 알아 들은 시실과 볏산의 얼굴에는 안도의 한 숨과, 아쉬움의 한숨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는듯 했으며, 연신 멋적은 웃음만 지으면서 멍청한 표정으로 치어다 보고만 있었다
결국 시실과 볏산은 그날 저녁, 송탄 매직베드 사장 차를 타고 가면서,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손을 흔들더니, 이제 강릉 단오장 남대천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대관령을 넘어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송탄 이불공장으로 갔던 것이다
그애들이 가고 난 뒤에도 더운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나르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듯 했다
시실과 볏산은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송탄 매직베드 공장으로 돌아가고, 이제 김사장과
우리 일행 6명은 이 곳에 남아서, 3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무더위와 씨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술 몇잔씩 마셔가며 이판 사판 공사판, 아수라장 난장판 난전을 펼치며
호객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 제 2부에서 계속 -
첫댓글 워미 아주 전쟁이구만요 ㅠ.ㅠ 맴이 찡허브네
이런디서 이불장시가 된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