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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사가랴와 엘리사벳: 세례요한의 부모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눅 1:5)
<사가랴>: Ζαχαριας '자카리아스' - (뜻)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1) 세례 요한의 아버지(눅 1:59, 60). 2)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의 남편(눅 1:5, 36).
3)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눅 1:5).
<엘리사벳>: Ελισαβετ '엘리사벳'- (뜻) "하나님은 맹세이시다"
1)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 가문의 출신(눅 1:5). 2)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3)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친족(눅 1:36) 4) 세례 요한의 어머니
1. 시대적 배경
*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27-A.D.14년)가 로마 황제로 있던 시기, 그리고 로마에 의해 임명된 헤롯 대왕(the Great Herod, B.C.37-4년)이 팔레스틴 전역을 통치하던 당시, 제사장으로 활동한 인물
* 당시 유대는 로마 식민 통치 하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완정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극도로 타락해 있었다. 특히 헤롯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등 종교 부흥을 위해 힘쓰는 것처럼 보였으나 유대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직을 자기 권한 아래 둠으로써 종교를 정치 도구화 하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사가랴는 성실하게 반차에 따라 성전에서 봉사하는 매우 경건한 제사장이었다.
2. 제사장의 가정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이 출생하게 된 배경을 먼저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누가는 말라기 선지자(B.C. 435-425 추정)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의 중단으로 영적 암흑기였던 시대를 마감하고 세례요한을 통해 새로운 위대한 여명기(黎明期)가 시작됨을 알리려 한다.
유대 왕 헤롯 때, 실로 이 시기는 종교적으로 타락한 시기였고 정치, 사회적으로 비극적이며 희망이 없는 시대였다. 이런 시기에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한 인물이 사가랴이다.
이들 부부는 모두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영예로 여겨졌다. 본래 율법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태생의 처녀에게 결혼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레 21:14). 그러나 반드시 제사장 가문에서 아내를 취해야만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사가랴가 대제사장 가문(아론의 자손)의 처녀와 결혼했다는 것은 상당히 영광스럽고도 특기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눅 1:6에 의하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의 삶을,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없이 행하는’ 삶을 사는 경건한 가정이었다. 즉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참된 신앙인들이었다.
3. 예비된 비움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눅 1:7)
유대인들은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과 그 기업으로 믿고 있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대단한 수치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형벌로 알았다. 또한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당할 수 있는 7가지 유형을 기록한 목록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 아내가 없고, 또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무자한 것은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었다(Barclay).
그리고 두 부부는 이미 나이가 많아 수태(受胎)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그런 가운데 슬픔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노부부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자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자신들의 위치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감당해 갔다. 그리나 결국 이 경건한 노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아들이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로 선택되는 영광까지 얻음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부모도 얻지 못한 큰 은혜를 덧입게 되었으니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비된 비움이었다.
4. 기도 시간에 천사를 만나다.
마침 사가랴가 아비야 반열(the priestly division of Abijah)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게 된다.
‘반열’은 성전의 매일 봉사를 위한 제사장의 직무 순서를 뜻하는 것으로, 이는 아론 자손 곧 제사장 가문에 기초하여 24반열로 구분하는데 각 반열은 순서에 따라 1주일씩 성전에서 봉사하였다. 성전봉사중 가장 성스러운 의식은 하나님께 분향하는 일로서 당시 한 반열에 9백명 정도 제사장들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정된 한 사람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음으로, 일생에 단 한번 있을까 말까한 영광스러운 툭권이었다. 그가 성전분향에 선택돤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제사장임을 알수 있다.
