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나”
본문 / 말1: 1-5절
한의사 김소형씨의 글에 의하면 사람의 피부는 피부 바깥층에 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표피와 표피
밑에 자리잡고 있는 피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표피는 신진대사와 세포분열이 일어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제수명이 끝나 때가 되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부는 폐가 주관한다고 합니다.
폐는 모든 장기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장부에서 열이 생기면 폐에 자극을 주고 그 때 일어나는
증상으로 메마르고 건조한 기운이 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피부가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몸안에 열이 많아 그 화가 대장에 미치면 변비가 일어나고 변비는 곧 피부를 거칠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기미 주근깨 여드름 잡티가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굴에 기미나 주근깨 잡티
여드름이생기는 것은 얼굴 때문이 아니라 폐나 장기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이라
는 것이 한의사 김소형씨의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려면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쓰는 것보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 장기를 치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체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적인 감동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크게 보여집니까?
왜 우리는 열정이 없는 신앙의 매너리즘(틀에박힌 태도)에 빠져있습니까?
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모순된 삶의 모습이 마치 정상적인 모습인양 살아가고 있습니까?
거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습니다.
오늘 말라기 선지자가 사역하는 시대 상황이 이런 매너리즘의 상황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성경 맨 끝에 있다고 해서 말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성경이기 때문에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란 이름의 뜻은 "나의 천사 혹은 나의 사자" 라는 것입니다.
당시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와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은 40년을 평화적으로 통치합니다.
그후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
을 통치했지만 이방여인들과 결혼하고 예루살렘 높은 곳에 이방의 우상을 세워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행동을 합니다. 솔로몬이 죽은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국을 둘로 찢으십니다.
그래서 북쪽에는 이스라엘 남쪽에는 유다라는 명칭의 분열 왕국이 시작됩니다.
북쪽이스라엘은 계속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되자 BC722년 앗수르라는 나라로부터
멸망당하게 됩니다. 한편 남쪽 유다왕국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기적 같은 손길로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옵
니다. 그리고 그들은 귀국해서 가장 먼저 성전 재건축을 시도하였지만 여러 가지 방해공작으로 지지부
진, 중단되어지고 맙니다. 이때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자를 세워 귀국 후 15년이 지나도록
잠자고 있는 자기백성을 깨우도록 만드십니다.
학개서에서 "너희 소위를 살펴볼지라 너희가 자기 집만 지으려고 바쁘고 하나님의 성전을 피폐한 상태로
내버려두겠느냐?"(학1:5-7절)라고 질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성전과 성벽이 완성
됩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이 완성되고 난 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전은 지었지만 형식적인 예배로, 나태한 신앙생활로 스스로 만족해가면서 그 무서운 신앙의 권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렇듯 성전 건축 후 무기력한 신앙으로 전락해버린 자기백성 가슴에 두 번째 불을
지펴준 사람이 바로 ‘나의 사자’ 라는 이름뜻의 말라기 선지자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을 새롭게 하려고 몸부림치는 선지자의 외침이 또한 말라기서입니다.
그래서 말라기서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려는
영적인외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적인 성전건축을 통해서 영적인 성전을 건축해야함을 깨달아야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영적인 건축은 커녕 오히려 현실에 만족하고 무기력하며 틀에 박힌 신앙의 태도 때문에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없고신앙의 감동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마치 세상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는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발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며 매너리즘에 빠져 세속화 된 모습속에 살고있는 우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본질로 돌아 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향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의 매너리즘을 질책하고 경고하면서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2절 말씀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
셨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라고 말씀하
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변합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는 너무나 기가 막힌 소리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본문 2절에서 4절까지 야곱과 에서 얘기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사랑”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지극히 사랑하였다 !' 그런데도 너희는 이렇
게 대답 하였다. `주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설명하여 주셨다.
`에서와 야곱은 본래 형제가 아니냐 ? 그런데도 나는 너희의 조상 야곱만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는 야곱의 형인 에서마저도 거절해버렸다. 내가 에서의 후손들이
살던 땅, 곧 에돔의산지를 황무지로 만들고 자자손손에게 물려주던 농경지를 허허벌판으로 뒤엎어
놓았다.'
에서의 자손들은 `우리가 비록 파괴를 당하였으나 이 폐허에 다시 건설하면 된다 !' 하고 큰소리를 치지
만,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다시 건설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다시
무너뜨리겠다.
그때에 사람들은 에돔 땅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지역'이라고 부르며 에돔 족속을 언제까지나 주님의 진
노를 모면 할 수 없는 백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회복할 기회를 주셨지만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
들은 일어나는 것 같아도 무너뜨리셨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세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매너리즘을 깨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처음이자 나중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영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다시말하면 율법적인 신앙의 한계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평이 가득했고 그 불평 때문에 바벨론의
화려한 생활이 마치 애굽의 화려한 생활이 더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세상이 더 크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크게 보이면 물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크게 보이면 보이는것에 우선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크게 보이면 절대 영적인 것이 보일 수가 없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