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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유급인생☆]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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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급인생◎]
안홍열 시집 / 시작시인선 314 / 천년의 시작(2019.12.27)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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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무릎 연골軟骨이 파괴된
어떤 유급 인생留級人生 하나가
어기적어기적
영평사 비탈길을 오르는데
어머니가 떨구고 가신 눈물 같은
구절초가 나직이 충고한다
우리 늦깎이 꽃처럼 남들 다 피고 진 후
늦은 가을 저녁 무렵에
천천히 피는
지각생 꽃도 있노라고
양지쪽에 자리 잡은 꽃 다 피고 진 후
이름 없는 음지 산비탈에
느지막이 낮달처럼 피는
그런 인생도 있노라고
구절초가 나지막하게
들릴 듯 말 듯 속삭인다
속상한 날
살다 보면 속상한 날이 있지
연일 속이 상해서 앞길이 막막한 날은
애매한 마누라 잡지 말고
차라리 홍어처럼 상傷하러 가자
혹시 코가 뻥 뚫리듯
상한 속도 뻥 뚫릴지 몰라
속이 상한 것도
홍어처럼 잘만 삭히면
나중 쓸모 있게 될지도 몰라
날마다 속상하다가
고약한 냄새나 풍기다가
결국에는 우리 누구나 썩어버리고 말겠지만
썩어도 어떻게 썩느냐가 중요하지
어지러이 쪼개지고 갈라진 땅
한 줌 밑거름이라도 되기 위해
속상한 날은
홍어처럼 상傷하러 가자
목수는 연장을 허리에 차고
연장을 허리에 차고 일하는 목수처럼
살면서 가까이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소소한 물건도 가까이 두고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쓰는 시간보다 찾는 시간이 많다
사랑한다는 말도 그렇다
자주 쓰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
요즈음 대화를 나누다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방금 전에 한 말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목수가 연장을 미리 갈고 닦아
몸 가까이 지니는 것처럼
지나간 기억을 허리에 찰 수도 없고
걱정이 걱정을 낳아
걱정이 많아지는 게 또 걱정이다
지금도 머리맡에 걱정이 즐비하다
사는 요령
바보야, 선착순이란
처음에는 천천히 뛰다가
결정적일 때 사력을 다해서 달리는 거야
그렇게 대강 철저히
눈치껏 시간 때우는 게 군대 생활 요령이듯
인생살이도 요령이라고
당진에서 연기로, 연기에서 대전으로
이리저리 사는 요령을 피워보았다
요령이 히히 웃었다
그가 툭툭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왕 시작한 마당에 갈 데까지 가보자
대전에서 부여로, 부여에서 천안으로
다시 예산, 태안으로
요령에 요령을 피워
나는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다
거기 비루먹은 당나귀 한 마리
히히힝 요령을 요령껏 피우고 있었다
요령의 늙은 꼬리를 흔들며
요령껏 콩이나 주워 먹고 있었다
저승사자 앞에서도 요령이 통할까
어떤 필사
지지고 볶고 울고불고
읽고 치고 두드리고 자르고……
결가부좌 틀고 참선하다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다가
결국 서툰 말과 서툰 글쓰기를 멈추고
서툰 눈과 귀를 빌려
남의 기도를 필사하기로 했다
차라리 다른 집의 장맛을 염탐하며
실패릐 비법을 터득해 보기로 했다
나락에 떨어지는 아픔을 베끼다가
비운悲運의 운세까지 암송하게 되면
빌고 빌던 손을 허공에 냅다 휘저으며
한 곡조 꺾어보기도 하면서
팔자를 바꾸는 재주가 없는 나는
이지러진 관상을 따라
그냥 지나가는 바람의 그림자라도
미행해 보기로 했다
적단풍 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신을 잘해야 하리
비겁한 열정은 욕먹어 마땅하지만
싹을 세우고
푸른 잎을 무성히 피우던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눈멀어
때로는 숨죽여 너를 속이고
변명으로 일관하기도 했지만
누가 무어라 해도
너를 위해 꿈을 버린 적은 없다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는
변신을 두려워하지 말리라
때로는 위장술이
진실보다 더 진실하므로
사랑을 위해 꾸미고 또 꾸미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열쇠집 주인
우리 집 근처 열쇠집 주인은
늘 웃는다
한 평도 안 되는 가게 안에서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닐 텐데
얼굴 가득
웃음의 잔이 넘친다
웃음보가 하나 더 있는 모양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평생 찾아 헤맨 열쇠를
그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오늘 그에게 전화를 해야 하겠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분실했으니