사가랴는 이때 향단에 향을 지피기 위해 성전의 내부에 해당하는 성소에 들어가 있었으며, 성소에 들어가 분향의 임무를 맡게 되는 제사장은 출 28:1-43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세마포 및 에봇으로 된 성의(聖衣)를 착용하고 홀로 성소에 들어가 여호와께 봉사하게 된다. 제사장이 이 분향의 절차를 밟는 동안 백성들은 바깥에서 엎드린 채 그 향이 여호와 하나님께 흡향(吸香)되도록 온전히 기도하였다. 바로 이같이 하나님께 온 마음이 열려있을 때 주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요한의 수태 고지(受胎告)를 받게 된다.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눅 1:10-11)
일상적이고 은혜로운 상황에서 특별한 상황이 되었다. 환상이나 꿈이 아닌 실제로 천사가 나타났고 향단의 우편에 섰다. ‘우편’은 영예로운 자리를 상징한다. 곧 사가랴를 찾아온 천사는 불길한 것이 아닌 기쁨을 전하기 위해 왔음을 암시한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자 사가랴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5. 천사의 수태고지(예언)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 1:13)
→ 하나님께서 평소 사가랴의 간절한 기도를 주의 깊게 들으셨다. 여기서 간구는 일반적인 ‘기도하다’(프로슈코마이 προσευχομαι)가 아닌 ‘데에시스’(δεησις)로서 ‘은혜를 구하는 기도’이다. 즉, 사가랴의 기도는 단순히 자녀를 달라는 기도가 아닌 암울한 자기 시대의 역사 가운데 메시야가 오셔서 구원의 시대를 열어주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특별한 기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후의 천사의 계시가 단순히 아들을 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의 도래와 관련됨을 말하기 때문이다.
사가랴는 자신의 연약함과 시대의 아픔을 같이 기도하였다. 천사는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말한다. 요한은 히브리어로 ‘요하난’(נחוי)으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의미이다. 이름을 정하는 일은 아버지의 권한인데,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 아기를 자기 것으로 택하셨음을 알려준다.
(1) 요한이 감당할 사역과 삶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눅 1:14)
→ 태어날 아이에 대하여 일차적으로는 사가랴가 기뻐하고, 이후에는 많은 사람이 기뻐하게 될 것이다. 요한은 개인의 아들만으로 얻은 기쁨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써 메시야에게로 인도하는 결과 그들이 얻게될 기쁨, 즉 그가 걸어갈 길이 메시야를 예비하는 종말적 사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 1:15)
→ 천사는 요한이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 것을 고지한다. 그리고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요한의 생애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이끌림을 받아 살아가게 될 것을 알려준다.
(2) 요한의 사명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눅 1:16-17)
→ 이는 요한의 주요 사역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개케 함으로 되돌아옴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말라기 예언의 성취다(말 4:5-6). 요한의 임무는 엘리야의 감동으로 메시야를 예비할 수 있도록 백성을 세워 준비케 하는 것이다. 실제 요한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메시야를 준비케 한다.
6. 사가랴의 반응 - 의심함으로 벙어리가 되다.
사가랴는 천사에게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눅1:18)”라고 말한다.
일관된 기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은 사가랴를 많이 당황하게 하였다.
그때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눅 1:19-20)” 고하였다.
→ 사가랴가 말하지 못하게 됨은 예언을 믿지 못함으로 일어난 상황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성취된 예언이 확증될때 다시 말하게 됨으로 사가랴에게는 더욱 확신을 갖게 하는 동시에 요한의 출생 이전까지 비밀로 할 수 있게 한다. 사가랴에게 분향직무와 천사의 방문과 수태고지는 하나님의 최고의 의도된 순간이었다.
사가랴는 직무를 다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사가랴는 요한의 출생까지 말을 못하고 엘리사벳은 5개월간 임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7. 엘리사벳의 잉태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눅 1:24-25)
예언은 어긋남 없이 성취되었다. 임신후 엘리사벳은 다섯달 동안 공공연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이외에는 아무 사람도 접촉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이 살아온 하루하루의 날들을 주목하고 계심을 고백하였다.
▷ 그리고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여 '예수'를 낳을 것이라는 수태고지를 하기에 이른다.
8. 마리아의 방문과 엘리사벳의 노래
천사의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는 급하게 길을 떠나 150km나 떨어진 사가랴의 집으로 갔고 엘리사벳을 문안하였다. 그때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 것을 보고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노래한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도니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뛰놀았도다" (눅 1:42-44)
→ 마리아의 문안을 듣기전까지 조용히 숨어지내던 엘리사벳은 아이의 태동에 성령충만으로 채워져 메시야를 임신한 마리아를 만난 기쁨과 감격을 표출하였다. 단순한 태동이 아닌 역동적인 태동, 성령충만이다.
