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중학교 정문 왼쪽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30m 가면 오른쪽 지능선으로 오르는 철도 침목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서면 곧이어 북동릉으로 길이 이어진다. 도고산 일원은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송림 아래 능선을 따라 약 10분 가면 첫번째 밧줄(길이 약 25m)이 나타난다.
밧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송림 아래 능선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두번째 밧줄(약 25m)에 닿는다. 두번째 밧줄을 지나면 곧이어 세번째 밧줄(약 25m)을 지나간다. 세번째 밧줄을 지나 5분 가면 안내판(도고중학교 1.0km, 정상 1.9km, 성준경 고택 1.0km)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를 지나면 급경사로 이어진다. 길이 약 40m 되는 네번째 밧줄이 있는 급경사 능선길을 타고 5~6분 올라서면 다섯번째 밧줄이 나온다. 이 밧줄을 지나면 곧이어 케언이 나타나고, 3~4분 더 오르면 332m봉에 닿는다.
332m봉을 뒤로하고 5분 내려서면 안내판(동막골 1.5km, 정상 1.0km)이 있는 안부 삼거리를 지나간다. 안부를 뒤로하고 10분 오르면 약 40m 길이 밧줄 구간에 닿는다. 밧줄을 다 오르면 정면으로 정상이 마주보이는 385m봉 전망바위에 닿는다. 전망바위에서는 남동쪽 하천리 분지 뒤로 하늘금을 이루는 광덕산과 멀리 금북정맥도 조망된다.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10분 거리인 427m봉을 지나 7~8분 더 오르면 안내판(도고중학 2.9km, 동막골 1.8km, 시전리 2.6km)에 닿는다. 안내판에서 오른쪽 봉수대 축대 위로 올라서면 도고산 정상이다. 하산은 일단 서릉으로 내려선다. 서릉으로 내려서면 20m와 35m 거리 숲 그늘에 평상이 한 개씩 놓여 있다. 이 평상에서 중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 평상을 지난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송전탑이 있는 서봉으로 가게 된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 내리막 산길은 절골로 가는 길이다. 절골 방면 길로 들어서면 밧줄(약 100m)이 걸려 있다.
밧줄을 지나 10분 거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으로 평상 1개가 있는 절약수에 닿는다.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 약수는 보기 드물게 물맛이 담백하고 차갑다. 약수터 옆 절터에서는 북쪽 절골 건너로 도고온천이 조망된다.
절약수를 뒤로하고 10분 내려서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건너 계곡길로 내려서서 12분 내려서면 임도 차단기가 나타난다. 차단기를 지나 15분 가량 나오면 길 오른쪽으로 시(市)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큰 은행나무(수령 360년·수고 32m·나무밑둥 둘레 5.50m)에 닿는다. 은행나무를 뒤로하면 시전2리 감밭 마을이다. 마을길로 15분 더 나오면 버스길과 만나는 시전교에 닿는다. 시전교에서 오른쪽 50m 거리에 도고중학교가 있다.
도고중학교를 출발, 북릉~385m봉 전망바위를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서릉 삼거리~절약수~절골~은행나무를 경유해 시전교로 나오는 산행거리는 약 6km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도고중학교 에서 출발전 셀프..
초반부터 죄송..^^
산행들머리..
이렇게 초반부터 소나무가 길안애을 한다..
첫번째 이정표 삼거리..
간간이 이런 오름길이 몇군데..
내가 살려봤는데 221계단..
주의에 단풍만 들었으면 이쁠것인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고저수지..
마음은 편하다..
오름길에 바라본 국사정과도고 정상..
국사정..
예산쪽..
국사정에서 바라본 도고산..
♣ 도고산 (482m) 충남 예산에 자리한 도고산(482m)은 북으로 아산만과 아산만 좌우의 내포 땅을 바라보며 서 있다. 마치 그 이름과 같이 도(道, 바른 길, 또는 근본)가 높은 군자처럼 의연하게 보인다.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깊숙이 휘어들어간 곳을 내포라 한다. 여기 내포는 바다가 아산만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땅이다.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에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평하고 넓다. 물고기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의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세력 있는 집안 치고 여기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내포에 사는 사람들은 행정구역이 서로 달라도 마치 이웃처럼 같은 고향으로 알고 가깝게 지내는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택리지에는 가야산 둘레라 했지만, 가야산 서쪽 아산만 둘레가 원래의 내포라 할 수 있다.
