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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 60년대
그 때 그 시절 사진과 광고 등을 보니 직접 겪은 우리도 참말 그랬나하고 믿기지 않네요.
그러니 요새 젊은 이들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잘 이해 못하겠지요.
또 늙은 이들이 잔소리를 하는구나 하면서...
그렇지만 그래도 자꾸 이야기 해주어야겠지요?
젊은 이들에게 쓸 자료로 보내드립니다.
우리들에게는 추억거리이면서 .....
60년대를 생각케 하는 것들
그 때는 왜 그리 종기나 헌 데가 많이 났었는지 원,,.
그 가운데 붙이는 발근고(노락색의약)을 검은 고약 가운데 이겨 붙이고
뜨거운 유엔 성냥으로 녹여서 착 붙이면 뜨금하다 시원해지는 그 때의기분이 지금도 엊그제인 듯한데..
암튼 이명래고약이나 됴(조)고약은 생각나는데 이고약은 생각이 날동말동..
이것 먹고 큰 것 같음.
아무튼 낯이 익음.
저 아이 만할 때 저 아이 그림이 있는 우유 깡통을 보고 만지작거리며 본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마 조금 더 커선 저 깡통에 뒷면을 못으로 망치질을 해 구멍을 여럿 내고 동내 개천가에 가서 철사줄로 역어 쥐불놀이를 했던 것 같네요.
거울이 있는 경대에 이렇게 생긴 영양 크림 한 개 쯤은 있었던 듯.
그 냄새가 요즘의 영양크림이라는 것과 냄새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던데..
아무튼 이것도 그 때는 일본식 발음으로 구루무.ㅋ
요게 아마도 진로 30도 짜리 처음 나온 진로 소주라지요.
왼 쪽것보다는오른쪽 것이기억나는듯,,.
왼 쪽 라벨도 기억은 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이 소주병들이 이즘부터 참기름병으로도 대용되기 시작했던 것도 같습니다.
사실 이건 50년대부터 나왔다네요.
미풍과 미원 경쟁이 많았었지요.
이것은 참빗이라는 건대 다 아시겠지만 그 땐 할머니들이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머리 뒤로 비녀들을 많이 꼽았을 때라 어느 집에나 다 있었던 것인데 왠지 그 땐 소중하게 안 보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인들의 물품이었던 것 같아서였나 봅니다.
그러나 이젠 이러한 우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습니다.
동백기름에 참빗으로 단정하게 빗으시던 옛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요즘 만화 영화 제목에도 나오는검정고무신.
내 기억엔 검정 건 우리집에선 못 본 것 같고 흰 고무신 남자 것과 여자것은 보았지요.
예전엔 한복들을 많이 입었으니까요.
기술이 좋와져 여성 고무신은 가격에 따라 좋은 것도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항상 뾰족한 코가 나온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우리 신발은 아마
옛날부터 이렇게 앞이 톡 튀어 나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곤 곧 버선을 집에서 어른들이 만드는 것을 보면 버선 코가 뾰족하게 나오게 가위로 오려 두 가닥을 똑같이 만들어 꿰메 버선을 만들어 신어 보실 때에도 고무신과 앞 코가 같은 모양이라 그 때에서야 고무신이왜 그렇게 생겼는지 이해가 같습니다.
그리고 부엌의 부엌칼도 우리의 옛것 모양은 여성 고무신이나 버선같이
앞 코가 뾰족하게 나온 칼도 무슨 이유가 서로 있지 않겠나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__든버선은 그 앞 코가 잘 이쁘게 빠져야 잘 만든 버선이었읍니다그려..ㅎ
그 때에 담배 태시던 어른들은 아마도 기억이나시겠습니다.
전 어렸으니깐 모르겠는데 백양이라는 담배갑 모양은 길거리에 버려져서 사람들이 밟아 납작하게 돼버려 빗물에 처량하게 되어 있던 걸 본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암튼 우리 집안에는 담배하는 분들이 없었으니 담배는 거리가 있었던 것같습니다.
은하수는 군에 있을 때 나와서 피워 봤던 것.
한산도하고 같이 나왔었지요 아마.ㅎ
지금에는 볼 수 없는 삼발이 자동차인데 어려서는 연탄공장 차나 아니면
삼립빵차로 기억되는데 다양한 곳에서 쓰여졌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삼립빵 삼륜차가 생각나는 것 왜일까요?
그 삼립크림방이 생각나내요.
이렇게도 먹다 저렇게도 먹다 나중에는 집안의 석유곤로(난로) 위의 뚜껑에 구워먹는 것이 최후의 비법.