딱한 처지에 놓인 나그네에게
웃음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어서 와서 열어달라고
화상 1
오른손에 화상을 입고 약국에 갔더니
부부 약사가 낭패한 표정으로
빨리 병원부터 다녀오라고 재촉한다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들의 표정이
나보다 더 어둡다
쓰고 있는 글이 걱정되어 의사에게 물었다
손가락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의사가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화상의 원인에 따라 다르고
화학약품으로 입은 화상이 제일 고약해서
살을 파고들기에 오래가며
화상은 하루 이틀 지나봐야 안다고
아주 무심하게 말한다
그 와중에도
무덤덤한 의사가 밉고
혀를 차며 걱정해 주는 약사가 고맙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악은 면했지만
쓰고 싶어도 써지지 않는 아둔한 감각
하등동물 같은 촉수까지 잃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화상보다
하다가 만 숙제가 자꾸 걱정이다
외출용 비누
우리 집 욕실에는
내가 외출할 때 사용하라고 준비한
둥그스름하고 향기 짙은
좀 특별한 비누가 하나 따로 있다
집 안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집 밖에서만이라도
무덤덤하지 말고 모나지 말고
둥그렇게 살라고
만났다 헤어진 뒤에도
또 만나고 싶은 사람 되라고
아내가 챙겨놓은 외출용 비누
숙제하는 아이처럼
얼굴도 손도 마음도
그 외출용 비누로 닦으면
착한 어른이 될 수 있을가
평생 몸에 밴 버릇이
실내용과 실외용으로 바뀔 수 있을까
손풍금 1
기다려도 편지가 오지 않는다면
용기 내어 찾아가 고백을 하자
이름도 정겹고
소리도 정겹고
마음도 정겨워서
오래도록 그리워하며 애태우던 향기
그 자취를 쉬엄쉬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빈약한 가슴이지만 그를 끌어안고
그 온기를 느껴보고 싶어
그 품속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오른손과 왼손이 듀엣을 이루어
서로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언덕 위의 오두막집 같은
조촐한 오케스트라를 꾸며보기로 했다
쇠똥구리
콧대는 높으면 높을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고개는 숙이면 숙일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남자에게 먼저 손 내밀기가 싫어
이별을 선택하는 여자도 있고
체면에 걸맞은 자리를 고르느라
이리저리 시간을 낭비하다가
늦은 이력서를 쓰면서
아직도 자존심이란 걸 만지작거리는
못 말리는 인생도 있을 것이다
굼벵이가 구르는 재주라도 있는 것처럼
이제라도
가격이 떨어진 쇠똥 같은 자존심 버리고
거꾸로 서서
쇠똥이나 둥그렇게 만들어 굴리는
쇠똥구리가 되면 어떨까
연안부두 1
멀리서 그리워만 하던 어제의 용사들이
여행 겸사 연안부두에 다시 모였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아직 폐선하기엔 아까운 배들이
꽃게찜과 밴댕이무침을 먹으며
녹슨 엔진에 시동을 걸어보았다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갈 수 없다면
항구의 아름다운 삽화라도 되자
항구를 빛내는 건 싱싱한 물고기만이 아니다
어선 주위를 서성거리는 갈매기
항구를 끼고 연신 누르는 셔터
젊은 연인들의 배경이라도 되자
불그레한 노을 속으로 젖어 드는 뱃고동
좀 역겹더라도 몸이 끌리는
젓갈 냄새라면 어떤가
약가 허풍스러워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다복집 아주머니
낡으면 낡은 대로 괜찮다
연안부두의 그 무엇이라도 되자고
먼지를 털어낸 어깨를 서로 다독이며
24번 시내버스에 올라
동인천역으로 향했다
나무는 잠든 듯 잠들지 않았나 보다
지난겨울 동안 나무는
잠든 듯 잠들지 않았나 보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어머니가
잠을 설치며 아침상을 생각하는 것처럼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잠시 눈 붙이다 새벽에 출근하는 것처럼
가을을 떠나보낸 모든 나무들
봄맞이 준비하느라고
지난 겨울 내내
쉬는 듯 쉬지 않았나 보다
아직 추위가 묻어있는 이른 봄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를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작은 나무 큰 나무
거느린 가지마다
연보랏빛 애기 손 내미는 걸 보면
그 많은 추운 날
겨울잠을 자는 듯 자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안개
안개가 자욱한 날은
주파수도 길을 잃는다
산골에서 세상을 향해 목을 뺀 안테나
93.1과 93.9사이에
낯선 음악이 끼어들었다
연로하면 안테나도 귀가 어두운지
흐렸다가 맑았다가 컸다가 작았다가
안개가 자욱한 날은
그대를 그리워하는
내 생각도 길을 잃는다
차라리 며칠이고 묵어갈 수 있도록
하늘길, 뱃길이
모두 막혔으면 좋겠다
안개가 자욱한 날
오고 가는 길이 막힌 라디오처럼
그대 생각도 결항이 되어
핑계 김에
며칠이고 머물렀으면 좋겠다
비누 같은 사람
비누에는
처음부터 향기가 별로이거나