도고산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와 예산군 예산읍 간량리 사이에 솟은 산이다. 아산만을 내려다보는 이 산은 옛날부터 서해안을 감시하는 군사적 요새 역할을 했던 산으로서, 정상인 국사봉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자리하고 있다.
도고산은 비록 높이는 낮지만 바다와 가까워 해발이 낮은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내륙 산간의 600~700m급 산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코스는 시전리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시전리(枾田里)는 이름 그대로 감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이 마을의 토속 이름은 감밭이다.
도고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도고중학교 방면 북동릉과 금산리 방면 북서릉 두 개 능선이 있다. 이 두 능선 사이에 움푹하게 패인 동막골(한골, 절골, 넓은골 전체를 일컫는 계곡) 하단부가 시전리 감밭 마을이다.
온산에 숲이 짙고, 아산만과 내포의 조망 뿐만 아니라 동북쪽에서 뻗어와 남쪽을 지나 서북쪽 가야산으로 나아가는 금북정맥의 뭇산들을 조망하는 멋이 훌륭하다.
주봉에서 동복쪽 도고저수지를 향해 뻗은 줄기의 날카로운 암릉이 멋있다. 삐죽삐죽 하늘로 솟은 암릉 위에 서면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편안한 산길 끝에서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는 땀을 흘려야 하고 숨도 찬다. 그렇게 치고 올라 작은 봉우리나 턱을 넘으면 잘록이에 잠깐 내려서거나 다시 편안한 숲속의 등성이 길이 이어지기를 몇차례 되풀이하며 차근차근 상봉에 가까워지는 산행의 맛이 유달라서 좋다.
넓은 도고저수지의 푸른 물이 산과 어울리고, 가까이에 산행 뒤의 땀과 피로를 씻어줄 도고온천이 있는 것도 이 산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긴 동막골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하산하는 원점회귀행과, 낮으면서도 결코 얕 볼 수 없는 도고산 산행은 누구에게나 흐뭇한 즐거움을 준다.
도고면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산길을 잘 다듬어 놓았다. 산길에 나무를 치고, 가파른 곳에는 모두 굵은 밧줄을 매놓았으며,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긴 의자를 만들어 놓았고, 곳곳에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정상에는 봉수대라는 10여 평의 4각 석축(높이 약 0.3~0.5m)이 있고, 옆에 안내판에 설명이 있다. 봉수대가 있는 주봉을 국사봉이라 한다는 것과, 옛날부터 초계와 방어의 군사적 요새라는 설명이 있다. 이어서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6월 서해안으로 침입한 왜구가 이곳에 진을 치고 노략질을 해서, 장수 윤사덕과 유룡생이 이끄는 관군이 왜적 100여 명 전원을 섬멸했으며, 1392년 고려가 망하자 고려조에 벼슬을 했던 김질이란 분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고 여기서 거적을 깔고 순절했다는 내용이 써 있다.
도고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도고산을 남에 두고 고분다리내(곡교천)가 북을 감도는 신창은 조선 초의 명신 청백리 맹사성이 자란 곳이며, 고려 말 충신 정몽주를 격살한 개국공신 조영규도 이곳 출신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하고 있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6월에는 서해안으로 침입한 왜구들이 이 산에 진을 치고 약탈 등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 장수 윤사덕과 유용생이 이끈 관군이 100여 명의 왜구를 전멸시켰다고 한다. 2년 후인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면서 고려 때의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지냈던 김질(金秩)이 이 산에다 거적을 치고 기거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다가 순절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6.25 때에는 도고산에서 피아간에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인명피해도 났던 곳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산자락에서는 6.25 때 격전지였음을 말해주는 찢어진 군화조각과 녹슨 철모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도고중학교 정문 왼쪽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30m 가면 오른쪽 지능선으로 오르는 철도 침목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서면 곧이어 북동릉으로 길이 이어진다. 도고산 일원은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송림 아래 능선을 따라 약 10분 가면 첫번째 밧줄(길이 약 25m)이 나타난다.
