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외 2편/ 박미자
소리 없는 말이 오고간다.
말을 들을 수 없어서 눈으로 본다.
말을 소리로 할 수 없어서
온 몸으로 한다.
그에게 들리지 않는 말을 나는 소리쳐 하고 있었고,
내가 볼 수 없는 말을 그들은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수어의 세상에 발을 담그면서
나는 그들의 고요를 배우고 있다.
말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수어를 통해 그들의 고요한 세상에 함께 살고,
이렇게 시끄러운 세상을 함께 누리고 싶다.
소록도
소록도에 가면
한센인의 한이 소록소록 묻어난다.
소록도에 가면
한센인의 눈물이 주룩주룩 비가 되어 내린다.
병마에 시달리며 세상에서 고립되고,
전쟁 아닌 전쟁터를 살아낸 세월
세월이 지나 그들의 삶의 흔적이 박물관이 되는 낯선 세상
어떻게 살았는지 차마 물을 수도 없어서
소록도의 붉은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착각
하늘은 벌써
서릿발 내리밀까 망설이는데
뒤집힌 염낭에
실밥처럼 붙어있는 꽃씨를
줍고 있지요
환청일지라도
멀찍한 발걸음이 들린다고
밭뙈기 모서리에
마음 꺽꺽 찍어
꽃을 심고 있지요
너무 늦게 착지한 씨앗 하나
꼭 진 자리 없어도
무화과로 열매 맺을 거란
착각을 믿고 있지요
□ 지필문학 제88기 신인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 박미자 씨의 시적 신선한 여린 감성/ 심사위원 – 평론가 류환, 지필문학 회장 박세영.
인간은 생명체 중 유일하게 의식이 발달해있는 존재이고 더욱 이 이미지는 불허적이고 중추적이다.
비유하자면 바닷길을 걷는데 저 멀리 기적을 울리며 떠나는 배 한 척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든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 한 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 등이 그렇다.
박미자씨의 작품 〈수어〉, 〈소록도〉, 〈착각〉 등은 충만한 의식과 신선함이 있어 마음에 와 닿는다.
사실 신선함이 있는 시는 그리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 활자로는 신선함을 쉽게 표현한다지만 무생물과 마찬가지인 대상에서 살아 숨 쉬는 신선함이나 신선감을 건져 올리기까지는 오래도록 고된 시작법의 소요함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착각〉이라는 시에서 박미자씨가 고요의 순수하고 신선한 시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어 옮겨보면 –하늘은 벌써/ 서릿발 내리밀까 망설이는데/ 뒤집힌 염남에/ 실밥처럼 붙어있는/ 꽃씨를 줍고 있지요/ 환청일지라도/ 멀찍한 발걸음을 돌린다고/ 밭뙈기 모서리에 마음 꺽꺽찍어/ 꽃을 심고 있지요/ 너무 늦게 착지한 씨앗 하나/ 꽃 진 자리 없어도/ 무화과로 열매 맺을 거란/ 착각을 믿고 있지요.
내용에서 정신적 고찰의 바라봄을 통해 대상과 화자 그리고 의인화의 과정 등 기법 역시 신선함을 보이고 있어 시인의 새로운 모습이 보여 선정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지속해서 꾸준히 좋은 작품을 보여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지필문학 제88기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소감/ 박미자
빛바랜 초등학교의 통지표에는 담임 선생님의 글귀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위 학생은 글쓰기에 소질이 있습니다.’ 주홍글씨인양 그 문구를 가슴에 품고 산지 몇 십 년이 지나고 어느덧 내 아이가 유년시절의 내 나이가 되어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용기를 내어, 아이의 보호자로 각종 대회에 나가서 학부모의 작품으로 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어릴 적 방학숙제로 했던 ‘글동산’ 문집의 시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뿌린 씨앗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차마 떡잎을 못 내밀고 망설이고 있을 때 상주문인협회에서 저에게 시바람을 넣어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때 저에게 대선배님이신 이옥금 선생님께서 안개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더욱이 지필문학 박세영 회장님께서 이번에는 햇빛도 봐야한다고 양지로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용기를 주신 허연옥 시인을 비롯한 상주문인협회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간호사입니다. 간호사가 환자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듯이 앞으로 저는 세상이 들려주는 시어들에 귀 기울일 것이며, 시를 쓰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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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자
· 상주문인협회 회원
· 충의공 정기룡장군 탄신 456주년 기념문화제 시부문 최우수상 수상
· 제35회 국민독서경진 경상북도 독후감부문 어머니부 경북도지사상 수상
· 지필문학 제88기 시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 ‘한국 지필문학 2019년 9/10월호, 통권 52호(지필문학작가회, 도서출판 다담라이프.)’에서 옮겨 적음. (2019.12.03. 화룡이) >
첫댓글 어쩌면 시인은 아픔하나 안고 가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픔을 앓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쉬이 아픔을 나누려고 하기 마련이지요.
너무 맑아서 너무 아픈 그래서 아픈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시인의 하얗고 파란 마음이 시에 담겨져 있는듯 합니다.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맑고 깊은 시들
많이 쓰시길 응원합니다.
김 시인님,
위 '당선소감'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간호사가 환자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듯이 앞으로 저는 세상이 들려주는 시어들에 귀 기울일 것이며,
시를 쓰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꼭 지켜내시는 훌륭한 시인이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