처음에는 향기롭다가
쓸수록 향기가 사라지거나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향기가 그대로인 비누가 있다
세월이 가도
향기가 비누같이 나는 사람
세월이 다 닳아 없어져도
향기는 변함이 없는
그런 비누 같은 사람
그런 비누 같은 사랑아
정자
삼모퉁이 고목나무 밑에
홀로 서있는 외로운 정자 하나
지나가는 바람에게
흘러가는 시냇물에게
하늘에 떠있는 구름에게 말을 건다
이제 와 생각하니
이 주변에서 노닐던 온갖 곡조曲調는
어설픈 사랑을 연출하기 위한 위장술이었을까
변심한 사람도 곡절이 있겠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가
풍광 따라 피고 진 인연의 꽃처럼
정자 하나 고집스럽게 제자리를 지키며
의미 없이 핀 꽃이 없다고
꽃은 피어있는 모습 그대로 주인공이라고
지나가는 뭇 인적人跡 붙들고 하소연이다
말을 걸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편지
다세대주택 편지함에는
읽어보지 않은 편지들이 많다
도착한 지 오래된 듯
비바람에 퇴색되거나
기다림에 지쳐
제 스스로 갈 곳을 포기한 편지들
무슨 사연일까
보낸 사람도 있고 받을 사람도 있는데
오도 가도 못하고
문전 박대당한 채 떨고 있다가
미처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야 할
저 남루한 안부安否들이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이름이라도 불러보고 가려고
오늘도 기다린다
내일도 기다릴 것이다
내가 전한 소식 한 편은
지금 어디서 문전 박대당하고 있을가
모든 돌에게는 뿌리가 있다
돌도 뿌리가 있다
살아있는 나무처럼
침묵의 무게만큼
작은 돌은 작은 뿌리
큰 돌은 큰 뿌리
가슴을 후벼 파는 포클레인에
뿌리가 뽑히면
돌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아프다 각자 흘러온 시간만큼
땅속 깊이 내린 침묵의 뿌리만큼
고통스럽다
유성遊星도 뿌리가 뽑혀
우주를 유랑하는 슬픈 돌이 아닐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천년을 풀어도 실타래가 닿을 수 없는
그 시퍼렇게 깊고 거대한 뿌리가 뽑힌
우리동네 막창집 1
우리 집 옆에는 칼국숫집이 있고
자판기 가게와 보일러집이 있고
당구장과 노래방이 있고
미장원과 농협이 있고
주인이 여러 번 바뀐 막창집이 있다
다른 집은 주인이 그대로인데
유독 막창집 자리만 자꾸 주인이 바뀌더니
드디어 임자가 나타났다
이제 번호를 타야 들어가는 집이 되었다
주인이 안 바뀌는 사연을 알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주인이 절대로 안 바뀌는 막창집이 되었다
남는지 밑지는지
애쓰는 만큼 소득이 있는지 없는지
저러다 때 부자가 되는 건지 아닌지
큰 부자가 되면
주인이 또 바뀌게 되는 건지 아닌지
모든 게 궁금한 막창집이 있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어제도 실례를 했다
내게 찾아온 따뜻한 가을빛을
그냥 빈손으로 보냈다
맑은 바람 한 줄기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 한 점
그냥 빈손으로 보냈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오늘도 낙엽과 함께 내리는 늦가을 비
한 장 한 장 숨죽여 쌓이는 귀한 추억을
그냥 빈손으로 보냈다
모두 소중한 인연들인데
빈손으로 보내는 우를 밥 먹듯 범하면서
태평하다, 간식까지 챙긴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그대가 내게 보낸 수많은 사연
답장을 보내지 않는 실수를
내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방금도 오색 단풍길 지나가며
신호등 앞에서 꼬리물기를 했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발치拔齒
다섯 개의 이를 빼니
다섯 개의 희망도 빠진 듯 두통이 심하다
다섯 개의 임시 치아가
당분간 빠진 희망의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의사의 말대로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게 되었으니
이 나이에
까치에게 새 이를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이제 인공치아의 힘으로
웃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다가
마음이 변했을 때
옛날처럼 미운 이름 씹기는 어려울 것이다
입이 헐렁해서
씹어도 씹는 맛이 예전만 못할 것이다
앞에서는 앞말하고
돌아서서 뒷말하지 말라고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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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내가 쓰러져 있을 때 ‘풀꽃시인’에게서 안부가 왔다
나도 죽다 살았지만 당신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오
어서 일어나 사경을 헤매는 당신 시에게
미음이라도 들게 하시오
한 번 죽어본 시인의 고언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지
모든 삶과 죽음에는 순서가 있으니
일단 접수창구에 가서 번호표부터 뽑고
