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魚 / 윤옥란
어둠을 흔들어대던
사내의 기침 소리에 새벽이 밝았다
잠을 이루지 못한
툭 튀어나온 물고기 눈을 닮은 사내
어떤 날은 말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 때마다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적시고 온 것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양쪽 지느러미의 물기를 털어냈다
오늘은 내게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눈을 감고 있어도 물속이 환하다고 했다
붉은 아가미 속에 감춰진 노독路毒,
얼굴에 핀 열꽃이 강바닥에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고요가 등을 떠밀었을까
소년의 얼굴처럼 말개진 사내
열꽃이 사라지고 기침소리가 그친 후
숨도 멎었다
그제야 신발 한 켤레 없이 구름 발자국 뒤따라가는 사내
해탈의 문 빠져나간다
생의 마지막 순간 까지
아무도 그가 맨발이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뼈만 남은 목어처럼
희미한 낮달이 사내를 품었다
젖은 생의 무늬가 꾸덕꾸덕 마르고 있다
허공에 걸린 가시가
내 혀를 찌른다
입 속이 따갑고 목청이 부었다
ㅡ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상상인, 20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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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옥란 시인
1961년 강원도 홍천 출생,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2018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동서문학상 입선, 농어촌 문학상 우수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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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사물 이란 이른바 사찰에서 불음을 전파하기 위해 소리를 내는 네 가지 도구를 말한다.
범종, 법고, 운판, 그리고 목어이다.
하나 하나에 문화와 세월의 향기가 경건히 배어 있다.
모두가 나름대로 온 세상만물을 깨우치게 한다.
내가 절에서 머리 깎고 조석공양을 드리는 사람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스님들이 그 사물을 온갖 기량을 발휘하여
신나게 두드리고 엄숙히 울려 대는 모습은 가히 예술의 경지이다.
비록 장엄한 종교적 의식이긴 해도 마치 속세의 사물놀이를 보듯 저절로 신이 난다.
그 중 목어는 특이하다.
다른 것들이 형이상학의 이념적 모양을 하고 있는 데 반해
목어는 생긴 모양 그대로이다.
여러 가지로 모양을 내고 색을 써본들 영락없는 물고기요
이른바 용두어신, 입에 여의주을 물고 있는 모습도 있지만 여전히 물고기 형상이다.
생각해 보면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제도의 뜻을 금새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공양 시엔 누각에 걸어 둔 놈을 대나무 막대로 배 부분 안쪽의 양 벽을 두드리는데
울림이 별로 없는 둔탁하고 단순하며 그래서 소박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 행하는 절도는 엄중하고 엄중하다.
어쨌든 숲을 지나와 산속 도량을 지나는 바람이 시원하기 짝 없다.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선 풍경을 챙그렁거리고 또 산속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바라 보는 눈길 앞에 푸른 칠을 한 목어 한 마리가 걸려 있다.
잉어 같기도 하지만 수염이 없으니 붕어 같기도 하다.
비늘이 큼지막하고 등지느러미는 곧추 세워있다.
바람이 불어오니 조금 건들거리기도 한다.
아마 속세의 물속을 유유자적 헤엄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러나 눈은 부릅뜨고 입은 굳은 의지로 다물어져 있다.
어쩌면 바닷물고기인지 이빨이 단단하고 매섭다.
항상 깨어 있어 경계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고 정진하란 뜻인가.
수행자들에겐 경책의 의미렷다. 졸지말고 게으름 피지 말란 것이다.
현장법사가 어느 사람의 죽은 아들을 위해 천도제를 올렸다.
그러자 커다란 물고기의 배에서 아들이 다시 살아 나왔다고 한다.
이에 그 아버지가 아들 대신 죽은 물고기의 은혜를 갚고자
나무로 물고기를 만들어 두드려가며 명복을 빌었다 한다.
물고기의 안녕을 위해 이러한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옛날옛적 어느 사람이 나쁜 짓을 많이 하여 물고기로 다음 생에 태어났다 한다.
그런데 그 업보로 인해 등에 나무가 솟아나 물결이 칠 때마다 피를 흘리며 아파했다.
이에 한 스님이 그를 해탈케 해주고 등에 난 나무로 물고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다.
목탁을 지녀 두드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이리 되면 대승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목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 본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르고 푸른 비늘이 향내를 뿜어주는 듯 하다.
천년 바람 만년 물길, 세파에 시달리는 중생들,
내게도 가만히 말을 건넨다.
뭘 그리 붙들고 앉았느냐고 무엇이 그리 안타까우냐고
그래도 어쩌랴.
목어를 부여 잡아 본다.
내 인연,
물에서도 산에서도
하늘에서도 사람들 가운데서도
얽히고 설키되 아프게 잊혀지진 말기를.
절간 처마끝 시린 하늘을 바라보며
대숲 지나는 바람 같은 한숨을 내어 쉬니
또 다시 무심한 풍경만 댕그랑...
- 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