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웨이 장군은 1950년 12월 미 제8군 사령관에 부임했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11월 25일 시작된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한 상태였습니다.
중공군의 3차 공세 로 평택에서 삼척을 잇는 전선까지 또다시 후퇴한 이후 유엔군은 멘붕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셨던 해리 트루먼은 대한민국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리지웨이 장군의 강려크한 리더쉽과 끈기있는 모습에 한반도의 전세는 또다시 역전됩니다.
1951년 1월 25일 부터 작전 개념을 수색정찰 에서 지역확보로 바꾸고 여러 병종이 거대한 팀워크를 이루게 되면서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선더볼트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리지웨이 장군이 직접 전투현장을 지휘하시고 솔선수범하여 이 작전에서 유엔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의 한계점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였고, 사기가 바닥을 쳤던 장병들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지웨이 장군의 확신에 찬 독려와 지휘로 전장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꾼 유엔군과 국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진격을 하였고, 한강 남안을 확보 (탈환) 하였습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된 리지웨이 장군은 6.25 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기 위한 정전협상을 이끌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1993년 98세의 나이로 미국 피츠퍼그 자택에서 영면하셨습니다. 그리고 리지웨이 장군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6.25를 잊지 맙시다!
출처 -국가보훈처
사진 -LIFE, 내 핸드폰 갤러리ㅋ
전 이만 꿈나라로..ㅋㅋㅋㅋㅋㅋ
첫댓글 크으... 잘 막아주었네요
맥아더는 핵 쏘자는 말도 했다고 들었는데...
핵 쏘자고 하다가 트루먼 대통령한테 명령불복종으로 해임하셔서 전역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핵을 발사했을 경우 한반도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안봐도 뻔했기 때문에..
@『지동석』 최선의 선택이었네요 ㄷㄷ😥
월튼 워커 중장이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후임으로 온 장군이죠.
그렇죠! 현재 워커장군이 전사하신 자리에는 호텔이 있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