황폐한 몸 구석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생사의 경계에서도 떠올랐다는
그 신음의 시상을 거울삼아
아사 직전의 펜을 일으켜 세우고
몇 젓가락 미음微吟의 노래라도 불러보기로 했다
2019년 겨울
안홍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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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렬 詩集 [※유급인생※]
[ 해설 ] -
삶에 대한 성찰과 부정의 시학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인생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말들이 있다. 모든 격언과 속담들 그리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 계발서들이 인생에 대해서 훈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속담의 몇 마디 말로 그리고 자기 계발서의 몇 가지 팁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삶은 각각의 삶마다 다 다른 구체성을 가지고 있어 쉽게 일반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말로도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복잡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달래주는 것이 최근 유행하고 있는 타로나 명리학이다. 이것들은 나름의 논릴와 체계를 세우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유사성 사고에 뿌리를 둔 자의적 인과관계 설정일 뿐으로 복잡한 삶에 대한 합리적 과학적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복잡성을 신비화시켜 사람들에게 헛된 믿음을 줄 뿐이다.
이 복잡성을 복잡함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문학이 하는 일이다. 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삶을 일반화시키거나 삶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거꾸로 기존의 정답을 부정하고 삶에 대한 일반화된 설명을 구체적인 사례들로 뒤엎는다. 아무리 과학과 학문이 발전해도 문학의 자리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정리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말해 준다.
안홍열 시인의 시들은 바로 이 정답 없는 삶의 매 순간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 깨달음은 인생에 대한 훈수나 잠언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깨달음이다.
2. 지체와 실패로서의 우리의 삶
스스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죽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항상 결핍을 느끼고 좌절을 경험한다. 때문에 누구의 삶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지체된 것이거나 자신의 목표에서 빗나간 실패한 것이기 십상이다. 안홍열 시인이 바라본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코털이 삐죽 나와 있다
가위로 자르니 눈썹도 몇 가닥 길다
눈썹을 자르니 귀밑머리가 빼져 보여서
왼쪽 머리를 자르니
오른쪽이 머리가 길어 보이고
기왕에 가위를 든 마당에
자꾸 흘러내리는 앞머리도 조금 자르니
이번에는 뒷머리가 길다
아뿔싸
그동안 내가 무수히 뱉어버린
보기 흉한 말과 글의 터럭
어지러운 저 발자국은
잘라낼 수가 없으니 어쩌랴
그 숱한 만행漫行은 나중에
흉한 만장輓章이 되어 내 관을 덮겠지
-「터럭을 자르다가」 전문
눈썹을 자르고 귀밑머리를 정리한다는 것은 삶을 단정히 영위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확실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일에 매번 실패한다. 자신이 내뱉은 흉한 말들과 자신이 행한 만행이 자신의 인생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겼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은 죽음을 장식하는 만장처럼 자신의 언행 삶을 어지럽힌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실패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끝까지 가위를 들고 그런 인생을 바로잡아 보려고 노력한다. 시를 쓰는 일이 바로 그런 일과 다르지 않다. 숱한 실패로 점철된 삶을 바로잡고 자신이 뱉은 흉한 말들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지난한 언어의 노정에 빠져들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뜬구름 잡는 또다른 실패의 길이기도 하다.