밧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송림 아래 능선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두번째 밧줄(약 25m)에 닿는다. 두번째 밧줄을 지나면 곧이어 세번째 밧줄(약 25m)을 지나간다. 세번째 밧줄을 지나 5분 가면 안내판(도고중학교 1.0km, 정상 1.9km, 성준경 고택 1.0km)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를 지나면 급경사로 이어진다. 길이 약 40m 되는 네번째 밧줄이 있는 급경사 능선길을 타고 5~6분 올라서면 다섯번째 밧줄이 나온다. 이 밧줄을 지나면 곧이어 케언이 나타나고, 3~4분 더 오르면 332m봉에 닿는다.
332m봉을 뒤로하고 5분 내려서면 안내판(동막골 1.5km, 정상 1.0km)이 있는 안부 삼거리를 지나간다. 안부를 뒤로하고 10분 오르면 약 40m 길이 밧줄 구간에 닿는다. 밧줄을 다 오르면 정면으로 정상이 마주보이는 385m봉 전망바위에 닿는다. 전망바위에서는 남동쪽 하천리 분지 뒤로 하늘금을 이루는 광덕산과 멀리 금북정맥도 조망된다.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10분 거리인 427m봉을 지나 7~8분 더 오르면 안내판(도고중학 2.9km, 동막골 1.8km, 시전리 2.6km)에 닿는다. 안내판에서 오른쪽 봉수대 축대 위로 올라서면 도고산 정상이다. 하산은 일단 서릉으로 내려선다. 서릉으로 내려서면 20m와 35m 거리 숲 그늘에 평상이 한 개씩 놓여 있다. 이 평상에서 중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 평상을 지난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송전탑이 있는 서봉으로 가게 된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 내리막 산길은 절골로 가는 길이다. 절골 방면 길로 들어서면 밧줄(약 100m)이 걸려 있다.
밧줄을 지나 10분 거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으로 평상 1개가 있는 절약수에 닿는다.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 약수는 보기 드물게 물맛이 담백하고 차갑다. 약수터 옆 절터에서는 북쪽 절골 건너로 도고온천이 조망된다.
절약수를 뒤로하고 10분 내려서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건너 계곡길로 내려서서 12분 내려서면 임도 차단기가 나타난다. 차단기를 지나 15분 가량 나오면 길 오른쪽으로 시(市)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큰 은행나무(수령 360년·수고 32m·나무밑둥 둘레 5.50m)에 닿는다. 은행나무를 뒤로하면 시전2리 감밭 마을이다. 마을길로 15분 더 나오면 버스길과 만나는 시전교에 닿는다. 시전교에서 오른쪽 50m 거리에 도고중학교가 있다.
도고중학교를 출발, 북릉~385m봉 전망바위를 경유해 정상에 오른 다음, 서릉 삼거리~절약수~절골~은행나무를 경유해 시전교로 나오는 산행거리는 약 6km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도고중학교 에서 출발전 셀프..
초반부터 죄송..^^
산행들머리..
이렇게 초반부터 소나무가 길안애을 한다..
첫번째 이정표 삼거리..
간간이 이런 오름길이 몇군데..
내가 살려봤는데 221계단..
주의에 단풍만 들었으면 이쁠것인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고저수지..
마음은 편하다..
오름길에 바라본 국사정과도고 정상..
국사정..
예산쪽..
국사정에서 바라본 도고산..
♣ 도고산 (482m) 충남 예산에 자리한 도고산(482m)은 북으로 아산만과 아산만 좌우의 내포 땅을 바라보며 서 있다. 마치 그 이름과 같이 도(道, 바른 길, 또는 근본)가 높은 군자처럼 의연하게 보인다.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깊숙이 휘어들어간 곳을 내포라 한다. 여기 내포는 바다가 아산만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땅이다.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에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평하고 넓다. 물고기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의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세력 있는 집안 치고 여기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내포에 사는 사람들은 행정구역이 서로 달라도 마치 이웃처럼 같은 고향으로 알고 가깝게 지내는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택리지에는 가야산 둘레라 했지만, 가야산 서쪽 아산만 둘레가 원래의 내포라 할 수 있다.
