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말(馬)을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그 왕이 어느 날,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천리마를 가지고 싶었던 왕은 신하들을 전국 각지로 보내 수소문했다. 하지만 원하는 천리마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왕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갔다.
이때 한 신하가 자신에게 황금 500냥을 주면 천리마를 가져오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에게 거금을 내어 주었다. 몇 개월 후, 신하는 천리마를 구했다며 왕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말 뼈 하나만 들려있는 것 아닌가. 왕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네! 천리마의 다리뼈입니다. 황금 500냥을 주고 샀습니다.” 왕의 분노가 폭발했다. “네 이놈! 나는 살아있는 천리마를 가져오라고 했다. 죽은 말 뼈를 500냥이나 주고 사오다니!” 그러자 신하가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천리마는 귀한 말이라 다들 숨겨놓고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죽은 천리마 다리뼈를 500냥이나 주고 샀다고 소문이 퍼지면, 살아있는 천리마를 가진 사람이 너도나도 올 것입니다.”
과연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리마를 가진 사람이 세 사람이나 나타나 왕에게 팔겠다고 찾아왔다.
죽은 천리마의 다리뼈를 황금 500냥이나 주고 산 신하는 세상 사람 눈에 어리석게 보였다. 하지만 그 어리석어 보이는 행위로 인해 살아있는 천리마를 세 마리나 얻을 수 있었다.
바둑에서는 프로기사 2단을 약우(若愚)라고 부른다. 도가(道家)의 가르침인 대현약우(大賢若愚)에서 따온 말로 “크게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듯 보인다”라는 뜻이다. 바둑 고수는 아마추어가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마를 전개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고수의 어리석음은 큰 지혜와 통한다. 밑지는 장사! 이것이 고수의 행보다. 대현약우(大賢 若愚)다.
천리마를 찾는다며 세상을 돌아다니다 지쳐 주저앉아 있는, 헛똑똑이 나를 바라본다. 그런 나에게 바오로 사도는 대현약우(大賢若愚)를 말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1코린 3,18)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1코린 4,10)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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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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