남자들이란 죽을 때 철든다는데
철없던 시절
나그네라는 말이 근사해 보여서
정말 나그네가 된 시인이 있었지
꿈은 꿈속에서나 아름답다는 걸 모르고
이곳저곳 뜬 구름 따라 흐르며
실패의 발만 동동 구르며 살았으니
그가 거느린 식솔
그가 쓰는 글도 헐벗고 추웠지
새 중에도 나그네가 있다는데
그 새는 왜 나그네새가 되었을까
나그네처럼 떠도는 새이니
지금도 낭만의 강가에서
근사한 먹이를 쪼고 있을까
자식들 밥이나 굶기지는 않고 있을까
나그네 시인처럼
마누라 덕에 밥은 얻어먹고 있을까
- 「나그네새」 전문
시인은 스스로를 “나그네새”라고 생각한다. 꿈속을 찾아 헤매는 낭만의 강가에서 헐벗고 추운 상태로 “실패의 발만 동동 구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시인은 실패를 운명으로 생각하고 실패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그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끌리는 것일까? 성공은 현실에 안주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해야 그것이 성공이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꿈속에서나 아름다운 꿈을 좇는 시인에게 애초에 성공은 존재하지 않고 실패만이 예비되어 있다. 시인은 그래서 적극적으로 이 실패를 받아들인다.
지지고 볶고 울고불고
읽고 치고 두드리고 자르고……
결가부좌 틀고 참선하다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다가
결국 서툰 말과 서툰 글쓰기를 멈추고
서툰 눈과 귀를 빌려
남의 기도를 필사하기로 했다
차라리 다른 집의 장맛을 염탐하며
실패릐 비법을 터득해 보기로 했다
나락에 떨어지는 아픔을 베끼다가
비운悲運의 운세까지 암송하게 되면
빌고 빌던 손을 허공에 냅다 휘저으며
한 곡조 꺾어보기도 하면서
팔자를 바꾸는 재주가 없는 나는
이지러진 관상을 따라
그냥 지나가는 바람의 그림자라도
미행해 보기로 했다
-「어떤 필사」 전문
안홍열 시인은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을 “실패의 비법을 터득”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글쓰기도 도를 닦는 것에도 종교에 빠지는 것에도 시인은 다 실패한다. 시인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시를 쓰는 것뿐이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바로 이것을 통해 모든 실패한 인생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실패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을 진실을 마주할 눈이 생긴다. 그 눈으로 봤을 때 우리의 모든 삶은 미완성이고 지체된 “유급인생”이다.
