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는 미국 최대의 성(姓)이다. 센서스 조사 결과 10명 중 한명꼴이다. 다음은 뚝 떨어져 존슨과 윌리엄스. 스미스는 원래 앵글로 색슨의 대표적인 성이다. 하지만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스미스가 많다는 건 뜻밖이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출신의 이민자들 가운데도 스미스가 적지 않다. 1800년대 중반 대서양을 건넌 이들은 대부분 까막눈이었다. 이름을 물었으나 영어는커녕 모국어도 쓸 줄 몰라 입국 심사관은 답답할 수 밖에. 귀찮은 나머지 서류에 그냥 스미스라고 기재했다.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도 상당수는 스미스가 됐다. 주인의 성을 그대로 물려 받은 것. 미국에서 스미스가 엄청 늘어나게 된 이유다.
스미스를 소문자로 쓰면 쇠붙이 도구를 만들어내는 '장이'가 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스미스의 사회적 지위가 꾀나 높았다고 한다. 농기구는 물론이고 칼과 창을 만들어내야 했으니 말하자면 정부의 특별관리 대상에 속했다.
그래서 대장장이는 '블랙스미스'(blacksmith) 금세공장은 '골드스미스'(goldsmith) 열쇠공은 '록스미스'(locksmith) 따위로 불렸다. 기능직을 우대하자 너도 나도 성을 스미스로 바꾸게 된 것.
미국에 들어와서 각광을 받은 '스미스'는 총기 메이커 곧 '건스미스'(gunsmith)다. 총기소유를 합법화한 수정헌법 2조 탓이다. 주정부는 민병대(훗날 주 방위군)를 무장시킬 의무가 있고 개인은 자유와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총을 갖게 했다.
국민의 기본권이나 다름없어 이 조항을 고치거나 없앤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 총기 규제는 할 수 있어도 금지는 못하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현재 미국에 나돌고 있는 총기류는 불법.합법 포함해 3000만정으로 추산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스미스 성가진 사람들의 숫자와 비슷하다.
중서부엔 아예 총기 소유가 문화로 잡았다. 이른바 '건 컬처'(Gun Culture)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리빙룸에 각종 총기류를 장신구 처럼 진열하는 게 전통이 되었다. 이를 보고 집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가늠한다는 것.
미국은 왜 총기소유를 헌법조항으로 규정했을까. 독립전쟁이 끝나자 워싱턴은 정규군을 모두 해산시켜 버렸다. 혹 후임 대통령이 군사 독재를 할까 두려워서였다. 헌법기초위원들도 워싱턴과 뜻을 같이 했다. 민병대와 개인의 무장을 헌법상의 권리로 명문화한 것이다. 국가 비상시에는 이들을 징집 전쟁터에 동원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미국에서 '건스미스'가 성업을 이룰 수 밖에. 알고 보면 미국 최대의 총기 메이커도 '스미스 & 웹슨'이다. 창업자는 호러스 스미스. 조상이 영국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미스'가 틀림없을 것 같다. 남북전쟁에서 군납으로 큰 돈을 벌고는 서부개척시대에 대기업으로의 입지를 굳혔다. 당시 이 회사의 6연발 리볼버는 없어서 못팔 정도였다고 한다. 이 총으로 인디언을 토벌하고는 '평화의 메이커'라고 불렀다나.
버지니아 텍 캠퍼스에서 총기 무차별 난사로 최소한 33명이 숨졌다는 소식이다. 부상자 중엔 한인학생도 포함돼 있다.
범인이 쏜 총은 스미스 & 웹슨의 고성능 제품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처럼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는' 건스미스'와 헌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국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