도고산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와 예산군 예산읍 간량리 사이에 솟은 산이다. 아산만을 내려다보는 이 산은 옛날부터 서해안을 감시하는 군사적 요새 역할을 했던 산으로서, 정상인 국사봉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자리하고 있다.
도고산은 비록 높이는 낮지만 바다와 가까워 해발이 낮은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내륙 산간의 600~700m급 산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코스는 시전리에서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시전리(枾田里)는 이름 그대로 감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이 마을의 토속 이름은 감밭이다.
도고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도고중학교 방면 북동릉과 금산리 방면 북서릉 두 개 능선이 있다. 이 두 능선 사이에 움푹하게 패인 동막골(한골, 절골, 넓은골 전체를 일컫는 계곡) 하단부가 시전리 감밭 마을이다.
온산에 숲이 짙고, 아산만과 내포의 조망 뿐만 아니라 동북쪽에서 뻗어와 남쪽을 지나 서북쪽 가야산으로 나아가는 금북정맥의 뭇산들을 조망하는 멋이 훌륭하다.
주봉에서 동복쪽 도고저수지를 향해 뻗은 줄기의 날카로운 암릉이 멋있다. 삐죽삐죽 하늘로 솟은 암릉 위에 서면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편안한 산길 끝에서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는 땀을 흘려야 하고 숨도 찬다. 그렇게 치고 올라 작은 봉우리나 턱을 넘으면 잘록이에 잠깐 내려서거나 다시 편안한 숲속의 등성이 길이 이어지기를 몇차례 되풀이하며 차근차근 상봉에 가까워지는 산행의 맛이 유달라서 좋다.
넓은 도고저수지의 푸른 물이 산과 어울리고, 가까이에 산행 뒤의 땀과 피로를 씻어줄 도고온천이 있는 것도 이 산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긴 동막골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하산하는 원점회귀행과, 낮으면서도 결코 얕 볼 수 없는 도고산 산행은 누구에게나 흐뭇한 즐거움을 준다.
도고면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산길을 잘 다듬어 놓았다. 산길에 나무를 치고, 가파른 곳에는 모두 굵은 밧줄을 매놓았으며,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긴 의자를 만들어 놓았고, 곳곳에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정상에는 봉수대라는 10여 평의 4각 석축(높이 약 0.3~0.5m)이 있고, 옆에 안내판에 설명이 있다. 봉수대가 있는 주봉을 국사봉이라 한다는 것과, 옛날부터 초계와 방어의 군사적 요새라는 설명이 있다. 이어서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6월 서해안으로 침입한 왜구가 이곳에 진을 치고 노략질을 해서, 장수 윤사덕과 유룡생이 이끄는 관군이 왜적 100여 명 전원을 섬멸했으며, 1392년 고려가 망하자 고려조에 벼슬을 했던 김질이란 분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고 여기서 거적을 깔고 순절했다는 내용이 써 있다.
도고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도고산을 남에 두고 고분다리내(곡교천)가 북을 감도는 신창은 조선 초의 명신 청백리 맹사성이 자란 곳이며, 고려 말 충신 정몽주를 격살한 개국공신 조영규도 이곳 출신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하고 있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6월에는 서해안으로 침입한 왜구들이 이 산에 진을 치고 약탈 등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때 장수 윤사덕과 유용생이 이끈 관군이 100여 명의 왜구를 전멸시켰다고 한다. 2년 후인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면서 고려 때의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지냈던 김질(金秩)이 이 산에다 거적을 치고 기거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다가 순절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6.25 때에는 도고산에서 피아간에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인명피해도 났던 곳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산자락에서는 6.25 때 격전지였음을 말해주는 찢어진 군화조각과 녹슨 철모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첫댓글 허이구 죄송하지 않습니다~ 포스가 팍팍 느껴지는데요~근교산도 산입니다,,,,즐산 코스를 선택하시고 다녀 오셨군요 ^^즐갑했습니다6^
그러게 말입니다. 글 쓰시는 것을 보면 둥글둥글 사람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인데 실물은 마치 실미도 대원 처럼 터프하게 생기셨으니 ㅎㅎ
님의 얼굴을 사진으로나마 처음대합니다. 무척 반가운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