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강론>
(2024. 8. 10. 토)(요한 12,24-26)
복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4-26).”
1) 지혜서 저자는 의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지혜 3,2-7).”
이 말을 우리 교회의 순교자들의 순교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순교자들의 순교가
바보 같은 죽음으로만 보이겠지만, 순교자들의 순교는
결코 ‘인생이 끝나버리는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생명을 누리게 되는 ‘영원한 인생의 시작’입니다.
바로 그것을, 우리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 순교자가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사도 7,55-60).”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스테파노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은, 스테파노를 ‘마중’ 나오신 것입니다.
박해자들은 자기들이 스테파노의 목숨을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스테파노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환영을 받으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새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순교뿐만 아니라, 모든 충실한 신앙인들의 죽음은,
죽음이(끝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만이 죽음이라고(끝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지상에서의 인생을 ‘천막집’으로,
즉 임시 거처로, 하느님 나라에서의 새 인생을
‘영원한 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이 천막집에서 우리는 탄식하며, 우리의 하늘 거처를
옷처럼 덧입기를 갈망합니다(2코린 5,1-2).”
신앙인의 인생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집’을
향해서 가는 여행입니다.
그 ‘영원’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인생은 짧아도 아주 짧은
잠깐 동안의 일,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일 뿐입니다.
3)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밀알 하나’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읽으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말씀은,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땅에 심어진
밀알이 죽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이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잠깐 거치는 과정일 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씨를 땅에 심는 일은, 그 씨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 심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씨가 있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씨, 즉 생명력이 없는 씨는
땅에 잘 심고 가꾸고 돌본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심기도 전에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4) 예수님께서는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하나의 씨로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하나의 씨가 됩니다.
순교자들의 경우에도 일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한 씨로 자신을 바치고, 그 다음에는 순교를 통한 신앙의
증언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씨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9,23).”
자신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실격자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했습니다(1코린 9,27).>
신앙생활은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생활입니다.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간에 어떤 일에 대해서
스스로 하나의 밀알이 되어서 희생한다고 해도, 그 희생도
사실은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희생입니다.
[출처]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의 밀알이 되야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