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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목욕탕에서/ 김은숙
은하수 추천 0 조회 29 15.07.19 01: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목욕탕에서/ 김은숙

 

 

목욕탕에서

옛 친구 정화를 만났네

몇 년 전 유방암 수술을 했다며

검정 비닐로 왼쪽 가슴을 애써 감추고 있는 정화

가슴을 싸안고 있는 오른팔의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서면 안될 것 같아

나 또한 제대로 눈길을 줄 수 없었네

정화야 착하고 따뜻한 내 친구야

네 몸에 깊게 패인 상처가

네 마음의 그늘까지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누구에게도 완전히 열리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빗장까지 만든 건 아닌지

네 그 넉넉한 마음까지 움츠려들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착한 친구 정화야

네가 내 친구로 다가올 때 그러했듯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도

너의 그 깊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소중한 사랑이 되었음을 기억해

네가 빛나는 건 그 크고 깊은 눈에 담긴

넉넉하고 깊은 사랑임을 생각해

깊고 고운 마음의 따뜻한 친구 정화야

이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는 너의 참 아름다움을

내가 느끼는 만큼

너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네 예쁜 등을 꼼꼼히 밀며 어느 순간 팔에 힘이 빠지고

안타까이 떨리던 내 눈빛을 너는 보았는지 모르겠구나

 

안타까운 내 마음을 너는 느꼈는지

옷을 입어야 편안해지는 친구가 아니라

목욕탕에서도 네게 편안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 마음의 소릴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착하고 따뜻한 내 친구야

 

- 시집『창밖에 그가 있네』(다층,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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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과 암인 자궁암, 유방암, 난소암 가운데 유방암은 국내 발병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만큼 주변에서 흔히 목격되는 암이다. 대개의 암이 그렇듯 유방암도 초기엔 거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목욕탕 때미는 아줌마에 의해 그 소견을 듣기도 하고, 우연히 병원에 들렀다가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다. 자가 검진을 해서 유두가 함몰되거나 분비물이 나오고, 유방의 색깔이 변하거나 멍울까지 잡힌다면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이의 치료는 절제수술이 일반적인데, 유방은 여성성의 상징이므로 그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어 공중목욕탕 출입 등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게 된다.

 

 딸의 혼사를 앞두고 자신의 병력으로 인해 딸에게 해가 미칠까봐 발병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보았다. 이래저래 뭇사람에게 자신의 병력을 오픈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대구에는 그런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전용 목욕탕까지 있다고 들었다. 그렇듯 수술 후 외형적으로 남게 되는 외상 흔적이 환자를 또 한 번 아프게 하는 게 현실이다. 이 시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옛 친구를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시인이 친구에게 보내는 사랑과 연민의 눈빛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관념에서 탈피한 일상의 건강성이 참 편하게 녹아있다. 본디 목욕탕은 피차 무장해제상태에서 허물을 벗고 소통되는 공간적 특성이 있다지만 이 경우는 좀 다르다. 

 

 사람은 남의 상처에 연민하는 척하다가 뒷담화하는데는 익숙하지만 진심으로 상처를 안타까이 여기면서 사랑으로 보듬어 안기란 쉽지 않다.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거울로 삼는 이도 드물다. 자신의 상처나 허물은 달팽이처럼 자꾸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습성이 있다. 때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남의 허물을 들추고 지적질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상처나 허물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친구 정화'는 유방절제수술을 한 몸으로 공중목욕탕 나들이를 마다하지 않는 그 자체만으로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정화'와 '은숙', 서로의 몸속에 지니고 있는 무덤을 보아버린 친구들끼리 연민하며 나누는 온기가 따숩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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