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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여고생 정유선의 집에 1987년 초봄, 편지가 배달됐다.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사이의 짧은 봄방학을 즐기던 정유선이 봉투를 열자 곱게 접은 편지지 세 장이 나왔다. 검은 수성 펜으로 눌러쓴 편지엔 머뭇거림의 흔적이 맺혀 있었다. '수업 시간에 나도 모르게 유선이 이름을 부를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편지를 보낸 사람은 명성여고(현재 동국대사대부속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신현숙 선생님이었다.
얼마 전 서울 인사동 한 호텔에서 만난 미국 조지메이슨대 특수교육과 정유선(43) 교수는 26년 전 선생님에게 받은, 자신의 삶을 바꾼 편지를 늘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최근 에세이집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를 낸 정 교수는 뇌성마비로 인한 언어·지체 장애를 갖고 있다. 지능 자체엔 문제가 없지만 말이 어눌하고 이야기할 때 얼굴이 일그러지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은 지적 장애로 오해하기도 한다.
정 교수는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나온 후 1990년 미국으로 유학해 조지메이슨대(학사), 코넬대(석사)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조지메이슨대에서 보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4년 교수가 됐다. 조지메이슨대는 학생 수 약 3만2000명의 공립대다. 그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추천하고 교수들이 최종 심사를 하는 '최고 교수상'을 지난해 받았다.
그는 유학 중 만난 미국 교포로 과학·정책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는 장석화씨와 결혼했고 똘똘한 남매 하빈(15)·예빈(11)이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삶에 간편하게 '인간 승리'라는 명패를 붙인다.
올해로 대학서 강의한 지 10년째인 정 교수는 "되돌아보면 26년 전 선생님에게 받은 편지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만약 선생님이 없었다면 나는 '장애인이 어떻게'라는 편견에 결국 굴복했을는지 모른다"라고 했다. 한 장의 편지는 정 교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긴긴 도전사(挑戰史)를 듣기 위해, 정유선 교수와 마주 앉았다.
◇호킹과 비슷한 보조기구로 강의
이날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 PC, 큰 수첩 등을 닥치는 대로 가방에 넣었다. 혹시라도 둘 사이에 '말길'이 막혀 뭔가 도구가 필요한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정 교수는 "혹시나 해서 컴퓨터도 가지고 왔다"고 하자 웃으면서, 느리게 답했다. "사실… 남들 앞에서 말하고 사진에 찍히는 일이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일단 말로 해보다가… 혹시 힘들면 컴퓨터의 도움을 받도록 하죠." 인터뷰는 말과 '카카오톡 PC 버전'을 사용한 채팅을 섞어가며 진행됐다.
정 교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AAC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보완 대체 의사소통기기)라는 보조 공학기구의 도움을 받는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치면 기계가 목소리를 대신 내는 방식이다.
―AAC가 무엇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데요.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님 아시죠? 루게릭병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제가 쓰는 프로그램은 호킹 박사님이 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요. 저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쳐서 문자를 입력하고, 호킹 박사님은 얼굴 근육을 조금씩 움직여서 문자를 만드는 게 차이예요. 그렇게 문장을 입력하면 기계가 문자를 목소리로 바꾸어 주지요."
―입력 방식은 인터넷 채팅 비슷하네요?
"그것보단 조금 복잡해요. 문장을 입력하면 기계는 똑같은 속도로 단어들을 주욱 읽어 나가요. 학생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려면 쉬어야 하는 시점에 일일이 쉼표를 넣어주어야 해요. 2시간 40분 수업을 하기 위해서 AAC를 준비하는 시간만 일곱 시간 넘게 걸려요."
정 교수는 이번 학기에 세 과목(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 특수교육 개론, 독립생활을 위한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수업 일정이다. 그는 "그냥 잠을 줄이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느리게나마, 그냥 말로 강의하시면 안 되나요?
"외국어 배워보셨죠? 잘 되다가도 정작 외국인을 만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하면 말문이 막히잖아요. 비슷해요.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말이 안 나오거나 하는 사태를 미리 예방하는 거죠."
그는 AAC를 시연해보겠다며 노트북 컴퓨터 전원을 켜고 지난 학기 강의 중 하나를 열어 보여줬다. 화면엔 텍스트가 떴고 여성 로봇을 연상케 하는 영어 소리가 컴퓨터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나왔다. "보조공학을 여러분께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기계는 호킹 박사가 쓰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저는 호킹 박사만큼 똑똑하지는 않습니다." 기자가 웃자 정 교수는 "기계음이라 딱딱하게 들리기 때문에 유머를 많이 섞으려고 한다"고 했다.