무릎 연골軟骨이 파괴된
어떤 유급 인생留級人生 하나가
어기적어기적
영평사 비탈길을 오르는데
어머니가 떨구고 가신 눈물 같은
구절초가 나직이 충고한다
우리 늦깎이 꽃처럼 남들 다 피고 진 후
늦은 가을 저녁 무렵에
천천히 피는
지각생 꽃도 있노라고
양지쪽에 자리 잡은 꽃 다 피고 진 후
이름 없는 음지 산비탈에
느지막이 낮달처럼 피는
그런 인생도 있노라고
구절초라 나지막하게
들릴 듯 말 듯 속삭인다
-「구절초」 전문
무릎의 연골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삶의 비탈길을 오를 아주 중요한 수단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는 인생에 뒤쳐질 수밖에 없고 그가 소망한 것을 얻기에는 점점 지체되어 그 성공을 기약하기 힘들다. 시인은 바로 이 노년의 삶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하지만 늦깎이 꽃인 구절초가 아름다운 것처럼 이렇게 지체되고 유급된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낀다. 이 지체와 지각이 삶의 또 다른 곳을 좀 더 세세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실패한 삶을 선택한 시인의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은 이렇게 에둘러 우리에게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성공한 삶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여 모방하고 복사하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를 속이는 데에는
그들을 따라올 자가 없다
나뭇잎에 붙어 사는 벌레는
나뭇잎과 구별이 안 된다
먹고살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이 된 것이다
위장술에 생사가 달린
나뭇잎 벌레처럼
삶이란 주변 풍경과 닮는 것이다
이웃과 물들고
이웃처럼 흔들리고 생각하고
그렇게 서로 어울려가며
짝퉁이 되는 것이다
짐짓 속이고 속아주는 것이다
-「나뭇잎 벌레」 전문
잘 먹고살기 위해 실패와 지체를 두려워하는 삶은 속이고 속아주는 것이다. 그것은 “짝퉁”이 되는 것이다. 이 짝퉁이기를 거부하고 삶의 진실과 거기에 도달하는 실패와 좌절을 바로 보는 비장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안홍열 시인이 선택한 방식이고 바로 진정한 시인의 길이기도 하다.
3. 부정과 거부의 언어
안홍열 시인의 시들에는 “아니다” “없다” “안” “못” 같은 부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다음 시에도 거의 모든 행은 부정문으로 되었다.
무릎 연골 사망 선고를 받은 이후
가끔 새처럼 날고 싶지만
새같이 입이 작을 수도 없고
눈이 선할 수도, 다리가 가늘 수도
똥을 조금 눌 수도 없으며
발톱 속에 감춘 죄가 새만큼 가벼울 수도 없어서
지상에 직립하는 것에 만족하기 위하여
비상의 꿈을 포기하고 그냥
좌변기에 앉아 일을 보기로 했다
계단보다 엘리베이터, 의자, 경사로, 지팡이 등
모든 보통명사들이 막히고 무너지는 소리를
꿈속에서도 들으며
산책과 양반다리와 무릎 꿇는 행복을
꿈꾸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적은 오랑캐가 아니고
쌀이며 밀가루 빵 같은 탄수화물
그 입력의 양과 질이다
-「비상을 꿈꾸다가」 전문
시인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하고 있다. 물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릎 연골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모든 장애들의 비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모두 장애를 경험한다. 그것은 나의 신체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생겨나기도 한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한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모두는 다 좌절을 경험하고 산다. 시인은 이 좌절을 받아들여 “무릎 꿇는 행복을/꿈꾸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한다. 그런데 이 포기와 목표 수정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현실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부정의 말들을 통해 시인은 우리의 통념과 삶에 규정된 기존의 생각들을 거부한다. 그런 거부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연장을 허리에 차고 일하는 목수처럼
살면서 가까이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소소한 물건도 가까이 두고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쓰는 시간보다 찾는 시간이 많다
사랑한다는 말도 그렇다
자주 쓰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
요즈음 대화를 나누다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방금 전에 한 말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목수가 연장을 미리 갈고 닦아
몸 가까이 지니는 것처럼
지나간 기억을 허리에 찰 수도 없고
걱정이 걱정을 낳아
걱정이 많아지는 게 또 걱정이다
지금도 머리맡에 걱정이 즐비하다
-「목수는 연장을 허리에 차고」 전문
시인은 잃어버리고 없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이 말을 사용하지 않으니 사랑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인에게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은 걱정을 걱정으로 만든 말들 때문이다. 그 말들이 생각나지 않아 걱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단어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삶의 불행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오직 이 불행은 말을 찾는 것으로 견딜 수 있고 그 말을 찾는 과정이 어쩌면 시를 쓰는 행위일 것이다. 목수가 연장을 허리에 차듯이 시인은 말을 허리에 차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잃어버린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기 위해 ‘없는 것’ ‘잃어버린 것’‘못하는 것’을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시인의 부정문은 부정을 거부하기 위한 부정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음 시에서도 우리는 이 부정의 정신을 볼 수 있다
어제도 실례를 했다
내게 찾아온 따뜻한 가을빛을
그냥 빈손으로 보냈다
맑은 바람 한 줄기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 한 점
그냥 빈손으로 보냈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오늘도 낙엽과 함께 내리는 늦가을 비
한 장 한 장 숨죽여 쌓이는 귀한 추억을