기억나는 분들 있겠지요.
아이들 때 군것질. 뽀바이 딱다구리 등.
이삼양라면은그 땐 별식으로 일요일날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별식으로먹었던 것 같아요.
그라면 먹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뒀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문구점에서 팔던 스티커들인데 그 땐 다들 문방구라고 했었지요.
우표를 모은다고 우채국에 가서 씨리즈나 명판(우표 한 질에 구석 모퉁이에 제조국인 한국조폐공사라고 인쇄된 부분의 4장)이나 문방구에서
돈 주고 사는 이름 모를 외국 우표 묵음들을 종이판에서 뜯어서 파는 것들을 참 많히 사는 유행도 있었지요.
그 때 모았던 우표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참 많이 모았었는데..-
기억나죠? 이껌.
이껌 말고도 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 땐 껌도 귀해 먹다가 밤에 자려거든 버리기 아까워 벽지에 붙여놓고 다음날 일어나 다시 씹던 시절도..
애이더러워라..ㅎㅎ.
아이들은 껌종이 모으기가 유행이었을 정도니깐요.
그리고 귀한 껌종이(주로 수입 껌종이)는 껌종이 먹기놀이에 한 장에__장씩을 더 쳐주었던 기억도 나고,,.
구슬치기. 역시 그 땐 다마치기란 말을 더많이 썼는데 지금 보면 교육이
60년대 이후에부턴 우리의 것(말)을 많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
딱지치기, 딱지접기(둥근 딱지 삥둘러 별이 꽉찬 딱지가 제일 높은 것)등 또 그 이후에 계급장 먹기놀이 등, 군것질이란 동내 어귀에 설탕 뽑기, 달고나(하얀 당원) 녹여 먹기 등등 그런 것 먹어가면서 이러한 것들가지고 놀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 가방은 양쪽 책을 넣게 돼 있고 가운데도 끼워 쓸 수 있게 만든 학생용 가방인데 가방 모퉁이엔 항상 도시락에서 흘러나온 김치국물이나 이런 것들이 묻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 한두 권 쯤은 역시 반찬 국물이 묻어 있었죠.
모자는 신입생일 때엔 보이는 것처럼 순수한 처음 그대로의 모양이겠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멋을 부리느라 모표는 보이지도 않게 납작하게 눌러 쓰고 역시 챙은 각지게 오므려 폼잡아가는것ㅋ.
아마도 한참 멋부리고 싶은 사춘기일 테니 누가 말려~..
이것 또 빼놓울 수 없지요.
황금 색 은박지로 쌓여 있던 다이알비누.
세수할 땐 다 이 알비누를 아끼느라 은박지를 절반만 벗겨 비벼서 쓰곤했지요.
그 땐 아마도 아끼는 게 미덕이었습니다.
지금도 선진화된 사회는 오히려 써서 없에는 것이 시장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원리이지만 그것도 제동없는 낭비는 결국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어려움 몰라 오늘처럼 맹한 사람들로 정신적 경쟁력이 없는 신세대의 국가가 된 원인도 있다 하겠네요.
지금 생각나는 건 가나안농군학교인가? 하는 곳에서 학생들을 정신 교육 차원의 연수를 했던 것 같은데 가보진 않았지만 학교나 단체별로 교육을 받고 온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론 이 다이알비누를 한 번 돌려 비빈 후 세수를 끝내고, 치약도 뭐 일미리를 짜준다던가? 하는그런 절약 정신을 배우고 와 그것이 미덕인 양 자랑하고 했던 때였으니 지금 보면참 딴 세상이지요.
60년대 한일선풍기.
이 땐 아직 일본사람들이 만든 선풍기 프로펠러가 쇠로 된 것도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일본놈들이 이런 것 만들기는 참 잘 만든다 하면서 몇 해를 두고 써도 고장 한 번 안 나게 만드니 그런 걸 우리도 배워야 한단 말들을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어느덧 우리 풍토는 잘 고장나게 만들어야 또 사게 만들어 잘 팔리게 할 생각만 하는 뉘앙스로 바뀌더군요.
물론 한일선풍기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사회 전반적 인식이 아직 선진화되지 않았을 때니깐요.
아마 중국이 요즘 그단계를 거치고 있나 봅니다.
분유 파동이니 뭐니.. 한일이 이 때부터 모터산업에 뛰어들었나 본데
그 후론 모터는 한일 따라갈 곳 없다할 정도로 됐던 것 같아요.