◇"날 주눅들게 했던 배려 아닌 배려"
정유선 교수가 뇌성마비라는 사실은 두 돌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갓난아이 때 앓았던 심한 황달 탓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딸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자 가수로 활동하던 어머니 김희선씨('울릉도 트위스트'로 이름난 이시스터즈 전 멤버)는 딸 돌보기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 정현화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딸을 업고 다니며 헌신했다. 어린 시절 3년을 재활원에서 보낸 정교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됐을 때 부모는 갈등하다가 일반학교를 선택했다. 어머니 김희선씨는 "언젠가 유선이가 우리 곁을 떠나 사회에 혼자 힘으로 우뚝 서야 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첫날부터 후회했다. 여덟 살 정유선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자기소개 해볼까"라고 물어보는 선생님, 손을 번쩍번쩍 들고 앞다퉈 교단에 나가는 아이들…. 박수와 웃음이 섞인 첫날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정유선 학생도 손을 번쩍 들었다. 어머니 김희선씨는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안 돼!'라고 외쳤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넘어지며 교단에 오른 유선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를 부르자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고 결국 유선이는 엉엉 울었다"고 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엔 어땠나요?
"거의 '발표 열외 학생'으로 지냈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 기억에 남아요. 선생님이 칠판에 수식을 몇 개 쓰시더니 '이렇게 더해도 된다는 법칙은 뭐지'라고 물었어요. 저는 그냥 혼잣말처럼 '결합법칙'이라고 중얼거렸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걸 들었는지 갑자기 '유선이가 일어나서 말해볼래'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 그…' 하다가 그냥 앉았어요. 그때부터 주눅이 많이 들었고, 입을 더 다물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 때문에 상처 받는 일도 많았죠?
"저는 학기 첫날마다 선생님의 눈초리가 두려웠어요. '얘, 뭐야?'라는 그 눈빛이 큰 상처가 됐어요. 초등학교 때 매스게임 하잖아요. 그때 한 선생님이 저를 보면서 무심코 던진 말은 큰 상처로 남았어요. '아유, 큰일 났네'라는 말이었죠."
―선생님이 좀 무심하셨네요.
"글쎄요… 그런데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놀림보다는 배려였어요. 배려 아닌 배려라고나 할까요. 선생님들은 저를 '발표 열외'로 분류해 두었어요. 피구 경기가 열리면 '유선이는 빠져'라고 했어요. 물론 선생님들이 좋은 마음으로 그래 주셨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그런 배려가 점점 저에게 한계를 만들고 있었던 거죠. 저도 거기에 익숙해져 갔고요."
◇'남에게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해라'
정유선 교수에게 말은 '평생 숙제'다. 꿈에서조차 한 번도 유창하게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유창하게 말하는 유선이 꿈'을 꿔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국어 교사로 정 교수의 삶을 바꾼 신현숙 선생님이다. 26년 전 그날의 사건은 평화롭고 나른한 여느 여고 교실의 국어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 정 교수는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오후,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던 나에게 닥친 일에 너무 놀랐다"고 했다. 신 선생님(지난 봄 퇴직)은 "유선이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한참을 계획했던 일이었다"고 했다.
1986년 봄 명성여고 1학년 국어 수업 시간. '결합법칙' 사건 이후로 거의 7년 넘게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발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던 '열외 학생' 정유선을 신 선생님이 불렀다. "유선이가 일어나서 시(詩)를 한번 읽어보자." 정 교수는 "그날은 선생님이 작정했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고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저는 더듬더듬 시를 읽었어요. 시를 다 읽고 앉자마자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저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울었어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게 돼서, 그런데 뜻대로 잘 안 되어서… 그래서 울었겠죠. 며칠이 지나자 제게 씌워져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뚜껑'을 치워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을 담아 짧은 편지를 보냈지요."
신현숙 선생님에게 직접 그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달 초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리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26년 전 국어 수업 시간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유선이는 학교에서 자리에 앉아만 있을 뿐이지, 발표에선 제외된 아이었어요. 너무 풀이 죽어 있었다고나 할까… 안타까웠어요. 혹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낭송을 시켰지요."
정 교수는 "책 읽기도 그렇지만, 2학기가 끝나고 선생님이 보내주신 답장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오는 편지였다"고 했다. 정 교수는 편지를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다음은 긴 편지의 내용 중 일부다.