그냥 빈손으로 보냈다
모두 소중한 인연들인데
빈손으로 보내는 우를 밥 먹듯 범하면서
태평하다, 간식까지 챙긴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그대가 내게 보낸 수많은 사연
답장을 보내지 않는 실수를
내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방금도 오색 단풍길 지나가며
신호등 앞에서 꼬리물기를 했다
시인이 그러면 쓰나
-「시인이 그러면 쓰나」 전문
시인은 시인이 그러면 쓰나, 라고 반성하고 있지만 짐짓 시인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수하고 부정하고 일탈을 범하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행한 부정은 방법적 부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형식과 규범의 틀에 갇혀서는 우리의 복잡한 삶의 진실을 마주할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깨어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시인은 우리가 평소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선택은 사랑이다
한참을 생각하고 혹은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잡았다가 놓고
또 들었다가 놓고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계산대까지 왔다가
다시 바꾸기도 하고 환불하기도 하고
한 바퀴 비잉 둘러보다가
그냥 나가기도 한다
작은 물건 하나도
저렇듯 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사랑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그동안 나를 선택해 준 그 모든 사람들
그 모오든 인연들이 고맙다
-「편의점에서」 전문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그냥 주어지는 것도, 말로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매 순간 선택해야 할 고민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나를 선택해 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 고민을 통해 내게 사랑을 베풀었을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이처럼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편의점에서 “한 바퀴 비잉 둘러보”듯이 세상을 직접 대면하고 그것의 세세한 진실을 파악한 후 선택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우리가 살면서 행한 많은 실패와 지체와 좌절 속에서 우리를 견디게 하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이룰 수 있게 만든다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4. 맺으며
안홍열 시인의 시를 읽으면 시 속의 실패와 지체가 바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와 다르지 않은 좌절을 경험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그의 시는 이러한 좌절을 부정의 언어들을 통해 좀 더 강조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온통 하지 못한 것, 없어진 것, 잃어버린 것,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런 부정적인 말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로 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서 부정성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 즉 사랑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마음 속에 낫과 호미가 없으면
온갖 말은 잡초다
…(중략)…
떠돌이 개도 길들이면
가축이 되지만
사랑의 끈을 놓으면
다시 들개처럼 무국적자가 된다
내일 죽어도
오늘 쓰고 싶은 한 편의 목숨 같은 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문장들은
지금 어디서 풍찬노숙을 하고 있을까
-「나쁜 시」 부분
안홍열 시인은 없어진 시를 찾기 위해 시를 쓴다. 어쩌면 이는 모든 시인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찾아 헤맬수록 사라지는 “나쁜 시”를 이토록 갈구하는 이유는 “사랑의 근을 놓”지 않기 위해서이다. 풍찬노숙을 하고 있는 시를 찾기 위해 시인 역시 풍찬노숙을 일삼는 실패와 지체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길이 시인으로서의 실패가 아님을 이 시집의 시들이 잘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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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문 ] -
안홍열을 위한 쪽금
나태주. 시인.
안홍열이란 이름은 오래된 이름이다. 1970년대에 벌써 시인이었던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매우 무거운 이름이라서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는 바람에 많은 사람에게 잊히고 말았다. 답답한 일이고 섭섭한 일이다. 뒤에 나온 이름들이 자라서 그 이름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 이름은 오래된 이름이되 낯선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금 새로운 이름의 줄에 서게 되었다. 나 같으면 이러한 ‘이름 유급’을 참지 못한다. 그러기에 나는 쉬지 못하고 조바심으로 오늘날까지 이렇게 와버리고 말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와버리고 말았다는 점에서는 안홍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월과의 게임에 밀린 셈이다. 이제라도 신발끈을 고쳐 신고 부지런히 떠나보아야 할 일이다.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어가는 데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는 나의 한탄이자 안홍열의 한탄이다. 이제 우리는 잡았던 삽자루를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금 말을 고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yet.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 흔한 말로 ‘늦은 때를 안 것이 가장 빠른 때이다.’ 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안홍열 시인의 시는 처음부터 조용하고 그윽하고 맑았다. 조숙, 일찍 익어버렸다. 출발부터가 그랬다. 나름대로의 깨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더 나아갔어야 했다. 아쉽고 안쓰러운 일이다.
