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5:16]
아사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 -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마아가는 아사의 모친이 아니라 아비야의 모친이며 아사의 조모이다. 이 마아가는 르호보암의 아내였는바 이때까지 왕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아사가 감히 마아가의 태후의 위를 폐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태후가 왕보다 더 큰 권위를 행사한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녀의 손자 요아스 일족을 완전히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로 볼 때 아사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단호했던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우상을 찍고 빻아 - 본절과 병행 구절인 왕상 15;13에는 '빻아'라는 단어가 없다. 이 단어는 당시에 아세라 목상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돌비나 금속 재료로 된 우상도 있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금송아지를 빻아 가루를 만든 것을 가리킬 때, 아세라 목상 이외의 것들을 파괴한 것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기드론 시냇가 - 이 강은 예루살렘 동편 갈람 산 사이를 흘러 사해(死海)로 들어가는 길이 약 5km의 간헐천이다.
왕상 2:37 주석 참조. 역사적으로 이 기드론시냇가에서 우상 숭배하던 가증한 것들이 자주 파괴되었다. 그리고 요시야 시대에 이곳은 공동묘지로서 부정한 것들을 버리는 장소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대하 15:19]
이 때부터 아사왕 삼십 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삼십 오 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 본절은 해석상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왕상 15:16, 32에는 아사와 북왕국의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본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바아사는 유다의 아사 왕 3년에 즉위하여 아사 왕 26년에 죽었는데 본절 및 16:1에서는 아사 왕 35년까지 평안했고 아사 왕 36년에 바아사와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하여 혹자는 여기서 35년은 왕국 분열 이후부터 35년을 가리크는 것이며 바아사와의 전쟁은 아사 왕 즉위 16년(르호보암 17년+아비야 3년+아사 15년=35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아사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처음 10년간은 평안했고, 아사 왕 11년에 세라와의 전쟁이 있었으며, 16년에 바아사와의 전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왕상 15:16, 32의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는 구절의 해석에는 도움이 되지만 왕상 16:8의 구절을 해석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본절의 35년은 아사 왕 25년을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이 비교적 옳은 듯하다. 그렇다면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는 일생 실제적인 전투가 있었다기보다는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의 관계처럼 일생 서로 적의에 가득차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사 왕 26년에 죽임을 당했던 것 같다(왕상 16:1-4). 더욱이 26년에 있었던 바아사와의 전쟁에서도 아사 왕은 아람 군대의 원조를 요청하여 바아사를 물리쳤으니(16:2-5) 이로 보아 아사 왕 때에는 그 후에도 평안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