편지의 마지막 장 아래쪽엔 빨간 밑줄이 빼뚤빼뚤하게 그어져 있었다. '누가 유선이에게 어떻게 한다고 하여 거기에 마음이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해라'라는 부분이었다. 정 교수는 "그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저는 당시 세상이 장애인에게 쌓은 편견의 벽에 갇혀가고 있었어요. 신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씌우고 있었던 틀을 벗겨주신 거죠."
얼마 전 정유선 교수가 서울을 찾았을 때, 선생님과 제자는 아주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정 교수가 책을 직접 전달하고자 마련한 식사 자리였다. "선생님은 제자를 볼 때 '이 학생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그 바람을 편지에 담아서 종종 제자들에게 보낸다고…. 저한테만 편지를 쓰신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지요, 하하."
유학 초기인 1990년, 그가 수첩에 적은 말들은 당시의 암담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즘 들어 나 정유선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죽고 싶다. 죽으면 아무 고통 안 받을 텐데' '씁쓸함, 우울함, 허망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왜긴 왜야? 내가 병신이니까 그렇지. 말도 못하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병신이니까. 뭐 병신이 공부만 잘한다고 다 알아주나?'….
"삶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비법은 없어요. 그냥 견디고 돌파하는 수밖에. 저는 신체 조건에 적합할 것 같아서 대학 때 컴퓨터공학을 선택했지만 '소프트웨어(software)'를 '물렁물렁한 도구'라고 번역할 정도로 컴퓨터에 문외한이었어요.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죠. 프로그래밍 숙제를 하려고 씻지도 않고 24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붙어 있은 적도 많아요. 새벽 3시까지 공부하는 건 아주 일상적이었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학생회관 소파로 가서 밤새워 공부를 했죠. 그렇게 매달린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다섯 과목 모두 A를 받았어요. 너무 좋아 길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죠. 그때 누가 저를 봤으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정 교수는 유치원 때 그림일기를 찍은 사진 파일을 보여줬다. 1976년 8월 5일에 쓴 일기엔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고 문학가도 되고 싶고 의학박사도 되고 싶다'라고 적혀 있다. "피아노도 칠 줄 알고 책도 썼고 교수도 됐고… 이 정도면 꽤 많이 이뤘죠? 엄마는 가끔 웃으면서 '넌 못하는 게 뭐니'라고 하세요. 그럼 제가 그러죠. '말 빼고 다 잘해'라고, 하하."
첫댓글 감사합니다. 내생명부처님무량공덕생명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말!
장애가 없다면 인생이 밋밋했을 거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우리 생명은 부처님무량공덕생명..그것을 꺼내쓰는자의 몫..포기만 하지 않으면 세상은 분명 화답을 주네요..작은 관심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나랑 상관 없다고 지나나는 일에도 작은 관심을 가지며 생명을 살리는쪽에 촛점을 맞추고 삶을 살아야 함께 성장..마지막 글이 참 좋습니다..천국에 없는것을 세상에 베풀어 놓은 우주의 자비를 봅니다.,,선생님 보현행자!!
동네 근처 특수학교가 있어 이웃에 장애우 들이 몇있습니다..보현을 공부하고선 사람을 피하는 그 아이들에게 항상 인사말이지만 먼저 말을 걸고 웃어주곤 할수 있어 고마웠습니다..보현을 공부해서 그 아이들에게서 장애를 장애로 보지않고
대할수 있게 되어 참 고마웠습니다..하루는 엄마손을 잡고 비뚤거리며 등교하는 그 아이와 엄마를 보며 인사를 나누고 나도 몰래 아이를 안아 버리고 말았습니다..엄마하고는 인삿말도 하고 고잘미책도 한권 드리기도 하는 사이 입니다..남들 눈을 의식해 아이를 외부에 데리고 다니진 않습니다..그래서 그런지 아이랑 있을땐 사람을 많이 경계합니다. 근데 제가 서서 인사를 나누다 나도 몰래 살짝 내 품에 아이를 안았더니 모녀가 짐짓 놀라는 모습이었지요..앞으로도 쭉 저는 그 아이를 볼때면 살짝 품에 품어줄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부처님!!..그 아이 엄마가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을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제가 공부 많이하고 한마음 밝아져 아이 엄마가 부처님 밝은 가르침으로 밝음을 찾길 가끔 그분 볼적마다 발원드리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닌 정신이 아파 끊없이 추락하고 보현행원을 만나 공부해 가며 이젠 지난날이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내가 젤 잘나가" 하는 강한 상에 걸린 예전 이었으면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상황입니다..아이를 분명 피했을 겁니다..참 많이도 감사합니다, 화엄을 만나 공부할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내 이 고통에도 진정으로 감사의 물결 출렁일 날을 기다려 봅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_()()()_