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신앙의 변질입니다. 신앙의 변질은 은밀한 죄에 다시 빠지며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하였습니다 거룩함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리되는 순간 둘 다 신앙의 열매가 아닙니다. 거룩함이 없는 사랑도, 사랑이 없는 거룩함도 신앙의 변질입니다.
‘사랑 타령은 그만하고 하나님의 나라나 종말, 공의를 추구하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아무리 귀한 신앙도 시간이 흐르게 되면 쉽게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일만 달라트 탕감받은 자가 천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납하지 못한 이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단 하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해 보면 수긍이 됩니다. 십자가의 속죄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였을 때는 용서못할 사람, 사랑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보면 다시 사람들의 잘못이 눈이 들어오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신앙이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심령이 메마르고 강팍해집니다. 우리의 신앙은 변질되고 은혜받은 탕자가 형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두려운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고 옳은 말을 많이 하지만 주님을 경외함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그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가 다시 살아납니다. 육신의 욕구에 끌려갑니다. 주님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많아지고 길어집니다. 밧세바와 간음했던 다윗과 같은 죄에 빠집니다. 매 순간 주 안에 거하지 않으니 영적으로 매말라 버린 것입니다. (요 15:6)
그러므로 매 순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매 순간 현재의 사건이어야 합니다.
은혜와 기쁨과 평안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는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