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한파
김영난(참학동북부지회 감사)
며칠 전 술자리에서 고등학교1학년 아들을 둔 한 지인이 아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2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며 저녁6시에 시작해서 새벽1시30분에 끝나는 학원에 아들를 넣었다는 얘기를 했다. 진즉에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혀를 차며 아쉬워했지만 한편으론 이제라도 확실하게 관리해 줄 곳을 찾은 것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학원수업 외에도 자습시간까지 관리해 주고, 학원 차가 학교 앞에서 태우고 가서 새벽에 집 앞까지 데려다 주니 늦은 귀가에 따른 걱정도 크게 덜었다고 덧붙인다. 2년 가까이 남았음에도 날짜까지 세어 수능에 대비하는 그 책임감(?)에 놀라 같은 고등학교1학년생을 둔 학부모로써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11월12일은 전국적으로 수능이 치러지는 날이다. 수험생이나 수험생을 둔 가정뿐 아니라 수능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치 않긴 매 한가지로 하늘마저 긴장하는지 해마다 때 이른 한파로 몸과 마음을 한층 더 움츠러들게 한다. 수능 시험지가 삼엄한 경비 속에 운송 되는 모습이 모든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고 시험시간에 늦을지도 모를 수험생 수송 작전이 전 국민에게 브리핑 된다. 수험생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기위해 그날만큼은 대한민국의 모든 일정도 1시간 늦춰 시작된다. 수능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수능의 위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 번의 시험이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야 정당성 여부에 앞서 수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청소년이나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청소년들의 다양성은 수능 앞에선 몰 개성화 되고 각자 꾸었을 꿈들은 수능결과에 따라 굴절된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꿈은 일류대학으로 획일화 된지 오래다. 이렇게 획득한 학벌은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기득권을 틀어쥐고 더욱더 학벌사회를 조장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깊고 넓게 확대시켜 나간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누리꾼 사이에 재미있는 놀이가 한창이다. ‘처리과정은 위법했으나, 법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판결을 빗댄 헌재패러디다. ‘컨닝은 했지만 성적은 유효하다’, ‘업사이드는 맞지만 골은 유효하다’ 등등 촌철살인의 헌재패러디가 쏟아져 나온다. 국민의 심심풀이 땅콩으로 전락한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대법관들은 권력의 눈에 들어 자리를 꿰찬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 우리 사회에서 그 학업능력 만큼은 공인된 사람들일 테다. 그런데 최상위법인 헌법을 다루는 대법관의 모습치곤 소신과 철학이 사뭇 궁금해진다. 우리 교육시스템이 학업능력만을 중시해 온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서 노정되고 있는 경우가 아닐 런지.
수능이 코앞이다. 시험을 앞둔 아이들의 긴장감을 가늠해보자니 마음 끝이 시리다. 지금까지 숨 막히게 달려왔을, 학습기계로 살라 강요하는 교육환경이 여지없이 앗아갔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수능이후 라도 채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전망은 지극히 회의적이다. 88만원세대니 뭐니 해서 바늘구멍처럼 좁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다시 ‘뺑이’치는 생활이 시작 될 테니까.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한 기도처마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더러는 108배를 올리고, 더러는 예배나 미사를 드리며 자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를 드린다. 대부분의 종교시설엔 ‘수능대박’관련 현수막들이 나붙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면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묻는 시험에 부모자식 혼연일체가 되어 명운을 걸듯 해야 하는 것인지, 절대평가면 충분할 수능이 굳이 상대평가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그래야 좋을 사람들은 누구인지, 점점 극한 경쟁으로 몰고 가는 그들은 누군지 따져 물어야한다.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수능을 보이콧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