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도산"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시대상황의 재연에서 리얼한 묘사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본론으로 들어 가기전 영화관람의 일반론에 대한 대한 나름의 생각을 먼저 피력해 보겠습니다.
영화 관람전에 해당 영화에 대한 평론 등의 정보에 필요이상으로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더군요 그런면에서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으니까요.
대개의 영화평론이란 묘하게도 영화 개봉과 맞물려서 거의는 상업적 옵션에 얽메인 성향을 띠기가 일쑤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점은 어떤 영화든 자신만의 의식으로 스스로를 선택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영화 "역도산"에서 느끼는 특이점은 얼핏 우리의 60년대~70년대, 아니 현재까지도 우리의 잠재의식에 혼재되어있는 내편이라는 치졸한 동류의식이 영화 속의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어려웠던 그 시대에 일본을 대하는 의식은 특히 스포츠에 있어서는 현실을 넘지 못하였던 지난한 억울함을 대리만족시키는 공동의식을 힘들이지 않고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흥행이고 승리는 국력의 신장같다라는 착각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만 갖는 속상한 의식인줄 알았는데 일본인 그들에게도 우리가 겪는 거의 같은 시기에 자신들이 넘지못한 미국이란 거대한 아킬레스에 대한 짝사랑 또는 말할 수없는 분노같은 향수가 그렇게 표출되고 있었기에 말인것이다.
거기에 이 영화의 주인공 역도산은 일본인들을 대리만족시키는 시의적절한 주인공으로 성공(겈보기에 따라서는...,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난제(?)가 많았지만...,
당시의 역도산은 이국생활의 냉혹한 환경에서 터득된 그만의 생존철학이 있었다. 그러한 신념속엔 그리운 고국조차도 고비마다 자신의 고통을 야기시키는 잊어버려야하는 치욕스런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겪은 숫한 어려움에서 발생되는 가혹한 분노는 역설적이기게도 그를 더욱 기계화시키는 스포츠 병기로 단련케하는 오직 하나의 원인으로 작동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노력한 그만의 남다른 시도가 전 일본인을 감격적으로 착각(?)케하는성공을 거두지만,
정작 우리가 바라는 그는 그리운 조국도 없었고, 사랑하는 아내도 믿지못하는 등 매우 불행한 사나이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패배도 승리라는 대승적차원 유연성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명 "가라데촙"이란 비수를 단련하여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지만 그에겐 높은 신체 단련으로 국복되는 과정에서 얻을수있는 정신적 높이의 경지는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위한 사회적으로 용인된 싸움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철저하게 조선인임을 숨기는 그의 태생적 은닉은 식당을 하는 고향친구을 아무도 모르게찾아 불고기 음식과 잊혀져가는 고향의 말로 대화할 수있는 유일한 해방처 였을뿐인것이다.
어쩌면 역도산은 해방전후시대에서 한국과 일본을 주춤거리게 한 가장 회자되는 불행한 자화상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괜히 씁쓸하다.
그는 한때 세계프로레슬링을 장악한 최고봉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하여도 여전히 불쌍한 남자였고, 냉대받으며 쫒기는 조선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