T.V광고에서 수남, 하청일 가수 두엣이 나와 "물 걱정을 하지 마세요~ 한일..한일 자동펌프♬~"하고 선전하던 때도 기억나니 말입니다.
다음은 몇 가지 그 시절을 생각케 하는 광고들을 여기저기서 모아보았습니다.
활명수가 먼저 나온 후 나중에 까스활명수가 나온 것 같은데 아닌가요?
잘 기억이 확실치 않네요.
이 때엔 또 판콜A인가, S인가를 감기약으로 먹었던 기억이납니다.
저에겐 그게 체질에 맞는다나요,,그레서,,.
이 T.V는 앞에 문이 여닫이로 돼 있어서 학생들 티비만 보지 말고 공부하라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어른들이 자물쇠로 잠가놓은 집도 어느 집에가 보니 있데요.
아무튼 우리집은 그런 걸 자율로 했으니 잠가놓진 않았죠~.
이것 나오기 전엔 아마도 일제 T.V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 그놈들 것은 잘 고장나지가 않아 아마 80년대 컬러 T.V가 방영 시작할 때까지도
잘 나와 끌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컬러T.V가 처음 나왔을 때엔 조금 보면 왜 그리 눈이 아른거리고 아팟던지요.
소풍갈 때엔 한 병씩. 김밥에 찐 계란에...
물파스가 벌레 물린 데 바르란 말은 없지요?
아마도 시대가 지나면서 중간에 생긴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땐 1등이 오 백만 원 어쩌구 했던 것 같던대..
이것도 이것이지만 카라멜 제품도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서울 용두동에 동아제약 박카스 공장이 있던 것이 생각나네요.
삼천리표 하니 자전거도 생각나지요.
요즘 자전거보다 더 잘 만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것은 영 그 때 삼천리자전거보단 디자인이나 여러 면이 뒤떨어지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미원 광고도..
로켓트 건전지 하니 그 때엔 꼬마 전구도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전구 실험.. 다 쓴 건전지 속에 무엇이 들었나가 궁굼해서 못을 대고 망치로 두드려 깨 보았던 기억도 있는데 그 속에 뭐이상한 검정 석탄과도 비슷한 게 들었던데 그것이 무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던 것 같습니다.
나중엔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동아전과도 생각나네요.
참고서의 일종인데 뒤에 해답편부터 보기가 일수였죠~
집안의 어떤 사람은 칫솔질하다 자주 턱이 빠져 혼나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요즘엔 칫솔질하다 턱빠졌다는 말은 못들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칫솔질은 같은데 그 땐 왜들 그랬을까요?
너무 좋와서 열심이 닦는다는 정성이 앞서 그랬겠나?
지금 보니 이해가 안 가네..ㅋ
이 설탕 선물__ 깡통이 어느 집이나 하나, 둘은 있어 마지막엔 꼭 집안의바느질통이나 약통같은 걸로 쓰기도 했었지요 아마...
이 제품은 지금 보면 성공한 제품이죠? 조미료 시장이 무시 못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크리라 보니 계속 발전해야 할 분야라 봅니다.
70년대인가?
휴대용 미니 라듸오에 밤에 음악방송인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나 "차인태에 별이 빛나는 밤에"(약칭 별밤)를 귀에 하얀 이어폰을 끼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것많이먹었죠~
입으로 불어서 뿌리는 모기약. 계속 불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
지금에 보면 다 보잘것없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지금의 우리산업의 기초 동력들이 된 것이겠지요.
이들 중에 재벌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니 아마 되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할것입니다.
옛말에 만석지기 밑에 천석지기나 고천석지기 밑에 백석지기 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이 다 오늘날의 우리 한국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업(人業)들이니 오늘의 대기업이 그 동안의 단점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오늘이 있기까지의 두고두고 되어온 오늘의 귀중한 인업들을 다들 계승해 더욱 세계를 살릴 수 있는 큰 인업들로 키워 나가는 데 기초가 되었으면 할 텐데 더 이상 쬐끄만 좌익들의 경거망동으로 인한 이 한국의 인업들을 망쳐국가가 좋은 토대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유엔 성량은 요즘으로치면 포장지 절약으로 대용량의 벌크형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뭏든 실용적이었던 것 같은데 어려서 가운데 한 가치만 뽑아올려 불을 붙여보려는 불장난을 하다 전체에 다 옮겨 붙어 혼자서 마음이 크게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집에 아무도 없었길래망정이지 불날까 봐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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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처럼 그때도 최고의 배우들이
광고모델로 선발되어 선전하기에 바빴지요...
뽀빠이 그 과자 다시 먹고 싶어지네요 *^&^*
최고였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