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숨쉬듯이 쉽고 자연스러워해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서 그 이전에도 박해들이 있었지만
정조승하이후 순조가 등극되자 마자 일어난 신유박해는
주문모신부등 천주교지도자들이 대거 순교했다
전국 산간지역으로 뿔뿔히 흩어져 교우촌을 형성하기 까지
그들은 이를 찾아헤메는 어주 어려운시기였다
전국이 흉융해서 산을 넘다가는 야생짐승에 먹히거나
산적에 털리거나해서 아주 위험한 길을 자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30년동안 조선교구내에서 공동체는 비틀거리면서
나약한 여성지도자를 내새워서 공동체를 유지한것이다
그들은 사제를 만나지도 못하였기에 성사는 꿈도 꾸지
못하였고 단지 청나라로 가는 사절단을 통해 들어오는
묵주등 성물에 의지해서 열심히 기도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후 조선에 신앙이 인정되면서
공소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만약 지금 성서형제회가 위축되었다고 여기면
새로운 시도를 할것이 아니라 초기떄를 떠올리면서 그때의 정신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이의 혜택을 받는이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임에는 말로는 외치고 있지만 실상 우리가운데
하느님이 중심인가를 먼저 떠올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전반에 흐르는 것은
가난한 이와 소외받는이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모세5경이나 역사서에서부터 예언서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의 전환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파괴된 성전과 이로 인해 이방인지역으로
끌려간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종전 성전줌심에서 회당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율법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 유대교가 출현되고
이를 주장하는 바리사이파가 교모하게 새로운 세력과 동조하면서
근근히 명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오신이후에 그분께로 몰려드는 이는 유대지도자나
바리사이파와 같은 율법주의자가아닌 소외된 민중들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오복음서에서 기록한것처럼 산상설교를 통해서
구약에서 줄기차게 이어오는 가난하고 소외된계층을 말하면서
이를 선포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을 시작되는 행복선언이라는 것입니다
성서형제회가 활기를 잃은것은 분명 도구가 없어서
그런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꾸 새로운 도구를 찾을려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기도방법이나 묵상법을 제시하는
것이 행사때마다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계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이웃과의 교류라는 것입니다
성서형제회운영진들이 새롭게 무엇인가를 모색하기 이전에
성서형제회를 만들었을때 초기시대의 무엇을 위해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그동안 해왔던
소모임이 점차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규회원이 늘어나지 않고 있기에 동력이 잃어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이는 성서형제회의 헌장이 전혀
작동되지 않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