참 힘겹게 발길을 다시 일으켜 옮기기 시작했고 이제 어느 만큼 성과가 나왔다고 본다. 이번에 나온 시집이 그 결과다. 하지만 이것 가지고서는 안 된다. 김소월이나 윤동주 시절엔 시집 한 권 가지고서도 진가를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많이 써야 하고 오래 써야 하고 계속해서 써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기만의 음성을 얻어야 한다.
안홍열의 이번 시집은 멈추었다가 다시 길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 치고서는 성실하고 촘촘하고 발 빠른 견실함이 있다. 그 발걸음 그대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우리는 미래의 시인이고 우리의 발길은 낯선 곳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해는 비록 저물었고 나의 길은 짧아졌지만 안홍열의 해는 아직도 밝고 그의 길은 멀기를 기원한다. 차라리 우리는 시를 원망해야 했다. 왜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 나아가 우리는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왜 시한테 홀려서 일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우리의 선택, 우리의 낭비, 우리의 허장성세, 우리의 비탄,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안홍열. 두 번 다시는 주저앉지 말아라. 우리는 우리에게 재능이 없고 기회가 적었음을 한탄할 일이 아니라 열정이 부족했음을 땅을 치고 통곡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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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안홍열의 이번 시집은 멈추었다가 다시 길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 치고서는 성실하고 촘촘하고 발 빠른 견실함이 있다. 그 발걸음 그대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우리는 미래의 시인이고 우리의 발길은 낯선 곳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해는 비록 저물었고 나의 길은 짧아졌지만 안홍열의 해는 아직도 밝고 그의 길은 멀기를 기원한다. 차라리 우리는 시를 원망해야 했다. 왜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 나아가 우리는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왜 시한테 홀려서 일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우리의 선택. 우리의 낭비, 우리의 허장성세. 우리의 비탄.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안홍열. 두 번 다시는 주저앉지 말아라. 우리는 우리에게 재능이 없고 기회가 적었음을 한탄할 일이 아니라 열정이 부족했음을 땅을 치고 통곡해야만 한다.
― 나태주 시인의 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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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홍렬 시인∥
∙ 충남 당진 출생
∙ 공주교육대학, 한남대학교, 국민대 교육대학원 졸업
∙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 1990년 시집『아름다운 객지』출간
∙ 전 중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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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안홍열 시인의 시집 『유급 인생』이 시작시인선 0314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49년 충남 당진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 『아름다운 객지』가 있다.
시집 『유급 인생』은 삶에 대한 직관과 통찰로 얻은 깨달음이 절제된 이미지와 곡진한 언어로 잘 드러난다. 생활에 천착하여 쓴 안홍열의 시는 삶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을 통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때 시인의 언어는 사회적 통념이나 규율을 배반함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되묻기에 이른다.
시인에게 유급이란 부정적 의미의 좌절 혹은 실패만을 뜻하지 않는다. 해설을 쓴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실수하고 부정하고 일탈을 범하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행하는 부정은 “방법적 부정”으로, “평소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적 태동胎動인 셈이다.
아울러 이번 시집은 표4를 쓴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멈추었다가 다시 길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 치고서는 성실하고 촘촘하고 발 빠른 견실함”이 돋보이며, 우리가 살면서 행한 많은 실패와 지체와 좌절 속에서 우리를 견디게 하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우리의 삶은 온통 “하지 못한 것” “없어진 것” “잃어버린 것”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방법적 부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해서 부정성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 즉 사랑을 되찾으려는 몸짓을 보여 준다.<인터파크 글로벌>
[책소개]
안홍열 시인의 시집『유급 인생』이 시작시인선 0314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49년 충남 당진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아름다운 객지》가 있다. 이번 시집은 삶에 대한 직관과 통찰로 얻은 깨달음이 절제된 이미지와 곡진한 언어로 잘 드러난다. 생활에 천착하여 쓴 안홍열의 시는 삶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을 통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때 시인의 언어는 사회적 통념이나 규율을 배반함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되묻기에 이른다.<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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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달빛자락 / 명상음악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http://cafe.daum.net/musicgarden/5r73/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