엘리사벳이 바라본 마리아는 나사렛이란 작은 마을에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한 여인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잉태함으로 세상 모든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된 여인으로 느껴졌다. 마리아는 자신의 임신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들어옴을 듣고 태중에 역동적인 태동을 느낀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아닌 하늘을 향해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당황했을 마리아는 그의 찬양을 듣게 된다. 엘리사벳의 고백은 마리아의 고백과 연결되며 그런 마리아에게 희망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말씀에 대한 고백과 표현을 한다.
9.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다.
대가 끊어질 상황에서, 특히 늙도록 출산하지 못하는 수치스런 상황에서, 엘리사벳의 임신과 출산은 하나님의 능력과 백성을 향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증거로 표현된다. 엘리사벳의 출산 소식에 이웃의 반응은 하나님의 긍휼의 기적이라고 서로 말한다.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눅 1:59)
→ 출산을 즐거워 하던 가까운 이웃과 친족이 요한의 할례식에 참석하러 왔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이에게도 같은 이름을 짓는 것은 당시의 사회풍속이었다. 그러나 관례적인 이웃의 반응과 달리 엘리사벳은 미리 준비된 이름을 말한다.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그녀의 주장에 친척들은 부당하게 여겨 반대한다. 결국 답답한 친척들은 아이의 이름에 관하여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아비 사가랴에게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때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하여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자 모두 놀랍게 여겼다(눅 1:63).
사가랴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쓴 그때, 즉시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사가랴는 혀의 기능을 회복하자마자 말을 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10. 사가랴의 예언(찬양)
사가랴의 찬양은 그의 하나님과 메시야를 향한 고백이고 아들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고 기도이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눅 1:68-79)
→ 사가랴 입에서 나오는 예언은 단순히 내게 구원을 허락하심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감사이다. 구원이 감사하지만 그 구원이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됨을 감사하는 것이다.
요한의 출생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소문이 되어 퍼졌다. 요한의 출생은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주었고, 사람들에게 소중하게 간직하게 되었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눅 1:66) - 요한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뿐 아니라 강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표현한다.
<사가랴를 통한 교훈>
(1)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난 시기는 사가랴가 당시 제사장 계급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타락한 시두개인들과는 달리 묵묵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게 제사 직무를 행하고 있을 때였다(눅 1:8-11).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야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자를 축복하신다.
(2) 사가랴는 순간적인 의심으로 그의 아내가 해산하는 날까지 벙어리로 지내야 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말아야 하며, 또한 그것을 이루실 줄을 능히 확신했던 아브라함처럼 축복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사가랴의 이같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일을 반드시 행하셨다. 이처럼 오늘날 내가 의심하는 그 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면 분명히 성취되어질 것이다. 또한 본문의 사가랴처럼 우리가 때때로 우리의 간구가 더디 이뤄진다하여 그 응답조차 포기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기억하사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벙어리가 된 사가랴가 천사의 지시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었을 때 비로소 입이 열리고 말을 하게 되었다(눅 1:10-22, 64).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순종을 지극히 기뻐하심을 깨닫게 된다. 이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기억하여 주의 말씀아래 겸손히 부복하여야 하겠다(삼상 15:22).
(4) 한동안 벙어리였던 사가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눅 1:64).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체험한 인생은 그 은혜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다. 우리는 이 은혜를 늘 생각하여 우리의 입술을 통해 새 노래로 여호와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자들이 되자.
<엘리사벳을 통한 교훈>
(1) 엘리사벳은 노년에 자식을 얻는 축복을 받았다. 이처럼 신앙이 신실한 자는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하늘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
(2) 엘리사벳의 잉태처럼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기적에 의한 경우가 많다.
(3) 계명과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던 엘리사벳은 후일 주의 길을 예비할 아들 세례 요한을 값진 선물로 받았다. 엘리사벳이 귀하게 얻은 아들을 정성껏 양육하였을 것임은 가히 짐작이 간다. 어머니의 신실한 신앙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훌륭한 아들의 배후엔 그보다 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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